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의 단편집<그저 좋은 사람> 중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땅>을 인상 깊게 읽어서 서둘러 그녀의 다른 작품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주에 그녀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주문하고 주말동안 읽었는데, 연달아 같은 주제에다 같은 포맷의 작품을 읽다보니 서서히 그녀의 이야기에 질리기 시작했고,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너무나 식상하고 따분해 억지로 읽어내려가며, 아.마.도 줌파 라히리의 작품이 계속 이런 포맷을 유지하고 있다면, 더 이상 읽을 일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땅에서 이민세대의 갈등과 정체성의 문제는 줌파 라히리 아니더라도 많은 이민 2세대의 작가들이 다루는 문학적 주제이고, 자신들의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더 이상 신선한 문학적 주제도 접근법도 아니다. 한 두번 울궈먹었으면 이만 됐다. 작가 자신이 계속 다른 작품에서도 자신이 속한 문화를 이야기 한다면 좀 더 신선하고 색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한번의 공감이 다른 작품에서도 천번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과 착각에 불과하다. 줌파 라히리가 독자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자신의 이야기에 어울릴만한 다른 쟝르에도 두리번 거려야하지 않을까.  

며칠 전에 읽은 온다 리쿠의 <도미노>를 읽었다. 온다 리쿠답게 책은 손에서 떠날 줄 몰랐지만 이야기 자체로 보자면 그저 그랬다. 솔직히 후졌다,쪽에 가깝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뭔가 빠진 듯 치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소설 제목 도미노처럼 수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 줄줄히 교차편집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 내용(그게 캐릭터든 주제든간에)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이야기 형식에 중점을 둔 글쓰기의 실험성이 돋보였다고나 할까.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상황이 교차 편집 스탈로 이야기가 시작된 초반 설정(도미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모습을 연상케했고)은 후반부 사건이 터지면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자리에 모이는데, 이 장면에 도미노가 서로 터치하면서 쓰러지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기발한 발상은 아니더라도, 작가가 작심하고 쓴 글쓰기의 유희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온다 리쿠의 작품은 질적 편차가 심해 불만이다라는 식으로 썼고, 이 작품 또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후진 쪽에 속하는 작품인데......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약 작가라면, 나는 줌파 라히리처럼 같은 주제, 동일한 포맷의 글쓰기보다는 후졌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온다 리쿠같은 다양한 쟝르를 오가며 <도미노>같은 작품도 써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 장르에 매몰되기 보다는 SF, 공포, 미스터리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자신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글쟁이로서 한번 쯤 시도 해보고 싶은 욕망 아니던가. 작가의 오랜 작품 활동 시기를 감안할 때, 한 쟝르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이것저것 다양한 쟝르를 실험해가면 자신의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결과만을 가져온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다작은 작품의 질적 편차가 심하다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자신의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가 자신의 세계관과 어울리는 쟝르를 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확고한 쟝르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자신의 수 많은 작품에 카멜레온 같은 다양한 색을 입히고 변신을 해가며 글쓰기의 재미를 득템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마법이 가능한 상상력의 세계에 한가지 색만 고집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하며 작품마다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면 독자로서 그 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이런 말도 하지 않았던가. 작가의 변신은 무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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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21 11:08   좋아요 0 | URL
온다리쿠는 글의 편차가 좀 심한거 같아요..
아니면 내 취향의 편차가 심하거나.. ㅎ
이건 괜찮다 싶다가도 저건 좀 너무 슬슬 대충 쓴거 같기도 하고 ㅋㄷㅋㄷ

기억의집 2010-01-21 15:3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도 온다리쿠의 작품의 편차가 심해 뭐라뭐라 했거든요.
근데 우스운 것은 그런 질적편차를 확연하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어떤 작품이 후진 것인지를 가장 잘 인지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온다에게 감사하기로 했어요.
온다나 미미 그리고 게이고를 보면, 다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에 와서 들어요.^^

다락방 2010-01-22 16:11   좋아요 0 | URL
아, 그 ... 뭐죠? 온다 리쿠의 작품중에 밤에 다같이 걷는거..무슨 피크닉인데...아, 생각이 너무 안난다. 여튼 저는 그 작품이 참 좋아서 말이죠, 그래서 온다 리쿠를 좋아해야지, 했다가 다른 작품들 읽고는 실망만 했어요. 몇개 읽어봤는데 저는 편차가 심하다는 느낌 보다는 뭐랄까...환상만 가지고 글쓰기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저 위에 기억의집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처럼 '후졌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신간이 나오든 말든 거들떠도 안보게 되고 말이죠. 저는 온다 리쿠가 소설속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것도 정말 사람 나름인게 저희 회사동료는 온다 리쿠 광팬이에요. 작품 족족 다 사고 어떤 책은 두번씩 읽고 심지어 제가 참 허접하다고 생각했던 [라이온 하트]는 너무 좋아서 두고두고 또 읽고는 한대요. 그러니까 작가의 작품의 편차, 개인 취향의 편차, 사람 나름의 편차, 뭐 그런게 동시에 다 존재하는 거겠죠.

좀파 라히리는 아직 [이름 뒤에 숨은 사랑]만 읽어서 그런지 호감가는 작가이고, [그저 좋은 사람]만 준비해두고 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내내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좀 질릴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좀파 라히리의 글이 좋기는 하거든요. 그러니까 기억의집님은 좀파 라히리의 글은 아예 끊지는 마시고, 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다시 읽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엔 말이죠, 언젠가 문득 좀파 라히리의 글이 읽고싶다, 할 때가 올 것 같단 말이죠. 기억의집님께도. 그런 이야기, 그런 문체, 그런 분위기를 오늘은 읽고 싶다, 하는 그런때요.

기억의집 2010-01-24 00:08   좋아요 0 | URL
온다 리쿠하면 전 사실 주원님이라는 리뷰어가 떠 올라요. 언제부터인지 온다를 읽으면 꼭 주원님의 리뷰를 읽는 습관이 있는데..제가 주원님의 글을 좋아해서 그런지 온다 리쿠의 작품 편차가 커도 신작이 나올 때마다 미련이 남네요. 그래서 대체로 구입해서 읽는 것 같아요.그런데 요즘 주원님의 글이 안 올라와서 좀 서운해요^^ 전 온다보다 미미의 작품이 휠씬 더 좋은데.... 주원님 때문에 읽는 것 같다는. 하하핫!

라히리의 작품은 아무래도 그래야겠어요. 이 사람 영어책도 샀는데... 전 길들여지지 않는 땅이 워낙 좋아서 계속 주시할 거 같기는 해요. 하지만 자신의 글쓰기도 한번 변신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가였어요. 작품마다 호흡이나 색깔이 너무 똑같아요. 쌍둥이처럼^^

2010-04-2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