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 40년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엮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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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이하여 봉하마을에 혼자 내려갔을 때 상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에 국정홍보처가 준비한 자료로써 부동산, 교육 등 몇 권을 한꺼번에 구했다가 이번에 교육 관련 책들을 연달아 읽으면서 읽을 기회가 온 셈이다.

나 역시 노 전대통령 개인에 대한 애잔함과 '지못미'가 적지 않다. 더군다나 그 분이 나름 노력하고 고생하는 기간 동안에 나는 내 한 몸 잘 살아보겠다고 미친듯이 회사를 운영하던 때라 더 그런 면도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감정은 사적인 것이고 그 분이 몸담았던 참여정부는 공적인 것이리라. 사적인 감정을 덮어두고 공적인 기준에서 참여정부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여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조중동 등 수구세력들이 참여정부에 대해 집권 내내 객관적이자 못한 공격과 폄하를 계속한 것이 오히려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자체를 어렵게 만든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 전대통령이 이성을 잃은 공격과 참여정부의 과오를 온 몸에 짊어지고 이승을 떠난 관계로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면이 크다고 본다. 양 측면에서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평가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출판사가 "최고의 교육 전문가들이 쓴 국내최초의 교육 정책 보고서"라고 자평하지만 난 별로 동의할 수 없다. 지난 2007년 9월 초부터 정부정책 포털 국정브리핑(www.korea.kr)에 연재된 <실록 교육정책사> 시리즈를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출판사는 "국내 교육 전문가로 조직된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에서 교육 정책에 관여한 전?현직 관료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정부기록을 일일이 확인하고, 기존 연구 성과를 종합하는 등 방대한 자료를 다각도로 분석해놓았다. 폭넓은 자료조사와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은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 교육 40년≫은 지난 40년 동안의 교육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과 분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 있는 안목을 제시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라고 국정홍보처를 추켜세웠지만 나로서는 (심하게 표현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보고서라 말하고 싶다.(보고서 작성 참가자로는 국정홍보처 직원, 전언론사 기자 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아무튼 참여정부 마지막 해에 국정홍보처와 교육부가 주도한 보고서이므로 참여정부의 자체 평가서라고 인정하고 읽었다.(청와대 인사나 관련자들이 얼마나 보고서에 개입되어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고...)

저자들은 '대한민국 교육정책사는 1995년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안 이전과 이후로 시대구분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문민정부 이전의 교육정책은 산업화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암기위주의 교육이 기본 정책이라면 문민정부 들어서부터 정보화사회와 지식기반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 기본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국민의정부와 마찬가지로 문민정부의 그러한 교육철학과 정책을 유지하고 이어갔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 교육의 핵심적인 사안을 대학입시, 고교평준화, 사교육(과외)정책으로 정하고 문민정부 이후 세 가지 금지정책('3불 정책')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말한다. 물론 본고사와 내신 도입은 1980년 신군부가 결정한 것이고 고교평준화는 1974년 박정희가 도입한 것이다. 저자들은 문민정부가 본고사 금지를 '명문화'했고 내신을 '강조'했으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내신의 제도화'에 주력했다고 자평한다.(그럼 별로 한 것이 없다는 걸 자인하는 것인데 책속에서는 교육부분에서 마치 많은 것을 이룬 것처럼 나열되어 있다. 쩝...)

이들은 대학입시가 자주 바뀌는 이유를 "역대 정권이 국민들의 뜨거운 교육열을 등에 엎고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수단으로 대학입시 제도를 수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가장 핵심문제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구조"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학자율에 의한 특성화, 다양화 전략으로 대학서열구조를 유동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참여정부는 대학개혁을 시도하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 되었다.)
그리고 과외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대다수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교육체계를 무시할 만한 '비빌 언덕'이 없기" 때문이며 과외는 신분상승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외는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며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자 "입시열병은 무지의 소산"임을 지적하고 미래사회는 '평생학습사회'가 진화되고 세계 각국의 대학이 학점 교차인정 등의 방식으로 통합될 것이기 때문에 머지 않은 장래에 과외와 입시가 '현저히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사교육과 공교육의 질은 반비례"하기 때문에 "공교육이 경쟁력을 갖추어야"한다며 "학교와 교사의 책무성을 제고해야"한다고 결론 내린다.(그럼 학부모들에게 '과외는 멍청한 짓'이라고 홍보만 하고 학교와 교사의 책임성 교육을 강화시키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
또한 국내 대학이 경쟁력이 없는 이유를 역대 정부가 사립대학의 수익성을 보장하려는 제도를 도입했고 대학들이 대학서열구조에 안주하면서 "가르치는 경쟁이 아니라 뽑는 경쟁"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정부의 책임이나 역할은 없다?)

이들에게 있어서 우리나라 교육은 '4대 쟁점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4대 쟁점으로 대학입시 정책, 고교평준화 정책, 사교육비 경감정책, 그리고 인적자원 개발정책을 제시한다. 문민정부에서부터 참여정부까지 이 네 가지 쟁점들이 어떤 과정을 겪었고 어떻게 이해관계자들로 인해 망가져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결론은 '3불 정책'으로의 귀환일 뿐이다.
교육문제에 있어 4대 쟁점에 대한 각각의 결론은 '이상적인 원칙론'이다. '대학입시정책'의 경우 참여정부는 등급을 9등급으로 넓게 한 학교생활기록부의 비중을 높이고 수능 비중을 낮추었다고 자평하면서 궁극적으로 정부가 입시에 관여하는 '국가시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영삼 정부는 '대학설립준칙제도'를 도입하고 '학부제'를 시도했으며,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는 'BK21'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대다수가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 '국립대 구조조정'은 김대중 정부가 일부 추진했고 '서울대 법인화'는 참여정부가 시도했다가 커다란 반발을 받아 포기했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도입 이후 지금까지 '3불 정책'의 이름 아래 큰 틀을 유지해 왔으나 평준화에 따른 질 저하를 방지와 교육의 다양성, 수월성을 목적으로 1992년 문민정부 들어 도입한 '특목고'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들어 '자사고'까지 확대되었으나 '명문대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
2000년 '과외금지'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정을 받은 이후 학원과 사교육은 어마어마하게 확대되었다. 이에 대한 참여정부의 사교육비 절감방안은 '사교육의 학교 내 흡수, 즉 EBS 수능 강의와 방과 후 학교'였다. 하지만 사교육 대책에 대한 정답이 '사교육의 공교육 내로의 흡수'가 아니라 '공교육 정상화'임을 보인들도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는 것일 뿐...
'인적자원개발정책'은 특별한 쟁점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정치 쟁점화 되어서는 안된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은 제목과 머리말에서 제시한대로 '대한민국 교육 40년사'를 정리한 것이다. 참여정부는 문민정부의 교육정책 기본방향을 김대중 정부에 이어 유지해 왔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책 전반에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성과를 자평하기 위한 글들이 눈에 뜨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과하지 못하는 모습은 크게 실망이다. 더욱 실망인 점은 교육정책에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정부가 공교육 붕괴와 교육개혁의 실패 책임을 사교육 기관이나 대학, 학부모나 학교(교사)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문민정부 - 국민의정부 - 참여정부 15년 동안 '교육개혁'을 줄곧 주장한 역대 정부의 선언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15년 동안이 가장 대학입시가 파행을 겪고 공교육은 더욱 붕괴되었으며 사교육기관과 학부모들의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증가하여 주요 산업으로 정착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특목고' 증가로 고교평준화가 크게 훼손되고 있으며 대학의 수는 늘었지만  '입시위주 교육'은 더욱 심해졌고 서울대 중심의 대학서열화와 학연주의는 심화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생각에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또는 교육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첫째 정부 초기에 '정책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 속에서 드러나지만 참여정부의 주요 교육정책은 2007년에 대부분 발표된 것들이고 교육문제에 대한 인터뷰는 대부분 군사정권과 문민정부의 교육정책 관련자들이었다.(그 정책의 적절성을 떠나...) 4년간 좌충우돌을 겪으며 연구한 끝에 임기 말에 기본정책을 수립한 것이다. 물론 이명박이 다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그 정책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쳐박혔다.
두번째 실패 요인은 교육개혁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핵심은 당사자들도 인정했다시피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학벌사회, 학연주의 사회, 대학서열화'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교육주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관료와 사법부, 정치권과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에 포진되어 있는 서울대,연대,고대 즉 'SKY의 권력독과점'을 완화시켜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정부 스스로가 나서서 문제의 핵심을 공론화시키고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며, 정부가 솔선수범하여 행정부에서부터 '국가고시'와 관료선발에서 SKY 비율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립대학교, 특히 서울대학교부터 대대적인 개혁을 유도하여 다른 대학들이 뒤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이 노 전대통령이 서거한 지 3주년 되는 날이다. 노무현이라는 개인의 소탈한 품성과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마음가짐, 깨끗한 자세는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고 본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와 과오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앞으로의 정책과 제도 수립에 참고해야 할 것이다.
 
[ 2012년 5월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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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출신들의 콤플렉스
공동철 / 한솔미디어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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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서울대의 나라>에 인용된 문장을 보고서 읽게된 것이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강의시간에 들었다는 노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그렇지만 서로서로 잘 (서울대생들끼리)사귀어 두시오. 앞으로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대부분이 한 자리씩 할 사람들이고 사귀어 놓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오." 이 인용문장은 '한국사회에서 학벌주의,학연주의 사회와 SKY 독과점 폐해'를 이야기할 때, 그것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헤쳐나가야할 서울대의 교수가 아무런 생각없이 그런 문화와 구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상황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인용된 것이었다.
나는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독과점이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와 사회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강교수의 문제제기에 공감하면서 그러한 서울대 독과점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서울대 출신들의 콤플렉스가 어떤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판 1쇄만 찍은 후 서점에서 절판되었고 시중에 중고책으로도 나돌지 않아 책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도서관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빌려서 읽었다. 책을 펼쳐보니 (흐흐흐...) 팔리지 않을 만도 하다. 출판사는 책 제목을 거창하게 <서울대 출신들의 콤플렉스>라고 정하고 16명의 서울대 출신들에게 원고를 받아 그대로 실어 놓았다. 책에는 서문도 결론도 없다. 그냥 16인의 기고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애초의 책을 기획한 의도도 알 수 없고 서울대 출신 16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후 "그래서 뭐가 어쨎다는 건데?"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게 구성되어 있다. 출판사나 편집자의 기획 의도가 없으니 "그 잘난 서울대 출신들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는 뭘까"라는 식으로 내가 추론할 뿐이다. 

16개의 기고문 중 자신의 '일반적인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 총 7개이고 나머지 '서울대 출신으로서'의 콤플렉스를 다룬 것은 9개이다. '서울대 출신으로서의 콤플렉스'의 유형은 '서울대 다닌다' 또는 '서울대 출신인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지 못한다, 여권을 만드는 것등 보통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도 '서울대가 왜 그래?'하는 시선과 말에 대한 부담감, 가족과 사회의 희생을 바탕으로 혜택받았다는 부채의식, 남보다 나아야한다는 강박관념 등이 있다. 그리고 기고문 들 중 적지 않은 경우에 서울대 출신으로서의 콤플렉스를 이야기하면서도 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에 '뛰어나다'라는 편견과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여러 명이다.

기고문들 중 '서울대 출신들의 콤플렉스'라는 현상들의 이면에 이들에게 콤플렉스를 일으키는 원인을 나름대로 추적한 내용이 몇 개 존재한다.
"어쨎든 서울대 나왔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타대 출신들보다 시선을 많이 받는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부러움이든, 질시든, 비난이든, 그 때문에 몸이 부자유스러운 경우도 왕왕 있다. 이는 서울대인이 별종인가 아닌가, 타대 출신들과 머리나 능력의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 서울대인의 동질성, 공통의 문화라는 게 있는가 없는가 라는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학력 사회의 색채가 강하고, 따라서 '단지 그대가 서울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분에 넘치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일종의 코스트 내지는 반대 급부라고나 할까."(p.71)
"나는 서울대라는 사실을 선뜻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 내가 궁극적으로 내린 결론은 다른 게 아니라 서울대가 우리 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리라는 것이었다."(p.30)
"서울대 출신들은 배수진을 치고 인생의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어려운 고비가 많지 않다. 철저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면서도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서울대 출신을 나약하게 만들고 있으면서 주관없는 배회자로 만들고 있다."(p.230)

편집자의 기획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책의 제목과 내용으로만 보아서는 이 책은 실패한 책이다. 서울대 출신들의 콤플렉스를 구체적이고 다양하고 실감나게 제시하지도 못했고 그 컴플렉스의 현상의 정도와 원인을 분석하지도 못했다.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은 시도하지도 못했고 책의 주제와 전혀 관계없는 기고문도 더러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고문 중 유일하게 한 기고자(저널리스트 공영채)의 경우가 '서울대의 독과점 현상'과 '친미적 속성' 그리고 서울대 출신들의 '굴종과 타협의 역사'와 '안격적 불균형'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기고문 속에서 그가 '서울대 출신들의 콤플렉스'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연관시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대안으로 '민족과 전통문화의 복원'이라는 다소 엉뚱한 해결책을 제시했기는 했지만 그의 현실파악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튼 원래 이 책을 읽기로 한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서울대 출신들 역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각종 콤플렉스를 내면에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서울대라는 대학을 제외한 신체, 외모, 능력, 실력, 경제력, 친화력, 공감능력, 부채의식 등 다양하다. 다만 한국사회의 특이한 문화현상인 '서울대 출신'이라는 방패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려지는 것이고 역으로 오히려 부족한 점이 크게 느껴질 뿐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점으로서의 '서울대 현상'은 서울대 출신의 콤플렉스라기 보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 2012년 5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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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야 산다 - 인간의 질병.진화.건강의 놀라운 삼각관계
샤론 모알렘 지음, 김소영 옮김 / 김영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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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년 넘게 계속되는 치과 치료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처음 치과 치료를 시작한 개인 치과병원을 시작으로 그동안 개인 병원 3곳과 대학병원 한 것을 거쳐 지금 최종 대학병원에서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서양의학과 병원 유형에 대한 내 기존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이반 일리히의 선견지명을 느끼기도 하고 공공시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이 사태의 가장 크고 기본적인 책임은 오로지 내 몫이지만...ㅋㅋ

내 주변 사람들 중 사고가 아닌 각종 질병이나 유전병으로 일찍 죽거나 현재 치료 중인 사람이 제법 존재한다. 지금도 선배 한 명은 간암으로 간을 이식받아 매일 다량의 약물을 투여하고 '모르모트'를 자처하고 신종 약물투입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선배 한 명은 최근 복부암 말기 판정을 받아 한창 함암치료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처자식이 있고 착하고 좋은 이들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하늘의 뜻을 알기 시작한' 나이, 즉 이제 막 우리나이로 쉰 살이 되었다.


인간은 왜 아플까? 왜 어떤 사람은 끔찍한 병에 걸려 일찍 죽는 것일까? 인류를 괴롭히는 수많은 유전병과 당뇨병, 말라리아, 콜레스테롤, 빈혈, 낭포성섬유증 등은 왜 생겼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진화'란, 우리가 생존하여 번식하는 데 유리한 유전형질을 좋아한다. 우리를 허약하게 하거나 건강을 위협하는(특히 번식이 가능하기 전에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 형질은 싫어한다. 생존이나 번식에 우리한 유전자를 선호하는 것을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즉,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유전병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유전자가 왜 수백만 년이 지난 후에도 유전자 풀에 남아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문제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1억 7천만 명의 당뇨병을 예로 들어보자. 당뇨병은 인간의 몸과 설탕, 특히 포도당이라는 혈당과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먹은 음식에 함유된 탄수화물이 분해될 때 생성되는 포도당은 살아가는 대 없어서는 안 되는 성분이다. 뇌에 연료를 공급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수이며 필요할 때 에너지를 만드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당뇨병은 1형, 2형, 3형이 있는 걸로 알려져있다. 쉽게 1형은 소아 당뇨병으로, 2형은 성인 당뇨병으로, 3형은 임신 당뇨병으로 애기한다. 당뇨병의 원인으로는 유전 요인, 감염, 식습관, 환경 요인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알려져 있고 인류는 아직 명확한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한다. 학계에서는 유전 요인이 1형 당뇨병은 물론 특히 2형 당뇨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1형과 2형 당뇨병은 주로 지리적 기원에 따라 그 분퐁에서 큰 차이가 있다. 1형 당뇨병은 북유럽 후손에게 훨씬 더 흔하게 나타난다. 핀란드가 전 세계 아동 당뇨병 비율 1위, 스웨덴이 2위, 영국과 노르웨이가 공동 3위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로구이 비율은 점점 떨어진다.

저자는 유전 요인이 조금이라도 있는 병이 특정 개체군에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면 진화와 관련되어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오늘날 질병을 일으키는 형질의 어떤 속성은 진화 과정에서 그 개체군의 조상이 생존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빙하 증거를 토대로 연구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11만년 동안 급격한 기후변화가 20여건 있었고 기후가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간은 지난 1만 1천년 정도뿐이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만 4천 년 전에 시작된 마지막 빙하기가 북유럽에 닥쳤을 때 이 빙하기가 시작되는 데 불과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고 빙하기(어린 드라이야스)의 존속 기간도 겨우 3년 만에 끝났음을 알린다. 당연히도 북유럽 인구는 급감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남은 것은 확실하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났을까? 인간을 비롯하여 동식물이 추위에 대처하기 위해 수분을 없애고 당분을 높이는 것이 스스로가 선택할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것은 포도주의 생성법, 개구리의 동면, 인간이 추울 때 오줌을 싸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즉 유전 요인의 근거는 이러한 특징(수분의 과도한 제거와 도농도 혈당)아 있는 질병에 유전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약 1만 3천년 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빙하기에 가장 많이 유린된 후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혈색증과 콜레스테롤 질병, 빈혈, 낭포성섬유증 등의 질병을 수 백만년에서 수만년 전까지 진화해온 인류가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유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기생충이나 바이러스, 미생물이 인간의 몸과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고 기후변화나 식물, 지구의 조건과도 연관을 미치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저자가 애기하고자 하는 결론은 생명이란 창조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상태에 있다는 것과 이 세상에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점, 그리고 우리와 질병과의 관계는 종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경외심을 픔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억에 남는 문장 :


- 진화란 경이로운 과정이지만 완벽히자는 않다는 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적응이란 대개 일종의 타협이다.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공작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꼬리 덕분에 암컷에게 매력을 발산하지만 이 때문에 더 쉽게 천적의 눈에 띈다. 인간은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큰 뇌를 담을 수 있는 두개골이 있지만, 이러한 골격구조로 인해 태아의 머리가 엄마의 산도를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연선택은 특정 식물이나 동물을 '개선'하는 적응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현재 환경에서 어떡하든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 새로운 전염병이나 천적, 빙하기 또는 현재 상황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개체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자연선택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형질로 직행한다.(/ '빙하기를 이겨낸 당뇨병' 중에서)

-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어떻게 인간과 더불어, 인간 곁에서, 인간 몸속에서 진화를 거치면서 인간에게 그리고 자신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한다면, 이러한 질병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방법과 더불어 이들을 인간에게 득이 되도록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이로써 인간은 기니충 같은 끔찍한 기생충의 전염 통로를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유사 이전부터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콜레라, 말라리아를 비롯한 질병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결국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사명에 매진하려 한다. 기니충, 말라리아 원충, 콜레라균이 그렇고 물론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차이점이자 인간에게 크게 유리한 요소가 있으니, 인간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세균과 인간' 중에서)


[ 2012년 5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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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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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특히 서구인들이 보기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라고 느낀다고들 말한다. 특히 '천부적 인권'이나 '만민평등', '주권재민'이라는 의식이 사회 전체에 뿌리내려져 있는 그들의 시각에서는 아이들과 여성, 노인, 장애인, 실업자나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왜 시민들이 가만히 있느야?"라도 도리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질문한다고... 시내 곳곳에 경찰병력이 상주하고 집회나 시위 현장을 전경차로 '벽'을 둘러쳐서 가로막고 있는 모습과 현 정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태 등은 정부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공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단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은 무력하가 짝이 없고...


아마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의 역사가 대단히 짧고 제반 민주주의 제도가 '피땀흘려 얻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구의 민주주의 역사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300~400백 년을 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는 일제 해방 이후 약 65년에 불과하다. 그러한 민주주의 제도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헌법은 시민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쟁취한 것' 아니라 미군정에 의해 아주 짧은 기간에 반강제로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그 헌법 역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독재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사적 이익'을 위해 폭력적으로 훼손되는 쓰라린 역사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과거를 돌아보면 가장 가까운 체제로써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라는 '왕조식 봉건제도'가 약 1천년과 일본 제국주의에 주권을 강탈당한 35년은 우리 민족과 민중들에게 '강력한 중앙권력'과 '무력한 민중'이라는 의식이 문화적 유전자로 뿌리깊게 자리잡았을 것이다. 해방 이후 짧은 민주주의 역사 만으로 천년이 넘는 '권력문화'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일제시대 초기에 동학농민전쟁이나 반일 해방투쟁, 419 혁명과 518 민중항쟁(그리고 보니까 오늘이 518 광주민중항쟁 32주년이다.), 610 민주항쟁과 2008 촛불시위 등을 통해 적지 않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경험했다는 것이 현재 수준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힘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이러첨 '거대한' 모습을 띈 것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족하나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헌법과 여러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하게 시도되었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들, 부정한 제도와 시스템, 부당한 권력을 깨는 과정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이다. 이처럼 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직도 낯설고 멀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법아 일반시민이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강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가게 점원이 생계를 위해 7천원을 훔치면 구속되고 정치인, 기업인, 판검사들이 수 억, 수 십억원을 훔쳐도 '옷을 벗으면 그만'인 사회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부당함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생업을 팽개치고 시청, 광화문 앞에서 피켓을 들어야 하지만 권력자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신문지상에 약자들에 대한 '언어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법 현실' 속에서도 그 법의 장점을 이용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고 작지만 소중한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은 비정규직, 도시빈민, 농민, 여성, 미성년 학생 등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인 사람들이 저항을 통해 현실을 개혁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들이 개혁한 현실은 구체적이고도 제도적이다. 그들은 부당한 현사실적 상황과 그 상황을 제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법, 양자 모두에 저항하고 마침내 법을 창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과 역사의 진보를 추동했다. 그들의 분투는 결과적으로 정의가 들어설 수 있는, 상식적이고 체계적인 정의의 토대, 즉 대강의 정의(rough justice)를 만들어 낸 것과 다름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10년이란 아주 가까운 시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 가까운 역사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법조인 7명이 이야기한다. 경제, 사회, 환경, 역사, 문화, 종교라는 인간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줄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했던 사건들을 정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요구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용기있는 행위가 법체계의 긍정적인 변화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이라는 행위로 맞서지 않는 인간은 사회적인 무생물과 다름없다는 사실과 함께...

제1부 '빵을 위한 투쟁기'는 경제의 영역에서 다루어 질 수 있는 이야기다.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없는 도시빈민들의 고단함이 짙게 묻은 장이다. [판자촌에 쏘아올린 작은 공]은 거주이전의 자유와 전입신고라는 행정제도가 극빈층을 사회적 유령으로 만들고 있음을 고발한다. [1,300일의 해고]는 정리해고라는 일방적인 사용자의 횡포를 ‘콜트악기 정리해고에 관한 판결’을 통해 정치하게 기술하고 있다. [배부른 자여, 비정규직에게 날개를!]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현대자동차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헐벗은 사람들이 거대한 권력 앞에 기죽지 않고 짱돌을 들었을 때, 짱돌은 결코 그들의 발등을 찍지 않음을 보여준다. 

제2부 '사회 속에서 행진하라'는 사회적 영역의 이야기이다. [떡값검사를 떡값검사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삼성 비자금과 연루된 떡값검사를 공개한 노회찬 의원의 명예훼손죄를 다룬다. [집회하러 상경하는 농민을 저지한 경찰은 유죄? 무죄?]는 한미 FTA 반대집회를 위해 입성한 농민들을 폭동을 일으킬 ‘예정된’ 주체라 가정하고 그들에게 공권력을 행사한 경찰의 섣부른 진압, 그 경솔함을 고발하고 있다. [대강의 정의가 상식이 되는 나라, 좋지 아니한가?]는 망원동 수재사건과 김포공항 소음소송을 통해 단수가 아닌 복수로 움직이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큰지 살피고 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에서는 촛불시위가 범국민적 항의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진 이후 야간집회를 법적으로 금지한 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제3부 '환경, 진짜 눈물의 공포'는 환경의 영역인데, 새만금 사업의 해악성을 알린 꾸준한 움직임이 거의 완공된 공사조차 잠시나마 중단시킬 수 있었음을 [90% 진행된 공사도 중단시킬 수 있다]를 통해 그리고 있다. 

제4부 '틀어진 역사 바로잡기'는 역사의 영역이다. 관습적으로 유지되어온 기조가 명문화되었을 때 인간을 기본권을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는지 [출가한 딸은 제사를 지내면 안되나?], [종잇조각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없다]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전자는 전통적인 남녀차별의 풍습 때문에 토대집단인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여성의 권리를 다루고 있다. 후자는 일제강점기의 권력의 편의를 위해 사용된 조서제도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법적 싸움에서 얼마나 배반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풍부한 실증을 통해 검증하고 있다. 

제5부 '미디어 민주주의'ㅌ는 문화의 영역이다. 유명가수의 노래와 춤을 따라한 어린 딸의 동영상을 올린 것이 저작권 침해 판정을 받아 지리한 싸움을 해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저작권, 어린 딸의 재롱잔치를 위법으로 만들다]에 담겨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문제를 다룬 [보호할 가치가 없는 표현은 없다]에서 한때 경제대통령이라 회자되며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네르바 사건의 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6부 '종교, 진리, 그리고 인권'은 종교적 영역의 이야기를 다룬다. [학내 종교의 자유, 그 까칠함의 벽을 넘다]에서는 대광고등학교 재학 중 강제적인 종교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목숨 걸고 항거한 강의석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국가 권력만이 권력은 아니다. 언론도 권력이고 학벌도 권력이고 판검사도 권력이고 '돈'도 권력이다. 많은 것을 가진 자, 높은 지위에 있는 자, 권한이 많은 자, 학식이 많은 자는 언제나 '권력자'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부모라는 지위, 교사라는 지위, 선배라는 지위 역시 일종의 '사회적 권력'이고 상대방에 대한 각종 폭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회적 다수'도 일종의 '권력'이고 소수자에 대한 '폭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모두가 단지 상대방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 모든 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견제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약자도 동등한 세상에 살 수 있고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은 사회'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엘리트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고 노력하기에 대한민국은 그나마 살만한 나라인 것 같다. 이 서평을 빌어 창립 이래 지금까지 음으로 양으로 좀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한 많은 양심적 변호사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 2012년 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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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와 규칙 - 스티븐 핑커가 들려주는 언어와 마음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9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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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부터 읽기 시작한 출판사 '사이언스 북스'의 번역도서 [사언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19권의 마지막 책을 마침내 읽었다. 흐흐흐... 흐믓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아무튼 만 2년이 걸린 셈이다. 처음 우연하게 진화론을 공부할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찾던 중 발견한 시리즈 16 <진화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2년 동안 19권을 틈틈히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데다가 책 두께가 무려 750쪽에 달하려 읽기로 마음 먹는데 몇 달이나 걸린 것 같다.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ㅋ (실제 영어권에 대한 언어학이라 어렵긴 하다...ㅠ)

이 출판사의 [사언언스 마스터스 시리즈]는 영국 굴지의 출판 그룹인 오리온 출판 그룹의 회장 앤서니 치텀(Anthony Cheetum)과 세계적인 출판 에이전트 존 브록만(John Brockman)이 공동 기획한 이 시리즈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과학 저술가 ’제러드 다이아몬드’, 베스트셀러 화학 저술가 ’피터 앳킨스’, 뛰어난 우주론 해설가 ’폴 데이비스’, 고인류학의 대가 ’리처드 리키’, 암세포의 발생 과정을 밝혀낸 ’로버트 와인버그’,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평가받은 ’에른스트 마이어’와 ’리처드 도킨스’, 인지과학의 개척자 ’대니얼 데닛’, 공생 진화론의 창시자 ’린 마굴리스’ 등 과학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에는 인류의 최신 현대과학의 성과가 집대성되어 있다. 시리즈를 읽는 동안 양자물리학, 양자색역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실험유전학, 계통발생학, 물리화학, 생물물리학, 양자핵물리학, 뇌과학, 고인류학, 인지과학, 분자유전학, 지구과학, 기후학, 생리학, 언어학, 신경과학, 양자중력이론, 세포생물학, 지구시스템과학, 천체물리학, 수리과학 등의 최신 흐름과 자연과학 상호간의 연관성, 현대 과학자들이 해결한 문제와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 최신 쟁점들을 알 수 있었다.
 
이 책 <단어와 규칙>은 인지언어학과 진화론에 기초하여 언어와 마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특수한 현상 하나를 선택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조사해 보고자 했다. 그 현상은 언어를 공부하는 모든 학생에게 악몽이나 다름없는 (영어 및 영어계통 언어의)규칙 동사(~ed)와 불규칙 동사(see - saw - seen)다. 규칙 동사와 불규칙 동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언어를 발명했던 선사 시대의 부족들로부터 뇌를 촬영하고 유전자 염기 배열을 판독하는 새천년의 과학 기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사례 연구는 수학적 아름다움과 언어라는 인간의 기이한 능력의 결합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상한 단어나 표현의 논리적 근거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크로스퍼즐을 완성하거나 재치 있는 농담을 이해했을 때와 비슷한 지적 만족을 느낄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단어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언어(영어계통)가 아날로그인 세계와 부분적으로 디지털인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핵심고리임을 주장한다. 사람들이 세계와 마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을 언어의 광대한 표현력으로 메우고 있으며, 이 언어의 광대한 표현력은 단어와 규칙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생산된다는 것이다.
진화론의 가장 거대한 뼈대는 자연선택적 논리에 의한 일종의 규칙(생존과 번식에 유리함을 추구하는)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연성에 근거한 현상이 아닌 나름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규칙성이 단어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방대한 자료와 연구결과를 살펴보면서 단어의 규칙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뇌과학의 발달로 인해 그동안 미지의 영역이었던 뇌관련 질환과 언어 사용능력의 원인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단어는 일종의 패턴이라는 형식보다는 우리들 마음속의 사전에서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으로 일관되게 연결된 거대한 규칙에 의해 인간에게 기억되고 떠오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고대영어와 현대영어를 비교할때 고대에 그토록 많았던 불규칙동사들이 현대에 이르러 급격하게 감소한 원인을 일종의 자연도태로 볼 수 있고 좀 더 확장하여 이러한 불규칙동사를 규칙형의 돌연변이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규칙과 불규칙을 분리하여 패턴적으로 인용해 사용해왔다는 패턴연상망 기억보다는 거대한 규칙형 안에 불규칙이 존재했다는 규칙성을 보여줌으로서 다윈사고의 확장이 그대로 적용됨을 다시한번 확인하여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존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구,개발하여 매일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내는 영어권 국가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의 기원과 변화과정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연구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더군다나 언어학을 인지과학과 연결하여 인지언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할 뿐 아니라 진화론 속에서 언어를 연구하는 태도는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을 적극적으로 연구,개발하기 보다 해가 지날수록 외래어와 외국어가 말과 글 속에 파고들고 이미 존재하는 수 많은 아름답고 고유한 한글마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초,중,고교에서 뿐 아니라 대학과 사회 각 분야에서도 한글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엿보이지가 않는 상황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애쓰고 한국에서 대학 교수를 채용하는데 '영어 강의'를 테스트하는 서울대학교를 생각하면 한 숨이 절로 난다. 정말 그런 식으로 영어국가를 따라간다고 해서 한국이 세계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가? 차라리 한글을 더욱 연구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미래에 우리의 고유성과 창조성과 경쟁력을 가져오지 않을까?

[ 2012년 5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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