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아파트 고스트볼 더블X 6개의 예언 와글와글 숫자 스티커 워크북
서울문화사 편집부 엮음 / 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문화사에서 출판한 신비아파트 시리즈물은 대부분 구성도 좋고 아이들 취향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볼 때마다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스티커를 활용해 숫자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을 선보였다. 워크북이라 교재라는 느낌보다 놀이용으로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다. 두께도 얇고 그림도 큼직하게 들어가 있어 한글이나 숫자를 모르는 아이라도 그림만 보고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18개의 고스트 캐릭터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너무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은 앙증맞은 캐릭터들도 나와 있다.

숫자 공부를 막 시작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자 학습지가 될 것 같다.

 


 

요즘 6살 조카가 어린이집에서 덧셈, 뺄셈을 공부하고 있는데 손가락으로 수를 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이 책을 보는 순간 조카에게 당장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관심사이자 애정을 쏟아 붓고 있는 신비아파트 책이라 무조건 좋아하겠지만 보통 아이들이 좋아할 스티커 놀이도 할 수 있고 숫자 공부까지 할 수 있으니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도 유익한 도서가 될 것 같다. 스티커도 넉넉하게 들어있어 학습 후 남는 스티커는 따로 가지고 놀 수도 있다. 정답은 마지막장에 모두 나와 있어 아이 혼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 알기, 수 세기, 덧셈뺄셈 개념, 홀수짝수, 도형, 규칙, 관찰, 분류 등 다양하게 학습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한 권으로 숫자 공부를 모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놀이를 통해 학습을 한다는 것은 학습 효과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아이의 집중력을 높이고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처럼 재미있는 신비아파트 책을 통해 공부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지겹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김예지 지음 / 성안당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들어 방송을 통해 유명 연예인들이 공황장애 사실을 고백하면서 연예인병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갈수록 늘고 있는 질환이다. 우울증이란 말이 생겨 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미 이 단어를 쉽게 입 밖으로 내뱉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눈부시게 빠른 성장을 보이며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사람들은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점점 퇴행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울증, 공황장애, 사회 불안 장애 모두 비슷한 듯 보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김예지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불안 장애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말해주면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를 주고자 이 책을 만들게 됐다.


전작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통해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은 청소 일을 하면서도 당차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가득한 20대 여성이였다. 그래서 그녀의 꿈을 열렬히 응원해주고 싶었고 인상이 강하게 남아 가족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침마다 청소하시는 분들을 보면 항상 그녀를 떠올리게 되는 일상의 작은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고 감추고 싶은 그녀의 치부를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알지도 못하는 낯선 독자들에게 용기 내어 말을 한다.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고 희망 없는 미래와 우주에서 개미만한 존재도 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인 것 같지만 너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이 여기 또 있어. 너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도 그럴 때가 있어. 그러니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다시 한 번 힘을 내봐! 내가 응원할게. 

 작가도 단번에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년의 시간동안 꾸준히 시간과 돈을 들여 노력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 노력이란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상상할 수 도 없겠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떤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성격이 내향적이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는 사람들 혹은 예민한 사람들이 많은 공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라 작은 일에도 크게 타격을 입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이 모든 것에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며 자신을 갉아먹고 채찍질을 해가며 늘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 있었다. 아주 행복하고 따뜻했던 유년시절을 겪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타고난 성격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 같다. 아마 김예지 작가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드니 더욱 그녀의 이야기에 빠지게 되고 공감이 간 것 같다. 여리지만 절대 약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과 당당하게 문제 해결을 하려는 의지와 용기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말로 죽지 않아줘서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우리 인생이 살만한 것이라고 외치며 당차게 살아가길 바란다.


“인생은 가혹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살만하기도 하거든요. 스스럼없이, 주저 없이 행복해집시다!”


전보다 그녀의 그림에 여유가 생기고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에서는 너무 많은 그림이 빽빽하게 채워져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녀의 삶의 변화가 그림에도 느껴지는 듯하다. 만화라고 하면 마스다 미리의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었는데 김예지 작가에게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성 작가라는 공통점과 소소한 이야기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건내주고 있는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편안하고  담백한 이야기들이 있어 더욱 공감되고 재미있어 순식간에 몰입된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막장 드라마의 파격적인 사건들은 없지만 오늘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화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호기심과 기대감이 충만해진다. 책장이 너무 빨리 넘겨져 버려서 아쉬움이 남지만 그 자리엔 또 다른 이야기가 채워질 것을 알기에 차분하게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보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은 지금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한창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사람과 사람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공기로 인한 전파 감염의 우려에 대비해 마스크 착용을 필수화하고 있다. 손 씻기 권장과 각종 모임을 자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접촉. 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연 된 확진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을 해 나가야 하고 돈을 벌고 집 밖을 나갈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관계를 통해 삶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데 그 통로가 막혀 버렸다.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은 인간을 더욱 가시 돋치게 만들고 서로를 불신하며 타인에 대한 미움이 증폭게 만든다.

만약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을 해야만 하는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 어디에서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떠한 사람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상상만으로 그 불안하고 초조함에 심장이 멎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책을 두르고 있는 띠지에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문구가 있다.

복수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어렴풋이 알고 읽어 내려간다.

소설의 시작은 어느 소녀가 누워있는 병실을 연상케 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게이브’는 아내와 딸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일을 마치고 집에 귀가하는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딸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여자 아이를 보고 그 누군가의 차를 쫒아 달려간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본 딸 ‘이지’의 모습이 된다.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은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되고 딸의 모습을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다른 곳에서 목격한 게이브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단순 아동 실종 사건인 줄 알았지만 살인 사건 이였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게이브는 자신의 딸을 찾아 바람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생활한다. 그러다 오랜 슬픔과 지친 삶에 희망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가볍게 하려던 그 순간 사마리아인을 만나게 된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그와 알고 지내면서부터 그날의 새로운 사실들을 찾게 된다.


실종은 죽음과 다르다. 어떻게 보면 더 나쁘다. 죽음에는 끝이 있다. 죽음에는 슬퍼하는 시간이 허락된다. 추모하고 촛불을 켜고 꽃을 놓는 시간이. 떠나보내는 시간이.

실종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림보다. 당신은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이 잡힌다. 지평선 위로 희망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절망이 콘도르처럼 맴을 도는 낯설고 암울한 세상 안에서. -p27-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장인 해리와 장모 에벌린.

프랜은 차갑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강인한 여성으로 앨리스라는 딸과 함께 어딘지 모를 안전한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고 있다. 케이티는 샘과 그레이시의 엄마로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밥벌이를 하느라 힘들게 휴게소에서 일하고 루는 그녀의 여동생으로 일 나가있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준다. 샬럿 해리스는 이사벨라의 엄마로 아주 부유한 미망인이다.

게이브가 십대 때 실수로 차 사고를 냈는데 그때 피해자로 소설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식물인간 소녀 이사벨라이다. 옆에서 오랜 세월동안 가정부와 간호사 역할을 맡고 있는 미리엄은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함을 추구 한다.

 

사건과는 서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그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각기 다른 장면으로 보여준다. 게이브는 사건의 전말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찾기 보단 누군가에 의해서 떠밀리듯 쫒아가기 바쁘다. 연관성이라곤 전혀 없는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과 알듯 말듯 하나씩 들어나는 실마리들이 퍼즐 조각을 맞추듯 판이 완성되어 간다. 소설의 배경은 고속도로와 집 위주로 공간의 이동이 거의 없고 인물의 특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거 말고는 인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어나는 뭔가 꺼림직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소한 일들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작가의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에 한 번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이 페이지를 넘겨가게 된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게 써내려가서 필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하며 끝까지 페이스를 놓치지 않고 결말에 가서 시원하게 터트리는 이야기 구성에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과 관련해서 간과하는 부분들이 많다. 무엇보다 피비린내 나는 처참한 죽음이 그렇다. 일단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내가 아는 사람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며 지낸다. 나는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맹목적으로 믿는다. 모든 나쁜 일은 비껴가게 만드는 신비의 역장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p101-


‘디 아더 피플’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게이브에게 일어난 많은 일들이 주변 사람들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리 복수극의 숨겨진 얼굴이 드러난다. 이 세상에는 죄를 범하고도 제대로 벌을 받지 않거나 너무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범죄자가 너무 많다. 억울하고 분한 피해자들 혹은 그 가족들은 평생을 가슴에 상처를 입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절대 죄인의 죄를 제대로 심판받지 못하지만 테두리 밖에서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한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물음에 ‘네’, ‘아니오’ 를 단숨에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지만 그 넘어 에는 그에 응당한 또 다른 복수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상처받은 자들의 고통과 죄를 지은 자들의 뻔뻔하게 잘 사는 모습의 대비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복수극에 더 매료가 되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사건인데도 살을 덧붙이고 모양을 내고 맛을 어떻게 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소설의 포인트는 줄거리가 아니라 작가가 독자들을 어떻게 손에 쥐고 마음대로 주무르는지, 작가의 의도대로 얼마나 자신도 모른 사이에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게이브와 함께 새로운 증거와 사실들을 찾아 나서고 결국에는 갈피를 못 잡은 체 작가가 답을 쥐고 펼쳐 보이는 순간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각지도 못한 결말과 반전 스토리가 소름끼치도록 재미를 더해준다. 빠른 전개에만 집중했다면 크게 와 닿는 부분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소설 곳곳에서 보이는 철학적인 물음들과 삶에 대한 성찰적 이해가 스릴러물이지만 절대 가볍게만 읽을 수만은 없게 만든다.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만을 묘사한게 아니라 현실성이 반영된 작품이라 우리 주변의 누구의 이야기라도 되는 듯 주의 깊게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C.J 튜터는『초크맨』과『애니가 돌아왔다』라는 작품을 통해 ‘괴물 작가’라고 불리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디 아더 피플』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지만 첫인상이 너무 강렬한 탓에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전에 요 네스뵈의 소설에 한창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그 때가 떠오른다.

사전 서평단이 먼저 읽고 대다수가 극찬한 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그 어느 때 보다 무겁고 더운 여름을 나게 될 것 같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과 함께라면 길고긴 방콕 시간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
조송희 지음 / 더시드컴퍼니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물아홉 살에도 어떤 것에 도전한다는 일은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데 나이 마흔아홉 살에 첫 해외여행을 하고 그 후로도 바이칼, 안나푸르나, 산티아고, 인도, 유럽, 몽골, 중앙아시아, 일본, 중국 등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제2의 인생의 스토리를 써나가는 사람이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문화 재단에서 10년째 사진을 찍고 글 쓰는 일을 하는 조송희 작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 중년의 나이로 관광지가 아닌 오지에 가까운 곳을 찾아 세계 각국을 여행하기란 상상만으로도 힘들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 이였고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의 삶을 살 던 그녀가 우연한 기회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는데 마치 운명인 듯 그 한 번의 여행이 그녀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시간들,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이다.” -p35


가족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한 시간들은 존재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오는 소외감이 드는 순간들의 연속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간들이 있다. 열심히 달려왔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무색하게 보람과 기쁨보다는 지치고 피곤함만이 남는 시간들, 작가의 삶에 드리워진 건조함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을 영혼의 피정지(避靜地)로 여기는 데는 자연이 주는 광활함과 아름다움, 경외감이 그녀를 감동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뿐인 인생에서 그런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이 든다.

안나푸르나에 올라 선 그녀는 생각한다. 여길 오르기만 하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고 인생의 어떠한 답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산행이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안나푸르나를 오른다는 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녀는 해내고야 만다.

그러나 그녀가 꿈꿨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허약하고 자신감 없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본연의 그녀 자신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달라지는 건 없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수없이 많은 난관과 인생의 높은 산들을 마주했을 때 주저하거나 피하지 않고 당당히 오를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것이 나의 주어진 길이기에 나는 길을 계속 걸어 나갈 뿐인 것이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할 궁리부터 하고, 어렵거나 힘든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욕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미리 포기하면서 나는 집착 같은 건 안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속였다.” -p89


마치 내 이야기처럼 들린다. 매사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용기가 없어 도전이란 단어와는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 그랬던 그녀가 중년의 나이에 많은 것들에 도전하고 실패에도 주저하지 않고 용기 내어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는 모습은 일상에 안주해 있던 나에게도 자극제가 되어 준다. 그녀처럼 해외여행을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삶의 반경에서 조금은 벗어나 새로움을 접하고 삶의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고 때론 인생 역전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TV 프로그램 삼시 세끼에서 스페인 하숙이란 이름으로 스페인에서 순례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운영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알베르게’라고 부르는데 산티아고 길을 트레킹하며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시각적인 정보들이 먼저 인식 되서 그런지 저자가 소개하는 곳들이 마치 그곳을 연상시켜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 했다.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다.” 영화 <사티아고 가는 길>에서 아들의 대사였다고 하는데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여행지와 관련된 책과 영화도 소개되어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고 가보고 싶은 곳은 ‘쾨니히스제’ 호수다.

알프스의 산속 높은 곳에 있는 호수로 그 맑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청정하고 황홀함까지 느낄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니.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있어 숨은 보물을 찾아낸 기쁨과도 같았을 것 같다. 여행 에세이에서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감이나 잠시 잠깐의 일탈을 꿈꾸는 시간만으로도 사람들은 힐링을 느끼곤 한다. 멋진 풍경 사진만 봐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상쾌함도 느낄 수 있다. 젊은 여행자들과는 다른 중년 여성의 시선으로 본 세상과 느낌들은 사뭇 진지하고 농익은 듯 익숙한 여행지의 모습도 다르게 비춰진다. 자극적이고 환상적인 여행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담아낸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코로나 확산으로 세계가 비상사태로 돌입했고 해외여행, 심지어 국내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행에세이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상은 저절로 펼쳐져서 처음부터 이러하고, 시간은 땅 위에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초()나라 시원기(始原記)의 첫머리에 적혀 있다.”


시작과 끝이 하나임에 틀림없고 소설의 첫 머리가 곧 이 이야기의 끝을 말하기도 한다.

간결하면서 무게감 있는 표현들로 문장들을 채우는 김훈 작가님의 새로운 소설이 나왔다.

역사소설에서 느꼈던 그 진지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이 판타지적 요소들과 만나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완성하였다. 사실 상상을 기반으로 한 소설의 시간과 공간을 따지기는 무의미하지만 이 소설은 始原의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이 된다. 인간이 말의 등에 처음 올라탄 무렵으로 그려지나 신화적 요소와 상상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마치 태초의 인간의 모습이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하(奈河)라는 강이 대륙을 초()와 단()으로 나누고 있고 각 부족의 생활풍습, 문화, 성격이 전혀 달라 같은 땅위에 사는 인간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체처럼 살아간다.

()는 유목 집단으로 문명을 멀리하고 야생적인 삶을 추구하는 반면 단()은 문자를 숭상하며 건물을 세워 정착하는 삶을 산다. 이들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고 그 끝의 죽음과 침묵은 필연으로 다가온다. 인간 이야기의 중심에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말이 중심인지 사람이 중심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초승달을 향해 밤새도록 달리던 신월마(新月馬)혈통의 토하(吐霞)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飛血馬 )혈통의 야백(夜白)이 주연이라면 총총(驄驄)과 청적(靑赤), 유생(流生)은 그것들의 조연이다.


자유롭고 바람과 같은 삶을 살던 야백(夜白)과 토하(吐霞)에게 인간은 재갈을 물리고 그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에게 부림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저항한다. 인간의 욕망은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소멸시키고 그들 자신 또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짐승의 눈에 비춰진 야만적인 인간의 삶은 이해를 받을 수 없고 그것들에겐 중요치 않다.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며 판타지가 아닌 리얼리티즘이 담겨있는 것 같다. ()와 단()의 전쟁은 둘 중 하나만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존재의 이유가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 듯 서로를 파멸로 이끌고 간다.


목의 차남이고 표의 동생인 연()과 추의 딸 요()는 무당을 통해 인간의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를 잇고 죽은 뒤에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샤머니즘적 성격이 강하고 원시신앙이 띄고 있는 자연물이나 자연현상 등이 무심한 듯 세심한 문체를 통해 주변의 풀꽃 하나까지도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름답게만 표현하기는 쉽다. 온갖 수려한 표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러나 작가의 특유의 담백하고 진지한 문체는 그대로 살리며 이야기의 구성과 흐름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나가고 작중 인물들의 감정은 크게 흔들림과 동요가 없이 무심한 듯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의 진정성과 그에 담긴 의미들이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확실치 않고 시원기단사가 전하는 것 또한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말미에 붙이며 모호함과 혼돈을 자아낸다.


작가 김훈은 건강 문제로 입원한 상태에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깝기도 했고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작가의 오랜 팬으로 그가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는지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렸다. 소설은 소설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몸소 체험하고 느껴야 만이 살아있는 문장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은 더욱 치밀하고 탄탄하며 아름다운 것 같다. 십여 년 전 미국 인디언 마을에서 마주했던 수백 마리의 말무리에서 받았던 영감을 이번 소설에서 적극 투영했다고 한다. 말들의 습성과 행동들의 묘사가 아주 디테일하게 되어있어 사실감을 더해준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만 지금까지 접했던 소설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판타지 소설이라 하면 화려한 배경의 아름다움을 그리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독특한 소재들을 골라 잘 짜 맞추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김훈 작가의 판타지 소설은 기존의 접근법으로 다가가면 진정한 감동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잔잔한 물이 흐르듯 천천히 그리고 유연하게 다가가길 바란다. 판타지라면 젊은 작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틀을 깨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김훈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