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른 거리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서 거리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편안함을 느끼는 적정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 때로는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실제로 보이는 거리,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거리, 거리라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하면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의 공간을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가까이 있고, 얼마나 멀리있고, 그런 것이 실제로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고,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더 가까이 또는 더 멀리 있는 사이라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와 같은 책으로 많이 알려진 저자 김혜남의 신간 < 당신과 나 사이,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입지 않는 거리를 찾는 법>에서 손글씨를 조금 써 보았습니다. 수년 전부터 파킨슨 병으로 투병중인 저자의 건강에 좋은 소식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관계를 맺고 가꾸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처럼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사실 가까워진다는 것은 헤어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게 숨기고 싶은 내면의 모습까지 다 보여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랬다가 또다시 거부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을 이겨 내야만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행복론>에서 친밀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 서양에서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친밀감이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느낌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특별한 한 사람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 친밀한 관계는 단지 다른 사람들을 알고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의 깊은 문제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는 이유는 결국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혼자가 더 편하다고 말하는 그녀도 실은 사랑받고 싶었다. 그녀가 지금껏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것도 어쩌면 엄마에게 태어나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였고, 남자 친구에게 "너도 힘들 텐데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는 말을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던 그녀는 너무 지쳐서 관계를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별로 필요 없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관계 맺기를 거부한 것으로 포장하고는, 그 안에 머물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처 입지 않기 위해 가시를 세우다 보면 그나마 가깝던 사람들마저 그녀 곁을 떠나갈 뿐이다.
자신만의 벽을 쌓고 그 안에서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안전할 수는 잇다. 하지만 가슴 한 켠 느껴지는 공허함을 어쩌지 못해 우울해지기 쉽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날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인정해야 할 것은 상처를 입지 않으려 애쓰는 노력이야말로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벽을 허물어 꽁꽁 닫혀 있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세상에 상처 없는 관계란 없다. 상처 입을 각오로 용기를 내야만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 있다.
-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메이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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