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유머
박정선 지음 / 산지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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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세 살기혼 여성의 잔인하도록 숨 막힌 연애? 불륜?

 

‘마흔세 살 기혼 여성의 가슴 떨린 연애가 있다. 잔인하도록 숨 막힌 기다림…’


책 뒤표지 글에서 눈길이 머문 곳은 ‘마흔세 살’ 딱 여기! ‘기혼 여성의 가슴 떨리는 연애’ 이런 말은 좀 흔하잖아. 마흔세 살, 이 말만 없었어도 어쩌면 이 소설,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이 겨울에 웬 가을의 유머?’ 콧방귀 훌렁 뀌면서.

 

‘그래, 내 또래 혼인한 여자의 연애라니까, 친구 이야기처럼 만나 보자. 연애소설쯤이야, 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여는데, 첫 장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라스코동굴벽화’가 어쩌고 하는 내용이 맨 앞을 떡 차지하고 있다. 연애 소설 들머리 치곤 뭔가 낯설다. 조금 무거운 기운까지. 흐음~. ‘연애’의 ‘연’ 자도 나오기 전에 예술 언저리 들먹이는 연애소설이라. 시작부터 남다르네. ‘읽다 말거나 푹 빠져 읽거나’, ‘물건이거나 허당이거나’ 둘 중 하나겠구만. 기왕 보는 거 ‘물건’으로 남을 책이면 좋겠구만. 슬며시 찾아든 긴장감을 안고 책장을 넘긴다.

 

주인공 승연, 그리고 ‘전업주부여자’ ‘가정교사여자’ 세 사람이 수다 떠는 장면이 나오면서 무거운 분위기는 금세 사라지고 보통 연애소설처럼 흘러간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 드라마로 보든 영화로 만나든 책으로 읽든, 뭐가 됐든 빠져들게는 된다. ‘사랑’, 인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 아니겠나.

   

몰래 하느라애타는, 해를 끌어 올리고 끌어 내리는 그 사랑

 

“적당한 거리에서 그를 향해 미소 지으면서 그 미소에 21일 동안 목이 까맣게 타들어 간 그리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내기로 한다.” (34쪽)

 

“금요일을 기다린다는 것은 고문이었다. 아침마다 내가 해를 끌어 올리고 내가 해를 끌어 내렸다. 6일이라는 시간을 하루로 압축시켜 버리고 싶었다. 나는 금요일을 기다리기 위해 사는 것 같았다.” (113쪽)

 

까맣게 타들어 가는 ‘그리움’ 앞에, ‘몰래 하느라’ 애타는 그 사랑 앞에 감정이입 제대로 몰아쳐 주신다. 이런 느낌만으로도 읽는 재미와 보람 충분했을 터인데, 이 소설 여기서 멈추질 않는다. 자꾸 ‘사랑, 그놈’ 말고 ‘사람의 마음’까지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삶의 지혜’가 담긴 좋은 말씀도 막 쏟아지고.

 

“한 번 병들면 가장 고치기 힘든 것이면서도 어떤 동기로 하여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말끔히 고쳐 버릴 수 있다는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 (32쪽)

 

“남에게 내 자랑을 하면 믿으려 하지 않고, 남에게 내 흉을 말하면 그보다 더 험하게 여긴다는 서양 속담을 생각하면서 내가 단순하고 성급했다는 자책을 오랫동안 해야 했다. (…) 가까운 사이일수록 인정하기 어려운 게 인간이라고 했다.(…) 엄마는 이웃이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할 때 좋은 것이라고 했다.” (84쪽)

 

“자기 마음을 자기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정말 자기 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123쪽)

 

“머리가 애써 생각해 놓은 것, 꿰맞춰 놓은 것을 가슴이 모래성처럼 허물어 버렸다. 머리가 가슴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186쪽)

 

사랑만 풀어내기에도 바빴을 텐데 삶까지 파고드는 이 소설, ‘물건’ 될 조짐이, 향기가 솔솔 퍼져 나온다. 그리고, ‘예술론’을 ‘연애’와 ‘꽃’ 이야기에 사라락 녹여낸 여러 문장들을 만나면서, 밑줄 좍좍 긋는 그 순간부터 이 소설, 나에게 ‘물건’으로 자리 잡는다. (‘예술’과 대화할 수 있는 글은 그게 뭐든 닥치고 좋아하는 나라서 더 그럴 테지.) 게다가 별로 관심이 없던 ‘꽃’과 ‘꽃꽂이’에도 마음이 끌린다. 세상에, 꽃꽂이 해 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솟더라니. 꽃꽂이 예술가인 승연이 슬슬 흘리던 꽃과 예술 이야기, 참 멋지고 깊었다.   

 

소설 보면서 밑줄 좍좍!

 

“가을 국화를 선비에 비유한 것처럼 내 나름대로 국화 향기를 정의한 게 있다. 라일락 향기에서 ‘미치도록’을 뺀 나머지의 그윽함이라고 불렀다. 라일락 향기가 발길을 붙잡아 세운다면 국화 향기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뒤돌아보게 하거나 생각에 빠져들게 한 탓이다.” (82쪽)

 

“예술작품은 창작자가 자라 온 성장의 거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만약 성장이 우울하고 어두웠다면 자기 혁명을 일으켜 그것을 과감히 뛰어넘든지 아니면 그것에서 처절하게 비통해지든지 하라고 했다.” (91쪽)

 

“선생님은 (…) 꽃은 살아 있는 바로 ‘자신’이라고 인식할 것과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듯이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157쪽)

 

“프로는 잘 버릴 줄 알아야 해. 꽃은 절정이 지나자마자 버려야 해. 시시각각 변하는 것만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거든. 변하고 또 변해서 인류문명이 이만큼 발전한 거구.”(207쪽)

 

“류초희 선생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비좁은 행간에서 몸부림치는 존재라는 것, 현실은 곧 정형이란 틀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그 현실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지만 현실은 늘 자기의 틀 안에 붙잡아 놓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예술을 통해 정형의 틀을 벗어나 보고자 하는 것이며(…)” (208쪽)

 

 

살다 살다 소설 보면서 이렇게 밑줄 많이 긋기는 처음이다. 무슨 인문학 책도 아닌데 말이지. (나는 책 보면서 밑줄 치는 걸 좋아한다. 어쩌다 그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울퉁불퉁 선 위에 얹힌 글자들을 보면서, 깨끗한 책 지저분하게 만들던 그때랑 지금 내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할 때 밀려오는 그 뿌듯함이란. 밑줄을 긋지 않고서야, 밑줄 친 뒤에 찾아오는 이 짜릿함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바로 지금처럼! 더구나 나처럼 한 번 본 책 다시 처음부터 읽는 일 잘 없는 게으른 사람한테는.)

 

‘삶’와 ‘예술’이 제 아무리 잘 버무려졌어도 이 책의 정체성은 ‘연애소설.’ 어차피 삶도 예술도 궁극엔 ‘사랑’을 하고자, 표현해 보고자, 극복이라도 해 보고자 있는 것 아니겠나. 소설 끝자락에 여느 아침드라마처럼 삼각관계가 제대로 펼쳐진다. 물론 ‘물건’ 소설답게 꽤 괜찮은 분위기로.

 

결혼은 계약이고 연애는 자연이라더라.”

 

“내 그리움은 불꽃이고 전업주부여자는 대형 소방호스였다.” (194쪽)

 

날마다 헬스클럽에서 수다 떨던 통통한 전업주부여자가, 애타게 사랑하던 그 남자의 부인이었다니. 단 하루를 더 기다리지 못해 몰래 ‘애인’을 마중하러 나간 공항에서, 몰래 ‘남편’을 마중하러 나온 친한 동무를 만났을 때 그 심정이란….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대형 소방호스. 직설인지 은유인지 헷갈릴 만큼 완벽하게 와 닿는 표현! 

 

여기까지가 끝이었다면 ‘삼각관계’가 아니지. 역시나 헬스클럽 동무, 삐쩍 말라서 같은 여자가 봐도 도저히 매력이라고는 느낄 수 없던, 아는 것만큼은 정말 많았던 그 ‘가정교사여자’가 남편 애인님으로 기어이 나타나 주신다. ‘여자’ 근처에도 못 갈 듯하던 쑥맥 남편이 연애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인데….

 

전업주부여자에 이어 가정주부여자까지 끼어든 삼각관계를 알게 된 순간, 마음속에서 유리창 백 개가 한꺼번에 와르르 깨지는 소리가 나더라는 그 마음, 사실 여기까진 백 프로 감정이입이 안 됐다. “참을 수 없이 그가 보고 싶어 은행으로 달려가야 했을 때, 누군가가 중세시대 노예를 내리친 채찍으로 나를 후려쳐 주기를 바라던” 그 지독하게 애타는 마음보다는, “살얼음이 언 초겨울처럼 서늘해진” 지금 마음이 그나마 견디기 조금 낫지 않을까 짐작 정도 해 볼 뿐.

 

“결혼은 계약이고 연애는 자연이라더라. 계약은 깨지지 않는 한 계속되지만 자연은 3개월마다 딱, 딱, 바뀌잖아. 울고불고 붙잡고 늘어진다고 가을이 안 가니? 이제 곧 겨울이 온다니까. 두고 봐.” (205쪽)

 

‘연애’를 ‘자연’에 비유하다니. 아, 정말 딱이다, 딱! 도파민, 세로토닌이 어쩌고 하면서 호르몬 들이대며 사랑의 유효 기간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지당한 말씀인가. 앞으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런 물음이 다가올 땐 저 문장을 고대로 써먹고야 말테다!
 
“자꾸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웃고 있는 동안 가을이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220쪽)

 

“나는 제목을 지을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 양 말대로 제목을 미리 지어 놓은 게 좋을 것 같았다. 서너 달씩 걸리는 제목이 내 입에서 곧바로 흘러나왔다. ‘가을의 유머’였다. (…) 비극이라는 가을 미토스와 내가 감내해야 할 현실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222쪽)

 

 

겨울에 나와서 참 다행인 소설, 가을의 유머

 

아하, 이제 알겠다. <가을의 유머> 이 책이 왜 가을이 종지부를 찍은 이 겨울에 얼굴 빼꼼히 내밀었는지. 가을에 나왔으면 어쩔 뻔했나. 저 숨 막힐 듯 애타는, 지고한 떨림이 유혹하는 연애를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을, 살랑이는 가을바람이 지독하게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춥고 시린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이 계절에 읽었기에 망정이지. (그래서 그런가. 왠지 이 소설, 남편은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얄팍한 생각마저 드는구만. ^^)

 

“왜 바람이라고 하겠어.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 지나가도록 두는 수밖에 없는 거야.”(148쪽)

 

“좀 더 살아봐. 사랑이란 운명이구나!라는 말을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런 기회가 찾아와 준다면 인간으로서 행복한 일이겠지.”(158쪽)

 

‘바람’과 ‘사랑.’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두 낱말. ‘불륜’이라는 딱딱한 말은 당최 여기에 끼어들 자격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이 소설 안에서는. 이렇게 마음 가다듬으며 소설을 마치려는데, 맨 뒤에 나온 ‘작가의 말’ 덕분에 한바탕 웃고야 말았다.

 

“주인공 승연과 석환의 만남을 단절시켜 버린 것은 잔인한 짓일까? 아직도 작가(나)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그렇다면 이들을 어쩌란 말인가. (…) 이들의 만남은 아무리 순정해도 불륜이다. 불륜을 미화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임을 고백한다.”
 
‘바람’은 철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사랑’이노라고, 가슴 미어지는 문장들로 그려낸 분이 쓴 저 솔직한 반전 고백. 이 또한 참 유쾌 통쾌한 ‘가을의 유머’였다. 겨울에 읽은 ‘가을의 유머’, 물건 중에 물건이노라고 마음속 어느 자리에 확인 도장 ‘꾹!’ 찍는다. 그제야 글쓴이가 궁금해진다. 책날개에 있는 소개 글 보면서 무릎을 ‘탁!’ 친다.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도 쓰고 시조도 쓰고 있음.《백 년 동안의 침묵》을 비롯한 소설 다수,《사유와 미학》을 비롯한 평론집 여럿 펴냄.’

 

 

쩐지, 쩐지 어쩐지이~ 연애를 징검다리 삼아 예술과 욕망론을 솔솔 풀어내던 글맛이 남다르더라니. 작가의 말에 헤겔, 프로이트, 스피노자에 이어 앙드레 지드, 키에르 케고르까지 나와 주신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자기 마음을 부정하는, 뛰어넘는 ‘연애소설’ 하나 써 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지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럼에도 “정형은 현실이며 뿌리이기에, 아무리 찬란한 이상도 현실이라는 뿌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이 마음속 깊이 박힌 ‘창작의 뿌리’만큼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기에 승연과 석환을 헤어지도록 만들었을 테지.

 

머리가 가슴을 이기지 못한다

 

불륜((不倫)이란 한자말을 풀이하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다.’는 뜻이다. 남편 말고 부인 말고, 혼인한 '다른 사람'과 얽힌 사랑 관계를 이를 때 자주 쓰이는 말이기도 하고. 거참, 이상타. ‘사랑’이야말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지고지순한,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한 ‘도리’ 아닌가? 그런 ‘사랑’이 죄가 될 수는 없을진데, 그 ‘사랑’을 한 사람들한테 무슨 근거로 돌을 던질 수 있으려나. ‘부부’라는 ‘남편과 부인을 아울러 이른다.’는 이 메마른 풀이말에 기대서? 방패막이로도, 무기로도 삼아서 

 

“작품이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는 것도 고백한다. 실패가 채근하는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다시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작가의 욕망은 오직 최상의 작품을 써 보겠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최상의 작품을 창작하리라는 욕망이 나를 이끌어 줄 것으로 믿는다.
_2016년 가을, 해운대 장산 아래 집필실에서 박정선.”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는 자칭 ‘실패작’이 이렇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작가의 욕망이 제대로 반영된 최상의 작품이 나오면 그땐…. 인간과 사회와 역사가 버무려진 선 굵은 소설을 주로 써 왔다는 박정선 소설가. 그래서 연애를 다룬 이 소설이 좀 뜻밖이기도 했다는 기사도 보이던데.

 

작가의 다음번 작품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최상의 물을 만나고자 얕은 곳의 물을 거부한 채, 지심을 향해 뚫고 내려가는 차나무 뿌리처럼’, 오로지 최상을 욕망하는 작가의 마음이 마음껏 불타오른 그런 ‘연애소설’을 만나고 싶다.

 

선이 굵든 얇든, 불륜이든 사랑이든, 그건 독자들 마음에 맡겨 주시고, 부디 다음번엔 ‘마음먹은’ 대로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써 보시기를. ‘머리가 가슴을 이기지 못한다.’고, ‘자기 마음 자기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당신 스스로 말한 것처럼, ‘연애’와 ‘욕망’은 해부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은 아닌 것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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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학 2017-02-1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을 찾는 차나무뿌리.꽃모양러너100개.천년같은 21일.달콤한 인내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