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 - 이반 일리히 전집 5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산업생산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1970년대 초반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Energy and Equity>, <병원이 병을 만든다 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isis, and The Expropriation of Health >, <성장을 멈춰라 Tools for Conviviality>를 연속으로 발간했다. 그는 저작들을 발간하면서부 근대사회의 상품화, 산업화, 서비스화, 제도화, 근원적 독점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학습의 제도화에 대한 한계, 건강의 의료화에 대한 한계, 이동의 에너지화/수송화에 대한 한계, 위험의 보험제도화에 대한 한계, 노출된다 매체의 집중화에 대한 한계, 전문가의 손에 의한 사회사업이나 관리의 제도화를 용인하는 것에 대한 한계이다.
그는 단순히 소유의 구분 즉, 마르크스주의식 '사적 소유 대 사회적 소유'에 근거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구조 속에서도 인정하고 넘어가버린 상품화, 산업생산사회, 대량생산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산업생산과 대량생산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제도화를 가져오고 전문가와 기술관료의 근원적 독점을 야기하고 사람들의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저자는 산엄생산체제와 제도화, 전문가화의 한계를 주장하였다. 그 기간을 지나면서 저자는 고정적인 경제와 그림자 경제 사이의 상호보완성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면서 그림자 경제와 그림자 노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산업생산사회는 노동에 있어서도 '노동자애 대한 소외' 이외에도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20세기 말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한쪽에서는 '노동의 종말'이,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의 유연화와 비정규직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이전부터, 즉 산업생산사회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 근본적인 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림자 노동'이다.

저자는 임금과 화폐에 근거한 산업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그 이전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성격의 노동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은 임금도 지불되지 않고 가사가 사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닌 일종의 노역이다. 저자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과 무관한 새로운 가사영역애서 행해지는 주부에 의한 이러한 그림자 노동은 실제로 가족을 위하여 임금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임금을 획득하는 임금노동자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사회는 그림자 노동을 계속 은폐해왔다. 일리히는 이렇게 은폐된 그림자 노동은 곧 지불되지 않는 활동이며, 여성에게 어쩔 수 없이 부과된 새로운 형태의 예속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품집약사회의 ‘경제인’은 ‘노동자’와 ‘주부’로 창조되었고, 이러한 성분할을 토대로 ‘경제인’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산업인’이 창조되었다. 남성과 여성에게 특화된 노동이란 산업사회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분열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에게 상이한 경제적 성질을 부여한 두 종류의 노동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제인’은 결코 성적으로 중성일 수 없다! 결국 여성의 활동이 갖는 가치를 하락시키고 남성에게는 특권을 부여하는 활동을 유지시킨다. 그림자 노동은 사회의 형식적인 경제를 뒷받침하고 인간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뺏는다. 이를 토대로 그림자 노동은 성에 근거한 역할분담의 경제적 구별을 정당화한다. 이때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산업노동자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멜빵 달린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것은 정당한가?

근현대 산업사회를 돌아보자. 자원의 희소성에 근거한 근대 산업사회는 소유로부터 만족을 구하는 상품집약사회의 도래를 의미했다. 상품집약사회에서는 반생산적인 상품들을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사람들, 자칭 봉사자들의 봉사를 ‘반드시’ 소비해야하는 사람들인 ‘경제인’이 활개를 치게 된다. 재빠른 전문가들은 전문적 관리로 공간, 시간, 재료, 기획을 모두 생산·소비에 잘 기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편성하고 규격화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경제인’으로서 돈을 벌고 현명하게 소비해야만 하는 ‘경제인’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우리는 ‘선진국 따라잡기’, ‘고용창출’, ‘1인당 소득 향상’ 혹은 전문가의 관리로부터 이루어지는 ‘자조’,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경제인’인 우리는 가사, 교육, 보육, 통근과 같이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일을 임금노동으로 바꾸는 방법을 논의하는데 더욱 주력한다. 
결국 임금을 위한 고용을 합법화하고 자율적인 활동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상품집약사회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을 지향하는 문화를 방해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제성장, 발전이 결국 ‘공용commons’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제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에 자극을 준다는 ‘수요’라는 단어를 의심하라! 또한 ‘소비로부터 스스로 절연하여unpluged’ 발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라."


이 책은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책의 내용이 기존에 발간한 그의 저작의 주장이나 논리와 다소 벗어난 때문에 더 그러했다. 그나마 일리히의 지속적인 관심사인 자립적이고 자존감을 위한 사회와 삶의 연장선 상에서 그림자 노동에 대해 다루었기에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래사회에서는 우리가 인간활동애 있어서 상품화와 서비스화, 그리고 대량생산체제와 전문가화, 제도화와 독점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찾아 방향을 바꾸는 것만이 현재의 시스템과 이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인상깊은 문장
- 산업사회란 그 희생자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사회이다. 19세기의 여성은 종획되어 그 자위를 박탈당하고 상처 입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사회 전반에 타락의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감상적인' 동정의 대상을 이 사회에 제공했다. 억압은 언제나 그 희생자에게 사회의 더럽혀진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그 희생자에게 관리를 통하여 억압에 협력하는 대상이 될 것을 강요한다. (p.179)

[ 2012년 1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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