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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ㅣ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저, 한석종 역 < 실종자 Der Berschallene >를 읽고 / 2003. 01., 341쪽, 도서출판 숲
오랜만에 공부모임 교재로 선택되는 덕택에 현대 서구 문학작품을 읽었다.(어제 세미나에서는 참석하지 못했지만...ㅋ)
서구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카프카의 '고독 3부작(실종자,(성), 소송) 중 <실종자>와 <소송>이다. 카프카 문학은 무엇보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 인간 존재의 불안과 좌절, 소외를 날카롭게 통찰하여 현대인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했다고 평가받는다. <실종자>는 1914년 작이고 1927년 처음 출간되었다.
출판사는 이 책 내지에 '기괴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 세계로 끊임없는 상상력의 나래를 펴게 하는, 신비하고도 난해한 작가'라고 카프카를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의 출판 당시 서구의 문학의 어떤 주제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출판사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작가의 '고독 3부작'은 '인간의 고립과 소외'를 다루고 있다고 평가된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많은 인간들을 만나고 인간 사회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인간적 관계의 단절을 느끼며 소외와 고립의 희생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경우에도 주인공 카알 로스만은 부모로부터 미지의 세계 아메리카로 추방당하고 아메리카에서는 친지로부터, 공동사회로부터 계속 추방당한 나머지 인간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 존재 자체가 실종되어 버린다. 그는 인간의 공동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추방당해 어느 곳에서도 소속을 가지지 못한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뉴욕항이 눈 앞에 보이는 배의 갑판 위에 서있는 카알 오스만는 만15세다. 체코 보헤미아 프라하에서 독일-유대계로 태어났으나 하녀와 동침하여 임신시킨 것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미지의 세계인 뉴욕으로 ?i겨났다. 우산을 선실에 놓고 왔음을 깨달은 카알은 항해 중에 알게된 친구에게 트렁크를 맡기고 우산을 찾으러 선실로 내려갔으나 길을 잃는다. 우연히 기계실에서 근무하는 화부를 만난 카알은, 화부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선장에게 함께 항의하러 간다. 선장실에서 카알은 우연히 외숙부인 야콥 상원의원을 만난다. 외숙부는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하여 뉴욕 고충빌딩 집으로 카알을 데려간다. 외숙부의 도움으로 현대적 시설, 피아노, 영어, 승마를 배우던 그는 외숙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워 외숙부 친구 폴룬더씨의 교외 별장에 초대된다.
뉴욕 교외의 별장을 간 카알은 자신의 고집을 후회하면서 외숙부에게 돌아가고자 했으나 플룬더씨와 그의 딸 클라라, 친구 그린, 하인 등에게 방해만 받은 후 자정에 그린씨로부터 외숙부의 추방 편지를 전달받는다. 트렁크만 손에 들고 뉴욕을 떠나 람세스로 향하던 카알은 길거리에서 로빈슨과 들라마르쉬를 사귀었으나 다툰 후 헤어지고 옥시덴탈 호텔 여주방장의 도움으로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로 취직한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옛친구 로빈슨이 만취한 상태로 찾아와 그를 도우려던 카알은 실수를 하게 되고 웨이터장과 수위장의 압력으로 호텔에서 ?i겨난다. 상처를 입은 로빈슨을 그이 거처로 데려다 주려고 간 외진 교외에서 카알은 그만 들라마르쉬에게 붙들린다. 들라마르쉬의 애인인 여가수 브루넬다의 고층 임대아파트에 갇힌 카알은 로빈슨이 그곳에서 하인 취급받는 것을 알고 그곳을 벗어나려 하지만 로빈슨과 들라마르쉬에게 폭행당한 후 체념한다. 카알은 하인이 되기를 결심하고 실천하다. 다시 몇 개월 후 들라마르쉬에게 버림받은 브루넬다를 도운 후 카알은 길 모퉁이에서 발견한 클레이튼의 오클라하마 극장의 채용 벽보를 보고 찾아간다. 경마장에서 인터뷰를 통해 가장 볼품 없는 기능직으로 채용된 후 그는 이틀 밤낮 기차를 타고 서부로 간다.
이 작품은 카프카가 결말까지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다. 카프카는 이 작품의 결말을 비극으로 끝내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작품은 20세기 초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말해주는 듯 하다. 인간의 운명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간 존재가 불안하고 좌절을 겪는다는 것을,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작품 <정글 The Jungle>(2009, 페어퍼로드)에서 묘사하는 20세기 초 시카고 시의 현실과 비슷하다. 다만 싱클레어는 주인공이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찾는 것으로 결말을 제시하는 것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문학계에 끼친 카프카의 영향력은 옥스퍼드 사전에 '카프카적' 이라는 단어가 실린 것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사전에서는 그 의미를 '섬뜩한, 우연히 등장하는, 실제를 넘어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프란츠 카프카가 쓴 사실들이나 감정 상태와 비교될 수 있는' 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출판사는 카프카의 문학을 '일상적이면서도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고 말한다. 또 불가사의한 사건을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로 이끌어 나가며, 그러다 보니 그의 작품이 '그로테스크(부조화스럽고 괴기하다)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이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더 지난 20세기 초 미국사회의 모습이라고 쉽게 느낄 수가 없었다.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는 권력이나 부를 가진 이들로부터 추방되고 소외되어 불안하고 좌절을 느끼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현상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5대 불안'이니 '3무 세대'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은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외로움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매달린다. 하지만 부모나 가족, 국가와 조직, 언론과 정당으로부터의 추방, 공동체에서의 소외와 추방, 고립과 배제, 불안과 좌절이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전반에서 노골적으로 진행된다. 신자유주의라는 거창한 담론의 이면에는 이와 같은 현실이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어디선가 <실종자>의 카알처럼 비극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 2012년 11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