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이방인 - 194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최헵시바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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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으로 만나 본 <이방인>. 강렬하면서 감각적인 디자인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동굴의 종유석을 연상시키는 배경은 상하좌우 구분이 모호하여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고 태양을 상징하는 그로테스크한 터치감은 현대 미술이라고 해도 믿을 것처럼 세련됐다. 고전문학 중에서도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전 세계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페스트>와 함께 죽기 전에 꼭 읽어 봐야 할 추천 도서로 손꼽힌다. 유명한 작품이고 재미있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고전이란 벽을 쉽사리 넘지 못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하고 있던 책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알베르 카뮈를 너무 늦게 만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페스트균의 감염에 의하여 일어나는 급성 감염병을 다룬 <페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그의 작품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알베르 카뮈는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신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부정하였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의 말과 다르게 실존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20세기 전반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실존이지 이성이라든가 인간성과 같은 보편적 본질이 아니고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까지도 실존주의에 대한 개념이 확실치 않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략적인 의미로 실존이란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ex-sistere (밖으로 나온다.)라는 의미로 관념론적 본질 규정 혹은 합리주의 체계의 밖으로 나와 구체적, 개별적인 존재로 머무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바깥에 초월하는 존재를 뜻하기도 한다. ‘異邦人이란 제목에 이 모든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지칭하는 이방인은 지역과 거리를 초월한 인간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존재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 인물이 바로 작품 속 주인공인 뫼르소. 알베르 카뮈의 정신과 삶, 세상에 대한 이해는 이 인물을 통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150페이지 정도의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마지막장을 넘기는 데는 아주 오래 걸렸다. 읽고 나서 다시 앞장을 넘겨보게 되고 再讀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카뮈가 쳐놓은 덫에 어리석은 인간이 순순히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 그건 마치 광활한 우주를 본 듯 심오하고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를 본 듯 신선한 충격 이였다. 처음 읽을 땐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하나씩 알게 되는 상징들과 의미들은 마치 경찰이 범죄의 흔적들을 추적하며 사건의 진상을 하나씩 파악해 내고 결국은 범인을 검거하는 것처럼 짜릿한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짧지만 쉽게 읽히지도 읽어서도 안 되는 책이며 오래도록 남아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의적인 이해가 가능하기에 독서토론 도서로도 안성맞춤일 것 같다. 사람마다 삶의 과정이 다르기에 인식 세계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살아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끊임없이 삶을 공부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물음을 던질 것이다. 복잡하고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生死의 카오스에서 알베르 카뮈는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세상은 원래 부조리 한 것이라고. 부조리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그가 말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세계는 심오하기만 하다. 세계 내에 던져진 실존에 부재하는 존재이유와 부재의 존재이유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불굴의 이성, <이방인>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그의 철학적인 생각과 인생이 엑기스처럼 진하게 담긴 책이고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와 본질에 관한 문학적 우수성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런 책들이 있지 않은가. 20대 취업 준비 시절에 읽었더라면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은데 너무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하게 되는. 그러나 <이방인>은 언제 어느 때고 읽어도 좋을 책일 것 같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유명한 문장이다. 소설 첫 문장으로 주인공 뫼르소가 양로원으로부터 모친 사망소식을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무덤덤하고 남 일처럼 말하는 뫼르소의 이 첫 마디는 아주 인상적이다. 왜 죽음인가? 시작부터 부조리의 감수성이 태동한다. 글의 구성은 1,2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에서는 모친의 장례를 치르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우연찮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법정에서 재판 과정을 보여주며 선고를 받기 까기 주인공 뫼르소의 독백수기로 심리묘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설이 아주 짧은데도 불구하고 글을 2부로 나뉘어 놓은 것은 주인공의 인생의 전환점이자 다른 세계 혹은 실존과 본질의 대립을 작가가 더욱 극명히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방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태양이다.

아침 태양,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의 태양,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태양.

태양이 주는 상징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글의 흐름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또 하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어머니의 죽음, 페레 노인의 얼굴 주름이 주는 나이 듦이 연상케 하는 죽음. 아랍인의 죽음, 그리고 주인공 뫼르소의 죽음. 알베르 카뮈는 죽음을 통해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에 의해 끊임없이 관리당하고 있다. 젊은 사람은 앞으로 살날이 많아 그들의 시간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노인들은 죽을 날이 가까워져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근원적인 시간성이나 존재 구조가 죽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무경계성을 인정하고 인간의 삶의 부조리를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생명이 사그라져 가는 그때에 약혼자를 둔 것인지 왜 다시 시작하는 놀이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이 꺼져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처음부터 다시 살 준비가 되었던 게 틀림없다.“- p156-

     

죽음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토마 페레 노인과 약혼자라고까지 불리며 만남을 가져온 것은 죽음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해하고 인정하여 남아있는 삶에 대한 도리를 다했기 때문에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어머니는 스페인계 여자로 문맹인, 청각 장애인 이였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작품 속에서 뫼르소 어머니 또한 아들의 삶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이면에는 그의 삶 전체라고 할 수도 있다. 문득 어머니 생각을 하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깨닫기도 하고 뫼르소 인생에서의 라는 인식의 부재는 어린 아이였던 그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주게 된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도 무가치했을 것이다.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慧眼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위에 있는 벌판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닿을 듯 줄지어 선 삼나무들과 불고 푸른 대지,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을 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 고장에서 보내는 저녁은 쓸쓸한 휴식 시간과 같았을 것이다."- P25-


1. 평범한 회사원 뫼르소는 양로원으로부터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려가게 된다. 가는 내내 버스에서 꾸벅거리고 졸고 장례 중에도 깜박 졸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기색 전혀 없이 관리인이 주는 밀크커피도 맛있게 마시고 어머니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도 정확히 대답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장례를 치르며 뜨겁게 내리 쬐는 햇볕, 더위는 기승을 부리고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엄마와 절친 이였던 토마 페레노인은 장지까지 따라가면서 아들과는 대조되게 애도의 슬픔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뫼르소는 장례 행렬 내내 햇빛으로부터 고통 받고 피로함만 느끼며 그저 장례를 빨리 끝내고 자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뫼르소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가움이 서려있다. 슬픔에 대한 그들만의 방식과는 다르게 뫼르소는 그 어떤 슬픔도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순간의 본질에만 충실할 뿐이다. 한 결 같이 무심하고 덤덤한 태도를 일관하는 그의 태도에서 타인의 슬픔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해가 갓 떠올라 있었다. 바다와 마랭고 사이를 막고 서 있는 언덕들 위로 하늘빛이 불그스름했다.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소금기가 실려 있었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전원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엄마 일만 아니었으면 산책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21-


2.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마리 카르도나와 해수욕을 즐기고 일반적으로 데이트라 불리는 시간들을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를 불편하게 하는 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잔상이 아닌 단지 월요일에 출근해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다.


일요일은 다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해야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P35-

     

3. 일상처럼 회사에서 일하고 평소처럼 셀레스트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같은 층 살라마노 영감과 개의 애증관계에 대한 이야기, 동네사람들이 싫어하는 레몽 생테스와 만나 레몽의 정부 이야기를 들어주고 재미와 흥미를 느낀다.


4. 에마뉘엘과 영화도 보고 마리와 수영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수영 도중 욕정에 사로잡혀 마리와 몸을 섞기도 하는데 자기를 사랑하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그런 건 별 의미 없지만 사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없는 욕정 풀이의 대상이라는 말인가. 아무리 사랑하지 않더라도 듣기 좋은 말로라도 사랑한다 말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은데 뫼르소는 거짓말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속마음을 말할 뿐이다.

레몽이 여자를 구타한 일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는데 이를 지켜본 뫼르소는 레몽이 자신의 증인이 되어주라는 부탁에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다며 거부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답한다. 산책 다녀온 살라마노 영감의 옆에 개가 없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개가 도망가 버렸다며 화를 내다 이내 슬퍼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뫼르소는 인생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인생의 티끌처럼 존재감이 없고 주위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기만 한다. 순순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부탁을 하면 거절할 줄도 모르고 받아주며 착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이 진정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닌 그저 줏대가 없어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아닌 개가 없어져도 걱정되고 불안하고 슬픔에 젖는 것이 일반적인데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감정 변화를 느끼지 않아 더욱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의 성장 배경에 우리가 모르는 성격 발달 장애를 유발할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는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지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싸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의도대로 뫼르소가 이 사회의 이방인이라고 전적으로 믿게 만들어 버린다.


영감은 자기 방문을 닫았고, 이윽고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영감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벽 너머로 조그맣고 괴상한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고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아 저녁도 굶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P55-


5. 사장의 파리 파견 제의에도 생활의 변화를 원치 않아 거절하고 마리의 사랑에 대한 재확인 질문에도 어이없는 답변을 내 놓는다.


나는 사람이란 대개 생활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어떤 생활이든 비슷비슷하며, 또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에 그렇게 불만이 있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p57-


시지프스처럼 끊임없이 자기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삶의 의욕도 행복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뫼르소.


저녁에 마리가 와서 자기와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p58-


6. 일요일에 레몽의 지인 별장에 초대되어 마리와 함께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정부의 오빠라는 아랍인의 출연으로 해변에서 난투극을 벌이다 칼부림에 레몽이 다치게 된다. 갑작스러운 일에 휘말려 급 피곤함이 몰려와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해변을 걷던 뫼르소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현기증을 느끼고 있을 때 아랍인과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그저 바위 그늘아래서 쉬고 싶은 욕망에 이끌렸던 뫼르소와는 다르게 아랍인은 적의를 느끼고 칼을 뽑아 들자 칼날에 반사된 태양이 뫼르소의 눈을 찌른다. 뫼르소는 그렇게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뺨이 타오르는 듯했고, 땀방울은 눈썹 위에 고여 가고 있었다. 엄마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같은 태양이었다. 그때와 똑같이 이마가 아팠다. 머리의 모든 혈관이 한꺼번에 피부 아래서 쿵쿵댔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그게 어리석은 짓이고, 한 걸음 몸을 옮긴다고 해도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p78-


낯선 곳에서 겪게 되는 일들은 뫼르소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들이다. 뫼르소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사랑, 질투의 감정들이 레몽이라는 인물에 의해 연루되었던 것이다. 뫼르소가 행복하게 생각했던 바닷가라는 공간이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공간으로 재구성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싶었던 뫼르소는 의도치 않게 자신이 살아 온 삶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2부에서는 뫼르소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그를 도와주려는 많은 이들의 손길도 뿌리치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다.

죄는 인정하지만 자기변호에는 무의미함을 느끼며 최소한의 변명도 하지 않는다.

솔직함, 진실됨, 간결함을 추구하던 뫼르소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만 한다.

뫼르소는 타인에게 무심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집단의 공감을 사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움 받고 살인죄보다 더 큰 죄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다.

재판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 한 것인가를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이 부조리함에 대해 허무주의가 아닌 부조리와의 화합을 도모하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삶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억울하고 분하고 공평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지만 어떻게 부조리에 맞서 살아갈지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나 세계가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 즉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부조리는 인간의 숙명인 것이다.


소설의 배경으로는 프랑스가 독일군의 점령하고 있던 시기에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황폐해 졌을 때 글이 쓰여 졌다. 현실 모순이 만들어낸 실존주의의 대중화는 부조리 문학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냈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기존의 전통문화와 문학의 본질적 신념과 가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극과 소설로 실존주의에 근거를 둔 문학 유형이 탄생한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부조리와 실존주의 대표 작가라는 사실은 시대를 거듭 할수록 확실해 질 것 같다. 마치 시를 쓰듯 그의 글은 함축적인 의미와 복선들이 가득하여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 맞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인생에 대해 다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육체적 욕망이 감정보다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p86-


나는 개입하지도 않았건만 모든 일은 진행되었다. 내 운명은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가끔씩 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싶었다.”-p127-


사람이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늘 부풀려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시인해야 했다.” -p143-


"엄마는 늘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리라는 법은 없노라고 말했다.“-p144-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는 것이나 예순 살에 죽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경우든 당연히 그 후에는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들이 살아갈 것이고 그런 일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아무튼 가장 분명한 것은 지금이 됐건 이십 년 후가 됐건 언제든 죽게 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p145-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나는 그 이유를 잘 안다. 당신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항상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내 미래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직 닥치지도 않은 세월을 거슬러서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날 것도 없는 이 세월 속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신의 하나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과 운명,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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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아파트 한자 귀신 9 - 영혼의 구슬 신비아파트 한자 귀신 9
김강현 지음, 김기수 그림, 김경익.박상우 감수 / 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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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분량의 지식을 습득하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응용하고 대입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며 정답을 찾으면 된다. 한 가지 방법만으로 학습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다양한 학습법과 컨텐츠, 미디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길이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많은 학습법 중에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정확한 정보인지 판가름하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이런 부분은 부모가 대신해서 선별하고 추천해주는 것이 좋다. 특히 어린 나이일수록 어떻게 학습을 시켜 나가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많을 것이다. 관심사가 다양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싫증을 내고 집중력이 짧아 제대로 공부를 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이럴 때는 아이의 관심사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관심이 있으면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다 보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는 것을 학습의 연장으로 만든다면 놀면서 자연스럽게 공부도 할 수 있게 되는 구조를 만들게 된다.


 

한글은 상당부분 한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우리말을 잘 이해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히 어른들도 지금은 한자는 잘 사용하지 않아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알아두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요즘은 표준어와 바른말 사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속어와 줄임말 등 인터넷 세상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나 문자로 대화하는 시대이기에 한글의 바른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자 학습이 필수적이다.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위해 3500자를 암기했었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고 단기간 무조건식의 암기로 습득한 것들은 휘발성이 되어 날아가기 쉽다. 남는 거라곤 자격증이란 종이 한 장뿐. 그 허망함이란 다들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절대로 하지 말아야하고 시키지도 말아야 할 것이 시험을 위한 무조건적인 주입식, 암기식 공부법이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신비아파트 한자 귀신 시리즈는 미취학 아동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학습 만화책이다. 신비의 아파트가 아이들만 본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이미 엄마들이 자녀들보다 즐겨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며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웹 드라마, 영화, 게임,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뻗어가고 있고 중고생 팬덤까지 생기면서 주인공의 연령대를 고교생으로 올려 웹 드라마 까지 제작했을 정도다. 낯선 한자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비아파트 만화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 <9권 영혼의 구슬> 에서는 20개의 한자와 파생 한자어가 만화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데 파생 한자는 어른들이 보기에도 어려운 단어가 나오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한자 공부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주로 큰 글씨의 한자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만화 자체가 워낙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 때문에 한자가 등장해도 전혀 거부감이 없이 신비한 주술의 하나로 여겨지며 만화에 몰입되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흥미와 재미를 끝까지 느낄 수 있게 스토리를 짧게 5화로 구성했고 획순, 쓰기, 파생 한자 단어 알아보기, 한자 퀴즈, 한자어 체크까지 할 수 있는 학습 페이지도 있어 책을 다 읽고 복습할 수 있게 만들어 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한자 복습을 카드형식으로 만들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가지도 다니면서 놀고 학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카드라기 보단 게임팩에 들어있는 카드처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신비아파트는 디테일이 살아있고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아이들만 보기에 아까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주인공 신비와 금비 캐릭터는 아이들에게 너무 사랑스럽게 보일 것 같고 끝도 없이 나오는 요괴와 귀신들은 신기하면서도 늘 권선징악의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악의 무리들이 때론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리온이라는 퇴마사는 어릴 적 즐겨봤던 카드캡터체리의 샤오랑을 연상시키는 훈훈한 외모와 성격으로 소녀와 여성들의 마음을 분홍빛으로 만들기 충분하다. 각 캐릭터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가득하고 시리즈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어 이야기 구성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읽다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데 구미호가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이야기는 마무리 되고 10권에서 계속 이어질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짜증이 날 정도다. 다음 이야기가 미치도록 궁금해서 빨리 10권이 보고 싶어진다. 아이들은 이런 마음이 더 강렬할 것 같다. 신비아파트의 매력은 어디까지 일까? 중독성이 강해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이 한자 귀신의 매력에 풍덩 빠져서 한자 학원 보내달라고 성화를 부리지 않을까 싶다. 한자 귀신9권 출간 기념 특별 이벤트도 하고 있다. 책 맨 뒷장에 엽서가 붙어 있는데 이 애독자 엽서를 꼼꼼히 적어서 보내면 추첨을 통해 다양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응모기간은 2020430일까지이니 서둘러서 응모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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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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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기간이 오래되고 깊어지면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를 앓게 되는데 요즘엔 이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친숙하기까지 하다. 삶은 더욱 살기 편해지고 풍요로워 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메마르고 거칠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소통의 길은 확장되었지만 진정한 관계 맺음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외롭고 쓸쓸한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는 말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게 되면 점점 우울증도 심해지면서 안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울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문제되고 있는 인류안건이다. 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다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완치라는 개념도 무의미하다. 사람의 마음이 병들면 그만큼 고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 힘든 병증을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하며 생존하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저자 에마 미첼은 우울증을 25년이나 앓고 있다. 당당히 자신은 심각한 우울증 증세가 있으며 그 증세로 인해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떻게 상황을 대처하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책에 담았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던 것을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기운을 얻는 모습은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특효약으로 부작용이 없으니 따라할 만 하다. 우울증이 완벽히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잠시 잠깐의 산책과 자연의 遭遇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으며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며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야만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 디자이너 창작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아 보이는 작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활기 넘치고 건강한 모습이 아닌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보통의 사람 중에 하나다. 그녀의 단짝인 반려견 애니와의 산책은 그 어떤 항우울제보다 효과가 좋다.


1년 동안의 산책과 탐사기를 통해 보고 듣고 만졌던 감각들과 자신의 상태를 꼼꼼히 기록해 둔 일기 같다.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의 스케치는 마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름도 생소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들이 많지만 작가의 상세한 묘사와 섬세한 표현들 덕분에 마치 언젠가 본적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책 제목처럼 야생의 날것들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들의 생명력이란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나타낸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 포기의 풀이라도 말이다. 이러한 작은 존재들로부터 우리는 삶의 탄력회복성을 강하게 만들 수 있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 여기며 어둠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누군가도 그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자연을 너무 사랑한 소녀였던 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때 만났던 꽃, , , 벌레들을 잊지 못하고 자연이라는 품속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자유로움을 느끼며 행복에 젖어 살았던 유년의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한다. 나도 한 때는 작가가 느꼈던 우울감으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태를 겪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떠한 산해진미를 가져다 놓아도 식욕을 느끼지 못하며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고 거동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며 숨만 쉬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잠깐씩 산책과 야외활동을 하면서 다시금 삶의 의지를 다져갔는데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지나고서야 알았다. 저자처럼 심각하게 약까지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껴봐서 공감이 많이 갔다. 특별히 직업 정신이 투철하여 멀리까지 가서 새때를 보고 야생화를 보기 위해 헤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투쟁 이였다는 것.


저자의 심각한 우울증 증세에 다소 기분이 안 좋아질 수 있지만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데 지나가는 한 때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안일한 희망적 메시지라고 할까. 사실 책이 워낙 예뻐서 보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늘 주위에 있으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금에라도 작은 생명체들에게 호기심과 탐미의 시간들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나의 대상을 오래도록 관찰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는 첫걸음일 것이다. 우리 인생도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 자주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 가볍게 산책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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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식당
미원x이밥차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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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me pick me pick me one~♪♬


픽미 픽미 픽 미원~♩♪

   

미원을 들고 화려한 골반 돌리기 춤을 추며 나오는 김희철 미원 광고를 본 적 있다. 인기가요를 개사하여 미원을 홍보하는데 그럴듯한 말장난식 가사가 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지금껏 미원은 몸에 안 좋은 조미료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TV 광고에서는 떡하니 미원을 사먹으라며 부축이고 있는 꼴이 아닌가. 신선한 충격 이였다. 그런데 <미원식당>을 읽고 나서 기존의 미원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미원은 해방 직후에 값비싼 일본산 조미료가 우리 식탁을 서서히 장악하고 있을 때 임대홍 회장님이 국산 조미료를 만들어 19561월에 부산에 조그마한 공장을 세우게 되면서 국산 조미료가 탄생하게 되었다. 임대홍 회장님이 아니였더라면 싸고 질 좋고 맛 좋은 한국산 미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일본산 조미료가 사람들의 입맛에 각인 되었을 것인데 한국인의 입맛을 지켜낸 진정한 애국자신 것 같다. 미원의 감칠맛 원천이 뱀가루라는 헛소문이 돌 정도로 미원에 대한 온갖 루머가 돌았는데 그 원인이 미원을 넣은 음식이 말도 안 되게 맛있어서 였다고 한다.

 


 

미원은 요리할 때 소금, 설탕처럼 넣어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엄마의 손맛이 다시다와 미원에서 나온다는 걸 미처 알지 못하고 있을 때 부엌에서 소꿉장난 식으로 터득했던 엄마 따라 하기 주방놀이는 그렇게 나의 무의식 속에서 미원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나의 입맛도 미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서 미원은 몸에 안 좋은 조미료라고 알게 되면서 서서히 음식을 할 때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식당에 가서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조미료로 맛을 내 감칠맛이 집밥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풍부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조리시간과 재료비 절약과 맛의 우수성을 위해 많은 식당에서 조미료가 과사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하고 속이 더부룩해지고 너무 적게 넣으면 맛이 밍밍해지는 조미료는 적당량을 넣을 경우 맛없는 어떤 요리도 다시 되살리는 마법의 가루다.

 


 

미원을 사용함으로써 소금사용을 줄이고 풍미는 배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감칠맛을 위해 소 한 마리와 닭 백 마리를 살렸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하더라도 음식 맛을 내는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것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푹 삶아내어 육수를 뽑거나 햇볕에 말린 재료를 믹서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 천연 조미료를 만드는 과정은 엄청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물론 몸에는 더 건강하고 좋지만 전문 요리사가 아니고서야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음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원을 사용하면 적은 양으로 손쉽게 음식 맛을 살려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가격도 저렴해서 한 봉지 사놓으면 1년도 거뜬히 사용할 수 있다.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던 미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 요리를 할 때 미원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원식당>에서 알려주는 다양한 레시피들을 활용해 집에서도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책 구성은 혼밥 식탁, 혼술상, 분식열전, 다이어트 식사, 식후 땡, 디저트 주제로 다섯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필수 재료, 만드는 법, 조리 TIP이 한 장에 담겨있고 대부분 간단하면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다. 필수 재료나 양념들이 기본적으로 집에 있는 것들이 많아 따로 구매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해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리 프로그램이나 요리책들을 보면 이름도 생소한 소스와 재료들이 넘쳐나서 간단한 요리도 재료를 구하지 못해 따라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원식당>에 소개된 요리들은 이밥차(2,000원으로 밥상차리기)와 함께 만들어서 그런지 요리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식사류에만 사용 되는 줄 알았는데 디저트류에도 미원을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미원의 쓰임새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것 같다.

거창하게 차려먹는 음식이 아니라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레시피들이 많아 아이들 돌보느라 요리 할 시간이 부족한 엄마들이나 혼자지만 맛있는 집밥을 즐기고 싶은 혼족들에게 강력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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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꿈결 클래식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백정국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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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오셀로>,<맥베스>, <리어왕>과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총 37편의 희곡을 남겼다. 희곡 외에도 시와 소네트를 쓰기도 하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작품에 담았다. 가족의 죽음과 같은 작가 개인의 어둡고 힘든 시기에 그는 예술적으로 가장 원숙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대략 1600~1607년까지 그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큼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들 대부분이 그 때 쓰여 진 것이다. 19세기 낭만주의에 의해 햄릿은 더욱 높이 평가 받게 되는데 고전주의의 엄격한 규칙에 짜인 귀족 문화에서 벗어나 理性의 발견, 즉 존재론 적인 자아 탐구의 본성이 폭발하던 시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셰익스피어가 왜 이렇게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당시 사회적 배경과 인물 탐구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료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 드문드문 그의 흔적을 찾아 짜 맞추고 어림잡아 추측해 보는 게 전부이다. 그래서 전문가들 또한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변덕스런 운명이 쏘아 대는 돌덩이와 화살을 맞아야 하나,

아니면 고난의 파도에 맞서 무기를 들고 대항하다 끝장을 내야 하나.

어느 쪽이 더 고결한가.

죽는 건-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 한숨으로 육신이 상속받은 고뇌와 피할 길 없는 수천 가지의 불화를 마감한다 한다면,

그건 애써 간구해야 할 귀결이다.

죽는 건, 잠드는 것.


- 3160 -



햄릿에 대한 수많은 비평들 속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복수에 대한 햄릿의 망설임이다. 햄릿의 대사를 원문으로 옮기면 To be, or not to be" 이다. be동사는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동사로 존재하느냐 마느냐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뒤에 오는 내용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리하여 어순의 문제만 바로잡아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로 옮겨 놓았다고 각주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해석의 중요성이 이렇게 전문적인 접근 방식의 차이와 비교되니 쉽게 이해가 된다.


 


 

꿈결 클래식 시리즈 2번째인 <햄릿>의 특징은 기존의 책들과 달리 에세이집을 연상시키는 컬러 일러스트와 210여 개의 각주와 상세한 해제가 있다는 것이다. 고전이라 하면 어렵게 느껴지고 글도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이란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어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꿈결 클래식의 <햄릿>은 연극 대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구성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로움이 느껴지고 텍스트 크기 또한 큼직해서 가독성을 높여 준다. 중간 중간 글과 어울리는 일러스트가 있어 더욱 몰입도와 이해력을 높여준다. 힘들이지 않고 대충 그린 듯 거친 터치감과 투박함은 인물의 표정과 감정 묘사, 상황의 분위기를 집중적으로 나타내는데 탁월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이 된 숙부 클라우디우스는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형의 아내인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다. 햄릿은 어느 날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가 숙부에 의해 독살된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복수를 결심하고 숙부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일부러 미친것처럼 행동하고 다닌다. 햄릿은 사랑하는 애인 오필리아에게 까지 매몰차게 굴며 등을 돌린다. 오필리아의 아버지이며 왕의 측근인 폴로니어스는 커튼 뒤에 숨어서 햄릿과 왕비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햄릿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절망으로 미쳐버린 오필리아는 마침내 호수에 빠져 숨을 거둔다.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기회를 엿보지만 막상 결정적인 기회가 오면 망설인다. 신중한 성격인 햄릿은 연극을 통해 숙부의 반응을 떠보고 확신을 얻게 된다. 클라우디우스가 꾸민 계략에 빠져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스와 결투를 벌인다. 클라우디우스가 햄릿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독이 든 술을 그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마시고 숨을 거두고 햄릿은 결투에서 독을 바른 레어티스의 칼에 찔리고 햄릿의 칼에 클라우디우스와 레어티스도 찔려 목숨을 잃고 만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죽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勸善懲惡의 정의가 배제된 잔인한 비극성만이 존재하기에 결말은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에게 죽음은 벌이 아닌 번뇌와 고통이 가득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였나 싶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죽음이 부른 또 다른 복수와 피바람을 끝내기 위한 종지부를 찍는 행위였을까.


햄릿은 복수를 꿈꾸며 기회를 노린다. 그 최후의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결정적일 때에도 쉽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못한다. 이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일컬어 햄릿 증후군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햄릿의 선택장애는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끝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처음 살아보고 겪는 일을 어찌 확신을 가지고 단정 지어서 선택할 수 있겠는가. 선택에는 언제나 결단과 번민이 따르고 책임이 따른다. 어떤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선택은 신중함과 현명함이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햄릿은 일상적인 조건의 선택이 아닌 복수에 직면해 그 갈등과 고통이 극심했을 것이고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였기에 더욱 혼란스럽고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너무 섣부른 판단은 인생의 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심하고 신중함을 갖는 것이 조금은 덜 후회하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백정국 교수의 해제는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 가장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일대기와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앰릿은 원형 햄릿 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지만 그 이야기와 인물 등을 비교할 수 있게 상세히 알려주니 좋다. 개인적으로 앰릿의 스토리 구성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햄릿은 특유의 시적인 표현과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표현, 또 그 감정으로 겪는 고통과 환희들을 현란한 문체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게 만든 작가만의 힘이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욕망, 사랑, 희망, 결함, 동경, 삶을 그대로 글에 녹여놓은 것 같다. 햄릿을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 중 남성의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가리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사용해 분석한 사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페미니스트적 접근 방식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라 새로웠다. 한국의 대충매체와 사회적 삶의 중심이 남성 중심적 편향성이 강하다는 걸 많은 활동 단체들의 노력과 움직임 덕분에 사회적 둔감자인 나도 알고 있을 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요즘 사회이다. 그래서 그런지 페미니즘적인 접근 방식에 예나 지금이나 타국이나 자국이나 사람 사는 풍경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의 으뜸 되는 가치와 소용이 고작 먹고 자는 거라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낱 짐승일 뿐. 앞을 내다보고 뒤를 돌아보는 엄청난 이성을 불어넣어 우리를 창조하신 이가 그런 능력과 신적인 이성을 선사한 건 쓰지 말고 썩혀 두라는 게 절대 아니다. 짐승 같은 망각일까, 아니면 결과를 너무 까다롭게 의식하는 소심한 망설임 탓일까-생각을 넷으로 쪼개면 하나는 지혜이고 나머지 셋은 비겁함이겠지-모르겠다.


- 44 35~40 -



 

셰익스피어의 문법 파괴와 과감한 비유법 때문에 번역하는데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 역자의 후기에도 원문의 뜻을 그대로 살리면서 가독성을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권위 있는 참고 자료들을 공부하고 번역 자체로는 의미 전달이 완벽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은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도왔다. 셰익스피어의 이러한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법이 우리의 뇌를 자극시켜 뇌를 활발히 움직이게 만든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신선한 충격과 새로움을 겪고 받아들이느라 열심히 움직인다. 그래서 더욱 대단한 작가이자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인문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란 것이 증명된 셈이다.

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난 것 같다.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가 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통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사고 확장을 시켜가는 창조적인 일이 바로 인간에 대한 삶에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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