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전나무 - 안데르센 명작 동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상헌 옮김, 마르크 부타방 그림 / 큰북작은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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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이 샤롤 페로나 그림형제의 동화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음...금방 떠오르지 않는다구요. 혹 그럼 생각해보신 적은 있나요. 만약에 금방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질문을 달리 해볼께요. 이들 세 작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 바보야, 세계적인 유명한 동화작가들이잖아. 딩동댕동.  

일단 갈라보죠. 그들의 차이점을 말이죠. 샤롤 페로나 그림 형제가 낸 작품집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으로 입으로 전해내려 온 구전 설화나 민담을 수집해서 낸 것이지만 안데르센의 작품의 경우는, 순수창작물이라는 점이 페로와 그림형제의 동화를 갈라 놓는 가장 큰 차이점일 것입니다. 우리가 안데르센을 페로나 그림형제와 묶어 놓는 경우는 그의 작품들이 100년 이상 입으로, 책으로 한 세대와 다음세대를 이어주고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전동화작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흔한 말로 공전의 히트를 한 부작용이죠. 말이 공전의 히트지 안데르센만큼 자신의 창작물이 전 세계적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읽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세익스피어가 있다구요. 정말 그럴까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이야기가 몇 개나 될까요.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 오리 새끼, 눈의 여왕 또또또 뭐 있을까요. 130여개나 되는 그의 작품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몇 개의 작품만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며 그를 동화의 절대강자로 알고 있는 것뿐이죠. 

저도 솔직히 그의 작품을 완전히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는 그림책분야에 흥미가 있고 좋아하기 때문에 안데르센을 원작으로 하는 그림책이 발간될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저력은 그의 이야기가 지닌 보편성도 한 몫 했겠지만,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서, 그림책 분야가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더 활발해지면서, 자기가 어렸을 때 듣던 안데르센 이야기를 자신의 터치로 그림책을 만들어 내면서 안데르센은 더욱더 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동화작가가 된 것이겠죠. 어쩜 이 그림책은 다음 세대와 이어주고 전 세대와 다음 세대의 공통 분모가 되겠죠. 

안데르센의 작품중에서 덜 알려진 <눈의 여왕>이라고 알고 계신가요.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그림책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발간된 눈의여왕은 웅진 주니어에서 나온 키릴 첼루슈킨과 어린이 작가정신에서 나온 P.J. 린치의 작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간되지는 않았지만  Vladylav Yeko가 그린 <눈의 여왕>이 있습니다. 아마 이 세명의 그림작가는 어린 시절의 누군가로부터, 아니면 책에서 눈의 여왕을 듣거나 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가들은 성인이 되서 자신의 터치로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재해석함으로써 각기 다른 눈의 여왕이 탄생함과 동시에 이 책을 읽은 어린독자는 또한 성인이 되어 어린시절에 본 이들 작가가 그린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다시 자기 스타일로 해석함으로써, 매체가 무엇이든지간에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후대로 영원히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겠죠.  

(여커라고 읽어야하나요. 그의 눈의 여왕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눈의 여왕이 두권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섬세하고 화려한 일러스트에 반해 구입하게 되었지요)

<작은 전나무>의 경우, 몇몇의 작가들이 그림책으로 내 놓긴 했지만 그다지 유명한 작품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안데르센의 <작은 전나무>가 그림책으로 나온 경우는 이 작품 마르크 부타방의 그림이 유일무이한 버젼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데르센의 동화집으로 묶여 있는 경우는 있지만 그림책으로는 아예 없습니다. 일단 글밥이 많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면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10살난 아들하고 이 책 읽었는데, 아들은 현재 가치의 소중함을 모르고 다른 세계를 동경하다 한 줌의 재로 남겨진 전나무이야기의 의미를 쉽게 받아 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기사 인생 10년 산 놈이 현재를 소중히 여겨라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안데르센할어버지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턱이 없지요. 한번 더 제가 읽어 주었는데 막판에 다 읽고 엄마, 나 무슨 말인지 진짜 잘 모르겠어,라고 하더라구요. 안데르센의 동화는 끝이 좀 아린, 묘한 씁쓸함과 아이러니가 강한데 이 작품도 현실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한 전나무의 비참한 최후라는 점에서, 결코 해피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훈적이라면 교훈적이지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생이란 이런 것이란다,라는 어느 정도의 사회경험과 나이에 이르러서야 깨달을 수 있는 인생의 도를 10살짜리 아이가 금방 알아채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현재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 미래는 현재의 결과물이니깐. 

부타방의 그림의 색채는 중간톤으로 화려하거나 섬세기보다는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림의 라인은 가늘어 여리여리합니다. 겉표지의 눈 내린 나무가지를 그린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전체적으로 싸한 파스스름한 차가운 겨울이라기보다는 실내에서 바라보는 겨울 풍경처럼 따스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크리스마스쯤에서 아이들하고 뜨근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읽어주거나 읽으면, 집안 분위기가 절로 따스해질 정도입니다.  

이 부타방의 <작은 전나무>를 읽고 나서, 언젠가는 이 부타방의 그림을 능가하는 <작은 전나무>의 다른 버젼이 나오겠지요. 그게 우리나라의 작가였으면 합니다. 비록 원작이 안데르센이긴 하지만 그림은 우리나라 작가가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세계적인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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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 - 유명 작가들의 별난 소년 시절 이야기
존 셰르카 엮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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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풍기는 남자가 된다는 것의 어감이 동네 똘마니 불량배들을 만난 것처럼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경멸을 자아내, 이 책 살까말까 고민 좀 했었다.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난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처럼 사내는 이래야된다라고 앙팡지게 아들에게 주입하거나 몰아부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다 책을 읽은 죄라면 죄 아니겠는가. 살면서 책하고는 담 쌓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는 남자가 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책 깨나 읽었다는 나는 아들에게 중성적인 성향을 요구하고 사내라는 말조차 거부감이 드니 말이다.  

예전에 샬롯 졸로트의 <윌리엄의 인형>이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데, 윌리엄은 공놀이을 하는 것보다는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 하는 사내아이다. 게이성향이 드러난다고 할까나. 당연히 윌리엄의 아빠로서는 심히 못마땅할 수 밖에. 그는 인형을 갖고 노는 윌리엄을 윽박질러 사내애처럼 키우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그 아이 성향이 있는데 아버지 뜻대로 되간.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윌리엄은 인형을 갖고 놀지 못 하게 되자, 슬픔을 느낀다. 그러자 윌리엄의 할머니가 윌리엄의 아버지를 설득하고 나선다. 어차피 아이가 커서 아버지가 되면, 아기를 돌봐야하지 않겠냐고. 윌리엄이 지금 하는 인형놀이는 나중에 아버지가 되긴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머니가 윌리엄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끝나는 그림책이었는데, 몇 년 전에 이 책 읽었을 때, 그 거부감은 실로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우리 아들애가 5살 무렵이었는데, 그 때만해도 남자아이에게 이런 계집애같은 행위나 샌님같은 행동은, 아무리 유명그림책이지만 받아들여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근게 이게 웬걸! 지금은 남자가 된다는 것이라는 책제목에 반감이 슬면시 생기니, 이게 뭔 조화여. 학습효과의 성공적인 결과라고 해야하나. 일단 서점에서 책소개를 에는 미국 유명 글쟁이들이 대거 참가하여 쓴 잡문성격이 강한 글이어서 읽어 볼 만 한 것 같았고, 현재 미국에서 잘나가는 작가가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림책 작가들이 글을 쓴 거라서 일단 구입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토요일에 받아 보았는데, 이 책 받고 그 날 하루만에 다 읽어치웠다. 존 셰스카의 주도하에 현재 미국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 편집장 그리고 작가들이 남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형식에 구애됨 없이 쓴 글들이다. 제목만큼 남자다움을 선언한 글은 대런 샌의 사나이 선언문 정도이다.대부분 자신의 요절복통 어린 시절의 회고담인데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여운을 남겨준다. 게중에는 성의 없는 글이 한 두개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 내 미국그림책 작가들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하는 필독책이다. 대체로 그림책 작가들은 토크쇼에 초대되는 법이 없으니깐, 이렇게 책으로 밖에 그들에 대한 어린시절의 정보라든가 에피소들 알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국땅에 앉아 미국내 그림책 세계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우습고 미국내 그림책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잘 모르지만, 그네들의 책이 한권 한권씩 쌓이면서 드는 생각은 미국내 그림책 작가들이 서로 간의 친분 관계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여타의 다른 분야 보다도 확실하고 공동작업등 서로 주고 받은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림책 시장이 워낙 파워을 형성할 만한 세력이 아니어서 눈에 안 뜨는 것 뿐이지, 그림책이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서로간의 이해와 친화력이 그들을 강력하게 묶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 드는 생각. 존 셰스카와 친한 레인 스미스는 왜 빠진 거지.  

01소년, 남자가 되다, 02맞아, 우리 땐 누구나 그래, 03아빠와 아들만의 이야기, 04상상력이 우릴 구원할거야, 05우릴 미치게 했던 것들 그리고 06꿈은 이렇게 시작됐지 6개의 소제목으로 나눠 작가들이 나름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어린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것. 걸죽한 입담의 소유자 존 셰스카는 다섯형제중 둘째로 자랐으며 <안돼, 데이빗>의 작가 데이빗 섀논은 자신의 작품의 탄생배경을 이야기하고, 우리 딸애가 좋아하는 그림책 <거미와 파리>의 토니 디터리치의 그림책 작가가 된 상상력의 근원지를 이야기하고, 학교 다닐때 부터 반항적인 대니얼 핸들러 등 그림책 작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고 대체로 글들이 재밌어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놓기 싫어진다. 이 책에 나온 작가들중 아는 사람은 한 1/3정도. 그 밖의 사람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대표작들이 따로 소개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글은 잔잔한 감동을 준 데이빗 클래스의 <울아빠>였는데,  독자인 나에게 묘한 여운을 남겨놓을 정도로 작가가 진심으로 이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ps- 미국애들은 운동에 미쳐, 책이라면 안 읽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 한결같이 탄탄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우리네가 어릴 때부터 논술이네 전집이니 뭐 열심히 시키고 사다 받치는 거에 비하면 펄프픽션이나 잡지 나부랭이나 읽은 애네들은 왜 이렇게 글을 잘 쓰고 자신만의 문장이 있는지 모르겠다. 궁금해. 궁금하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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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8-01-2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는 책들 보면 로알드 달과 퀜틴 블레이크처럼 존 세스카도 레인 스미스랑 짝궁(?)인가 봐요. ^^

기억의집 2008-01-2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영엄마님, 반갑습니다^^*
존 세스카 그림책이나 레인 스미스 그림책보면 둘이 친한 것 같던데요. 책을 헌사할 때 누구누구에게 할때 마다 서로에게 헌사한 것을 보고 그리 짐작할 뿐입니다. ㅎㅎㅎ
저야 아영엄마님의 독서 편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안돼, 데이빗! 지경사 데이빗 시리즈
데이빗 섀논 글 그림 / 지경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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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 우째 내 속을 훌러덩 뒤집어 넣능교

 네 니한테 그 과자 꺼내 먹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나, 엉!

 니가 나한테 과자달라고 하몬 과자 안 주건나

 아까붜라. 이 깨진 그릇 니 어떡할끼여

 

 몸 씻는데 물은 왜 이리 철철 틀어놓능교.

 수도물 값 니가 내나.

 어딜 고추바람으로 나가나,

 이 눔의 시끼, 이리 못 온나.

 내 이제 동네 창피해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나

 

 좀 조용히 해라 안 칸나.

 밑의 썽질 드러분 할베 올라올대이

 내 이제 그 양반 구질구질하 레퍼토리

 듣고 싶지도 않타

 

 집에서 야구 하지 말라고 했쩨

 집이 놀이터고?

 썩 나가서 놀지 못하건나.

 

 와장창장~

 

 아이고야

 내 몬 살것다.

 네 니한테 하지 말라고 몇 번 말했나 

 니 귓구녕은 장식품으로 달렸지

 우찌 내 말을 거지씨부랑이 말처럼

 안 듣는기여.

 

 내가 니한테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나.

 티비 본다고 뭐라카나

 가슴에 손 얹고 말 좀 해보그래이

  

 내 니한테 암 소리도 안하는 기다

 저기 저 갱냄 아줌씨  자식들 봐봐라

 개네들 아침 몇시에 나가 저녁 몇 시에 들어오는지

 니 양심이란 게 있으면 말 좀 해 보그라.

 

 며칠전부터 일기랑 수학 숙제는

 해 놓고 놀으라고 했제.

 말했나 안 했나.

 니 자꾸 이러면

 내 가만 안 있을기라.

 이눔의 자슥

 뭘 잘 했다고 엄마를 째려보노.

 내 틀린 말 했나

 학생이 공부 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니 아무래도

 몇 대 맞아봐야

 정신 차리겠구만

 아이구

 진짜로 니가 밉다. 미워!

 

 ................................

 

 

 하지만 어쩌것노

 니 내 배 안파서 난 짜식인걸

 내 이리 말해도

 내 가슴 한 귀탱이엔

 니를 향한 사랑이

 언제나

 늘

 비어있대이

 

 하지만 어떨 때는 진짜 밉대이.................

 

얌전하기만 한 우리 아이도 한 때 데이빗 같이 저지렛만 치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이 지나, 아이가 자라면서 통제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 땐 어질러진 방만 치우면 됐지만 지금은 가슴 속이 꽉 막힌 게 답답하다.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야지하고 마음 속으로 작정하지만, 말 좀 잘 듣고 공부도 잘 했으며 더 바랄 것이 없겠건만. 언제나 내 맘 속의 바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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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자유를 선물한 패션의 혁명가, 코코 샤넬 역사를 만든 사람들 12
미셸 퓌에크.브리지트 라베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섯수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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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때 만해도 위인이라고 하면 전쟁영웅, 정치적 인물 그리고 일상에 혁명을 가져다 준 과학자등 대개 남자들이 위인 반열에 올랐었다. 끽해야 여성 위인을 들라하면 퀴리부인 정도 아니면 신사임당.  

 

요즘 아이들을 위해 발간되는 위인전을 시리즈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떤 특정 분야나 성(gender)에만 치중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세계사의 흐름속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업적을 세운 사람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아이들에게 더 다양한 위인의 스펙트럼을 보여줌으로써 비젼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섯 수레의 위인 시리즈인 역사를 만든 사람들 12번째 인물은 오늘 날, 많은 여성들이 갖고 싶어하는 명품가운데 하나를 창조해낸 코코 샤넬이다. 평전이나 자서전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당연히 코코 샤넬이라는 인물에게 이끌릴 수 밖에. 코코 샤넬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고아원에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마도 훗날 그녀의 독선적이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란 평은 고아원의 불우한 어린시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차 고아원에서 나온 샤넬은 생트마리 상점에서 봉제일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 일이 훗날 그녀의 운명의 첫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봉제일을 하면서도 가수가 되고 싶어 카바레에서 노래을 부르며 인기를 끌어 지금 보다 더 나은 비시라는 도시로 가 노래부르는 일을 하려고 했지만 그 곳에서 인기가 시들해지자 가수일을 그만두고 다시 봉제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카바레에서 만난 에티엔등의 상류층 인사들과 사귀면서,남자들의 일개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분명하게 알 게 된다. 그녀는 보이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모자를 만들어 파는 상점을 갖게 되고, 그 모자가 당시의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자 상점은 아이템을 확장시키며 점점 커져간다. 그녀는 모자에만 만족하지 않고 당시 화려하고 장시적인 옷에서, 단순하고 우아한 실용적인 옷(53p)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패션은 당시에는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옷감의 재질도 당시에 사용하지 않는 저지라는 옷감으로 옷을 만들었고 여성이 움직이기 편하고 착용감이 편한한 옷을 만들면서, 당시의 여성들의 실용성과 세계관이 맞아 떨어지면서 그녀의 옷은 세계 여성 패션을 바꾸어 놓았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자리잡고 있는 유럽 프랑스에서도 그녀의 옷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바다 건너 미국내에서의 그녀의 패션에 열광이 그녀를 확고한 패션계의 총아로 만들었지 않나 싶다.

 

지금 우리들이야 옷을 맘껏 편하게 입고 지내지만, 20세기 초반만 해도 여성은  남자들에게 장식적인 액서사리와 다름없었다. 그런 장식성에서 탈피하여 여자가 여성만의 일을 갖고 편안하게 활동하며서 자유를 누리게 했다는 점에서, 그녀는 20세기 낳은 혁명적인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샤넬이 가져온 여성상의 혁명이 가져온 결과적인 시대상도 어느정도 설명해주었으면 했는데, 샤넬의 일대기만 전반적으로 갼락하게 그렸다는 것이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이들이 위인을 인식하고 비젼을 갖는 나이가 몇살 부터일까. 이 책 읽으며서 아이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그 세상을 구성하는 인물들에게 서서히 관심을 갖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세계와 꿈을 갖고 실천해 나갈 수 있다면 이 책은 위인전으로 역활을 톡톡히 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성장도 빠르고 세계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빨라, 이 정도의 위인전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인 내가 읽기엔 이 책은 또 다른 그녀의 평전으로 이끌고, 어린 아이들에게 이 정도의 설명이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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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의 유산 VivaVivo (비바비보) 1
시오도어 테일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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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는 비참할 정도로 외로웠다. 형제자매들이 결혼하기 전, 같이 살 때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몰랐었는데, 그들이 결혼해 나가 집안에 부모님과 나 셋이서 같이 살기 시작하기하자마자 집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아 외롭다라는 느낌을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글쎄, 그 때는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그래봤자 회사직원 40명 조금 넘는) 살갑게 구는 회사후배와 여기저기 싸다기는 했고 여자친구와 늘 만나기는 했지만 마음 한 귀탱이는 늘 허전했다. 게다가 여중,여고,여대를 나오는 바람에 20대후반까지도 연애다운 연애는 커녕 남자라고는 사귀어 본 적도 없어(물론 한 두번 만나는 소개팅정도는 해보았지만) 연애를 어떻게 걸어야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20대 후반까지도 말이다. 윽! 지금 생각해보면 내 20대 인생 후졌다라는 말이 절로. 

그러다 거래처 직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애를 낳자마자 외로움은 커녕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그런데로 아이들이 커서 책도읽고 영화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와지기 했지만 말이다. 뭐랄까. 그래도 아이들하고 떨어져 나 혼자 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둘째가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자 큰 애가 학교 간 사이에도 둘째랑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으니깐, 집에서 혼자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부쩍 간절해졌다. 그러다 보니 별 것도 아닌일로 아이한테 신경질내고... 좀 포악해졌다고 해야하나.  

이 책 <티모시의 유산>은 내가 아이들한테 받은 스트레스가 한창 하늘을 찌를 때, 아직까지 신간 서적에 1000원 쿠폰이 남발할 때 사서 읽은 책이었다. 올 해 안으로 이 책 리뷰나 써야지 했는데, 지금에서야 쓰게 되네. 

" 나는 한동안 티모시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혹시 이미 그가 가버린 그곳에 나도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때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살다 보면 정말 그렇게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나는 또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깨었을 때, 어디선가 휘미하게 야옹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스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죽어 버린 티모시 곁에서. 아무도 찾이 않는 외딴 섬 한 가운데 눈이 멀어 버린 채 혼자서."
 

언제부터인가 혼자 있고 싶어 아이들한테 포악스럽게 굴때, 책장에서 꺼내서 읽는 대목이다.  빌레스타트라는 곳에서 사는 필립은 2차 세계대전 적국의 위협으로부으로 피신하기 엄마의 고향 버지니아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난파당한다. 의식을 되찾자 그는 흑인 티모시와 함께 뗏목위에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필립과 티모시 그리고 고양이 스튜와 망망대해에서 떠다니다가 필립은 적의 공격을 받을 당시 뮌가에 강타당했는데 그로 인해 시력을 잃어 버린다.  티모시가 흑인이라는 것과 평상시 엄마의 흑인비하로 필립은 그를 경멸하지만 악마의 아가리라는 작은 섬에서 같이 살게 되면서 그를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른다. 티모시가 눈이 앞 보이게 된 필립을 위해 섬 곳곳에 밧줄을 설치하고 먹을 것을 잡는 법을 가르친다. 이 대목은 섬에 태풍이 불어오고 그 태풍으로 티모시가 죽자, 무서움보다는 혼자라는 두려움에 죽은 티모시의 시체옆에 있는 필립의 한 장면이다. 
 

아이들이 귀찮아 질때, 혼자 있던 20대 후반을 생각하고 필립을 생각한다. 지도에도 없는 섬에 혼자 남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필립을 말이다. 소년의 시급은 당장 외로움보다 생존이 먼저였겠지만 아이들의 쌈박질과 텔레비젼 소리로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에게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섬 한 가운데 눈이 멀어 버린채 혼자서"라는 대목은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고 하는 나의 처지가 그래도 필립보다는 낫구나하는 쓴 웃음일지언정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 읽고 어쩌면 책이란 저마다의 개인적인 해석을 부여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이 책의 의도는 흑백가의 인종 화해라는 측면이 강하던데 그래서 "두 눈을 잃고 나서야, 소년은 비로소 진짜 세상을 보게 되었다"라고 소개되었을 정도니.... 근데 말이다. 난 흑백의 갈등으로도 읽히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입맛에 맞게 읽히니.... 그래서 생각난 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색을 구분하고 미와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고, 잘난 놈과 못난 놈을 가릴 수 있고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능력은 편견도 같이 자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본다는 게 다는 아닌데, 우리는 너무나 겉만 보고 판단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눈이 없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휠씬 나은 세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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