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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게 사는 법
고미 타로 지음, 강방화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지난 토요일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 작은 애를 데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작은 애의 성격이 남들앞에서 활달하거나 발랄한 성격이 아니라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에게 애교있게 인사를 하는 성격이 못된다(그러면서도 악착같이 결혼식에는 따로 오고 싶어한다는). 애교는 커녕 예의조차 없는 그런 딸이 목석 인형처럼 가만히 무표정하게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기만 한 채 친척 어른들께 인사를 하라고 해도 못 들은 척 가만히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에 무척이나 민망했는데, 작은 애의 인사를 기다리던 작은 아버지 한분이 눈도 마주치지 않을려고 하는 딸애에게 "괜찮아, 지금 인사 하지 않아도 나중에 잘한다. 걱정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웃으시면서 하고는 자리를 뜨셨다 (지금까지 애낳고 키우면서 이런 반응을 보이신 분은 이 분이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잘 해야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인사는 반갑게 잘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작은 애가 건방져서 또는 남을 우습게 알아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들 앞에서 씩씩하게 인사를 하는 것을 무척이나 어려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애한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엄마인 나도 다른 아이에게서 인사를 받으면 보기도 좋고 받는 입장에서 기분도 좋다. 어쩜 저렇게 씩씩하고 넉살도 좋을까! 솔직히 우리 애하고 다른 성격의 아이의 인사성이 한량없이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작은 애의 성격이 밋밋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들처럼 씩씩하게 인사하는 것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고 등 떠밀면서 인사 시키지 싶지 않고 그 강요로 인해 아이와의 간극을 넓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지딴에도 다른 아이들처럼 밝게 인사하고 싶은 맘 왜 굴뚝같지 않을까나). 간혹 이 글을 읽고 아무리 아이와 사이가 멀어진다기로서니, 사람의 도리를 예의를 내팽겨치는 엄마가 잘못된 교육을, 방임의 교육을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는 아이에게 그릇된 교육을 시키는 것일까? 주관적인 관점일 수 밖에 없는데, 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면 나의 교육관 또한 그렇게 그릇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믿는다. 작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언젠가는 인사하게 된다라는 넉넉한 마음과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아이가 수줍어서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오히려 획일적으로 인사는 꼭 해야 한다라는 그런 반응이 오히려 더 답답하고 갑갑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 아이를 비난하는 거야 말로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 구성원로서 쇄뇌당한 것은 아닌가. 간혹 이런 아이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인정하고 보듬어 안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보다 더 가치있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미 타로의 에세이집 <어른들은,의,이 문제야>라는 글을 만나기 전에는 나 또한 어른이나 동네 아줌마들에게 인사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짜증나고 화 내기도 했었다. 인사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핀잔도 주고 혼내기도 많이 했는데, 그럴수록 나는 아이에 대한 감정이 미움도 제법 쌓여갔다. 아이의 마음보다 창피한 맘이 앞선던 것이다. 그러다가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지 말자,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자라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고미타로의 글을 통해서이다.
그는 1945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64세의 노인이다. 전후세대 사람이라 경직된 사고와 권위적인 행동이 자연스레 몸에 밴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의 그림책들과 에세이집에서 통해 그가 상당히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의 그림책 작가라는 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한마디로 전후시대 권위주의와 군국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던 일본 사회에서 볼 때 이단이라고 할만하다. 그런 이단적인 그의 사고가 지금 현재는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앞선 사람이다. 그가 관계 맺는 사람들, 그가 바라보는 사물들은 모두 동일하지 않다. 이 책 <똑똑하게 사는 법>의 표지에 나오는 사랑스런 아이들처럼 우리 모두는 사고, 생김새, 행동, 성격등 모든 것이 다른다. 그는 이 책에서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 사람들 저마다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한 예로 그는 젓가락을 제대로 하는 법에서 한 가지 방법의 젓가락 잡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손과 손가락은 가지각색이라서 젓가락질 하는 방법도 가지각색 인게 당연해요(p7)라고 말한다. 우리 어른들이라면 젓가락질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바탕 소동 벌일 일을 그는 당연히 젓가락질은 각양각색이라고 말한다.(당연히 그의 말에 설득당할 수 밖에!)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단순한 처세술의 책이 아니다. 만약 그런 류의 책이라면 난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고미 타로가 바로 보는 세상, 그리고 그가 이 세상을 똑똑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제시하는 것은 타인의 다양성을, 사물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획일화되고 규율적인 누구나 다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ONE의 세계가 아니라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하고 비쭉비쭉하고 우둘두둘한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고미 타로만의 이단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림책이다.
덧 : 리본 묶는 법에서의 고미 타로 의견에 반대. 난 머리에 상처 난 것처럼 묶는 것도 이쁘더라.
또덧 : 고미타로같은 유연한 사고의 그림책 작가 한명쯤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이들의 인사성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우리 나라의 그림책은 너무 규율적이다. 인사를 꼭 해야한다는 것과 인사를 제대도 하는 법을 가르치는 그림책도 좋지만 우리 아이처럼 남들 앞에서 수줍어 인사 못하는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그림책 한권 정도는 나올 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