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거 주인공이 완전 마초야!" 새해 들어 두 번째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친구 하나가 꺼낸 말이다. 물론 그 친구는 그렇게 애기한 후에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카잔차키스의 다른 책 몇 권까지 더 소개해 주었고...

이 책은 법정스님이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한 열 입곱번째 것이다. 법정스님이 추천도서 50권은 '닥치고' 읽기로 마음 억었기 때문에 친구의 말을 뇌 한 구석에 담아두고 계속 읽었다.
스님은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조르바의 말을 인용한다. "요 몇 해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도대체 무엇이오?" 조르바의 이 질문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묻는 준엄한 질문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읽고쓰고 하는 뜻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많은 종이를 씹어 삼키면서 얻어 낸 게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삶의 본질과 이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한낱 종이벌레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그리스의 역사와 저자의 삶에 대해 먼저 알아야했다. 작품 자체가 저자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하여 구성된 것이고 작 중 주인공인 '조르바' 역시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르바'에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영혼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카잔차키스는 1883년 그리스의 크레타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크레타는 터키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크레타 사람들이 터키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는 중에 그가 성장한 것이다. 크레타의 신들을 길로 낸 그리스 신화의 보금자리가. 욕심 많고 거짓말 잘하고 난폭하고 거칠기로 소문 난 크래타안들의 섬인 것이다. '평화시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광란의 불길에 ?기게 한다'는 섬... 카잔차키스의 크레타섬은 "한 번 부르면 가슴이 뛰고 두 번 부르면 코끝이 뜨거워지는 이름... 기적이나. 내가 크레타 사람이라는 것은..."인 것이다. 그는 조국 그리스를 축으로 74년의 생애를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일본, 팔레스타인, 이집트 땅을 눕고 다녔다고 한다.
역자인 이윤기는 카잔차키스의 삶을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등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만을 읽어 본 나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카잔차키스는 1917년 그의 나이 34세 때 조르바를 만났다. 전쟁으로 석탄 연료가 부족해지자 조르바라는 일꾼을 고용하여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고 시도했다, 이 경험은 1915년 벌목 계획과 결합되어 뒷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발전된 것이라 한다.

소설은 광산사업을 하러 크레섬으로 떠나는 배를 그리스 본토의 어떤 항구애서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공부하고 글쓰며 영혼의 구원을 찾는 사람이다. 절찬한 친구가 카프카스에서 위험에 처한 그리스 동포들을 구하러 가자고 했을 때 그는 주저했다. 친구는 그에게 "안녕! 책벌레야!"하며 떠났다. 그는 원고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갈탄광으로 향한 것이다. 책벌레 족속과 거리를 두고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선착장 근처 술집에서 주인공은 조르바를 처음 만난다. 술집 안에서 조르바와 대화를 나누던 중 주인공은 산투르(그리스의 전통 악기)애 대한 조르바의 말을 듣고 조르바를 일꾼으로 고용하려고 마음먹는다.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 배우겠다는 생각은 당신도 안 하시겠지? 물래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 "산투르를 다룰 줄 알개 되면서 나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르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 되니까..."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에요. 마누라가 한 마디로 될 것을 열마디 잔소리로 늘어놓는다면 무슨 기분으로 산투르를 치겠소?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끽끽거리는데 산투르를 어떻게 치겠소? 산투르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르에만 쏟아야 해요. 알아듣겠어요?"
주인공은 조르바의 애기를 듣고 그를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라고 느꼈다. (이 부분도 공감하기 어렵다. 내가 좀체로 주인공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소설은 주인공과 조르바가 크레타 섬에 들어가 여관에 자리를 잡고 인부들을 불러 갈탄광애서 석탄을 캐는 과정을 기본 구조로 서술된다. 주인공이 조르바와 함께 지내면서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면서 조르바의 말과 행동에서 조금씩 영향을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르바는 낮에는 일꾼들을 데리고 탄광에서 죽으라고 일하면서 주인공은 여관에 머물게 한다. 조르바는 여관 도착 첫날부터 여관의 주인 여자와 눈이 맞아 사귀게(?) 되고 주인공은 과부를 두고 마음 속으로 갈등을 거듭한다. 과부를 짝사랑 하던 마을 지주의 아들이 자살하고 마을 사람들은 아성을 잃고 과부를 때려죽인다. 조르바는 석탄을 캐고 이동시키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철탑과 캐이블을 구사,설치하였으나 처음 시범운영하는 날 실패하고 만다. 두 사람은 탄광사업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날 밤 함깨 해방의 춤을 춘다. 실제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와 헤어진 후 그리스의 장관을 역임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을 진행했다.

주인공은 조르바와 함께한 몇 개월 동안 조르바를 통해 것들을 느끼고 배우고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조르바는 본능에 충실하고 말보다는 몸짓에 익숙한 사람이다. 질그릇을 만들려고 물레를 돌리는데, 새끼손가락이 거슬린다고 도끼로 잘라 버렸다. 주인공은 조르바에게서 열정과 자유를 발견하였다. 조르바가 내뱉는 말은 조르바의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주인공의 이제까지의 인생을 깡그리 씻어 내고 조르바에게서 배운 것들로 다시 채우기를 소망한다.

"기분 내키면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 땐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산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요? 허리띠를 플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물애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쬐그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니다. 보고는 못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정신이 번쩍 들고!"
"두목,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무엇을 하는지 대답해 보시오. 두목의 안에서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일러 드릴리다."
"....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씌여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읍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역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위치하는 노른자위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의 하나인 '메토이소노(성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매토이소노'는 '거룩하게 되기'이다. 이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라고 한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게 물리적 변화이고 포도즙애 포도주가 되는 게 화학적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성체)'가 되는 것, 그것이 '매토이소노'라고... 역자는 조르바가 사업채 하나를 '춤,으로 변롸시킨 것도 '매토이소노'라고 설명한다.

친구가 애기한 '마초'의 전형같은 조르바, 그리고 법정스님의 화두... 어쩌면 20세기 초의 그리스에서는 마초처럼 '책벌레'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본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책을 덮고 나니 나 역시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지금 종이벌레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다. 몇 년 전부터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것은 책... 나는 이들 책 속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혹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결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혹은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은 아닐지...

친구가 애기한 '마초'의 전형같은 조르바, 그리고 법정스님의 화두... 어쩌면 20세기 초의 그리스에서는 마초처럼 '책벌레'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본질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2012년 1월 27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 진보.개혁의 위기를 말하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사회는 참으로 역동적이다. 특히 1948년 해방 이후의 한국사회는 1년 뒤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연속 되었고 지금까지 그런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1950년 전쟁, 1960년 4.19 혁명, 1961년 박정희에 의한 군사쿠테타, 1965년 한일협정, 1972년 유신체제, 1979년 박정희 피격과 전두환의 군사쿠테타, 1980년 서울의 봄과 전두환의 광주학살, 1987년 6월항쟁과 직선제 등 개헌, 그리고 양김 분열에 의한 군사정권의 연장, 1990년 3당 야합과 1992년 김영삼의 당선, 1997년 구제금융 위기와 김대중의 당선,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7년 이명박의 당선, 그리고 이제 2012년...

1948년 이후 한국은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대외적인 상황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국내상황 특히 국민들의 모습은 가히 'Dynamic Korea'라고 불릴만큼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이 그러했다. 6월 항쟁은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열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1987년 이후 20년의 역사는 '절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처음 10년은 1987년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의 연장이었고 그 이후의 10년은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지만 무력함과 개혁의 실패로 인해 소위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신뢰의 하락으로 점철되었다. 더군다나 민주정부가 거듭될수록 더욱 심해지는 양극화는 서민들의 삶의 위기로 나타났다. 그 반대급부는 2007년 '단군 이래 최악의 정권'인 MB정권을 등장시켰고 민주주의는 더욱 후퇴하고 서민의 삶은 최악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최근의 MB 정권 4년은 유권자들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도록 만들었다. 국민들은 새롭게 깨달았으며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과 기억과 깨달음을 기초로 하여 2012년은 1%의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다시 바로 세우고 빈곤과 양극화를 되돌리기 위한 한바탕 승부의 해로 만드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부터 시작하여 2012년 새해 벽두부터 '심판'과 '정권교체', '승리'와 '국회점령', '참여'와 '99%'라는 단어가 키워드가 되고 있다. '심판'과 '정권교체'는 해방 후 최악의 정권인 이명박 정권과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을 총선과 대선에서 꺽어야 함을 의미한다. '승리'와 '국회점령'은 정권교체의 의미를 포함하면서도 유권자의 참여를 조금 더 강조한 의미다. '참여'와 '99%'는 작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Occupy' 운동의 한국판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는 대의민주주의나 시혜가 아니라 유권자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가능하다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유권자가 변한 만큼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사회복지'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여전히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문제는 막연하게 '사회복지'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실질적으로 '사회복지'가 가능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규명하지 않은 채 또 다시 진보,개혁세력이 국회와 정권을 되찾아봐야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민주정부의 10년 동안 진보,개혁세력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검토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1987년 이후 20년간 '열망과 절망'을 온몸으로 체험해 온 민주화 세력과 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2007년 시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모습과 진보,개혁 세력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짧게는 참여정부 4년에 대한 평가이고 길게는 민주정부 9년에 대해 평가한 것이다. 

민주정부 9년(참여정부 4년)의 성적표를 도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필진은 발간사에서 참여정부를, "중간평가 성격의 2006년 지방선거 결과는 외형상 열린우리당의 완패와 민주노동당의 동반 하락이었지만, 그 본질은 집권 세력에 대한 환멸, 나아가 우리 사회 진보,개혁 세력 전반에 대한 불신의 표출이었다는 것이 우리의 진단이다. 노무현 정권은 보수 세력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인가? 노 정권 자체가 주요 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며 보수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보수 세력으로부터는 좌파 정권이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보수 쪽의 선전은 먹혀들었다. 노 정권은 본의 아니게 좌파 정권 대접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전개되어온 것이다. 한국정치의 희극이자 비극이다."라고 요약하여 평가했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은 2006년 5.31 지방선거 이후 진보,개혁세력의 위기를 신문에 기획기사로 실었다. 이는 2006년 9월~12월에 실은 28회 연재 "진보개혁의 위기 - 길 잃는 한국 시리즈"를 말한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일반 서민들, 직장인들, 소상공인들의 인터뷰 기사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언론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더 심한 수준으로...)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이 기획기사는 참여정부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고 한다. 국정홍보처 김창호 처장은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의 기준이 왜 진보진영의 위기에 대한 심층적 성찰과 반성을 향해 가지는 않는지, 그 날선 칼날이 왜 보수세력들에게는 그렇게 무딘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반발했다. 청와대는 "성장율, 물가상승율, 수출 다 좋은데 왜 민생을 싸잡아 도탄이라고 하느냐, 대통령이 정치에만 올인하고 국정 마무리를 외면한다고 하지만, 이는 증거도 없는 감정적 비방이다"라고 비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월 17일 브리핑에서 "당신들이 왜 나를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느냐. 진짜 민주주의, 진짜 진보는 나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성장율, 물가상승율의 안정,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의 이윤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들의 삶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참여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이런 인식은 지금 민주통합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한명숙, 문성근, 박영선, 문재인, 이인영, 김부겸, 박지원 최고위원도 비슷하기에 걱정스럽다...ㅠ)

물론, 집필진은 참여정부만을 다룬 것이 아니었다. 제도권에 진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파 문제와 민족 문제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추진하고 있지 못하고, 정작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이야기하는 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의 조합주의적 이해만을 대변한 채 정책 없는 투쟁 단체로만 각인되어 있는 민주노통, 여전히 시민의 참여 없는 시민운동 등을 모두 다룬다.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못하면 진보,개혁 세력의 미래는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책의 1부. [진보,개혁 위기의 현상과 진단]에서는 진보,개혁의 위기가 단순히 담론이나 이념의 퇴조가 아니라,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부동산 폭등, 사교육비는 치솟고 빈부격차는 심해져 가고만 있고 참여정부를 비롯한 시민단체 등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음을 당사자들이 스스로 고백한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개혁세력은 무능했고 진보진영의 현실적 대안은 부족했다. 민주화를 이끈 세력은 이제 기득권층이 되어 일상에 매몰되었다. 민주화 20년, 민주세력 집권 9년이 되었지만 민주화의 성과는 어디로 갔으며, 그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라고 말했다.(스스로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진보,개혁의 위기는 느껴진다. 위기 진단 대담에 참가한 이정우 경북대 교수,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주장하는 위기의 내용과 원인, 진단과 대책, 전략이 서로 다르다. 당연히 2007년 이후 이들의 움직임과 행동반경도 서로 달랐고 지금도 전혀 다르다...ㅠ)


2부 [진보,개혁세력의 실상]에서는 2000년 16대 총선 때부터 의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386 정치인들이 세대교체의 축이 되고 정치개혁의 희망봉이 될 것이라 각광받았지만 17대 국회에서는 '가장 실망스러운 집단 1위'로 꼽히고 있음을 지적한다. 2004년 4월 15일, 국회 안으로 화려한 발걸음을 내딛었던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서민과 노동자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교조, 시민운동 단체, 대학의 현실과 무능력도 함께 비판하고 있다.(이 챕터에 대한 대담 참여자인 김혜정 한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의 진단과 처방도 역시 크게 다르다...ㅠ)

3부. [보수의 부상과 혁신]에서는 진보,개혁세력의 퇴조와 맞물려 보수주의자들이 속속 집결하고 보수셩향의 학자들이 커밍아웃을 외치고 있음을 분석한다. 2004년 11월부터 자유주의 연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이 출범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부상하게 된 이유와 보수담론이 생산,유통되는 동학을 살펴본다.

 

 

4부. [진보의 10대 의제]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집중해야 할 10대 의제를 제시한다. 조세개혁, 부동산, 교육정상화, 재벌개혁, 고령화/저출산, 소외된 소수, 건강 불평등, 생태주의, 빈곤문제 해소, 비정규직 해소 등이다.


5부. [진보의 전략은 무엇인가]에서는 진보,개혁의 위기가 진보,개혁에 대한 환멸과 서민, 중산층의 삶의 위기를 초래했음을 지적하면서 반대와 투쟁만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거 방식 대신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실천적 대안을 내놓아야 함을 말한다. 그러면서 진보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진보를 확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방향과 2007년 당시 논의되고 있는 전략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첫째,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농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진보의 주체를 확장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 진보가 주장이나 선언을 넘어선 일상적인 삶에서 체화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 사회적 대타협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넷째, 연대의 대상과 공간을 동아시아로 확대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집필진의 참여정부 4년(또는 5년)과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위기'라는 진단에 대해서는 동의히지만, '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위기'의 원인이 다르니 '대책'도 다를 수 밖에 없지만...
나는 '위기'의 원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적인 한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선 과정 자체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가 하나의 '준비된 조직'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톨령의 후보 선출 과정 자체가 역동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후보 선출 이후 '후보 흔들기'가 민주당 내에서 벌어졌고 야권단일후보로 나서지도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노무현 개인이든, 측근이든, 지지세력이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고 대톨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뿐 아니라 정권 준비주체들도 진보개혁 진영 전체라는 관점보다 '권력 획득'이라는 구태 관점에서 5년의 집권플랜을 짜고 인사정책 등을 펼쳤기 때문인 것이다. 즉, 진보개혁 진영이 서로 '전체로서 하나의 세력'이라는 관점이 없었고 뿔뿔이 흩어진 채 각개약진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위기의 원인은 '참여'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명칭을 '참여정부'로 표방했지만, 전혀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보개혁 세력 전체를 참여의 대상이자 주체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마저 일부를 제외하고는 진보개혁 추진에서 참여동력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노무현 개인과 집권세력의 역사의식과 철학, 정책, 비전, 전략의 부재인 것이다.(그런 면에서 지금 읽고 있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너무도 180도 대비된다...ㅠ)
나는 민주주의든, 총선과 대선의 승리든, 정권교체 이후 광범위한 진보개혁의 추진에서 '참여'의 문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99% 국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 지원하지 않고서는 지난 60년 동안 한국사회를 그물처럼 장악하고 있는 1%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여 진보개혁을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에 나타나 있는 정도의 참여정부의 평가는 어쩌면 국민들 사이에서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참여정부에서 MB정권에게 넘어간 뒤로는 참여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을 한 때 '폐족'이라고까지 지칭되었다. 너무 심하게 대했던 시절도 있었다.(나도 당시 그런 보통사람의 하나였다.) 그런 인사들을 정치적으로 살려준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MB정권이었다. MB정권의 무지막지한 공격과 불편부당한 수사로 인해 고통받던 노 전대통령은 자신의 죽음으로 참여정부의 인사들과 성과를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그 분의 죽음으로 많은 국민들과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못미'를 느끼면서 들고 일어났고 참여정부 인사들은 그런 분위기를 타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인사들에 평가에 있어서 나는 한명숙, 문재인, 이인영, 박영선, 박지원, 유시민, 천호선, 안희정, 이광재 등 참여정부의 공과에 일정 책임이 있는 인사들을 무조건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한미FTA든, 빈부격차 심화든, 부정부패든, 집회시쉬의 자유 탄압이든...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에서 시행한 정책이 잘못된 것이면 지금이라도 솔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하고 공개 반성하고 참회하고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 국민들에게 약속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자신의 위치에서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아주 악질적으로 나쁜 것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발뺌하고 둘러대는 것이다. 국민들의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 자는 정치인 자질은 커녕 기본적인 인격적인 자질도 없는 인간일 뿐이다. 

[ 2012년 1월 25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반 일리히의 유언
데이비드 케일리.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서범석 옮김, 박홍규 감수 / 이파르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 내가 읽은 마지막 책이고 작년 10월 중순 공부모임에서 세미나를 진행한 것이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가 한창이었고 나는 책은 읽었지만 박원순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때라 세미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에서 <학교 없는 사회>와 <성장을 멈춰라> 2권을 읽은 상태였다. 따라서 책을 읽는 중에 이반 알리히와 대아비드 테일리가 거론하는 다른 책, 즉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그림자 노동> 등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서평을 쓰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급하게 이반 일리히의 다른 저작 중에서 앞에서 얘기한 3권을 서점에 주문하여 연말까지 읽었고 순차적으로 각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 그나마 3권을 읽으면서 이반 일리히의 철학과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나니 이 책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책에 대한 서평 쓰기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다른 저작인 <자각의 축제>, <불능의 전문가 Disabling Professions>, <유용한 비고용의 권리와 그 전문적 적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and it's Professional Enemies>, <젠더 Gender>, , ,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In the Vineyard of the Text>, <과거의 거울 속에서 In the Mirror of the Past>은 국내에 번역,출간된 책이 없어 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추가로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란다.

1970년대의 다수 저작에서 일리히는 근대 산업생산사회가 사회 전분야를 장악함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관계 없이 제도화, 권력화, 전문화를 가져왔고 결국 인간의 자립적, 자존적인 삶을 파괴시키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학교교육이라는 제도는 학습과 배움을 제도화,상품화하여 인간이 스스로 배우고 학습하는 능력을 훼손하고 있고 수송과 교통은 인간의 이동을 제도화하여 인간의 이동능력을 제한하고 에너지의 노예로 만들었으며, 병원과 의료시스템은 건강을 제도화하여 결국 인간이 스스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건강을 유지관리할 능력을 빼앗고 고통, 질병,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율행위를 불능으로 만드는 것에 더하여 병원이 병을 만듬으로서 '의료의 복수'를 가져왔다. 경제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체제의 이념에 관계 없이 대량 생산체제를 가져오게 하여 인간 공동체와 환경을 파괴하고 제도화와 권력화를 가속화시키면서 전문가와 기술전문관료에 대한 인간의 의존을 심화시키게 되었다. 이는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상품화, 서비스화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리히는 제도화, 권력화, 전문가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성장'을 멈추고 인간들 스스로 제도화, 전문가화에 한계를 설정해야 하며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공생의 사회로 나가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일리히는 1980년대 들어 자신이 1970년대 내내 고민하고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제도화, 권력화, 서비스화라는 '근대성'의 출발점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여 '근대성'이 결국 서구사회의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의 근현대란 "기독교의 타락한 돌연변이, 즉 교회가 권력을 잡고 제도를 만들어 그것에 인간을 철저히 적용시켜 제도를 숭배하게 만든 탓"으로 생겼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가 갖고 있던 '벗에 대한 환대와 희망'이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받은 뒤 변질, 타락하기 시작해 이웃을 맞아들이는 환대와 관용이 사라지고, 법과 기술, 제도와 물질의 물신화로 나아갔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은 본래 최선이었으나 권력화 과정이 계속되면서 타락과 최악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 사회를 기독교의 타락으로 보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일리히는 이 문제를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와 사마리아인'에 대한 분석으로 지적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5~37)라는 질문에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에리코로 가던, 강도에게 습격당해 옷도 빼앗기고 반죽음이 된 채 길가에 버려진 유대인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 유대인 남자를 보살핀 사람은 성직자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유대인 남자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운 후 상처를 치료하고 그를 가까운 여관에 데려가 완쾌할 때까지의 숙박비도 지불했다. 오늘날 상황으로 보면, 팔레스타인인이 유대인을 도운 것이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보살피려는 민족적 선호로부터 자유로웠고 그래서 자신의 적을 돕는 반역행위를 저질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선택의 자유를 행사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서구인들은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누가 내 이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적이나 마찬가지인 유대인을 도와주었으며, 이는 ‘내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한 모범이 되는 행위이다.

 

일리히는 예수가 말한 이웃 관계는 기대하거나, 요청되거나 의무 지워지는 것이 아니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할 의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서로간에 자유로이 창조되는 것으로서의 이웃 관계란, 타인과 타인의 육체를 통해 맺어지고, 우리가 결정함으로써 생겨나며, 예수는 이를 이웃으로 행동하는 것이라 일컬었다.

오늘날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사회의 합리적인 통치 수단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이용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일리히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으로,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무력함과 비폭력을 꼽는다. 이는 타락한 자나 조롱 또는 무시받는 자들도 갖고 있는 것들이다. 이에 반해 현실의 기독교 교회는 생산 및 소비 지향의 유혹에 넘어갔고, 대형화와 관료화, 신도 회원제를 통한 확장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복음은 제도화되었고, 사랑은 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바뀐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사례를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라고 표현한다. 

 
일리히는 우주 만물과 모든 생각 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보는 세계관이 훼손된 것과 때를 같이해 근대가 시작되었음에 동의한다. 신과의 관계 속에 사물을 이해해야만 자연은 그 생명을 되찾을 수 있다. 인간은 오랜 옛날 추위로부터 살아남고, 거친 세상을 걸어가기 위해 도구를 이용했다. 신이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흉내내서 인간도 그들의 조건에 맞춰서 사물을 만들게 된 것이다. 도구의 근대적 개념이 세계를 우연성의 정신으로 보는 데서 기원하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도구의 시대는 시스템의 시대로 넘어갔다.
 
 
이 책은 사제직을 떠났지만 평생 기독교 본래의 모습을 염원한 신앙인으로서의 이반 일리히가 서구 근대 세계의 단초를 제공하고 주도해온 기독교에 대한 절절한 바람과 다양한 견해들을 보여준다.(그는 사회적 공공성의 믿음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참된 신앙인이었고 저 흔해빠진 제도 교회인이 아니라 독실한 자유신앙인이었다.) 또한 이전의 책들에서 제시한 학교와 병원 의료, 교통 체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리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열정과 희망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열정과 희망은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일리히가 좋아했던 파울 첼란의 시 구절‘미래의 북녘 강에서’의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그가 2002년 점점 커져가는 왼쪽 뺨의 종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라디오 진행자와 진행한 대담을 엮은, 그의 마지막 육성을 담은 책이다. 데이비드 케일리는 1990년대 초에 한 차례 대담집으로 엮었던 프로그램을 1997년 이후 다시 진행하면서 대담을 바탕으로 원고를 만들고 인터뷰를 추가하여 이 책을 엮었다. 이 책에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오늘날 지구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커다란 토대를 제공했던 서구 근대 세계와 기독교를 바라보는 이반 일리히의 입장과 견해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리히가 평생에 걸쳐 산업문명을 비판해온 자신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가 이전까지 썼던 여러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근본’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를 평생 고뇌하고 연구해온 한 독립적이고 예리한 지성인의 면모가 녹아 있다.


역자는 새삼 이반 일리히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것은 "그가 서구 세계가 주도해온 산업화와 개발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에 힘을 쏟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경쟁과 개발이라는 괴물성에 신음하는 한국사회에 갖는 의미가 실로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에는 기독교 신앙의 변질과 타락이 있으며, 제도화를 비판하고 절제할 것을 주장한, 자연과 생명의 회복이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핸드폰과 정보기술, 그리고 온갖 서비스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배하다시피 하는 사회에 이반 일리히의 삶이나 그 주장은 고리타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속도와 편리성이 주는 비인간화를 경고한 일리히의 외침은 헤아릴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어떤 기성의 학문적, 사상적 틀도 단호히 거부하고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산업사회의 모순구조를 파헤쳐온, 부드럽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 일리히는 전 세계가 공생공락의 사회를 이룩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중요한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이며, 언제까지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면모와 향기를 품고 있다. 
 
일리히는 나에게 더 이상 경제성장, 기술의 진보, 제도화와 전문화, 대량생산, 가치의 서비스화라는 이데올리기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간에게 있어 희망은 자율적, 자립적이고 공생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2002년 고인이 된 이반 일리히씨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 2012년 1월 23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조선은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 일제시대 이후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무의식처럼 뿌리 깊게 남아있는 생각이다. 나 역시 초중고를 다니면서 그렇게 교육 받았고 언론과 책, 드라마, 각종 자료를 통해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처음 의문을 가지게 한 것은 대학 초년 시절에 읽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에 당파 싸움이 없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이후 이해관계나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별개의 집단을 구성하여 서로 간에 이견이 생기거나 다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당파 싸움'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당파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고 조선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당쟁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 역사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의 조선당쟁사를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현대정치사가 오버랩되었다. 그만큼 인간의 속성, 정치나 정당의 성격과 구조, 구조적인 모습, 한반도라는 동질성, 문제의 뿌리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조선에서 달파란 말이 사용되기 전에 스스로 이를 일컫는 말이 '붕당'이었다고 설명한다. 1392년 조선 건국 이전 고려 말기에 한반도에서는 신흥사대부가 고려의 변화를 꿈꾸었다. 신흥사대부 중 역성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정도전, 조준 등이었고 온건개혁세력은 정몽주, 길재, 이색 등이었다. 역성혁명 이후 건국공신 중심의 훈구파가 집권과 동시에 개혁세력을 숙청하였고 조선 건국을 반대한 온건개혁파의 나머지 세력은 중소지주라는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향촌 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힘썼다. (8.15 해방 후 상황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키워진 두 개의 정당, 즉 이승만의 독립촉성회와 한국민주당의 뿌리가 모두 자주계급이란 점에서 조선의 훈구파-사림파 구도 또는 조선 말기의 노론파-소론파와 연계성이 짙다.)

조선 건국 후 약 80~9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공신 집단은 훈구파는 부패하기 시작했고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 때부터 온건개혁파는 훈구파는 전횡과 부패에 환멸을 느끼는 임금과 백성들의 지지를 업고 하나의세력을 형성하여 '사림파'로 등장했다. 훈구파는 당연히 사림파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고 신진세력을 공격하였다.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10년의 갑자사화, 중종 14년의 기묘사화, 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는 모두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안 것이다. 사림파는 한 번 사화를 당할 때마다 수 십명씩 처형당하는 등 극심한 타격을 입었으나 조금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재기에 성공하여 제14대 임금 선조 때에 이르면 드디어 훈구파는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된다. (이 부분도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이 생각나게 한다. 조금 다른 점은 김영삼의 경우 줄곧 야당이었다가 여당과 손을 잡고 정권을 획득했다는 것...)

사림파는 훈구파의 탄압에 맞서 싸울 때는 하나의 정치세력이자 동지였지만 훈구파를 물리치고 집권당이 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색당쟁'이라고 부르는 조선의 정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집권이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정치사에서 흔하다. 살림하고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집권 후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동인과 서인은 이념과 정책이 서로 달랐다. 이념이나 정책으로 볼 때, 동인의 뿌리는 퇴계 이황으로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시작되었고 서인의 뿌리는 율곡 이이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시작되었다. 동인과 서인의 정책의 차이는 토지를 둘러싼 싸움이 컸다. (야당이 분열하는 부분은 한국현대사와 다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분열하면서 군사독재 정권이 연속집권하도록 만들었다. 이 점에서 한국현대사의 야당은 조선시대 사림파 만도 못했다.)


사림파의 집권 이후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지고 동인과 서인이 각각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자세한 상황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사림파가 집권 이후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계기가 정5품의 '이조정랑'이라는 벼슬자리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조선시대의 인사권은 삼정승이 아닌 이조에 있었는데 이조판서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관료들에 대한 감찰과 탄핵권한이 있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리 추천권은 이조의 낭관(?官), 즉 '이조정랑'에게 전권이 있었던 것이다. 이조전랑의 후임자는 전임자에 의해 추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조전랑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대부분 판서와 재상까지 승진할 수 있는, 출세가 보장된 자리였다. (이런 면에서는 조선시대의 인사정책이 현대의 국가체계보다 합리적으로 보인다. 역사학자들은 조선의 정치구조가 합의체적인 운영을 추구했다고 말한다. * 아래 그림 : 시기별 정당 분포도)

 

저자는 조선 중기까지의 붕당 정치는 조선의 체제에 긍정적인 기능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각 붕당은 상대 붕당과 상호 공존의 틀 안에서 이념과 정책을 둘러싸고 경쟁을 하였으며 양반들의 계급적 이익에 기초해 있다는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체제와 백성들의 삶에 나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건국 이후 300여년이 지난 제18대 임금 현종 재위 중인 17세기 후반에 '예송 논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당쟁은 그러한 붕당 간의 공존의 틀을 깨트렸다. 당시 여당이었던 남인은 야당이었던 서인을 인정하지 않았고 서인 또한 남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붕당의 이유가 공허하기도 했을 뿐더러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삼았고 공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현대 한국 정치집단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여러가지 다른 시대적인 변화도 있겠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상대 정치집단을 적으로 삼고 죽이려고 하는 것은 일방, 특히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여당세력일 뿐이다. 현대 정치라고 불리우던 기간이 60년 정도로 짧기도 하지만....)

현종 이후 제21대 임금 영종 즉위까지 공멸의 당쟁은 이어졌다. 영조와 다음 임금인 정조 재위기간 까지는 공멸의 당쟁을 공존의 당쟁으로 변화시키려는 '탕평'의 시대였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이유는 격화되는 당쟁의 뿌리인 붕당의 재생산에 대처하여 국가 차원에서 고급인력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조의 재위기간을 짧았고 급작스러운 정조의 죽음은 조선을 최악으로 이끈 세도정치라는 극단적 반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정조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정조의 개혁은 역사적으로 볼 때 구조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조선 후기 정조의 정치적 과제는 국왕이 남인들과 손을 잡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 들어 새롭게 등장한 신흥세력과 손잡고 양반 독점의 정치 구조를 허물어야 했던 것이다. 정조는 서얼들을 규장각에 등용하는 등 개혁적이기는 했지만 정조 자신이 사대부 중심의 정치 구조 자체를 타파하려는 생각은 부족했다. 


저자는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토리당과 프로테스탄트 중심의 휘그당이 나타난 17세기 후반을 정당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웃기는 이야기'로 평가한다. 그는 이미 그 600년 전에 중국에서는 이미 가진 귀족 관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구법당과 못 사진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법당이 분립되었음을 지적한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선에서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했던 15~16세기부터 정당의 맹아는 시작되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당초 이 책의 발간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이었던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했을까? 저자는 이런 주장을 단호하게 배격한다. 조선은 중국의 청나라와 일본의 무사정권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자졌듯이 조선 역시 봉건시대에서 근대시대로 넘어가는 사회적 변화를 정치가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공멸 수준의 당쟁과 세도정치는 그렇게 무너져가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성의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반대로 조선의 당쟁을 옹호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조선에서 정당이 일본보다 일찍 발생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의 존재가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당쟁이 발생한 초기에 동인들과 서인들이 서로의 부패를 감시하는 기능을 했던 것등 여러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즉, 저자는 조선의 당쟁을 한마디로 "긍정적이다" 또는 "부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긍정성과 부정성이 시기 구분에 따라 달라지는데 특히 당파끼리 공존을 추구할 때 긍정적이고 독존을 추구할 때 부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당파 싸우 망국론'을 주도적으로 생산하고 확산시킨 세력이 일본이었음을 지적한다. "조선 정치사를 압축하는 한 개념으로 '당쟁'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학자는 일본인 시데하라 히로시였다. 그는 1900년 학정참여관으로 조선에 와서 이른바 조선의 교육개혁을 단행한다면 명목으로 교육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1907년에 펴낸 <조선정쟁지>에서 당쟁을 조선 정치의 특징이라고 규정했다. 히로시는 조선시대의 정당들을 ,주의를 가지고 서로 존재하는 공당이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서로를 배제하는 사당'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인의 특성임을 규정짓는 '당파성론'은 일본인의 이런 정치적 목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p.455) 일본은 조선이 당쟁 때문에 망했다는 생각을 한국인에게 주입시켜 망국의 책임을 침략자들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에게 돌리게 하려는 통치 정책은 하나로 조선사를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조직적이고 한국사 지하자원을 고안한 것은 물론 조선총독부였고 이를 이론화한 인물들은 총독부 산하 소속의 학자들이었다. 1924년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이 문을 연 다음에는 경성제대 소속의 교수들이 이를 체계화했다.


저자는 조선의 당쟁사를 통해 현대의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공존의 정치"라고 말한다. 특히 현대 한국정치사가 뿌리깊게 각인시켜 놓은 지역차별과 사상통제를 통한 '독존'의 위험을 지적한다. 조선 붕당정치의 교훈은 독존을 추구하는 정치 체제가 파멸시키는 것은 상대 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존 정치 체제는 특정 정당, 정치세력이나 특정 지역을 넘어 조직 자체, 즉 나라와 민족과 국민 전체를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지역갈등과 사상통제, 그리고 '독존'을 추구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수구우익 언론, 재벌 등 기득권층이 새겨야할 것이다.

창피한 사실이지만 나는 그동안 한국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한국사, 특히 조선사와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서구역사와 서구 학자, 그리고 서구의 이론에서 크게 배우는 것이 있는 만큼, 같은 뿌리일 수 밖에 없는 조선의 역사와 인물, 사건과 정책에서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 나이에 바보같긴 하지만...ㅋㅋㅋ

[ 2012년 1월 22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 노동 - 이반 일리히 전집 5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산업생산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1970년대 초반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Energy and Equity>, <병원이 병을 만든다 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isis, and The Expropriation of Health >, <성장을 멈춰라 Tools for Conviviality>를 연속으로 발간했다. 그는 저작들을 발간하면서부 근대사회의 상품화, 산업화, 서비스화, 제도화, 근원적 독점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학습의 제도화에 대한 한계, 건강의 의료화에 대한 한계, 이동의 에너지화/수송화에 대한 한계, 위험의 보험제도화에 대한 한계, 노출된다 매체의 집중화에 대한 한계, 전문가의 손에 의한 사회사업이나 관리의 제도화를 용인하는 것에 대한 한계이다.
그는 단순히 소유의 구분 즉, 마르크스주의식 '사적 소유 대 사회적 소유'에 근거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구조 속에서도 인정하고 넘어가버린 상품화, 산업생산사회, 대량생산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산업생산과 대량생산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제도화를 가져오고 전문가와 기술관료의 근원적 독점을 야기하고 사람들의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저자는 산엄생산체제와 제도화, 전문가화의 한계를 주장하였다. 그 기간을 지나면서 저자는 고정적인 경제와 그림자 경제 사이의 상호보완성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면서 그림자 경제와 그림자 노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산업생산사회는 노동에 있어서도 '노동자애 대한 소외' 이외에도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20세기 말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한쪽에서는 '노동의 종말'이,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의 유연화와 비정규직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이전부터, 즉 산업생산사회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 근본적인 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림자 노동'이다.

저자는 임금과 화폐에 근거한 산업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그 이전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성격의 노동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은 임금도 지불되지 않고 가사가 사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닌 일종의 노역이다. 저자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과 무관한 새로운 가사영역애서 행해지는 주부에 의한 이러한 그림자 노동은 실제로 가족을 위하여 임금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임금을 획득하는 임금노동자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사회는 그림자 노동을 계속 은폐해왔다. 일리히는 이렇게 은폐된 그림자 노동은 곧 지불되지 않는 활동이며, 여성에게 어쩔 수 없이 부과된 새로운 형태의 예속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품집약사회의 ‘경제인’은 ‘노동자’와 ‘주부’로 창조되었고, 이러한 성분할을 토대로 ‘경제인’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산업인’이 창조되었다. 남성과 여성에게 특화된 노동이란 산업사회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분열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에게 상이한 경제적 성질을 부여한 두 종류의 노동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제인’은 결코 성적으로 중성일 수 없다! 결국 여성의 활동이 갖는 가치를 하락시키고 남성에게는 특권을 부여하는 활동을 유지시킨다. 그림자 노동은 사회의 형식적인 경제를 뒷받침하고 인간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뺏는다. 이를 토대로 그림자 노동은 성에 근거한 역할분담의 경제적 구별을 정당화한다. 이때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산업노동자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멜빵 달린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것은 정당한가?

근현대 산업사회를 돌아보자. 자원의 희소성에 근거한 근대 산업사회는 소유로부터 만족을 구하는 상품집약사회의 도래를 의미했다. 상품집약사회에서는 반생산적인 상품들을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사람들, 자칭 봉사자들의 봉사를 ‘반드시’ 소비해야하는 사람들인 ‘경제인’이 활개를 치게 된다. 재빠른 전문가들은 전문적 관리로 공간, 시간, 재료, 기획을 모두 생산·소비에 잘 기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편성하고 규격화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경제인’으로서 돈을 벌고 현명하게 소비해야만 하는 ‘경제인’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우리는 ‘선진국 따라잡기’, ‘고용창출’, ‘1인당 소득 향상’ 혹은 전문가의 관리로부터 이루어지는 ‘자조’,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경제인’인 우리는 가사, 교육, 보육, 통근과 같이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일을 임금노동으로 바꾸는 방법을 논의하는데 더욱 주력한다. 
결국 임금을 위한 고용을 합법화하고 자율적인 활동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상품집약사회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을 지향하는 문화를 방해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제성장, 발전이 결국 ‘공용commons’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제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에 자극을 준다는 ‘수요’라는 단어를 의심하라! 또한 ‘소비로부터 스스로 절연하여unpluged’ 발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라."


이 책은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책의 내용이 기존에 발간한 그의 저작의 주장이나 논리와 다소 벗어난 때문에 더 그러했다. 그나마 일리히의 지속적인 관심사인 자립적이고 자존감을 위한 사회와 삶의 연장선 상에서 그림자 노동에 대해 다루었기에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래사회에서는 우리가 인간활동애 있어서 상품화와 서비스화, 그리고 대량생산체제와 전문가화, 제도화와 독점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찾아 방향을 바꾸는 것만이 현재의 시스템과 이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인상깊은 문장
- 산업사회란 그 희생자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사회이다. 19세기의 여성은 종획되어 그 자위를 박탈당하고 상처 입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사회 전반에 타락의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감상적인' 동정의 대상을 이 사회에 제공했다. 억압은 언제나 그 희생자에게 사회의 더럽혀진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그 희생자에게 관리를 통하여 억압에 협력하는 대상이 될 것을 강요한다. (p.179)

[ 2012년 1월 19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