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줄에 무사 모양을 본뜬 연 하나가 걸려 나부끼다 봄철 흙먼지 바람에 휘날려 갈기갈기 찢어져 아득바득 매달려 좀처럼 떨어지지도 않고 있는 모습이 소설 속 요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로 주인공 '나'가 '요조'라는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구조다. 액자식이지만 1인칭시점으로 이야기는 흘러가기에 인물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그대로 소설로 옮겨 놓은듯하다. 현실과 공상의 선을 넘나들며 인간의 삶에 대한 허구와 진실에 대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 글의 구성은 '나'라는 인물이 소설을 시작하는 서문과 끝맺음하는 후기를 썼고, '요조'라는 인물이 쓴 수기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괴기하고 불가사의한 미모의 청년 사진 세 장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진에 묘사 된 청년의 모습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게 음울하고 묘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다. 마치 에곤 쉴레의 자화상처럼 일그러지 모습의 메마르고 병색이 짙은 불안에 휩싸인 사람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과 에곤 쉴레의 그림이 잘 어울리는 것 또한 우연인 아닐 것이다.
첫번째 수기는 요조의 어릴 때를 회고한다.
유복한 가정환경과 우수한 두뇌를 가졌지만 인간의 일반적인 감각과 본능적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고 사물에 대한 인식 또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남들과 대화하는 것도 어렵고 일상생활을 적응해나가는것도 힘들어지자 그가 세상과 사람들의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생각해낸 묘안은 바로 광대짓이다. 농담과 유머로 사람들 앞에 나서면 모두가 좋아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어 타인의로부터 느꼈던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요조는 내가 아닌 나, 가면을 쓴 채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누구에게는 무척 쉬운일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 어떤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 도 있다. 세상이 바라는 내 모습과 자신의 실체가 서로 부합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 감추는게 더 쉽고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연기하는게 때론 편할 때가 있다. 요조의 광대짓은 그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자 유일한 수단이였다.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틀리지 않음을 일찍 알았더라면, 혹은 주위의 누군가 그에게 조언을 해줬더라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두 번째 수기는 더 나을것도 나빠질 것도 없어 보이는 광대짓의 연속인 중학교 생활을 하며 '다케이치'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꾸며낸 모습으로 살아가던 요조에게 처음으로 그의 짓이 일부러 하는 행동인것을 간파당하게 된다. 이때의 충격은 요조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민낯을 다 까벌려진 기분이였기 때문이다. 요조는 다케이치와 친구사이를 유지하며 지내게 되는데 그로부터 들었던 두 가지 말이 그의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여자들이 너한테 다 반하게 될거야."
"넌 화가가 될거야."
요조의 삶에서 여자는 아주 중요하다.
잘생긴 얼굴때문에 어디를 가도 여자들의 환심을 샀지만 복잡한 여자의 마음을 알기란 요조로서는 알길이 없다.
그러다 도쿄 고등학교에 진학해 미술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호리키'와 유일한 인간관계를 맺고 교류했던 친구부류에 속한다. 여섯살 연상이였지만 허물없이 대했고 그로부터 술, 담배, 매춘부, 전당포, 좌익 사상을 알게 된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그는 지금까지 거짓된 세상과의 삶에서 조금의 해방감과 자유를 느낀다. 어둠속에서 숨기고 싶은 것들을 잘 숨길 수 있듯 어둠의 손길에 그는 빨려들어가게 된다.
모자를 것 없이 다 가진 잘생긴 청년이 어쩌다 이런 건달 같은 음침한 인간과 어울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호리키의 물주가 되어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털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고 매일 돈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술집 종업원이였던 '쓰네코'라는 여자와 알게되고 동반자살을 시도하지만 쓰네코만 죽고 요조는 살아남게 된다.
(실재 다자이 오사무가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여자의 이름은 '시메코'였다.)
그러다 사건을 취조하던 검사에게 그의 광대짓을 또 한번 들키게 된다. 다케이치 이후로 처음이였다.
완벽하게 남을 속이는데 자신했던 그에게 다시 한 번 큰 충격이다.
세번째 수기는 동반자살 미수 사건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퇴학 당한 후 조악한 잡지사 만화가로 일하며 넙치라는 인물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넙치의 설교를 듣기 싫어 집을 나와 오갈곳이 없어 호리키네 갔다가 집에서는 생판 모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요조의 가면과 호리키의 그것이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호리키네 집에서 한번 봤던 인연으로 잡지사에 근무하는 '시즈코'라는 여성과 동거를 시작한다. 5살난 딸과 아파트에서 둘만 살다가 요조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변변치 못한 그림 실력으로 겨우 만화를 그리며 술값을 버는정도다. 갈수록 술을 많이 마시게 되어 벌이 보다 더 많은 돈을 술값으로 쓰게 되고 시즈코의 세간살이들을 하나, 둘 가져다 팔아 술값으로 쓰기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앞에서 딸 시게코와 시즈코의 대화를 들으며 행복한 모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 떠나게 된다. 행복이란 것은 자신의 인생에 있을 수 없다는 듯 거북함을 느끼는 요조의 마음이 참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 뒤로 교바시 스탠드바 마담네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담뱃집 처녀와 농담조로 말했던 결혼을 진짜로 하게 되면서 요조의 첫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방탕한 생활의 연속이였다. 하루는 집에서 호리키와 술을 마시다 요시코가 상인에게 능욕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요조는 아무런 제지나 행동을 나서지 않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다. 분노나 혐오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느끼면서. 혼자서 소주를 마시며 하염없이 울고 있는 요조. 사람을 잘 믿는 요시코를 알았기에 신뢰가 죄가 되는지 신께 묻습니다. 요시코의 정절이 더렵혀진것 보다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에 큰 충젹을 받은 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