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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 내가 뉴스를, 뉴스가 나를 말하다
김주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처음 집필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절대로 마흔 이전에는 책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경험도 부족할 것이고 책은 단지 아는 것이 많다고(사실 남들보다 많이 알지도 못하지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알려졌다는 것을 이용한 상술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또한 있었다.’
이 책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가장 첫 문장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인 까닭도 바로 저 글에 담겨 있다.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 번역 사건으로 아나운서가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불신이 조금 있었고, 김주하씨 말처럼 얼굴이 알려졌다는 것을 이용한, 상술에 불과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고 싶었다. 읽고 싶었다. 김주하에 대한 막연한 ‘호감’ 때문이기도 했고, 그가 얼마나 악착같이 앵커 세계에서 버텨왔는지 그 이야기가 듣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샀고, 여지없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뻔한 걸 뭐 하러 사서 보냐.”
난 어물어물 대답한다.
“뻔해도 할 수 없고. 그런데 왠지 안 뻔할 것만 같은 믿음이 있거든.”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 하는(책을 읽고 실망하면 마음이 좀 힘들다.) 마음으로 이 책을 어제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점심 즈음 다 읽었다.(오늘 월차를 낸 관계로 아침부터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에세이니까 빨리 읽혔겠으나, 내용이 재밌어서 속도가 잔뜩 붙을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재밌었다. 한번씩 킥킥 웃기도 했고, 가슴이 찡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이 사람 김주하, 정말 어지간히 독하다. 하긴 아나운서 생활 하려면, 그것도 뉴스를 진행하려면 독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테다. 하지만 그 독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 ‘독’하기에 지금의 김주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직까지 이 사회는 그냥 열심히 살아서는 ‘앞서나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건 대리만족이 아닌, 열정을 바쳐 살아가는 모습이 무언지 아는 사람을 만난 기쁨이다. 거기서 꼭 ‘귀감 거리’를 찾을 필요는 없다. 난 왜 저렇게 할 수 없을까,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김주하처럼 ‘제대로 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의 흔적을 엿보면서 지금보다는 나도 조금 더 열정 가득히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힘을 얻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여전히 미심쩍은 건 있다. 김주하가 말하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 뒤로 난 ‘백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어지간한 방송사 괴담(?)은 듣질 않는다.
주변의 헛된 소문만 듣고 미리 포기했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나같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하지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진정 원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노력하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해 보라고.’
‘내가 어떻게 방송사에 입사할 수 있었는가’에 보면 저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백도 없고 별로 부자도 아닌 자신이 방송사에 입사한 걸 보면 ‘백이 있어야 방송사에 입사할 수 있다.’는 게 괴담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하지만 김주하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몇몇이 ‘예외’가 된다고 해서 ‘진실’을 가릴 수는 없을 터. 비록 에세이지만 저 정도 이야기는 정말 중요하다고 보이기에, 조금 더 객관된 근거를 들어서 ‘방송사는 백으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는 주장을 확실히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한 권을 죽 읽고나니, 마치 김주하라는 사람과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책 읽는 동안 편안했고, 내가 몰랐던 김주하의 면면들을 살짝 살짝 들여다보는 재미도 참 좋았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랑 비슷한 부분도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평소에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나(진짜인지 살짝 의심이 가긴 하지만.^^), 남편이 가정적이라서 결혼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 들이 그렇다.
특히 책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글이 ‘스님이 된 민중가수’이야기였는데, 그게 괜히 좋았다. 어느 정도의 깊이로 기사의 주인공인 ‘범능’ 스님한테 다가섰는지는 모르지만, 책이 끝나갈 무렵 내 삶과 맞닿는 ‘노래’ 이야기가 나와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프롤로그에 또 이런 글도 있었다.
‘보여지기 위함이 아니라 보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아는 것’의 양보다 ‘알고 싶은 것’의 양이 많아졌을 때 비로소 ‘집필’을 떠올리게 됐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저 말을 왜 했는지 알 듯 하다. 이 책은 분명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은 아닌 듯 하다. 많이 알아서 쓴 글도 아니다. 그냥 ‘많이 보고 싶고’, ‘많이 알고 싶은’ 한 사람이 그 마음을 솔직히 담아 쓴 글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참 편안했던 것 같다.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잘하는 일이 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일치하는 사람을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김주하는 자신이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고 싶은 일 ‘뉴스’를 맡고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텔레비전으로 봤을 땐 잘 몰랐지만, 책을 읽고나니 김주하는 정말 ‘뉴스’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걸, ‘잘’하기까지 하는 그가 참 보기 좋다. 그리고 그런 김주하를 계속 응원해 주고 싶다.
"김주하씨. 아니 주하 언니! 엄기영 앵커나 손석희 앵커처럼 나이가 사십, 오십이 되어도
죽 그렇게 뉴스 앵커 자리를 지켜 주세요. 그게 주하 언니가 후배들을 위해 해줘야 할 가장 큰 일이랍니다!
믿어도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