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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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가 제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한 유행한다고 해도 내 경우 미드보기는 OCN이나 언스타일같은 TV에서 방영해주는 드라마 전부였다. 굳히 토토 브라우저에서 돈 내가면서까지 보지 않았었는데, 작년 가을에, 형제끼리 모여 이야기하다가 남동생이 Cold Case라는 드라마 아냐고 물어보길래, 언스타일에서 해주는 거 몇 편 봤는데, 재밌기는 하더라. 근데 왜 물어봐!  

"누나, Cold Case 재미도 재미지만 자세히 들어봐. 거기에 나오는 음악이 우리가 어렸을 때 듣던 음악이잖아. first 송하고 ending 음악이 얼마나 멋진데, 거의 다 아는 노랠거야"라는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언니까지 합세해 Cold Case는 엔딩음악때문에 찡할때가 많다고 바람을 넣는 바람에 집에 오자마자, 처음으로 미드작품을 다운받아서 보게 되었다. 몇 개 다운 받아서 본다는 게 시즌1부터 2008년 시즌 5 에피소드 12까지 다운받아서 보게 되었다(전부 다 다운받아서 보는데 한 2만원 넘게 깨진 것 같은데.)  80년대 팝과 락음악으로10대를 보낸 우리 형제들에게, 팝음악이 시대배경이 되어 과거 사건을 현재로 끌어들이는 이 콜드 케이스라는 드라마는 매력 그 이상이었다. 

미해결사건이라는 뜻의 미드 Cold Case의 특징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현재 지금 일어난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일어났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서 사건을 종결짓는(case closed) 드라마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다보니 CSI처럼 결정적 과학적인 증거물에 의해 밝혀지기 보다는 탐문수사와 취조에 의존한다. 이 작품은 취조나 탐문수사에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현재모습에서 과거 기억을 Flashback 기법을 주사용하여, 사건의 시발점에서부터 재구성하고 추리한다. 수사물로는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고 할 수 있는데, 소재도 다양해서 여성참정권시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갈 때도 있고 소애애자까지 다뤄 폭 넓고 다양하다. 가볍게 볼 만한 드라마기보다는 한편 한편이 무겁고 진지하다.  

<루팡의 소식>은 한마디로 일본판 cold case이다. 과거 그러니깐 15년전 자살로 결론이 난 미네 마이코라는 여교사 살인사건을 자살이 아닌 살인으로 재수사하는, 그 살인사건 시효가 만료되는 시점인 24시간을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 재밌다. 사다 놓기만 하고 안 읽다가 기분 전환용 읽을 요량으로 펼쳐 든 것이 이틀을 꼬박 할애했다. 아이만 없었다면 밥까지 굶어가면서 읽을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다.  

이 책도 미드 <Cold  case>처럼 탐문수사와 취조를 전제로 구성되어 있고, 용의자 기타와 다쓰미가 기억을 상기시킴으로써(flashback기법) 사건이 순차적으로 재구성된다. 즉 과거의 사건과 현재가 함께 공존한다. 취조에 의한 용의자들이 기억해내는 사건은 완전히 기타나 다쓰미의 기억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전지적 시점에 의한 사건 노출이어서 독자가 의문을 가지고 읽어나가면 누가 사건의 배경인물인지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형사나 독자는 기타와 다쓰미의 말을 들으며 살인동기를 찾아 내야 한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한 인간의 추악하고 추잡한 욕망에 의한 것이지만 히데오는 여기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양 작품에 인간미를 부여한다. 

히데오가 공공연하게 자신의 작품속에 드러내는 직장내 사람들간의 알력, 시기, 오만이 잘 드러나면서도 그는 사람들사이의 넉넉하고 우직한, 따스한 인간애 또한 놓치지 않는다. 어떨 때는 매번  그의 작품속에서 그런 유치한 인간애에 피식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함이 감지돼, 나 또한 그의 팔불출 인간미에 전염이 되어 마음이 가슴이 따스해진다. 그의 작품 속에는 냉정함이나 차거움은 없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냉철한 시각이 있어도 그가 풀어낸 사건의 결론에는 언제나 항상 따스함이 넘쳐난다. 그래서 내가 히데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사건의 줄거리를 세세하게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약간의 스포일러도 이 작품의 재미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긴박하게 숨 넘어가듯 돌아가지는 않지만 독자를 한숨에 책 속으로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일단 책을 집고 읽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귀찮아 질 정도로 히데오의 마수에 끌려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슬슬 다른 그의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 이 작품의 엔딩송 고르라고 한다면 Extreme 의 More than words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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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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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하면서도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깊숙히 빠져 버리곤 한다. 아무리  한 작가가 뛰어난 작품을 그렸다고 해도, 계속 되는 비슷비슷한 성향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 그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그 감흥과 흥분은 일지 않는다. 이런한 경험이 되풀이되면서, 서서히 그림책에 흥미가 떨어져버리고 그 상태가 지속될 무렵,  생각지도 않게 엉뚱한 곳에서 느닷없이 자극을 받는 작품이 튀어 나와 심드렁한 그림책에 대한 나의 감성에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최근에 그런 가벼운 흥분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숨고르기가 필요할 정도의 보물같은 작품을 운 좋게도 두 권이나 만날 수 있었다. 한 권은 2008년도 칼데콧상을 수상한 <위고 카브레>와 또 한권은 뉴욕타임즈어린이 부문에서 올해의 책중 한권으로 선정된 숀탠의 <The Arrival>이었다.

숀탠은 어린이그림책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만만한 작가가 아니다. 상징성이 강한 초현실적인 그림과  낯선 느낌은 아이들이 선호하는 작가라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작가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또한 상징성이 강한, 그만의 독톡한 세계관에 다가서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 그렇게 염두해 두었던 작가가 아니었는데, 작년에 사이트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숀탠의 이 작품이 심상치 않게 등장하고 미국저널쪽에서 워낙 세게 호평을 보내는 바람에 알게 된 작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왜 이 작품이 그렇게 강하게 호응을 얻었는지 알 것 같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20세기 초기 호주 이민의 한 역사를 알리기 위하여, 호주 초기의  힘겨운 이민의역사와 그림을 참고하여, <도착>이라는 말 없는 그림책을 그렸던 것이었다.

아주 오랜동안 간직하여 빛바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그림책의 표지는 한 남자가 가방을 들고 숙여 모습이 기괴한 한 동물을 바라보고 있다. 숀탠은 그와 함께 독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책장을 넘기면 무수히 많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증명사진처럼 그려져있다. 책의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가족이 있는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미지의 세계로 갈 결심을 한다. 무슨 이유로, 어떤 절망의 씨가 그 땅위에 뿌려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아내와 아이를 두고 새나라로 향해 배를 타고 간다. 그림은 20세기 초반의 현장을 담은 것처럼 흑백무성영화처럼 처리되었고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다. 숀탠은 주인공이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디는 그 순간의 불안과 낯섬 그리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초현실적으로 그렸는데,  주인공의 내면심리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주인공은 새로운 땅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백인가족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공장에서 만난 한쪽 다리를 잃은 노인의 전쟁이야기를 들으면서 (롱숏으로 다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의 뒷모습을 잡은 모습은 얼마나 가슴이 아리던지.......), 그는 고향에 있는 가족과 만나  함께 그 낯설지만 새로운 땅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꿈꾸며 희망 속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숀탠는 20세기 초기의 호주이민이 자신의 고향땅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꿈이 많은 시련과 굴곡끝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낙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 이 책은 한장한장 넘겨봐야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는데, 말주변과 글재주가 꽝인 나로서는 작가의 잔잔하고 조용하게 나직히 말하지만 강렬한 그 메세지를 전할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이 만들어진 뒷배경에는 숀탠 자신이 말레이지아계 호주 출신이라서 아마도 언젠가 자신의 작품속에서 이민에 대한 서사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1974년에 태어난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주의 프리멘틀에서 성장했다.  반에서 항상 작은 아이었던 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다. 건축가인 아버지와 아이들 침실의 벽에 걸린 커다란 디즈니 그림에 색칠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많은 그림들과 이야기들에 둘러쌓인 채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문학적인 가족은 아니었지만, 심하게 폭력적인 것만 아니라면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하였다고 한다. 그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을 들라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 Jack Prelutsky 가 글을 쓰고 아놀드 로벨이 펜과 잉크로 그린 <Headless Horseman Rides Tonight> 과 지금도 존경하는 알스버그의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 그리고 레이몬드 브릭스의 < Fungus the Bogeyman >등과 괴물, 외계 그리고 로봇에 끌렸으며 처음 산 그림책이 공룡에 관한 책이었다고 한다. (역시 남자들이란....!) 10대 시절에는 공상과학소설 쓰기를 즐겼고 풍경그리기를 좋아했다고. 그는 WA대학시절 일러스트로 돈을 벌었으며 후에 그림책과 청소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리 그류와 함께 공동작업으로 첫작품을 펴내면서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는 직간접적으로 일상을 관찰한 것을 전제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거리, 해변, 친숙한 사람들이나 방문했던 곳을 그린다고 한다. 아래 그림들은 그의 작품세계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 아닐까하는데.....좀 더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http://www.shauntan.net/paintings1.html에 가면 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단, 최근 모습은 없다.




*이 작품 읽다가 에어로스미스의 <Dream On>이 흘러 나왔는데, 숀탠이 그린 주인공이 고향을 등지고 낯선땅에서나마 절망 속에서, 외로움속에서 주저 않지 않고 계속해서 꿈을 쫓는 것을 보고, 이민이라는 새로운 출발이 꿈을 계속 꾸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작품 내 준 사계절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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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호리의 비밀 파랑새 사과문고 63
허수경 지음, 이상권 그림 / 파랑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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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한창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녀가 돌연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 다시 2008년 어린이 판타지 동화<마루호리의 비밀>로 돌아왔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외로운 유학시절 <삼국유사>를 읽다가 비형이라는 도깨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계기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달랠 겸 도깨비이야기를 집필했다고 이 책의 탄생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어린이동화를 계속해서 책을 내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우리의 도깨비를 어린이 문학과 접목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녀의 첫어린이 작품이다보니, 사람의 손에 땀을 쥘 만큼 재미있거나 익사이팅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책이 꼭 재밌어야하느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난 <해리포터시리즈>가 버려놓은 사람이라서 그리고 해리시리즈때문에 아이들 키우면서도 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고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어린이문학에 어느정도의 재미와 익사이팅은 존재하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재미는 필수품 아니겠는가. 책의 라이벌을 보면, 보통 아이들 혼을 빼야말이지. 닌텐도만해도 그렇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두시간 해 놓고 자기는 조금 밖에 하지 않았다고 박박 우길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저 정도로 아이들 혼을 빼 놓는 재밌는 책 어디 없을까하고.  

<마루호리의 비밀>은 저학년보다는 고학년에게 적합한 소설인데, 며칠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이 작품에서 빠진 게 뭘까? 그럭저럭 어른인 나도 읽을 만하고 우리의 도깨비를 이야기세계로 끌어들였고 작가의 사물적 상상력이 돋보이는데(예로, 검은풀, 말하는 나무, 마루호리,하늘정원등), 도대체 뭐가 빠져서 재미가 반감됐을까?하고 며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음...... 싸워야하는 대상은 확실히 붉은도둑대왕이라고 설정했지만 그 악과 전면적으로 맞서 싸우는 갈등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다비와 인인이의 모험의 세계는 하늘 정원을 가려고 하다가 시간의 구멍속으로 잘 못 들어가 그 곳에서 우열곡절끝에 빠져나와 마침내 하늘정원의 말하는 나무까지 오긴 오는데, 오는 과정에서 붉은도둑대왕과 싸운다든지 하물며 도둑대왕의 조무래기하고도 마주치지 않고 단 한번의 위기를 넘긴 채 하늘 정원까지 온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조가 넘 간편하고 단순하다. 다비와 인인이의 모험의 세계가 좀 더 그럴싸한 역경의 과정이었다면, 확실히 더 재미있는 세계를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인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소설이었다. 우리 도깨비설화를 적극적으로 아이들세계로 가져왔고 무조건적으로 악을 나쁜 것으로 물리쳐야 하는, 선과 악의 첨예한 대립의 세계관보다는 이해와 관용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솔직히 이야기는 해리시리즈처럼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재미있는데). 이 작품 완벽하지는 않지만 허수경씨가 우리 어린이문학을 위해 앞으로 한발한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 같은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이 작품을 계기로 좀 더 어린이문학에서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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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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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글이 머리 속에 영상적으로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않는데, 이 작품은 그런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코엔영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을 토미 리 존스와 함께 영화화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2008년도 아카데미 수상작 원작이라고 인식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을 지 모르겠지만,  코맥 맥카시의 작품을 처음 접한 나에게 이러한 사실은 오히려  글을 읽는 내내  코엔 형제 영화 스타일로 오버랩되었고 심지어 벨보안과의 등장부분은 토미 리 존스의 음성으로 처리될 정도였다. 이 정도니  맥카시의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작품 속에서 코엔형제와 토미 리 존스를 계속해서 만났다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한때 영어공부한답시고 딕테이션에 열을 올린 적이 있어서 맥카시의 이런 식의 대화문장은 낯설지 않았다.  그 때의 꼭 그 느낌이었다. 드라마속의 인물들이 대화한 것을  글로 옮겨 적고 나서 다시 들여다 보았을 때의 그 뚝 떨어진 듯한 느낌. 드라마에서 사용했던 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뭐랄까! 이제  글로 써진 대화는 배경도 없고 전후문장의 인과관계도 없어 영상으로 만들어 지지 않으면,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는 묘사나 설명은 삭제(cut)시키고 대담하게 장면을 장면을 이어주는 것이 대화이며, 그 로그는 그가 살고 있는 곳 답게 황량하고 건조하며 단순하다.  맥카시는 자신의 창출해낸 이야기가 어떤 문체와 어울리는지 그리고 어떤 어떤 식으로 진행되야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 사회의 병폐인 마약과 검은돈이 인간의 욕망과 얽히면서 어떻게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지를 텍사스를 무대로 우리를 어둠속으로 이끌고 있다. 코엔 형제 영화 이전에 이 작품을 알았다면, 단순하고 건조한 게 딱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어서 코맥 맥카시의 글가치를 더 잘 알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맴돈다.  자, 그럼 맥카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한 번 이야기 해 볼까.

No reason 매 페이지마다 총성이 울리고 피비리내가 진동하는 것이, 쫓고 쫓기는 현대판 서부극이라서! 그렇다는 것에 별 의의는 없다. 재수 없게도 36살의 베트남 참전병이었던 모스는 사냥하다가 240만달러가 든 돈가방을 발견하고,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돈가방을 들고 거머진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아 튄다. 하지만 그의 가방에는 추적장치가 달려 있고 그 가방을 찾기 위하여 연쇄 살인마 시거(Chigurh)가 그의 뒤를 쫓는다. 이때는 적어도 왜 시거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지에 대해 이유라도 있었다. 돈이 목적이었으니깐.  모스를 죽이고 그 돈을 다시 마약업자에게 되돌려 주었을 때, 그는  " 나는 그냥 내 신의를 지키고 싶어서 찾아왔을 뿐이오. 아주 어려운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다고나 할까. 완전히 믿음직하고 정직한 사내로, 뭐 그런거요(274p)." 라는 말을 내 뱉을 조차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믿음직하고 정직한 사내 운운하는 게 우습고 꼴리고 화도 났지만 그래, 살인마에게도 그런 이유와 신념이 있어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다녔단말이지하고 인정했었다. 하지만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을 살해했을 때는 정말이지 시거의 연쇄살인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돌아다니는 이유가 뭐야!  시거의 존재 이유는 돈 가방을 되 찾기 위한 쫓는 자 아니었던가!  칼라 진까지 죽일 필요가 뭐가 있었지. 겨우 20살인데.  No emotion  그 이유를 찾기 위하여 아무리 책을 들춰봐도 찾아봐도 알 수가 없었다. 작가의 의도도 그리고 시거의 내면세계도.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벨만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코맥 맥카시는 작중 인물들의 감정을 다 배제했을까. 모스가 돈가방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도, 도망다닐 때의 쫓기자의 숨막히는 공포도, 칼라진의  불안한 내면도, 살인마 시거의 쫓는자의 느근한 감정따위는 단 한 줄도 없다. 독자의 몫. 쫓는자와 쫓기는 자 그리고 남은 자의 감정을 우리가 다른 매체에서 경험했다고 생각해서 친절히 생략한 것이니 데자부적 감정이입을 하면 되려나. 흠.... 솔직히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기는 하다. 일부러 감정을 배제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제시하는 대화나 행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No girl like Lili Rush 이런 작품에서 여성이 큰 역활을 차지 하리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칼라진도 그렇고 벨의 아내 로레타도 그렇고 모스가 도중에 만난 16살짜리 여자애도 그렇고. 여기에서 여자는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안정제에 지나지 않는다. 맥카시의 소설이 마초적이거나 남성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맥카시의 남자는 나약하고 비이성적이며 어리석을 뿐이다. 만약 벨의 역활이 <파고>나 <콜드 케이스>처럼 여성이었다면.  약간 터프 해졌겠지. 물론 그랬더라면 토미 리 존스가 벨역활을 못 맡았겠지만.....그래도 여자가 보안관으로 나왔다면 신선하지 않았을려나. 요즘 책 읽으면서 여러가지 가능성이 떠올리기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벨이 난 시거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뻔한 결말로 치닫는 것이지만(난 그래도 뻔한 결말을 원하고 있었는데) 시거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특히나 모스가 죽은 여관에 돈가방을 찾기 위하여 여관에 시거가 들어갔을 때 벨이 그 여관에 모습을 드러내던 그 씬에서 시거를 잡지 못했을때 이제 서부극도 끝났구나 싶었다.  No hero  그 장면에서 벨이 시거를 잡는 쾌거를 이뤄 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시거는 자신이 살인청부나 일삼으면서 정직이나 믿음직하니 뭐 그런 말 갖지 않는 말을 떠들어내지만 시거는 연쇄 살인범에 지나지 않는다.  시거를 잡았다면 벨이 영웅으로 등급하는 것인데 말이다. 맥카시는 그런 등식을 버렸다. 심지어 영웅이 빛좋은 개살구라고까지 말한다. 어떻게? 벨은 자신의  삶이 세계대전에서 무공훈장을 받았을 때부터 훔친 삶이라는 것을 털어 놓는다. 모든 것이 다 조작되었다고. 우리 시대에 영웅이 없음을 이 작품보다 더 강렬하게 더 씁쓸하게 상기시켜 준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열어 놓은 작품으니깐 나의 상상력을 덧붙이자면, 안톤 시거는 죽었을 것이다. 칼라 진을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트럭을 뷰익이 들이박으며서 그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상처가 났다고 한 걸로 미루어 짐작컨데 도망가다 죽지 않았을까 싶다. 코맥 맥카시가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이고 싶다.  자신이 믿음직하고 시부렁거리는 그 입이 다시 떠벌리길 바라지 않으며 칼라진과 사라진 영웅 벨을 위하여.  

떠도는 이야기로는 이 작품이 600페이지정도 였다고 하니 가지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맥카시의 문장력이 탄탄했으니 반을 쳐내도 작품이 죽지 않는 것을 보면, 글이란 자신만의 문장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구나 싶다. 작가는 미국은 마약으로 인해 타락했고 윤리은 저 멀리 사라지면서 어둠 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어둠을 밝혀주는 빛은 당신같은 작가 아닌가. 비록 흥건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작품이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남자작가라면 이런 작품 쓰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량한 사막, 쫓고 쫓기는 자, 냉혈한, 마약, 돈다발, 총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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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 -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존 백스터 지음, 서민아 옮김 / 동녘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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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근처에 있는 책방 가서 < 이누야샤>와 <20세기 소년>의 신간이 나왔는지 알아보러 갔다가 이런 동네 책방에는 소설코너 쪽에 무슨 책을 갔다 놓을까싶어(소설은 구입하니깐 동네 만화방가서도 소설코너에 가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쭈욱 훑어본 적이 있었다. 놀라워라! 책장에는 듣도 보지도 못했던 로맨스소설과 무협 그리고 판타지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것도 얼마나 많이들 빌려다 읽었는지 책들마다 닳고 닳아 있었다.

솔직히 그때 내 눈에는 로맨스와 무협 혹은 판타지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 책들이 전부 쓰레기 혹은 폐지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꽁으로 준다고 해도 절대로 읽고 싶지 않는, 읽는 다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 책들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트랜드책이라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고상한 거냐. 단 한권의 고전작품이 없었던 그 책들 사이에서 , 이 책들의 수명은 어디까지 일까. 몇 명의 사람들이 이 작품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혹  이 책들 사이에 보석이 숨겨져 있는 것을 나만 모르는 것일까 . 나도 이런 분위기 책에 한번 도전해봐! 지금까지 책의 역사를 봐도 홀대받은 책들이 후대에 높게 평가받은 예가 어디 한두번이야.하지만 말이다. 그런 예가 있었다고 감안해도, 도저히 읽고 싶은 욕구가 일지 않았다. 저마다 독서의 즐거움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역지사지,  동네 책방의 책을 빌려다 읽는 사람들이 내 방에 있는 책들을 훑어본다면, 그들눈에도  내 책은 하품 연신 터져 나오는 지루한 골동품 같은 책들이라고 생각하니, 맘이 편치 않았다. 이래봐도 이 책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주옥같은 책들이라고 아무리 그들에게  말해봤자 그들의 독서편력은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차이가 있다면, 동네 책방의 책들의 최후는 폐지로 버려지는 것이지만 내 방의 책들은 적어도  헌책방에 내 놓아도 가치가 있어 여기저기 팔려 나가 자신의 생명을 간간히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정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지적 오만일 수도 있고.

이 책 <책수집꾼>은 바로 책의 생명 연장의 꿈을 다분히 실천하는 책수집가 이야기이다.  책 중독자 존 벡스터, 지난 번에 릭 게코스키의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를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된 것이다. 책은 그런대로 재밌다.  게코스키처럼 작가별 책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자서전적이며 가쉽적이 성격이 매우 강하다.(이사람 우리나라에 와서 선데이서울 기자하면 딱 어울 것 같은)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에도 민감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어쩔 수 없는)오만함과 수더분한 수다 분위기의 책이다. 영문학 전공자나 공상과학소설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한권의 책에서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책들중에서 과연 어떤 책이 수천년을 살아남을 지도 아무도 모른다. 결국 이런 수집가들이 내가 모르는 수백만권의 책들 사이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고 옥과 돌을 가려내고 어떤 책이 후대에도 계속해서 인쇄되는지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제법 돈이 되는 초판본을 선호하긴 하지만. 책수집 특히나 작가 싸인이 들어간 초판본 수집은 단순한 집념보다는 책의 수집에 관한 집요한 강박이 없으면 절대로 못하지 않을까.  그런 강박으로 수십년 된 초판을 열심히 찾아 헤매고 그 책이 자신의 책장에 모셔지면서 그 책은 영원불멸의 삶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초판이 아니더라도 몇 쇄의 거듭해가며  읽는 독자가 있는 한 그 책은 영원성을 얻은 것이다.  여하간 다행인 것은  초판 소유나 책에 대한 강박이 나한테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괜시리 초판본선호하다가는 우리집 거덜날라.

벼룩시장이나 고물 잡동사니 사이에서 가치 있는 헌 책을 구해 자신이 갖고 있거나 다시 되 팔면서 책은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니 (20세기 초반에 세익스피어앤컴퍼니에서 발간된 율리시스가 아직도 살아있다니!), 가치를 아는 자만이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열이란 놀라운 집념의 강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변덕스러운 성격이어서, 한가지 사물이나 일에 에 평생을 다 바쳐 산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데. 오늘 하루도 이랬다저랬다를 반복하면서 사는 범인이로서는 그냥 이런 책이나 읽으면서 책에 대한 책이야기나 지켜보는 수 밖에.

작품의 내용이 시대를 앞서가서 후대에 환영을 받든, 세대를 초월해 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던 간에, 요즘의 책수집은 인터넷에서 다 이루어진다나 어쩐다나.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사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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