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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부산
김민혜 외 지음 / 산지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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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소설집-모자이크 부산”

 

제목이 독특했다.
여섯 사람이 쓴 이야기를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니,
약간 봉 잡은 느낌도^^

 

테마소설집 <모자이크 부산>.
작가마다 서로 다른 ‘곳’을 주제로
기억을 더듬으며 아픔을 드러내고
희망을 껴안고자 애쓴다.
때론 지독히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선
모습도 보인다. 희망도 꿈도 내던진 채.

 

시민공원, 증산공원, 임랑 바닷가,
초고층 아파트, 돌산마을, 거제리.

 

소설 속 배경이자
주인공과 다름없다 해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부산’에 있는 ‘장소’들이다.

내가 만나 본 곳도 있고
이름조차 처음 듣는 공간도 있다.

 

장소에 얽힌 추억과 기억이,
(아마도) 상상과 더해져
끈적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우리가 과거를 떨쳐내고
미래로 나아가는 시점은
지난 아픔에 대해 얘기하며
애도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야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_박영해 ‘작가노트’에서

 

“마지막 문장을 쓰는 순간,
‘공중부양증’을 앓던 내 몸이
땅 가까이 내려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정체성에 눈을 뜬 존재로서
최초의 기억을 더듬는 건
아픔을 이해하는 공간으로의 여행이고,
치유의 길이다.”
_안지숙 ‘작가노트’에서

 

‘지난 아픔’, ‘최초의 기억’이
공간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클 수 있다는 것을
작가노트에 새긴 글에서 새삼스레 배운다.

 

어찌 보면 늘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도 같다.
사랑도 행복도, 미움과 원망마저도.

 

<모자이크 부산>을 만난 덕분에
내가 사는 공간을 좀 더 세밀하게
헤아려 보고 싶어졌다.

 

이곳에서 나는 무엇이 바뀌었고,
또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차근차근 돌이켜 보면

 

박영해 작가의 글처럼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고,
안지숙 작가의 말처럼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을는지...

 

하루에 한두 편씩 나눠 보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내가 모르는 삶,
내가 겪지 못한 시간,
내가 볼 수 없을 사람들.

글로 알고, 느끼고,
또 만나게 해 주니
역시 소설이 좋구나.

소설 여섯 권을 본 듯한
충만함을 안고 
<모자이크 부산>을 덮는다.
 
이 밤도 어디선가 글농사 짓느라
머리는 복잡해, 허리도 아프고 있을
세상 소설가들한테
수줍은 응원을 보내고만 싶다. 
 
“역시, 소설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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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 광대
권리 지음 / 산지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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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뇌구조가 궁금해지는 책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기이하고 신비롭고 재미나다

 

소설가 이름도, 제목도 참 독특한 책을 만났다.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작고 얇아서 금방 읽었는데 마음에 뭔가 ‘툭’ 하고 던지는 힘은 은근히 강하다. 그래서일까, 소설에 관해 잘 모르면서도 나에겐 낯선 표현, ‘이거, 문제적 소설 같아’ 하는 말을 저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시작부터 하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바람에.

 

오늘날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영감님이 오셨다.”(9쪽)

 

책 맨 앞에 나오는 ‘광인을 위한 해학곡’의 첫 문장이다. 갑자기 웬 영감님?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궁금증 잔뜩 안고 죽 읽어 보니 영감님이라 함은 예술로 세상을 연출하고 싶었다던, 독특하고 기이하다 못해 광인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 ‘장곡도’를 이르는 말이었다. 어디 주인공만 그런가? 글 흐름도 완전 독특하고 기이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장곡도 자신도 풀지 못한 삶의 미스터리를 우리가 풀 수 있을까? (장곡도가 남긴) 이 시가 미스터리를 푸는 일말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여러분의 뇌와 심장의 활동에 달려 있다. (52쪽)

 

글 끝자락에서 만난, 독자까지 글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런 문장, 낯설다. 하지만 흥미롭다. 저 글 바로 밑에 이어진 장곡도의 다음 시 또한.

 

건방진 소녀소년이 될 준비를 하라.
불편한 장난을 감수하라.
충격에 민감하라.
성스러운 기침을 하라.
당신은 행복하다.
코미디가 분노를 만나 냉소가 된 사회를 살고 있으니
현대에는 광인의 눈이 더 정확하다.
비광인은 2개의 눈을 갖고 있으나, 광인은 7개의 눈을 갖고 있다.
유희의 눈, 무질서의 눈, 악의 눈, 주의산만의 눈,
불일치의 눈, 거절의 눈 그리고 텅 빈 눈이다.
인간이여, 텅 빈 눈을 가져라!

 

‘비광인’보다 ‘광인’이 훨씬 멋지게 느껴지게 만드는 시. ‘광인’처럼 7개의 눈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일어나는 시. 장곡도의 미스터리는 작가의 미스터리이기도 했을까? 그렇다면 작가도 광인의 눈을?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 아리송한데도 빨려 들어가듯 ‘광인을 위한 해학곡’을 보고 나니 작가의 다음 미스테리가 막 궁금해진다. 냅다 나머지 소설들로 달려 보기.

 

소설 ‘해파리’는 동물 해파리가 주인공인 듯 비치지만 실은 외국인 노동자들 삶을 그려내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홀로 짐작해 보고. 도심 속 어느 외딴 마을이 야금야금 땅속 구멍으로 사라져 버리는 내용인 ‘구멍’은 강남 어느 부촌과 그 옆에 딸린(?) 판자촌을 생각나게 한다. 주제는 이렇듯 ‘사회의식’이 뚜렷해 보이는데, 글은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마치 SF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에는 이상하게도 자꾸 빠져든다. 거참, 기이한 일.

 

드디어 마지막 소설, 책 제목이기도 한 ‘폭식광대.’ 인류 최대의 식성을 자랑했던 한 남자의 일대기라는데. 처음 읽었을 때 하도 괴기스럽고 이상하고 좀 무섭기도 해서 내용이 잘 스며들지 않았다. 두 번째로 보고 나니, 뭔가 느낌이 온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에서 작가가 ‘광인의 시’를 빗대어 괴기한 이 시대에, 이 시대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이 소설에서 비로소 찾은 기분마저 들었다.

 

“세상에는 저를 우스꽝스럽게 보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통해 자신들의 내면의 악마를 마주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음식을 먹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안고 있는 고민들, 즉 자신의 탐욕스러움, 사회에 대한 불복종, 무조건적인 의지 등과 같은 추한 기분 따위를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연극적이고 악마적인 행위를 보이게 함으로써 저는 잠시 잠깐이나마 그런 고민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저를 보고 죄책감을 건너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저는 이 행위를 하고 있음을 남에게 알림으로써, 이 행위 자체의 부도덕함, 부조리, 비인간성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등 뒤에서 그들의 그림자가 되어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먹는 것을 거부하여, 이것이 이러저러한 형태로 배설된다면 아주 무서운 효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 저는 이를 막기 위해 기꺼이 여러분을 위한 탐욕의 악마가 되겠습니다. 저의 희생이 여러분의 행복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150~151쪽)

 

 

사실 책을 읽는 내내, 현실과 상상을 마구 넘나드는 기이한 이야기들 때문인지 작가의 정신세계가 많이 궁금하던 차였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마음속보다는 머릿속에 지닌, ‘사차원’스런 뇌구조를 가졌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폭식광대’의 주인공 남자가 폭식 대회를 앞두고 길게 남긴 저 말을 보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소설의 형식은 독특하되 생각만큼은 낮은 곳, 아픈 데로 향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솔솔 생겨났다. 아니나 다를까.

 

1. 13년
첫 번째 단편집이다. 나무늘보처럼 게으르면서도 집요하게 13년간 꿈틀댔다.
‘어려운 일은 쉬울 때 하라.’
이것은 내 좌우명이자, 이 책이 빛을 보기까지 13년이나 걸려야 했던 이유이다.

 

2. ‘여기 사람이 있어요.’
재개발 아파트 건설로 인해 터전을 빼앗긴 어느 소시민의 인터뷰 한마디가 <폭식 광대>를 탄생시켰다. (‘작가의 말’에서)

 

책 끝에 짧게 나오는, 작가의 말 1번과 2번을 연이어 보면서 그냥 좀 기뻤다. 내 생각이 조금은 들어맞은 듯해서. 그래도 여전히 신기하다. 주제의식은 자못 심각한데 소설 전개는 어쩌면 이리도 (어둡긴 하나) 판타스틱 분위기로 끌어냈을까나. 작가의 뇌구조가, 아니 예술세계가 다시금, 아주 많이 궁금해진다. 소설집을 다시금 주르륵 훑다가 내 마음과 꼭 닮은 문장을 찾았다!
 
사람들은 장곡도를 보면 궁금해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창조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가? 과연 저 위대한 예술가에게 영향을 준 위대한 영감은 무엇일까? (11쪽)

 

재밌다고만 말하고 끝내기에는 뭔가 아쉬웠던 권리 소설집 <폭식광대>. 작가의 예술혼이 담겨 있을 저 문장을, 짧은 단편집 하나로 ‘문제적 소설’이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말을 저절로 이끌어낸 작가한테 고대로 돌려주고프다.

 

‘권리 씨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가? 당신에게 영향을 준 위대한 영감은 과연 무엇인가?’

 

나를 특별한 소설 세계로 안내해 준 기이하게 재미난 글과 작가를 만난 기념으로, 새로운 의식 하나를 삶에 보태 볼까나.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면 광인 장곡도를 생각하며 “영감님이 오셨다!” 하고 외치기. 이 생각도 꽤 좋은 것 같으네. 아마 지금 나에게 영감님이 오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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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눈 - 2013년 제28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2013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조갑상 지음 / 산지니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순간으로 시대를 담는 소설의 세계"

 

한 사람이 쓴 소설을 연이어 읽었다.
<테하차피의 달>로 담백한 소설 맛 제대로 느끼게 해 준
조갑상 소설가의 <다시 시작하는 끝>과 <밤의 눈>.

 

 

단편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은 작가의 첫 창작집이란다.
1990년에 나왔다 절판된 것을 몇 년 전 다시 펴냈다고.
1980년 등단해서 십 년 가까이 쓴 글을 모았으니
뜨거운 80년대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맛볼 수 있겠지,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는데.

 

“그의 소설은 (…) 노골적인 정치의 이념과 구호를
생경하게 발설했던 당시의 언어들에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에 대해 쉽게 발설하지 않고
진정으로 정치적인 것을 탐색했다. 그 탐색의 진정성은,
설명해대지 않고 담담히 보여주기만 하는
그의 남다른 소설적 문법이 담보하고 있다.”

 
책 뒤에 실린 전성욱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나오듯
아픈 시대를 오롯이 담기보다는 시절을 살짝 비껴가듯,
꾸역꾸역 조심조심 살아가는 소시민, 중산층의 삶이
책 전편에 덤덤하고 묵직하게 흐른다.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평범한 듯 사실감 있게 다가오는
한 사람, 두 사람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간도 충분히 좋았다.
짧은 글마다 그윽한 울림이 퍼져 나와
내 마음에 잔잔한 물결도 쏠쏠하게 남겼고.

 

“저 창호지의 두께보다도 내 신변의 안전은 두터운가”


“김 생원은 책을 밀쳐놓는다. 눈이 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글에 뜻이 없다기보다는 글 속에 뜻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시절이 바람 같아 책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생각과 태도만은 비탈길 내려갈 때 딛는 발자국같이
조심스럽고 단단하기만 하다.” (223~224쪽)

 

소설이라 하면 아름다운 문장, 기억하고 싶은 글자들
여럿 만날 법도 한데, 이 책은 밑줄 잘 긋는 나에게
위에 옮겨 적은 딱 네 군데만 연필을 들게 했다.
미사여구 없는 담백한 문체. 그 덕에 제법 두꺼운 이 책에
질리지 않고 계속 빠져들 수 있었던 걸까.

 

‘순간으로 시대를 담는 조갑상 소설세계의 원점’

 

표4에 나온 책 소개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책 속 이야기들은 거의가 어느 한 날, 또는 며칠 정도쯤 되는
짧은 시간을 그렸다. 그럼에도 오래, 깊이 생각하게 만들곤 했다.
꼭 긴 소설 한 편 보고난 뒤처럼.
왜 그럴까 슬쩍 궁금했는데,
위 글귀에서 그 답을 작게나마 찾은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끝>에서 유일하게(?)
시대의 아픔을 대놓고 드러낸 소설이 있다.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사라진 하늘’이 그것.

 

뭔가 더 말할 듯 말 듯 아스라이 끝난 이 소설이
나를 <밤의 눈>으로 이끈 것도 같다.
‘민간인 학살과 보도연맹의 비극’이라고
책표지에 또렷하게 밝힌 바로 이 소설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무채색 문장은 여전하나
소재가 워낙 굵직한지라 긴박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눈과 마음 질끈 감고 읽게 되는 장면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순간도 많았다. 

 

“한용범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달을 보았다. 밤의 눈.
허벅지인지 옆구리인지가 뜨끔하다 싶더니 앞사람들이
벼 가마니 쓰러지듯 풀썩 몸을 덮었다.
그는 달이 공포가 밤의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을 놓기 직전에야 알았다.” (149쪽)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것, 그걸 운명이라고 이름 짓고 말기에는
죽은 자들이 너무나 억울했다. 그는 살아 있는 자신이
죽은 자들을 위한 몸이었으면 싶었다.” (283쪽)

 

‘견디고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견디며 기다리는 그 자체도 희망일 것이었다.’(357쪽)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몸을 부지하고
세월을 버티지 않는다는 건 죄였다.’ (363쪽)

 

세상일에 두루 아는 게 적다 보니
보도연맹과 이어진 사건들은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이런 소설을 본 것인지,
이 책이 유독 서글프고 억울한 이야기를 담은 것인지.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아픈데도,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늦은 밤인데도 책을 놓지 못했다.

 

‘참으로 십수 년 만에 느껴 보는 자유였다.
자신의 온몸이 자유롭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 회한이어서는 안 된다. 내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어야 했다.
(…) 무한한 건 인간에 대한 신뢰, 자신이 사는 이 세상과
내일에 대한 믿음이었다.’ (379쪽)

 

손에 든 지 거의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으면서,
책의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주인공 옥구열 따라 나도 어느새 울고 있었다.

 

사는 목적을 돌에 새겨 놓듯 유별나게 새기고
사는 것 같아 몸도 맘도 되고 되다는, 옥구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 싶다는
그 마땅한 바람이 죄가 되어,
글로만 봐도 치가 떨리는 모진 삶을 지나온 그이.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할 말을 하는
그저 한 사람 국민으로 살고 싶다던 옥구열의 독백은, 눈물은
내 마음을 적시고 또 적셨다.  
 
‘망자가 산 사람을 만나게 하다 1972/ 그해 여름 1950/
유족회 1960/ 표적 1961~1968/ 긴 하루 1972/ 밤하늘에 새기다 1979’

 

이 글의 목차다. 지난 시간을 불러내는 첫 장을 빼고는
1950년부터 시간 순으로 이어진다.
해방 뒤 펼쳐진 우리 현대사 30년에서
보도연맹, 그리고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얼룩진 아픔들이
뭉텅뭉텅 묻어나는 이 소설.  

 

그러고 보니, 어제가 4월 3일이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벌어진 대학살. 4.3항쟁의 그날.

엄마 아빠 모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분들인데.
혼인도 제주도에서 하셨고. 아빠는 37년생, 엄마는 44년생.
두 분 살아계실 땐 아쉽게도 4.3에 대한 이야기 한번
물어보지 못했다. 얽힌 이야기들이 분명 많았을 터인데. 

 

하긴 어디 4.3뿐이랴.
되새기고 곱씹고 바로잡고자 애써야 할 역사가 너무나 많다.
하물며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일들이, 아픈 역사가 자꾸만 생겨나고 있으니.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내 손에 갇혀 있었다.
이제 그들은 소설 속 인물로 다시 태어나 세상과 만난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독자들을 많이 만나
위로받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_작가의 말에서 

 

다 진짜는 아니지만 모두 다 거짓말도 아닌,
어쩌면 실화가 훨씬 더 소설 같을 수 있는,
창작과 실화를 넘나드는 조갑상의 소설 덕분에
오랜만에 책으로 지난 세상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책 한 권 읽었다고,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을 위로할 자격이
냉큼 주어지는 건 아닐 테지.
그저 아프게 하늘로 간 이들도, 아프게 남아 있는 이들도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정도,
할 수 있으려나, 해도 되려나.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상식과 정의, 인권과 복지를 말하려면
먼저 이 소설부터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부끄럽고 고통스럽지만, 다시는 이런 야만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결코 덮어선 안 될 진실이기 때문이다.”
_김주완(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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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끝
조갑상 지음 / 산지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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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순간으로 시대를 담는 소설의 세계

 

한 사람이 쓴 소설을 연이어 읽었다.
<테하차피의 달>로 담백한 소설 맛 제대로 느끼게 해 준
조갑상 소설가의 <다시 시작하는 끝>과 <밤의 눈>.

 

 

단편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은 작가의 첫 창작집이란다.
1990년에 나왔다 절판된 것을 몇 년 전 다시 펴냈다고.
1980년 등단해서 십 년 가까이 쓴 글을 모았으니
뜨거운 80년대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맛볼 수 있겠지,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는데.

 

“그의 소설은 (…) 노골적인 정치의 이념과 구호를
생경하게 발설했던 당시의 언어들에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에 대해 쉽게 발설하지 않고
진정으로 정치적인 것을 탐색했다. 그 탐색의 진정성은,
설명해대지 않고 담담히 보여주기만 하는
그의 남다른 소설적 문법이 담보하고 있다.”

 
책 뒤에 실린 전성욱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나오듯
아픈 시대를 오롯이 담기보다는 시절을 살짝 비껴가듯,
꾸역꾸역 조심조심 살아가는 소시민, 중산층의 삶이
책 전편에 덤덤하고 묵직하게 흐른다.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평범한 듯 사실감 있게 다가오는
한 사람, 두 사람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간도 충분히 좋았다.
짧은 글마다 그윽한 울림이 퍼져 나와
내 마음에 잔잔한 물결도 쏠쏠하게 남겼고.

 

“저 창호지의 두께보다도 내 신변의 안전은 두터운가”


“김 생원은 책을 밀쳐놓는다. 눈이 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글에 뜻이 없다기보다는 글 속에 뜻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시절이 바람 같아 책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생각과 태도만은 비탈길 내려갈 때 딛는 발자국같이
조심스럽고 단단하기만 하다.”

(223~224쪽)

 

소설이라 하면 아름다운 문장, 기억하고 싶은 글자들
여럿 만날 법도 한데, 이 책은 밑줄 잘 긋는 나에게
위에 옮겨 적은 딱 네 군데만 연필을 들게 했다.
미사여구 없는 담백한 문체. 그 덕에 제법 두꺼운 이 책에
질리지 않고 계속 빠져들 수 있었던 걸까.

 

‘순간으로 시대를 담는 조갑상 소설세계의 원점’

표4에 나온 책 소개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책 속 이야기들은 거의가 어느 한 날, 또는 며칠 정도쯤 되는
짧은 시간을 그렸다. 그럼에도 오래, 깊이 생각하게 만들곤 했다.
꼭 긴 소설 한 편 보고난 뒤처럼.
왜 그럴까 슬쩍 궁금했는데,
위 글귀에서 그 답을 작게나마 찾은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끝>에서 유일하게(?)
시대의 아픔을 대놓고 드러낸 소설이 있다.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사라진 하늘’이 그것.

 

뭔가 더 말할 듯 말 듯 아스라이 끝난 이 소설이
나를 <밤의 눈>으로 이끈 것도 같다.
‘민간인 학살과 보도연맹의 비극’이라고
책표지에 또렷하게 밝힌 바로 이 소설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무채색 문장은 여전하나
소재가 워낙 굵직한지라 긴박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눈과 마음 질끈 감고 읽게 되는 장면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순간도 많았다. 

 

“한용범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달을 보았다. 밤의 눈.
허벅지인지 옆구리인지가 뜨끔하다 싶더니 앞사람들이
벼 가마니 쓰러지듯 풀썩 몸을 덮었다.
그는 달이 공포가 밤의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을 놓기 직전에야 알았다.” (149쪽)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것, 그걸 운명이라고 이름 짓고 말기에는
죽은 자들이 너무나 억울했다. 그는 살아 있는 자신이
죽은 자들을 위한 몸이었으면 싶었다.” (283쪽)

 

‘견디고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견디며 기다리는 그 자체도 희망일 것이었다.’(357쪽)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몸을 부지하고
세월을 버티지 않는다는 건 죄였다.’ (363쪽)

 

세상일에 두루 아는 게 적다 보니
보도연맹과 이어진 사건들은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이런 소설을 본 것인지,
이 책이 유독 서글프고 억울한 이야기를 담은 것인지.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아픈데도,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늦은 밤인데도 책을 놓지 못했다.

 

‘참으로 십수 년 만에 느껴 보는 자유였다.
자신의 온몸이 자유롭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 회한이어서는 안 된다. 내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어야 했다.
(…) 무한한 건 인간에 대한 신뢰, 자신이 사는 이 세상과
내일에 대한 믿음이었다.’ (379쪽)

 

손에 든 지 거의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으면서,
책의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주인공 옥구열 따라 나도 어느새 울고 있었다.

 

사는 목적을 돌에 새겨 놓듯 유별나게 새기고
사는 것 같아 몸도 맘도 되고 되다는, 옥구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 싶다는
그 마땅한 바람이 죄가 되어,
글로만 봐도 치가 떨리는 모진 삶을 지나온 그이.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할 말을 하는
그저 한 사람 국민으로 살고 싶다던 옥구열의 독백은, 눈물은
내 마음을 적시고 또 적셨다.  
 
‘망자가 산 사람을 만나게 하다 1972/ 그해 여름 1950/
유족회 1960/ 표적 1961~1968/ 긴 하루 1972/ 밤하늘에 새기다 1979’

 

이 글의 목차다. 지난 시간을 불러내는 첫 장을 빼고는
1950년부터 시간 순으로 이어진다.
해방 뒤 펼쳐진 우리 현대사 30년에서
보도연맹, 그리고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얼룩진 아픔들이
뭉텅뭉텅 묻어나는 이 소설.  

 

그러고 보니, 어제가 4월 3일이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벌어진 대학살. 4.3항쟁의 그날.

엄마 아빠 모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분들인데.
혼인도 제주도에서 하셨고. 아빠는 37년생, 엄마는 44년생.
두 분 살아계실 땐 아쉽게도 4.3에 대한 이야기 한번
물어보지 못했다. 얽힌 이야기들이 분명 많았을 터인데. 

 

하긴 어디 4.3뿐이랴.
되새기고 곱씹고 바로잡고자 애써야 할 역사가 너무나 많다.
하물며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일들이, 아픈 역사가 자꾸만 생겨나고 있으니.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내 손에 갇혀 있었다.
이제 그들은 소설 속 인물로 다시 태어나 세상과 만난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독자들을 많이 만나
위로받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_작가의 말에서 

 

다 진짜는 아니지만 모두 다 거짓말도 아닌,
어쩌면 실화가 훨씬 더 소설 같을 수 있는,
창작과 실화를 넘나드는 조갑상의 소설 덕분에
오랜만에 책으로 지난 세상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책 한 권 읽었다고,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을 위로할 자격이
냉큼 주어지는 건 아닐 테지.
그저 아프게 하늘로 간 이들도, 아프게 남아 있는 이들도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정도,
할 수 있으려나, 해도 되려나.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상식과 정의, 인권과 복지를 말하려면
먼저 이 소설부터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부끄럽고 고통스럽지만, 다시는 이런 야만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결코 덮어선 안 될 진실이기 때문이다.”
_김주완(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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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유머
박정선 지음 / 산지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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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세 살기혼 여성의 잔인하도록 숨 막힌 연애? 불륜?

 

‘마흔세 살 기혼 여성의 가슴 떨린 연애가 있다. 잔인하도록 숨 막힌 기다림…’


책 뒤표지 글에서 눈길이 머문 곳은 ‘마흔세 살’ 딱 여기! ‘기혼 여성의 가슴 떨리는 연애’ 이런 말은 좀 흔하잖아. 마흔세 살, 이 말만 없었어도 어쩌면 이 소설,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이 겨울에 웬 가을의 유머?’ 콧방귀 훌렁 뀌면서.

 

‘그래, 내 또래 혼인한 여자의 연애라니까, 친구 이야기처럼 만나 보자. 연애소설쯤이야, 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여는데, 첫 장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라스코동굴벽화’가 어쩌고 하는 내용이 맨 앞을 떡 차지하고 있다. 연애 소설 들머리 치곤 뭔가 낯설다. 조금 무거운 기운까지. 흐음~. ‘연애’의 ‘연’ 자도 나오기 전에 예술 언저리 들먹이는 연애소설이라. 시작부터 남다르네. ‘읽다 말거나 푹 빠져 읽거나’, ‘물건이거나 허당이거나’ 둘 중 하나겠구만. 기왕 보는 거 ‘물건’으로 남을 책이면 좋겠구만. 슬며시 찾아든 긴장감을 안고 책장을 넘긴다.

 

주인공 승연, 그리고 ‘전업주부여자’ ‘가정교사여자’ 세 사람이 수다 떠는 장면이 나오면서 무거운 분위기는 금세 사라지고 보통 연애소설처럼 흘러간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 드라마로 보든 영화로 만나든 책으로 읽든, 뭐가 됐든 빠져들게는 된다. ‘사랑’, 인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 아니겠나.

   

몰래 하느라애타는, 해를 끌어 올리고 끌어 내리는 그 사랑

 

“적당한 거리에서 그를 향해 미소 지으면서 그 미소에 21일 동안 목이 까맣게 타들어 간 그리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내기로 한다.” (34쪽)

 

“금요일을 기다린다는 것은 고문이었다. 아침마다 내가 해를 끌어 올리고 내가 해를 끌어 내렸다. 6일이라는 시간을 하루로 압축시켜 버리고 싶었다. 나는 금요일을 기다리기 위해 사는 것 같았다.” (113쪽)

 

까맣게 타들어 가는 ‘그리움’ 앞에, ‘몰래 하느라’ 애타는 그 사랑 앞에 감정이입 제대로 몰아쳐 주신다. 이런 느낌만으로도 읽는 재미와 보람 충분했을 터인데, 이 소설 여기서 멈추질 않는다. 자꾸 ‘사랑, 그놈’ 말고 ‘사람의 마음’까지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삶의 지혜’가 담긴 좋은 말씀도 막 쏟아지고.

 

“한 번 병들면 가장 고치기 힘든 것이면서도 어떤 동기로 하여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말끔히 고쳐 버릴 수 있다는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 (32쪽)

 

“남에게 내 자랑을 하면 믿으려 하지 않고, 남에게 내 흉을 말하면 그보다 더 험하게 여긴다는 서양 속담을 생각하면서 내가 단순하고 성급했다는 자책을 오랫동안 해야 했다. (…) 가까운 사이일수록 인정하기 어려운 게 인간이라고 했다.(…) 엄마는 이웃이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할 때 좋은 것이라고 했다.” (84쪽)

 

“자기 마음을 자기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정말 자기 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123쪽)

 

“머리가 애써 생각해 놓은 것, 꿰맞춰 놓은 것을 가슴이 모래성처럼 허물어 버렸다. 머리가 가슴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186쪽)

 

사랑만 풀어내기에도 바빴을 텐데 삶까지 파고드는 이 소설, ‘물건’ 될 조짐이, 향기가 솔솔 퍼져 나온다. 그리고, ‘예술론’을 ‘연애’와 ‘꽃’ 이야기에 사라락 녹여낸 여러 문장들을 만나면서, 밑줄 좍좍 긋는 그 순간부터 이 소설, 나에게 ‘물건’으로 자리 잡는다. (‘예술’과 대화할 수 있는 글은 그게 뭐든 닥치고 좋아하는 나라서 더 그럴 테지.) 게다가 별로 관심이 없던 ‘꽃’과 ‘꽃꽂이’에도 마음이 끌린다. 세상에, 꽃꽂이 해 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솟더라니. 꽃꽂이 예술가인 승연이 슬슬 흘리던 꽃과 예술 이야기, 참 멋지고 깊었다.   

 

소설 보면서 밑줄 좍좍!

 

“가을 국화를 선비에 비유한 것처럼 내 나름대로 국화 향기를 정의한 게 있다. 라일락 향기에서 ‘미치도록’을 뺀 나머지의 그윽함이라고 불렀다. 라일락 향기가 발길을 붙잡아 세운다면 국화 향기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뒤돌아보게 하거나 생각에 빠져들게 한 탓이다.” (82쪽)

 

“예술작품은 창작자가 자라 온 성장의 거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만약 성장이 우울하고 어두웠다면 자기 혁명을 일으켜 그것을 과감히 뛰어넘든지 아니면 그것에서 처절하게 비통해지든지 하라고 했다.” (91쪽)

 

“선생님은 (…) 꽃은 살아 있는 바로 ‘자신’이라고 인식할 것과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듯이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157쪽)

 

“프로는 잘 버릴 줄 알아야 해. 꽃은 절정이 지나자마자 버려야 해. 시시각각 변하는 것만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거든. 변하고 또 변해서 인류문명이 이만큼 발전한 거구.”(207쪽)

 

“류초희 선생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비좁은 행간에서 몸부림치는 존재라는 것, 현실은 곧 정형이란 틀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그 현실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지만 현실은 늘 자기의 틀 안에 붙잡아 놓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예술을 통해 정형의 틀을 벗어나 보고자 하는 것이며(…)” (208쪽)

 

 

살다 살다 소설 보면서 이렇게 밑줄 많이 긋기는 처음이다. 무슨 인문학 책도 아닌데 말이지. (나는 책 보면서 밑줄 치는 걸 좋아한다. 어쩌다 그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울퉁불퉁 선 위에 얹힌 글자들을 보면서, 깨끗한 책 지저분하게 만들던 그때랑 지금 내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할 때 밀려오는 그 뿌듯함이란. 밑줄을 긋지 않고서야, 밑줄 친 뒤에 찾아오는 이 짜릿함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바로 지금처럼! 더구나 나처럼 한 번 본 책 다시 처음부터 읽는 일 잘 없는 게으른 사람한테는.)

 

‘삶’와 ‘예술’이 제 아무리 잘 버무려졌어도 이 책의 정체성은 ‘연애소설.’ 어차피 삶도 예술도 궁극엔 ‘사랑’을 하고자, 표현해 보고자, 극복이라도 해 보고자 있는 것 아니겠나. 소설 끝자락에 여느 아침드라마처럼 삼각관계가 제대로 펼쳐진다. 물론 ‘물건’ 소설답게 꽤 괜찮은 분위기로.

 

결혼은 계약이고 연애는 자연이라더라.”

 

“내 그리움은 불꽃이고 전업주부여자는 대형 소방호스였다.” (194쪽)

 

날마다 헬스클럽에서 수다 떨던 통통한 전업주부여자가, 애타게 사랑하던 그 남자의 부인이었다니. 단 하루를 더 기다리지 못해 몰래 ‘애인’을 마중하러 나간 공항에서, 몰래 ‘남편’을 마중하러 나온 친한 동무를 만났을 때 그 심정이란….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대형 소방호스. 직설인지 은유인지 헷갈릴 만큼 완벽하게 와 닿는 표현! 

 

여기까지가 끝이었다면 ‘삼각관계’가 아니지. 역시나 헬스클럽 동무, 삐쩍 말라서 같은 여자가 봐도 도저히 매력이라고는 느낄 수 없던, 아는 것만큼은 정말 많았던 그 ‘가정교사여자’가 남편 애인님으로 기어이 나타나 주신다. ‘여자’ 근처에도 못 갈 듯하던 쑥맥 남편이 연애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인데….

 

전업주부여자에 이어 가정주부여자까지 끼어든 삼각관계를 알게 된 순간, 마음속에서 유리창 백 개가 한꺼번에 와르르 깨지는 소리가 나더라는 그 마음, 사실 여기까진 백 프로 감정이입이 안 됐다. “참을 수 없이 그가 보고 싶어 은행으로 달려가야 했을 때, 누군가가 중세시대 노예를 내리친 채찍으로 나를 후려쳐 주기를 바라던” 그 지독하게 애타는 마음보다는, “살얼음이 언 초겨울처럼 서늘해진” 지금 마음이 그나마 견디기 조금 낫지 않을까 짐작 정도 해 볼 뿐.

 

“결혼은 계약이고 연애는 자연이라더라. 계약은 깨지지 않는 한 계속되지만 자연은 3개월마다 딱, 딱, 바뀌잖아. 울고불고 붙잡고 늘어진다고 가을이 안 가니? 이제 곧 겨울이 온다니까. 두고 봐.” (205쪽)

 

‘연애’를 ‘자연’에 비유하다니. 아, 정말 딱이다, 딱! 도파민, 세로토닌이 어쩌고 하면서 호르몬 들이대며 사랑의 유효 기간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지당한 말씀인가. 앞으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런 물음이 다가올 땐 저 문장을 고대로 써먹고야 말테다!
 
“자꾸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웃고 있는 동안 가을이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220쪽)

 

“나는 제목을 지을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 양 말대로 제목을 미리 지어 놓은 게 좋을 것 같았다. 서너 달씩 걸리는 제목이 내 입에서 곧바로 흘러나왔다. ‘가을의 유머’였다. (…) 비극이라는 가을 미토스와 내가 감내해야 할 현실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222쪽)

 

 

겨울에 나와서 참 다행인 소설, 가을의 유머

 

아하, 이제 알겠다. <가을의 유머> 이 책이 왜 가을이 종지부를 찍은 이 겨울에 얼굴 빼꼼히 내밀었는지. 가을에 나왔으면 어쩔 뻔했나. 저 숨 막힐 듯 애타는, 지고한 떨림이 유혹하는 연애를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을, 살랑이는 가을바람이 지독하게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춥고 시린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이 계절에 읽었기에 망정이지. (그래서 그런가. 왠지 이 소설, 남편은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얄팍한 생각마저 드는구만. ^^)

 

“왜 바람이라고 하겠어.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 지나가도록 두는 수밖에 없는 거야.”(148쪽)

 

“좀 더 살아봐. 사랑이란 운명이구나!라는 말을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런 기회가 찾아와 준다면 인간으로서 행복한 일이겠지.”(158쪽)

 

‘바람’과 ‘사랑.’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두 낱말. ‘불륜’이라는 딱딱한 말은 당최 여기에 끼어들 자격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이 소설 안에서는. 이렇게 마음 가다듬으며 소설을 마치려는데, 맨 뒤에 나온 ‘작가의 말’ 덕분에 한바탕 웃고야 말았다.

 

“주인공 승연과 석환의 만남을 단절시켜 버린 것은 잔인한 짓일까? 아직도 작가(나)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그렇다면 이들을 어쩌란 말인가. (…) 이들의 만남은 아무리 순정해도 불륜이다. 불륜을 미화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임을 고백한다.”
 
‘바람’은 철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사랑’이노라고, 가슴 미어지는 문장들로 그려낸 분이 쓴 저 솔직한 반전 고백. 이 또한 참 유쾌 통쾌한 ‘가을의 유머’였다. 겨울에 읽은 ‘가을의 유머’, 물건 중에 물건이노라고 마음속 어느 자리에 확인 도장 ‘꾹!’ 찍는다. 그제야 글쓴이가 궁금해진다. 책날개에 있는 소개 글 보면서 무릎을 ‘탁!’ 친다.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도 쓰고 시조도 쓰고 있음.《백 년 동안의 침묵》을 비롯한 소설 다수,《사유와 미학》을 비롯한 평론집 여럿 펴냄.’

 

 

쩐지, 쩐지 어쩐지이~ 연애를 징검다리 삼아 예술과 욕망론을 솔솔 풀어내던 글맛이 남다르더라니. 작가의 말에 헤겔, 프로이트, 스피노자에 이어 앙드레 지드, 키에르 케고르까지 나와 주신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자기 마음을 부정하는, 뛰어넘는 ‘연애소설’ 하나 써 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지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럼에도 “정형은 현실이며 뿌리이기에, 아무리 찬란한 이상도 현실이라는 뿌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이 마음속 깊이 박힌 ‘창작의 뿌리’만큼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기에 승연과 석환을 헤어지도록 만들었을 테지.

 

머리가 가슴을 이기지 못한다

 

불륜((不倫)이란 한자말을 풀이하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다.’는 뜻이다. 남편 말고 부인 말고, 혼인한 '다른 사람'과 얽힌 사랑 관계를 이를 때 자주 쓰이는 말이기도 하고. 거참, 이상타. ‘사랑’이야말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지고지순한,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한 ‘도리’ 아닌가? 그런 ‘사랑’이 죄가 될 수는 없을진데, 그 ‘사랑’을 한 사람들한테 무슨 근거로 돌을 던질 수 있으려나. ‘부부’라는 ‘남편과 부인을 아울러 이른다.’는 이 메마른 풀이말에 기대서? 방패막이로도, 무기로도 삼아서 

 

“작품이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는 것도 고백한다. 실패가 채근하는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다시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작가의 욕망은 오직 최상의 작품을 써 보겠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최상의 작품을 창작하리라는 욕망이 나를 이끌어 줄 것으로 믿는다.
_2016년 가을, 해운대 장산 아래 집필실에서 박정선.”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는 자칭 ‘실패작’이 이렇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작가의 욕망이 제대로 반영된 최상의 작품이 나오면 그땐…. 인간과 사회와 역사가 버무려진 선 굵은 소설을 주로 써 왔다는 박정선 소설가. 그래서 연애를 다룬 이 소설이 좀 뜻밖이기도 했다는 기사도 보이던데.

 

작가의 다음번 작품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최상의 물을 만나고자 얕은 곳의 물을 거부한 채, 지심을 향해 뚫고 내려가는 차나무 뿌리처럼’, 오로지 최상을 욕망하는 작가의 마음이 마음껏 불타오른 그런 ‘연애소설’을 만나고 싶다.

 

선이 굵든 얇든, 불륜이든 사랑이든, 그건 독자들 마음에 맡겨 주시고, 부디 다음번엔 ‘마음먹은’ 대로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써 보시기를. ‘머리가 가슴을 이기지 못한다.’고, ‘자기 마음 자기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당신 스스로 말한 것처럼, ‘연애’와 ‘욕망’은 해부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은 아닌 것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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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학 2017-02-1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을 찾는 차나무뿌리.꽃모양러너100개.천년같은 21일.달콤한 인내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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