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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 동화 작가 박기범이 쓴 어머니들 이야기
박기범 지음 / 보리 / 2004년 12월
평점 :
엊그제 병원 영안실에 갔습니다. 아는 언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갑자기 받았지요.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는 영안실이었습니다.
그 언니는 나한테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죠.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3일 동안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주었어요. 지독한 슬픔에 잠겨 있던 나를, 마치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안아주었던 사람입니다. 열흘이 지나면 마흔이 되는, 두 아이의 엄마지요.
난 그 때 너무 힘들었는데…. 아니 지금까지도 너무 힘이 드는데, 언니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럴 수 있는 언니가 많이 부러웠습니다. 언니도 그러더군요. "니가 부러워 할까봐 오지 말라고 한 거야." 병원에 다녀온 뒤로는 어머니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질 않습니다. 미치도록 나를 한스럽게 만드는 어머니 생각이. 얼마 전에 읽은 책 <엄마와 나>도 덩달아 내 머리 속을 휘젓습니다.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너무나 평범한 제목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제목입니다. 몇 장 넘기지 않았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할 것이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속도는 빨랐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 마음은 무거워졌습니다.
"나도 박기범처럼 하고 싶다. 아니,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안 했다." 책 읽는 내내 나를 힘들게 한 생각입니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가 힘들게 살지 않았을까요. 내 어머니도 마찬가집니다. 박기범의 어머니께서 살아 온 이야기에 새삼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내 어머니는 이혼이란 걸 하지 않았을 뿐, 팍팍하게 정말로 팍팍하게 살았던 분이니까요.
난 그저 박기범처럼, 뒤늦게라도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정말이지 나도 그럴 수 있었는데 말이죠. 이 글은 1999년도에 썼던데, 그 때만해도 내 어머닌 살아 계셨거든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난 어머니 맘속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을 거에요. 미웠어요. 박기범씨도. 이 책도. 이리 뒤늦게 나와서 내 맘을 후려쳤으니까요.
엄마와 함께 일기를 쓴다는 것. 이렇게 좋은 생각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내 어머니는 늘 "나 이렇게, 이렇게…. 힘들게 살아 왔다."하고 귀가 아프게 말씀하셨죠. 너무나 듣기가 싫어서 귀를 틀어막았어요. 들은 이야기를 일부러 잊어버리려고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죄송하고 속이 상합니다. 그 때 조금이라도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맞장구라도 쳐주었다면, 어머니 한들이 작게라도 없어졌을지도 모르는데. 살아온 시간들은 너무 힘겹고, 그 이야기를 풀어 놀 곳이 없던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을까요.
'박기범.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야. 어머니 마음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힘, 그 힘을 가진 당신은 정말 큰 사람이야.' 이 책을 쓴 사람을 두고 나 혼자 말도 많이 했지요. '당신이 밉다. 당신 참 훌륭하다.' 그러면서 나도 몰래 글쓴이와 나를 섞어 버렸죠. 내가 이 책 주인공이 되고, 박기범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바꾸고는 내 이야기처럼 책을 읽었어요.
그래요, 정말 그대로 내 이야기 같았어요. 환경이나 상황들이 같아서가 아니에요. 그냥 책 읽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박기범이 되어서 내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어요. 남이 쓴 글을 빌어서라도 그러고 싶었어요.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정도가 다르지 않겠냐고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을 테죠. 내가 힘들면 힘든 거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이 책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니 제발 읽으라고 말하고 싶네요. 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분명히 줄 거에요. 이 책은.
나는 사람들한테 자주 말해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안 그러면 나처럼 된다." 무슨 할망구 말투 같죠?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 말을 바꿔야 겠어요. "<엄마와 나> 읽어봐. 그러면 나처럼 안 된다." 이렇게요.
이 글을 쓴 박기범씨한테 한 마디 남기고 글 마치렵니다.
"당신, 정말!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