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옆의 약자
이수현 지음 / 산지니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옆의 약자’라. 얼마나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면 이렇게 책으로 엮어 나오기까지 했을까 생각하니 읽기 전부터 겁이 덜컥 났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으니. 분명히 좋은 뜻,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담고 있을 책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런 책일수록 마음을 아프게도 힘들게도 하는 법이니까. 겁이 난만큼, 호기심도 발동하는 법. 도대체 얼마나 힘든 사람들 이야기인지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게 된 출발은 단순한 엿보기였다.

 

하지만, 그 출발은 내 실수였다. ‘약자’라는 단어. 그 동안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쉽게 써 온 표현이었던가. 책을 읽으면서 가슴 깊이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만 했기에. 이 땅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그들을 그냥 엿보기만 한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껴야했기에.   

 

책을 죽 읽고 나서, 다시금 목차를 살펴본다. 이 책 한 권에 담긴 약자들이 누구였던가 하나하나 되 집어 보기 위해서다. 몇 페이지에 압축된 약자들의 삶을 그냥 한 번에 죽 읽어 내려간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말로만 들어온, 간혹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이주노동자, 장애인, 비정규직들의 삶을 생생한 르포로 만난다는 것. 그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책에 담겨서 싫기도 했다. 영상이었다면, 한 번 보고 지나쳐버릴 기사였다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잊어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책상에 꽂혀선 자꾸 다시 살펴보라고 나를 재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재촉에 못 이겨 책을 다시 펼치면, 아팠던 맘 한 구석이 다시 아파온다. 왜냐! 난 여전히 이 땅의 소수자들을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하나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리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기도 하다. 언제든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꾸짖을 기회를 주니까. 난 그런 생각을 한다. 갑자기 내 사는 모양이 맘에 들지 않을 때,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머리로만 꿈꾸고 있다는 걸 확인할 때 꼭 이 책을 펼쳐들겠노라고. 그렇게 이 책을 보면서 나를 다듬어가겠노라고.

 

그러다보면, 이 땅의 소수자들 이야기는, 어느새 엿보기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기, 함께 대안 찾기로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은 정말이지 엿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책이다. 내가 소수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그런 마음, 정말 안됐다 하고 눈시울 살짝 적시고 마는 행동, 이 책이 조금씩 바꿔 줄 거라고 믿는다.

<인상깊은 구절>

너도 나처럼 아팠더냐?

건장한 수십의 팔뚝이 너와 나를 떼어놓았을 때

너도 나처럼 서러웠더냐?

너도 나처럼 죽고 죽이고 싶었더냐? 불사르고 싶었더냐?

(중략)

이제 너를 가슴에 묻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초라한 병신과

흉물스런 쇳덩이로

아무도 모를 피눈물 삼키며

너를 가슴에 묻는다.

다시는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으리!

다시는 남모르는 눈물 흘리지 않으리!

-전동휠체어 진혼가 중

(본문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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