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데저트아일랜드디스크스라는 영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금주의 손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무인도에 들고 갈 음반 여덟 장을 고르라는 주문을 받았다. 내가 고른 음반 중에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마음을 깨끗히 하여"가 실린 것도 있었다. 진행자는 내가 종교인도 아니면서 왜 종교음악을 선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은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캐시와 히스클리프가 실존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폭풍의 언덕>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언급해야 라 요점이 하나 더 있다. 가령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나 라파엘의 <성수태고지>벽화가 탄생한 공로를 종교에 돌릴 때마다 그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생걔를 유지해야하며 그들은 자신이 소속된 곳으로부터 들어 온 작품 의뢰를 받아들일 것이다. 내게는 라파엘과 미켈란젤로가 기독교인어었음을 의심할 이유가 전형 없다. 그 시대에는 그 이외의 대안이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지엽적인 사항일 뿐이다. 교회가 예술의 주된 후원자가 된 것은 엄청난 부 덕분이었다(137p)


 
미유베 미유키의 <외딴집>을 읽었을 때, 일본은 정말이지 잡신도 많군(웃으며~), 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미가 그리는 에도 시대의 신화 프로젝트을 통해, 일본의 잡신이 시대 권력과 어떻게 융합되어 나약한 서민을 통치할 수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한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흥미진지하게 읽었다 (역시 미미여사 쵝오에요. 정말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여사임^^).    

그녀의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여사 또한 잡신의 존재를 믿을까,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녀은 잡신을 숭배하고 신년 초에 신사에 가서 절을 올릴까하는. 이런 작품을 낼 수 있었던 종교적인 기반이 그녀의 내부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신은 망상이라는 도킨스를 숭배하는 나로서는 미미가 그려내는 잡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신뢰를 두지 않지만, 그녀가 이 책에서 잡신을 통해 그려낸 정치 권력의 역학관계는 설득력 있는 놀라운 상상력이었다 점에선 그녀의 역량을 인정한다.  
 
한 일이년 자연과학책을 읽으면서 소설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도 안돼! 뭐 이런 억지스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소설적 상상은 말도 안돼! 이러면서 책을 읽었으니 그게 재밌을리가 없다. 그래서 한동안 소설을 구입했지만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 미미여사의 <외딴집>읽고 나서,

만약 내가 신을 부정하고 신과 관련된 모든 책, 음악, 미술같은 매체들을 상대하지 않겠어!라고 작정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작품을 읽고 듣고 봐야하는 것일까? 상당히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데, 20 세기 이후의 sf소설 아니면 자연과학책이나 쇤베르크같은 현대 음악 아니면 현대 미술로 한정되어진다.  20세기 이전의 컨텐츠의 접근은 차단당하거나 거부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상상력이 뛰어난 이야기꾼의 입담을 무시해야하며 신에게 바치는 경건하고 장엄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포기해야 하면 미켈렌젤로의 시스티나 성당도 코웃음쳐야 한다.

아마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장 큰 획기적인 변화는 무신론일지도 모른다. 19세기 다윈의 진화이후, 사람들은 어쩌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문에서, 신은 단지 권력자가 民을 통치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통치방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선택하기 시작한 세기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신의 세계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 물리학적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 되었으면 점차 무신론은 전 유럽대륙을 휩쓸고 지나갔다. 
 
20세기만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기는 없었으며(닐 슈빈의 <내 안의 물고기> 읽으면서 든 생각은 수 억년의화석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이 수 천년을 살았어도 변화라는 것 없이 느리게 발전했구나, 하는), 신이 분열된 세기도 없었던 거 같다. 신을 믿는 것은 바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신의 존재여부는 완전 개인적인 문제이고,  21세기 이전 수천년 동안 우리가 신을 통해 생산해 낸 컨텐츠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단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수천년의 작품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깟, 작품들이라고 폄하할 생각도 없다. 신이라는 개념도 어차피 상상력의 부산물이고 그 부산물에서 기대, 작가들의 상상력을 보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고, 음악을 만들고, 그려내는 것뿐이니깐. 모든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자세 아닌가. 자, 이제부터 작가들이 지어 낸 상상력을 즐겨볼까나(쇼타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kardo 2010-01-14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기억의집님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무신론이지만 종교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 모두를 부정하진 않거든요. 보거나, 듣고, 읽을 때 종교 여부를 떠나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좋달까요. 신을 믿지 않으면 즐기지도 말라는 논리는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마 그 많은 판타지 소설을 사람들이 실제라 믿고 즐기겠습니까.-_-; 그리고 저는 작가 루이스 캐럴이 목사라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좋아하는데요. 그나저나 외딴집 사놓고는 안읽고 있는데 막 읽고 싶어졌습니다;;
음. 알라딘 안 온 사이에 글을 많이 올리셨으니 다 읽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어요.;;

기억의집 2010-01-15 12:33   좋아요 0 | URL
아카도님, 오랜만이에요.^^
모든 상상력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게 아닌지 싶어요^^
외딴집 처음 3/1은 지루해서 침 질질 흘리며 잤는데 처음 파트 넘어가면 속도 무진장 붙더라구요. 재밌게 읽었어요. 미미는 저렇게 권력이 만들어가고 유지될 수 있는 시각을 만들어주는구나 싶었어요.
이번에 팀버튼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만들던데... 팀버튼식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급 당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