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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 삶을 버티게 하는 가치들, 2019 12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2020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이국환 지음 / 산지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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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밑줄을 긋다 못해

한 권을 통째로 외우고만 싶다는 

충동.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이런 책을 만났다는 건 

선물을 넘어 축복 같은 순간!


자석처럼 손에서 떨어지지 않던 책,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보는 내내 감탄했고 감동했다.


살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안, 고통, 슬픔.

그럼에도 견디고 살아야 하는 까닭,

그러면서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멀고도 가까운 여러 갈래 길. 


이토록 깊고 넓은 이야기를

이처럼 평온하고 정감 있게

전달할 수 있다니.   


다독이듯 포근하게 퍼지는 

글쓴이의 목소리는

불경인 듯 성경인 듯

내 마음에 잔잔하게 

울리고 스몄다. 

지금의 나를, 지나온 나까지도

껴안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정하게 보듬어 주었다. 


“좋은 책은 굳어진 나를 흔들어놓고 출렁이게 한다. 그 출렁임이 다른 출렁임과 만나 더불어 출렁일 때 자신의 견고한 아집이 무너지고, 우리는 삶의 깨달음을 얻는다.”_80쪽


“좋은 글은 독자를 설득한다. 독자는 단지 머리로만 이해한다고 설득되지 않는다. 모든 글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며, 감동은 온전히 설득된 자에게 밀려오는 정념이다. 진정한 감동은 내 몸과 영혼이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다.”_103쪽 


책에는 여는 글을 포함하여 

모두 마흔일곱 편이 담겨 있다. 

그 모든 이야기에 

온전히 설득되고, 진정으로 감동받기.

쉽게 다가오지 않을 

이 특별한 경험을 짜릿하게 맛보았다.

 

책을 보는 동안 그러했으며

다 읽은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고귀한 삶이란 타인보다 나은 삶이 아니라, 이전의 자신보다 나은 삶이다.”_100쪽

 

“삶의 의미는 내가 애써 걸어 도달하는 지점에 있지 않고 걸어가는 길 곳곳에 존재한다. (...)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성실하게 산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불안하지 않은 삶은 이미 죽은 삶이다. 불안을 끌어안고 우리는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그 불안 속에 삶의 의미는 어두운 터널 끝의 빛처럼 또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열정은 자유롭고 자유는 불안하다. 타성과 관성이 아니라 불안과 열정이 이끄는 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_ 132쪽 


한 권 책을 열며, 보며

무슨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재밌으면 좋겠고

상한 마음 위로받길 바라기도 하지만  

그저 시간을 때울 수만 있어도 

나는 책이 고맙고 또 필요하다.   


삶과 예술, 책과 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삶을 버티게 하는 가치들을

나직하고 울림 있게 전하는 책.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나에게 재미와 위로를 넘어

용기와 힘을 주었다.

 

이 책을 보기 전보다 분명,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거라고. 

불쑥불쑥 엄습하는 불안을

끌어안음과 동시에 떨쳐내면서

내게 오는 하루하루를

열정으로 맞이하도록 노력하자고. 


내일 아침부터 이렇게 외치며 

힘차게 이불을 박찰지도 모르겠다.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산골짜기에 눈이 내린다. 

오전엔 건듯건듯 나리더니

오후가 되니 마구 흩날린다.  


산골에 눈이 쌓이면

불안할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이 늦은 오후에는

몰아치는 눈보라가 마냥 좋다.  

포근하게 나를 덮어 주고

감싸 주는 느낌이다. 

꼭 이 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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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깊고 푸른 밤
전성호 지음 / 산지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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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과 경계인, 그 사이에서 나는 

_‘미얀마, 깊고 푸른 밤’과 함께>


누군가 내게 물었다. 

산골에서 외롭지 않으냐고. 


문득문득 그렇다고 답했다.

어느 땐 외로움을 넘어

단절된 고독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다만 자주 다가오는 감정은 

아니라고 애써 덧붙였다. 


어느 노랫말처럼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하루 일 마치고 어둔 밤이 들면 

느닷없이 찾아올 때가 있다.

허전한 쓸쓸함이랄까. 

그 순간 그 누구도 만날 길 없는 

아쉬움 가득한 아득함 같은 것. 


그럴 때면 책이 말을 걸어온다.

‘내가 동무가 되어 줄게’ 하면서

살그머니 조심스럽게 다정하게도.


초겨을 추운 노동이 끝나고

삭신이 쑤시는 중에도

책을 펼친다.


<미얀마, 깊고 푸른 밤>.

시인의 가슴을 지니고 

상인이라는 현실을 딛고 사는 

한 사람이, 한 삶이 길어 올린 글.

미얀마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시간이 알알이 맺혀 있는 책.  


“나는 한국과 미얀마라는 두 개의 모국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 속의 삶과 이를 뛰어넘으려는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를 부인할 길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곳으로 회귀해야 하는 것일까?”_51쪽


“이 우중의 어둠 속에서도 멀리 아득하게 쉐다곤 파고다의 황금빛은 잠들지 않고 빛을 뿜어내고 있다. 20년 가까이 이곳 양곤에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이런 순간이 때론 생경하고 낯설다. 마치 알 수 없는 먼 곳에 홀로 서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이 엄습한다. (...)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이곳은 무엇일까. 그저 사업을 하는 ‘기회의 땅’일 뿐일까. 미얀마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경계인’에 불과한 것일까.”_143쪽


글쓴이가 이야기하는

이방인이라는 말이

경계인이라는 말도

이토록 깊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작은 땅덩어리에서

그저 조금 아래로 삶터를 옮겼을 뿐인 나는,

도시에서 살아온 시간과

산골에서 겪는 삶 그 사이에 간극이

아직도 여전히 벅차기만 한 것일까. 


“미움과 증오와 용서할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을 가지고 ‘함께 그것도 이웃’에서 불편함을 견디며 공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다. 그렇다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없다.”_163쪽


“내가 나이면서 동시에 발을 딛고 있는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어려운 ‘사람에 대한 사랑’ 바로 그것이다. (...)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구성원들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이다.”_179쪽 


온 세계를 떠돌다

그곳에서 스무 해 가까이 지냈고

여전히 지내게 될 사람이 겪은 일들은

오죽이나 많고도 깊기도 할 텐데. 

나는 어쩜 이렇게 감정이입이 

막 되고 잘되기도 하는지. 


쓰는 말, 사는 자리가 달라도

그곳이 바다 건너 건너일지라도

‘서로 다른’ 사람끼리 더불어 살기란

언제나 쉽지 않다는 방증을 

이 책을 보며 절절히 느끼고 깨닫는다. 


“모든 나라가 천천히 뒤를 살피며 새로운 세계를 찾아 자본주의의 미궁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면 미얀마를 바라다보아야 한다. (…) 그 이유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가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을 미얀마는 온전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_49쪽


“나는 미얀마의 난마처럼 얽힌 종족 문제와 군부의 문제 그리고 초강대국들의 이해가 뒤엉킨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에 깊이 동화되곤 한다. 나는 대지와 하나가 된 그들의 웃음과 평안하고 느린 삶에서 자본주의 문명에선 발견할 수 없는 깊은 치유의 길을 보았다.”_156쪽


‘미얀마 쿠데타’로 조금, 아주 조금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곳, 나라, 미얀마. 

책을 보는 내내

이 나라가 궁금하다 못해 

그리운 마음마저 일었다.


웃음 가득한 얼굴들,

느릿하게 살아가는 걸음들,

자본주의를 비껴가는 공동체 정신까지도

하나하나 보고 싶고 만나고만 싶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미얀마의 모든 것을 사랑하되 부디 실망으로 스스로를 지치게 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나에게 기도한다.”_161쪽 


산골 깊은 밤에 

함께 외로움의 강을 건너 주었던

<미얀마, 깊고 푸른 밤>을 내려놓으며 

나 또한 간절히 기도해 본다. 


나를 둘러싼 이곳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껏 걸어온 시간을, 삶을 

실망으로 원망으로 지치게 하고

아프게 하지 않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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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기쁨
박창희 지음 / 산지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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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기쁨에 사는 기쁨까지도

_행복한 길 읽기 “걷기의 기쁨”>


시골에 살면

논두렁 밭두렁이며 산길 들길 따라

걷고 또 걸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어쩌다 한낮에 걸을라치면 

논밭에서 일하는 분들이

어디 가느냐고 묻곤 한다. 

땀 흘리는 분들 앞에서

‘그냥 걷는다’ 하면 왠지 죄송하고

‘일 보러 간다’는 거짓말은 싫어서

마을 길은 걷지 않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때처럼 

어둔 밤에라도 나가 볼까 싶지만

가로등이 없거나 드문 산골 밤길은 

칠흑처럼 깜깜하다. 

안 그래도 겁 많은 나는

혼자 나설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산이라도?

에고야, 산골짜기랑 잇닿은 산길은

사람 발길이 거의 없는지라

야트막해도 험하디험하다. 

거친 길이야 헤쳐 나갈 수 있다지만

멧돼지라도 만날까(확률 높음!) 겁나서

도저히 홀몸으로 오를 자신이 없다. 


혼자 걷기를 참 좋아했던 나는

천혜의 자연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자의 반 타의 반 ‘걷는 행복’에서 

멀어졌다. 안타깝게도, 슬프게도.  


그런 내게 뚜벅뚜벅 다가온 책 한 권,

<걷기의 기쁨>.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박동이다. 두둥, 두 발이 지구북을 두드린다. 심장이 뛴다. 살아 있다. 걸어야겠다._(15쪽)” 


머리말 마지막 글귀가, 

이 짧고 간결한 문장들이

내 심장을 톡톡 건드린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난 정말 걷고 싶긴 했나 보다.   


“내가 걸어온 길이 잘못 걸어온 길이 아닌데도, 마음 한구석이 늘 아쉽고 허전하며 외로운 것은 웬일인가. 내가 꿈꾸었던 나의 모습, 나의 꿈에 닿지 않았음인가. 그럼에도 가야 하는 것이 삶의 길이다._(64쪽)”


“걷기는 글쓰기와 닮은 데가 있다. 뚜벅뚜벅 한 땀 한 땀 온몸으로 스스로 다독이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 그렇다. 걸어간 궤적과 지나간 자취를 스스로 갈무리해야 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_(92쪽)”


‘걷기의 기쁨’이라는 제목은 

그 품이 참 넓다.  

걸음마의 비밀부터 길의 어원과 역사, 

천태만상 걸음걸이, 돌아가는 길 황천길, 

영혼의 순례길, 살아가는 길, 

걷고 싶은 온갖 아름다운 길….


‘걷기’라는 짧은 말 속에

이토록 깊고도 너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니, 담을 수 있다니.

재미와 놀라움과 흥미를 안고

‘책 읽는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  


“길에는 노래가 있다. 노래가 있어 길은 길다워진다. 노래는 길을 파고들고, 길은 노래를 불러낸다._(76쪽)”


6장 ‘길의 노래, 길 위의 시’은 물론이고

장마다 노래와 이어진 글이 많은 것도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술 한잔 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나니^^)


사는 ‘길’에 늘 있었고 꼭 있어야 하니까,

노래는! 그걸 놓치지 않고 ‘글’로

붙잡아 준 글쓴이에게 고맙다.


“우보천리(소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라 했다. 어슬렁어슬렁, 뚜벅뚜벅 가다 보면 어딘들 못 갈까. 우보천리는 우시호행으로 이어진다. 소처럼 신중하게 관찰하되, 결정을 내리면 호랑이처럼 단호하게 실행에 옮긴다는 뜻이다. 말을 뒤집어 호시우행이라 하면 어떤가. 호랑이의 눈빛을 간직한 채 소걸음으로 간다! 이거다. 호랑이의 날램에도 소의 덕성을 겸비하면 안 될 일,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다._(64쪽)”


“그렇게 사는 거다.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갈팡질팡할 필요 없다. 자기의 보폭만큼, 걸을 수 있는 만큼, 가슴이 뛰는 대로. (152쪽)”


2022년은 소의 해. 

급하지 않고, 쫓기지 않으면서

무겁지도 서투르지도 않게

어슬렁어슬렁 소처럼 천천히

걷고 싶다, 살고 싶다. 


책을 덮으며  

노래 하나가 무척 당긴다.

이 책에서 무려 3쪽에 걸쳐

이야기가 펼쳐진 god의 ‘길’.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ㅠㅜ” 


첫 소절이 흐르자마자 

뜨거운 눈물방울이 뚝뚝 뚝.  

술 한 모금 얼른 털어 넣고

몸에서 빠져나간 액체를 채운다. 

바로 눈물 뚝!

더 울면 서러워진다. 

여기까지가 딱 좋다, 

마음을 비우는 맑은 눈물은.

 

노래를 부르고 술을 부르고

잘 걸으며 잘 살고 싶은 마음까지 

한 아름 불러일으켜 준 책. 

<걷기의 기쁨> 덕에 책 읽는 기쁨을 넘어

‘사는 기쁨’까지 누렸다.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리고 ‘책 속에 기쁨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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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새촙던 봄날 - 자분자분, 밀양 어느 댁 양념딸 이야기 이야기는 맛있다 1
박선미 지음 / 상추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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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만나 더 뜨싯하게 아린 이야기, 언젠가 새촙던 봄날 >

 

몽실몽실 포근한 겨울이불 속에서
봄날처럼 따스한 이야기를 만난다.

 

아직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감기님 덕에

몸 쓸 기력은 딸리고.
애써 몸 부릴 일 만들 거 없이 팔자 좋게
자다 먹다 힘 좀 나면 책을 본다.

 

봄날 다가오면 볼까 싶던 요 이쁜 책,
아프니까 눈에 팍 뜨인다.
이불에 누워 한 장 두 장 보다가
그만 다 읽어버렸네.
아껴가며 조금씩 보려구 했더만.

신기하게도 책 보는 시간엔
멍하게 아프던 머리도 멀쩡해지는군.

 

 

밀양 어느 댁 양념딸,
박선미 샘과 그이 어머니가
자분자분 애틋하게 살아가던 이야기.

 

시골살이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어떤 건 도시내기인 내 어린시절 같고
또 다른 건 지금 내 사는 모습도 같고.
허나 도저히 같을 수 없는 건
글마다 넘쳐나는, 딸과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진하게 알콩달콩한 사랑 나눔.
난 울 엄마랑 살갑게 지내본 적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 없기에.

 

너그럽고 넉넉하고 속 깊은 엄마,
연한 배 같고 입 속 쌔처럼
얌전하고 착하고 예쁘던 양념딸.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와 몸짓에
마구 빨려들어간다.

 

*
“내한테는 너거들이 하늘이나 똑같다.
너거 입에 들어간 기 바로 하늘로 간 거다.”
장독 뚜껑을 닦으면서 덤덤하게 던지는 엄마 말에
얼마나 설레던지. 온몸이 둥실둥실
하늘을 나는 듯 들렁들렁.
시키지도 않은 걸레질을 하며 내내 흥얼흥얼거렸다.
“명태가 하늘로 날아갔대요오오오,
우리 입으로 다아 다아 들어갔대요오오오.”

*
쉬어 빠진 국수도 버리지 못하고 찬물에 헹궈 드시던 엄마가 하시던 그 말이 귓가에 울려서.
“누가 밥을 맛으로 묵나?”

*
“엄마, 인덕이 뭔데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핸 만치 본치가 있으마
 된다. 이짝이 생각해 주는 거만치 저짝도 내를
 서운키 안 하고, 쪼께이라도 이짝을 생각해 주면
 그런 기 인덕 있는 거 아이겠나?”

 

사랑과 믿음과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엄마와 딸.
부러움 가득 안고 두 사람 사이를 어정쩡하게
오가던 나는 책 속에 조금씩 스며들어
곳곳에 숨어 있는 울 엄마를 만난다.
선미샘 마음 따라 내 마음도 촉촉하게 흐른다.

 

*
엄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한쪽도 떨어져
나가고 없는 것만 같고, 물렁 다리를 걷는 것처럼
발 아래가 울렁불렁해서 어떻게 집까지
걸었는지도 몰라.

*
‘일도 없다니, 하루에도 열댓 장씩 벗어 내는
 오줌 바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홑청 벗겨 빨아
 요 이불 꾸미는 일은? 그것만 하나. 오 분을
 못 넘기고 불러 대는 그 잔손거리는?’
입 밖으로 차마 내지 못하고 꺽 삼킨다. 그걸 뻔히
알면서 한 달이나 집을 등지고 살던 년은 누구더냐.

*
포슬포슬 보드라운 미영이 코끝을 살살
건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두부 덩어리가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책장을 넘기며,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릿함에 같이 젖고.
책장을 거두며, 뜨거운 두부가 넘어갈 때처럼 애잔한 그 무엇이 울컥 올라와
끝내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흐른다.
슬퍼서가 아니라 따뜻해서 번지는
청주처럼 맑은 눈물.

 

보통 엄마가 나오는 이야기는
엄마를 버얼써 하늘로 보낸
나 같은 늙은고아한텐 쥐약인데.
이 책은 서럽지 않게 아프지 않게 나를 울린다.
그리고 보듬는다.
울 엄마도 나도 괜찮노라고.

 

*
“야야! 선하기 살면 선하게 풀리고
 악하기 살면 악하기 풀린다 안 카더나.
 엄마는 이래 고달파도 나중은 좋을 끼다
 싶으니 견디고 산다.”

“너거들 잘 커서 넘한테 욕 안 듣고 살면
 그기 내한테 사는 힘이다.”

선미샘 어무이 말씀이 귓전에 계속 맴돈다.
꼭 하늘에 있는 울 엄마 목소리만 같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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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양어장 가는 길 - 미시적微視的 사건으로서의 1986~1990년 북태평양어장
최희철 지음 / 해피북미디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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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다에서 펼쳐지는 특별하고 숭고한 노동 이야기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만 보면, 기다리는 일도 사람도 없다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바다만 본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나고 자란 곳이 제주. 내가 바다를 사무치는 듯 좋아하는 건, 돌아가신 부모님의 내력이 내 안에서 꿈틀대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다를 좋아하는 내가 사는 곳은 작은 산골마을. 귀촌하기 전에는 훌쩍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건만 산골 살면서는 언감생심 바다 구경할 짬을 잘 내지 못한다. 물고기를 비롯한 바다 음식들도 냉동으로만 가끔 만날 뿐.

 

산골 살이 4년째, 눈으로도 입으로도 바다와 조금씩 멀어져 가던 차에 ‘글자’로 바다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아주 멀고 먼 바다 이야기, 원양어선 선원들의 삶을 기록한 《북양어장 가는 길》 덕분에.       

 

“원양어업이란 ‘도전이나 개척’이라기보다는 이미 그곳에서 살고 있었던 모든 것들에게 우리 삶을 기대려 했던 방식 혹은 시도였다.”(17쪽)

 

첫머리에 나오는 글귀를 보면서 고사리며 취나물이며 저절로 자란 것들을 채취하는 산살림이랑 스르륵 겹친다. 양식이 아닌 원양어업은 바다에 살고 있는 것들을 ‘거저’ 담아오는 일.  산에 있는 풀이며 열매들을 ‘허락 없이’ 가져오는 산살림랑 뭔가 비슷하지 않은가.  

 

“‘몸의 기억’을 되살려 기록하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과 접속하여 주름을 펴는 일이다. 무두질처럼, 살아왔던 시간을 보드랍고 말랑말랑하게 하는 것이다. 주름 속에서 새로운 바다를 읽어낼 수 있었다.”(6쪽)

 

글쓴이가 몸의 기억들로 써내려 간 바다 이야기. 머나먼 바다에서 파도와 어둠과 눈보라와 안개와 싸우고, 잠을 허락하지 않는 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때로는 생명이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만나야 했던 그 시간들이 애틋하고 처절하다. 그물과 벌이는 사투는 너무 생생해서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

 

그동안 쉽게 입으로 가져갔던 바다 속 먹을거리들이 이다지도 힘든 시간들을 지나와야 했다니, 조금 아프다.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들의 삶, 가까운 바다로 나가는 어민들의 삶과는 뭔가 많이 다르겠구나. 아무 때고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는 망망대해라는 것만으로도.

 

바다살림을 산살림과 견주었던 건 아무래도 알맞지 않은 듯하다. 산은 언제든 내려갈 수 있는 곳. 허나 머나먼 바다는 그럴 수가 없다. 육지에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바다 위에서 오로지 바다만 바라보며 펼쳐지는 노동. 다른 무엇과 견주기 어려워 보인다.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삶일지라도 참 특별하고 숭고한 일로 다가온다. 바다를 몸과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나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일이다. 바다 위 노동이란, 삶이란. 

 

‘배’라는 닫힌 공간에서 긴 시간 지내야 하는 선원들. 저절로 그네들만이 누릴 수 있는 놀이들도 생겨난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훌라, 윷놀이 들은 기본이고 거북이나 가재 같은 것으로 박제를 만들기도 한다고. 배 만들기가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는데 집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배’ 안에서 작은 ‘모형 배’를 만들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마음에 와 닿는다.

 

웬만한 일터에서 잘 빠지지 않는 ‘술’ 이야기도 여지없이 나온다. 배에 실린 술은 한정돼 있을 테니 그 술에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조리실에서 술김에 칼싸움이 벌어진 날, 배에 있는 모든 술을 바다에 던져야 했던 날, 그런 지시를 내렸을 때 선장의 마음은 얼마나 아렸을 것이며, 그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던 선원들은 또 얼마나 애가 탔을꼬. 읽는 내가 다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겠더라는. 다행인 건 그렇게 버린 술이 다른 배의 그물에 걸려들었다는 사실. 소주를 건져 올린 그 배의 선원들은 바다가 준 선물인 줄만 알고 정말 맛나게 먹었다는 뒷이야기가 이어질 때 짜릿한 해피엔딩 소설을 보는 것처럼 행복했다는 말씀.

 

“‘미시적 사건으로서의 1986~1990년 북태평양어장’이란 당시 겪었던 구체적인 사건들의 ‘자세히 보기’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없었거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의 숨은 의미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머리말에서)

 

‘몸의 기억’을 ‘글자의 기록’으로 남겨 준 책 덕분에 바다 위 삶과 노동을 구체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특별한 삶을 만났으니 그 시간은 나에게도 특별하게 남을 터.

어릴 때 부모님 따라 제주도에 가면서 배를 더러 타곤 했다. 대여섯 시간 가까이 배 멀미로 뒹굴다 갑판 위에 올랐을 때, 저 멀리 희끄무레한 불빛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배와 육지를 잇는 흔들다리를 건널 때는 짧은 거리가 한 없이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리 밑에 출렁이는 시커먼 바다에 빠질 것만 같아 두렵기도 했고.
 
식구들과 함께 반나절 배 위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육지를 그리워했건만. 수십 일 때로는 몇 달 넘게 바다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던 마음은 얼마나 지극할까. 지극한 그 마음을 누르고 누르면서 바다 위 삶을 겪었고 또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께 존경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가만 있자…. 밥을 먹을 때면 쌀이 나오기까지 땀 흘리며 애쓴 농부님들께 고마워하자는 말을 많이들 하잖아? 헌데 물고기를 먹을 때 바다에서 고생하는 어부님들을 생각하자는 말은 잘 못 들어 본 것 같다. ‘땅 농사’도 ‘바다 농사’도, 모두 우리네 먹을거리를 받쳐 주는 소중한 노동인데 말이지. 지금부터, 나부터, 바다 먹을거리들 마주할 때 바다살림에 힘쓰는 많은 노동자들을 떠올려 봐야겠다. 집에 있는 바다 음식이라곤 멸치랑 참치 캔 정도지만, 다시 멸치 우릴 때도 참치 캔 딸 때도 원양어선에 타고 있을 선원들을 한 번씩 생각해 보자꾸나. 당신들의 특별한 노동과 희생 덕분에 바다 내음 가득한 음식들을 만날 수 있으니 참말로 고맙고 고맙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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