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의 단편집<그저 좋은 사람> 중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땅>을 인상 깊게 읽어서 서둘러 그녀의 다른 작품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주에 그녀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주문하고 주말동안 읽었는데, 연달아 같은 주제에다 같은 포맷의 작품을 읽다보니 서서히 그녀의 이야기에 질리기 시작했고,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너무나 식상하고 따분해 억지로 읽어내려가며, 아.마.도 줌파 라히리의 작품이 계속 이런 포맷을 유지하고 있다면, 더 이상 읽을 일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땅에서 이민세대의 갈등과 정체성의 문제는 줌파 라히리 아니더라도 많은 이민 2세대의 작가들이 다루는 문학적 주제이고, 자신들의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더 이상 신선한 문학적 주제도 접근법도 아니다. 한 두번 울궈먹었으면 이만 됐다. 작가 자신이 계속 다른 작품에서도 자신이 속한 문화를 이야기 한다면 좀 더 신선하고 색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한번의 공감이 다른 작품에서도 천번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과 착각에 불과하다. 줌파 라히리가 독자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자신의 이야기에 어울릴만한 다른 쟝르에도 두리번 거려야하지 않을까.  

며칠 전에 읽은 온다 리쿠의 <도미노>를 읽었다. 온다 리쿠답게 책은 손에서 떠날 줄 몰랐지만 이야기 자체로 보자면 그저 그랬다. 솔직히 후졌다,쪽에 가깝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뭔가 빠진 듯 치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소설 제목 도미노처럼 수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 줄줄히 교차편집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 내용(그게 캐릭터든 주제든간에)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이야기 형식에 중점을 둔 글쓰기의 실험성이 돋보였다고나 할까.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상황이 교차 편집 스탈로 이야기가 시작된 초반 설정(도미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모습을 연상케했고)은 후반부 사건이 터지면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자리에 모이는데, 이 장면에 도미노가 서로 터치하면서 쓰러지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기발한 발상은 아니더라도, 작가가 작심하고 쓴 글쓰기의 유희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온다 리쿠의 작품은 질적 편차가 심해 불만이다라는 식으로 썼고, 이 작품 또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후진 쪽에 속하는 작품인데......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약 작가라면, 나는 줌파 라히리처럼 같은 주제, 동일한 포맷의 글쓰기보다는 후졌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온다 리쿠같은 다양한 쟝르를 오가며 <도미노>같은 작품도 써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 장르에 매몰되기 보다는 SF, 공포, 미스터리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자신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글쟁이로서 한번 쯤 시도 해보고 싶은 욕망 아니던가. 작가의 오랜 작품 활동 시기를 감안할 때, 한 쟝르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이것저것 다양한 쟝르를 실험해가면 자신의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결과만을 가져온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다작은 작품의 질적 편차가 심하다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자신의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가 자신의 세계관과 어울리는 쟝르를 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확고한 쟝르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자신의 수 많은 작품에 카멜레온 같은 다양한 색을 입히고 변신을 해가며 글쓰기의 재미를 득템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마법이 가능한 상상력의 세계에 한가지 색만 고집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하며 작품마다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면 독자로서 그 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이런 말도 하지 않았던가. 작가의 변신은 무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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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21 11:08   좋아요 0 | URL
온다리쿠는 글의 편차가 좀 심한거 같아요..
아니면 내 취향의 편차가 심하거나.. ㅎ
이건 괜찮다 싶다가도 저건 좀 너무 슬슬 대충 쓴거 같기도 하고 ㅋㄷㅋㄷ

1905 2010-01-21 15:3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도 온다리쿠의 작품의 편차가 심해 뭐라뭐라 했거든요.
근데 우스운 것은 그런 질적편차를 확연하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어떤 작품이 후진 것인지를 가장 잘 인지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온다에게 감사하기로 했어요.
온다나 미미 그리고 게이고를 보면, 다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에 와서 들어요.^^

다락방 2010-01-22 16:11   좋아요 0 | URL
아, 그 ... 뭐죠? 온다 리쿠의 작품중에 밤에 다같이 걷는거..무슨 피크닉인데...아, 생각이 너무 안난다. 여튼 저는 그 작품이 참 좋아서 말이죠, 그래서 온다 리쿠를 좋아해야지, 했다가 다른 작품들 읽고는 실망만 했어요. 몇개 읽어봤는데 저는 편차가 심하다는 느낌 보다는 뭐랄까...환상만 가지고 글쓰기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저 위에 기억의집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처럼 '후졌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신간이 나오든 말든 거들떠도 안보게 되고 말이죠. 저는 온다 리쿠가 소설속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것도 정말 사람 나름인게 저희 회사동료는 온다 리쿠 광팬이에요. 작품 족족 다 사고 어떤 책은 두번씩 읽고 심지어 제가 참 허접하다고 생각했던 [라이온 하트]는 너무 좋아서 두고두고 또 읽고는 한대요. 그러니까 작가의 작품의 편차, 개인 취향의 편차, 사람 나름의 편차, 뭐 그런게 동시에 다 존재하는 거겠죠.

좀파 라히리는 아직 [이름 뒤에 숨은 사랑]만 읽어서 그런지 호감가는 작가이고, [그저 좋은 사람]만 준비해두고 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내내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좀 질릴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좀파 라히리의 글이 좋기는 하거든요. 그러니까 기억의집님은 좀파 라히리의 글은 아예 끊지는 마시고, 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다시 읽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엔 말이죠, 언젠가 문득 좀파 라히리의 글이 읽고싶다, 할 때가 올 것 같단 말이죠. 기억의집님께도. 그런 이야기, 그런 문체, 그런 분위기를 오늘은 읽고 싶다, 하는 그런때요.

1905 2010-01-24 00:08   좋아요 0 | URL
온다 리쿠하면 전 사실 주원님이라는 리뷰어가 떠 올라요. 언제부터인지 온다를 읽으면 꼭 주원님의 리뷰를 읽는 습관이 있는데..제가 주원님의 글을 좋아해서 그런지 온다 리쿠의 작품 편차가 커도 신작이 나올 때마다 미련이 남네요. 그래서 대체로 구입해서 읽는 것 같아요.그런데 요즘 주원님의 글이 안 올라와서 좀 서운해요^^ 전 온다보다 미미의 작품이 휠씬 더 좋은데.... 주원님 때문에 읽는 것 같다는. 하하핫!

라히리의 작품은 아무래도 그래야겠어요. 이 사람 영어책도 샀는데... 전 길들여지지 않는 땅이 워낙 좋아서 계속 주시할 거 같기는 해요. 하지만 자신의 글쓰기도 한번 변신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가였어요. 작품마다 호흡이나 색깔이 너무 똑같아요. 쌍둥이처럼^^

2010-04-2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벤트] 2010년 새해 독서계획을 알려주세요. 적립금 100만원을 쏩니다!

왜 전 신간만 보면 사고 싶어 못 견디는 것일까요? 저도 제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정말, 진짜. 특히나 일본소설이 신간으로 뜨면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강념. 일본은 소설도 엔터테이먼트라서 그런지 그렇게 진지하게 삶을 둘러보거나 내면을 성찰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잖아요. 그냥 재미지, 그렇다고 해도 읽고 나면 뭔가 묵직한 무엇인가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아무리 작가가 엔터테이먼트가 목표이긴 하지만 완전한 엔터테이먼트의 요소는 삼류 소설의 주된 구성이니깐요. 그리고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에 어느 정도 재미 풀러스 문학적인 요소도 존재하게금 쓸 수 밖에 없겠죠. 그런데 저한테 문제는 그 재미나다는 일본소설도 사다 놓고 쌓여있다는 사실. 읽어야지 하면서 벌써 그게 몇 년이 넘도록 읽지 않고 있는 소설이 책장에 그득하다는 사실. 그 책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지금 산다면 할인이라도 많이 받았을텐데..하고 말이에요.  

전 이 아줌씨으 마크스의 산도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안 읽고 있다는 흑흑. 남들은 저 작품 왜 나오지 않냐며 난리더만. 가지고 있는 나는 뭔지, 참. 그래서 이번참에 가오루 여사의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으려고 작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어느 출판사에서 그녀의 대표작 <석양에 빛나는 감>을 출간한다지 뭐에요. 이걸 어째요. 저 분명히 그 책도 살 거 같아요. 이렇게 안 읽고 쌓여있는데 말이죠. 아 흑! 마우스의 오른쪽을 망가뜨려야 할까봐요^^  

전 사실 기리노 나쓰오 작품 읽기가 무서워요. 그런데도 사요. 리뷰어들의 글을 보면 사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사긴해요. 그녀의 <아웃>이나 <그로테스크>그리고 <아임소리마마>를 읽고 나서 너무나 고통스러 가슴이 답답해 미칠 거 같았거든요 전 책읽고 고통 받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그녀의 소설들은 며칠 동안 절 괴롭히더라구요. 오죽하면 전 그녀가 글쓰기의 매저키스트인 줄 알았다니깐요.  <다크>는 요 며칠전에 읽었어요. 그렇게 기분나쁜 여탐정 처음 봤다는. 고통 받을 거 알면서도 그녀의 몇 작품 읽고 끝내려고요. 그녀는 왜 이야기가 막장으로 치닫는 것일까요? 기분 좋은 어둠이 아니에요. 결코. 

작년에 그녀의 <외딴집>읽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적이 있기에 이번에 그녀의 미미월드의 2막. 시대물에 한번 도전해 보려구요. 전 시대물 싫어해서 그 유명하다는 도쿠가스가 뭔가도 아직 안 읽었어요. 그리고 남의 나라 시대물 읽기도 싫고. 그래서 안 읽었는데 그녀가 에도 시대를 보는 따스한 시선이 필요해졌어요. 에도 시대 서민들은 정말 없이 살았다고 하네요. 다다미가 서민들의 방에 깐지가 채 백년이 안된다고 하고 흙방에서 가운데 불만 펴 놓고 살았다고 하네요. 그런 생활환경의 악조건속에도 그녀가 그려낸 에도 시대는 눈물 겹도록 따스했어요. 역사 고증이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외딴집>에서는 일반인들의 생활상은 잘 나오지 않죠. 이 작품들에서는 나오려나, 기대하면서 읽을거에요.  

모리히코의 책은 독특하다는 이야기기 있어서 사다 만 놓았어요. 언제 읽을지 몰라 타이밍을 재고 있죠. 어느 때가 좋을까, 따스한 봄이 좋을까, 후덥지근하면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여름이 좋을까, 낙엽지는 가을이 좋을끼,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좋을까. 하핫, 사시사철 다 가지고 있었는데 때를 다 놓쳤어요. 전 독특한 이야기도 좋지만 독특한 문체를 사용하는 작가의 글도 좋아해요. 어떤 식으로 글을 썼을까, 궁금해서 모으다 보니 한권이 두권되고 두권이 세권되고.... 지금도 몇 권 더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세권으로 맞추려다보니... 올해는 모리히코의 그만의 문장의 매력에 빠져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흠. 저도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나만의 문장을 만들 아이디어가 떠오를까요.  

전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재미나게 읽었어요. 아마 달리기로 치자면 단번에 100미터 달리기였다고 해야할까요. 워낙 재밌게 읽어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몇 권 읽었는데 그것들도 괜찮아서 여전히 그녀의 신간이 나오면 관심 갖게 되고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작품들은 때를 놓여 못 읽어는데, 상당히 그 전의 책들하고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요. 차분하다고 해야하나, 정적이 감도는 책들이라고 해야하나. 원래 일본작품은 몇 시간만 읽으면 다 읽어치울 수 있는데, 미우라 시온의 이 작품들은 조용함이 싫어서 계속 미적거리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올해는 그녀의 정적에 갇혀 보려고요. 살그머니 말입니다. 

전 스포츠는 싫어하는데, 스포츠 정신을 담은 소설은 좋아해요. <배터리>도 청소년들이 읽기 좋은
성장소설이어서 추천하고 싶어요. 근데 가격이 좀 쎄죠. 전권 다 사려면. <기담>도 앉아서 한 두세시간이면 금방 끝날 책을 아직도 읽지 않고 질질 끌고 있다니..아쓰코 여사가 성낼 거에요. 근데 이번에 아쓰코 여사가 책을 냈는데 이게 너무 궁금합니다. <도깨비를 빨은 우리 엄마>라는 유명한 그림책 아시죠? 그 사토 마키코 여사와 함께 이번에 작품을 냈지 뭡니까? 아, 끝없이 나오는 신간, 이 이제 책 더이상 안 사겠어, 맘에 불을 지르는군요. 사토 마키코 여사의 그림때문이라도 사서 읽고 싶어요. 아니 읽을테야요. 어떤 역경이 있어도. 하핫! 

그외 읽고 처리해야 할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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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말동안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을 읽어 내려가다가 문맥에 맞지 않는 문장을 발견했다. 원저자의 실수인지, 번역가의 실수인지 아니면 인쇄상의 실수인지, 아마 인쇄가 잘 못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펠리시아는 아들이 몇살인지 물었고, 그는 다시 서투르게 지갑에서 사진을 꺼냈다. "메건이 갖고 있는 사진이 더 나아요. 그러니까 요즘 찍은 사진이 더 있어요. 하지만 호텔에 두고 왔대요(137p)."   

<머물지 않는 방>이라는 이 단편은 인도인 아밋과 미국인 메건이 아밋의 옛날 친구 팸의 결혼식에 가 피로연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펠리시아라는 여자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인도인 아밋는 부모님이 정해준 인도인 여자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미국인 메건을 선택함으로써 집안의 축복도, 결혼식도 없었으며 그들 사이에는 딸 둘이 있을 뿐이다. 저 지문의 대화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펠리리사라는 여자가 아밋의 딸들을 나이를 묻는, 그러니깐 아이들이 몇살이에요? 라고 물어야할 것을, 이자를 빼먹고 아들이 몇살인지 물은, 인쇄할 때 표기된 것이리라. 혹시나 싶어 원작을 보고 싶었다만,  

나의 영어공부 방식은 좀 촌스러운데, 주로 나는 직감적으로 원서가 괜찮을 것 같은 작품은 원서와 함께 번역본도 같이 사서 번역본을 읽고 원서를 읽는다. 이 방식이 영어문장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혹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인데, 이러면 영어가 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되겠지만 내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글이라는 게 일단 많이 접해야 다른 글도 이해할 수 있는 체계이기때문에 영어문장을 많이 접하면 접할 수록 다른 스탈의 영어문장을 읽어내기가 쉬웠다. 영어 쓸 일이 한국땅에서 거의 없으므로 그나마 영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어원서를 읽은 것인데, 이게 익숙한 내 나라 언어가 아니라서 손에 쉽게 잡혀지지가 않는다. 원서를 읽을 때 전문가들은 모르는 단어는 넘어가라고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전체적인 이미지가 잡혀져도 세세한 부분은 놓치기 쉬워 원서를 읽은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번역서를 읽고 원서를 읽는 방법. 일단 글과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잡혀 있어서 그런지 사전 없이도 원서 읽어 내려가는 데 무리가 없다. 게다가 두 텍스트들을 왕래하다보면,  한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번역가의 문학성도 같이 번역되는 것이기때문에 원작자와 번역가의 문학성의 근접과, 차이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번역문장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여하튼 이 작품도 원작과 번역서를 b님께 tt하면서 다 사들여서 원작을 찾아 읽어보려고 했는데, 몇 달전에 사 놓고 쳐 박아 놨더니 원작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 탈자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연 이틀을 온 집안의 책들을 다 뒤집고 엎어봐도 찾을 수 없었다는. 아마존 들어가 대강 미리보기로 봤는데 son자 찾아 검색, 저런 문장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탈자가 아닐까나 싶다.   

2. 이 책을 읽고 유부만두님께 책이 너무 괜찮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더니, 만두님이 걸레 들고 창 닦고 있는 여자가 칼을 들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그 말 듣고 나니  히치콕의 사이코 목욕씬이 연상되었다는. 만두님 덕에 표지를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한번 더 표지를 들여다보다가 겉표지의 이미지와 책내용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표지의 표현방식은 누가 뭐라도 상당히 매력적이라 할 수 있는데, 줌파 라히리는 이 작품의 단편에서 미국내의 인도인들이 겪는 세대간의 갈등, 아니 어떤 단편에는 갈등이라기보다는 이젠 어느 정도 부모세대가 미국스탈을 받아들이는 부분도 포착,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는 원서의 표지가 라히리가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더 어울리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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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15 10:5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들고 있는게 칼인줄 알았다는 ㅎㅎㅎ

1905 2010-01-15 12:35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전 이 책 받아보고 전체적인 이미지가 호퍼 비슷하게 정적이어서 호감이 갔었거든요. 햇빛도 풍요롭구나 싶었고. 전 실물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칼로는 안 보였어요^^

2010-01-15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6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6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1-15 23:49   좋아요 0 | URL
아~ 전 이책 사무실 책상에 쌓아두기만 하고 있는데 다들 이렇게 좋다고들 하시니 이를 어째요. 전 정말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기억의집님이 이렇게 칭찬하시니 지금 읽는 책을 끝내면 이걸 먼저 집어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저 정말 힘들어요. 흑흑 ㅠㅠ

1905 2010-01-16 02:06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길들여지지 않은 땅, 정말 좋더라구요. 전 요즘 가족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제가 원하는 말들을 많이 쏟아냈어요. 이 책 하루만 잡으면 금새 읽혀요. 그래도 제가 다락방님 심정 잘 알지요.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이 보이고 저 책을 읽으면 이 책이 보이는....^^ 좋은 주말 되세요^^ 세수도 하지 말고 이도 닦지 않는 그런 편안한 주말!

2010-01-26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7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1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미국의 좌파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소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 달리는 기차 위에는 중립은 없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사람은 충분히 기득권적인 백인의 삶을 누릴 수 있으면서도 흑인과 함께 인종차별에 대해 맞서 싸우며 소수 인종의 권리를 획득하려고 하고, 베트남 전쟁을 야기한 권력자와 싸우면서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수 많은 백인들에게 잘 못 표를 던졌다고 몰아부치고, 비리의 대학 행정체계와 싸우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백인으로서 그 당시 50,60년대에 누릴 수 있었던 풍요로웠던 백인 중산층의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으면서도 그는 그렇게도 불편한 삶을 껴안으려고 했을까? 왜 그는 사선의 경계에서 싸우는 삶을 선택했을까?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절대 다수의 백인들이 그의 행동하는 삶이 불편하다며, 자신들의 기득권적인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그는 묵묵히 혼자서 아니 몇 안 되는 동지와 함께 길을 만들었다. 그가 투쟁의 경계에 섰을 때 그에게 등 돌렸을 다른 백인과의 불화, 그리고 그 불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하는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가 걸어온 길이 비틀즈의 노래 제목처럼 얼마나 험난하고 구불구불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그 길이 당연할 길이라고 걸었고  거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가진 않은 길을 갔다. 나는 프레이리 호른의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책의 제목만큼 그의 행동하는 삶을 보여주는 짦막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가는 길이 옳다고 믿고 실천한다면, 세상은 그렇게 많은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실천과 믿음을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그는 보여주었다. 흔히 사람들은 상위 1%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나는 또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권력자가 아닌 몇몇 힘없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사명감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나는 알라딘 불매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불매가 옳다고 믿은 불매자들에게 돌팔매를, 뒤를 돌아 비수를 꽂지 않았다. 불매글들을 읽으면서 많은, 여러가지 갈래의 생각의 길을 보여준 그들을 뒤에서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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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8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데저트아일랜드디스크스라는 영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금주의 손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무인도에 들고 갈 음반 여덟 장을 고르라는 주문을 받았다. 내가 고른 음반 중에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마음을 깨끗히 하여"가 실린 것도 있었다. 진행자는 내가 종교인도 아니면서 왜 종교음악을 선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은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캐시와 히스클리프가 실존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폭풍의 언덕>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언급해야 라 요점이 하나 더 있다. 가령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나 라파엘의 <성수태고지>벽화가 탄생한 공로를 종교에 돌릴 때마다 그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생걔를 유지해야하며 그들은 자신이 소속된 곳으로부터 들어 온 작품 의뢰를 받아들일 것이다. 내게는 라파엘과 미켈란젤로가 기독교인어었음을 의심할 이유가 전형 없다. 그 시대에는 그 이외의 대안이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지엽적인 사항일 뿐이다. 교회가 예술의 주된 후원자가 된 것은 엄청난 부 덕분이었다(137p)


 
미유베 미유키의 <외딴집>을 읽었을 때, 일본은 정말이지 잡신도 많군(웃으며~), 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미가 그리는 에도 시대의 신화 프로젝트을 통해, 일본의 잡신이 시대 권력과 어떻게 융합되어 나약한 서민을 통치할 수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한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흥미진지하게 읽었다 (역시 미미여사 쵝오에요. 정말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여사임^^).    

그녀의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여사 또한 잡신의 존재를 믿을까,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녀은 잡신을 숭배하고 신년 초에 신사에 가서 절을 올릴까하는. 이런 작품을 낼 수 있었던 종교적인 기반이 그녀의 내부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신은 망상이라는 도킨스를 숭배하는 나로서는 미미가 그려내는 잡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신뢰를 두지 않지만, 그녀가 이 책에서 잡신을 통해 그려낸 정치 권력의 역학관계는 설득력 있는 놀라운 상상력이었다 점에선 그녀의 역량을 인정한다.  
 
한 일이년 자연과학책을 읽으면서 소설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도 안돼! 뭐 이런 억지스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소설적 상상은 말도 안돼! 이러면서 책을 읽었으니 그게 재밌을리가 없다. 그래서 한동안 소설을 구입했지만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 미미여사의 <외딴집>읽고 나서,

만약 내가 신을 부정하고 신과 관련된 모든 책, 음악, 미술같은 매체들을 상대하지 않겠어!라고 작정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작품을 읽고 듣고 봐야하는 것일까? 상당히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데, 20 세기 이후의 sf소설 아니면 자연과학책이나 쇤베르크같은 현대 음악 아니면 현대 미술로 한정되어진다.  20세기 이전의 컨텐츠의 접근은 차단당하거나 거부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상상력이 뛰어난 이야기꾼의 입담을 무시해야하며 신에게 바치는 경건하고 장엄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포기해야 하면 미켈렌젤로의 시스티나 성당도 코웃음쳐야 한다.

아마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장 큰 획기적인 변화는 무신론일지도 모른다. 19세기 다윈의 진화이후, 사람들은 어쩌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문에서, 신은 단지 권력자가 民을 통치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통치방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선택하기 시작한 세기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신의 세계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 물리학적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 되었으면 점차 무신론은 전 유럽대륙을 휩쓸고 지나갔다. 
 
20세기만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기는 없었으며(닐 슈빈의 <내 안의 물고기> 읽으면서 든 생각은 수 억년의화석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이 수 천년을 살았어도 변화라는 것 없이 느리게 발전했구나, 하는), 신이 분열된 세기도 없었던 거 같다. 신을 믿는 것은 바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신의 존재여부는 완전 개인적인 문제이고,  21세기 이전 수천년 동안 우리가 신을 통해 생산해 낸 컨텐츠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단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수천년의 작품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깟, 작품들이라고 폄하할 생각도 없다. 신이라는 개념도 어차피 상상력의 부산물이고 그 부산물에서 기대, 작가들의 상상력을 보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고, 음악을 만들고, 그려내는 것뿐이니깐. 모든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자세 아닌가. 자, 이제부터 작가들이 지어 낸 상상력을 즐겨볼까나(쇼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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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rdo 2010-01-14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기억의집님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무신론이지만 종교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 모두를 부정하진 않거든요. 보거나, 듣고, 읽을 때 종교 여부를 떠나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좋달까요. 신을 믿지 않으면 즐기지도 말라는 논리는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마 그 많은 판타지 소설을 사람들이 실제라 믿고 즐기겠습니까.-_-; 그리고 저는 작가 루이스 캐럴이 목사라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좋아하는데요. 그나저나 외딴집 사놓고는 안읽고 있는데 막 읽고 싶어졌습니다;;
음. 알라딘 안 온 사이에 글을 많이 올리셨으니 다 읽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어요.;;

1905 2010-01-15 12:33   좋아요 0 | URL
아카도님, 오랜만이에요.^^
모든 상상력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게 아닌지 싶어요^^
외딴집 처음 3/1은 지루해서 침 질질 흘리며 잤는데 처음 파트 넘어가면 속도 무진장 붙더라구요. 재밌게 읽었어요. 미미는 저렇게 권력이 만들어가고 유지될 수 있는 시각을 만들어주는구나 싶었어요.
이번에 팀버튼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만들던데... 팀버튼식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급 당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