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밟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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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개의 일기(日記). 어느 쪽이라도 거짓이 아니며 어느 쪽이든 간에 진실을 위장한 거짓이거나 거짓인 체하는 진실이다. 흔쾌히 뒤통수를 내어주는 남편과 기꺼이 다리 오므리기를 뿌리치는 아내의 우울한 줄다리기는, 그날그날의 일기라는 티트라그푸타의 기록으로 현현된다. 티트라그푸타는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왕 야마의 기록관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행위를 기록한 장부를 보관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는데, 인간이 죽어 야마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바로 이 티트라그푸타가 작성한 장부를 토대로 죽은 자의 생전 행동들을 읽어 내려가고 그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 이야기 속 아이린은 스스로 티트라그푸타가 되어 자신의 일기를 기록하고, 그러므로 이것은 이미 시작부터 기분 좋은 소설이 아니게 된다―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 이 부부의 삶은 특기할만한 경우가 아니라 도처에 널린 피해자들의 진술이므로. 사랑은 후다닥 지나가고 불신은 곪을 대로 곪아서 애정이라는 전제를 먹어 삼킨다(이들은 이미 같은 종족이 아니다). 친밀의 제스처를 취해도 이미 오래전 교류는 끝난 셈이고 원만함은 최초부터 휘발성에 가까운 성질이었으며 둘은 꽤나 촉박하게 서로의 해설자 역할에서 손을 떼어버린다. 아이린과 길이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났더라도 그들은 애정이라는 구렁에 한쪽 발을 넣은 채 잔뜩 경계를 했을 것이 틀림없다.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혹은 섹스를 하고 나서 ‘끝’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녀는 남편을 향해 어떻게 자신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는 구조대의 황홀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아내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들려 나온다. 끝없는 드잡이는 서로를 지치게 할뿐이건만 그들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림자가 아닌 그들 인간 형상의 선명했던 색조는 예전부터 바래고 바랬는데도 말이다. 섬뜩한 은유. 치열한 탐침. 여러 종류의 악순환. 정밀하지 않은 해독(解毒). 어느 쪽이 됐건 진실의 위장과 거짓의 은폐는 모든 것을 종료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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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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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두고, 누군가는 딜레마와 모순들에 관해 생각하는 방법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실로 다양한 철학자와 철학 방식들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철학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란다. 자, 어느 쪽이든 좋다. 딜레마와 모순에 대해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철학’을 보여준다면. 고병권은 책의 시작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참된 철학자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 중단된 곳,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왜? 바로 그곳에 지금의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재료가 있기 때문이다(p.20)― 아이웨이웨이도 비슷한 말을 했다(「우리가 현실의 일부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철학은 대화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책에서 인용된 디오게네스는 이것을 훌륭히 증명해낸다.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결승점에 다가간다고 달리기를 멈추어야 할까?」 고병권의 표현대로라면 ‘정신의 계주’다. 그러나 이 정체가 불분명한 ‘앎’을 체득하려면 대화에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내 속에서 체험하는 과정이 없다면 거창해 보이는 철학이라도 그저 그런 정보에 불과해진다. 철학이 하나의 상품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어떤 말과 어떤 책이라도 혓바닥 끝으로만 주물거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철학 일반이 아니기를 스스로가 원한다. 왜 우리를 ‘하녀’라 지칭했겠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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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지구 이야기>
지구 45억 년의 파노라마. 저자의 우주생물학자의 상상력, 역사학자의 시각, 박물학자의 열정으로 우리 행성이 수없이 반복해온 일들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신들을 위한 여름>
19세기 중반 이후의 과학계, 다윈의 진화론과 보수적 종교 세력의 반발. 그리고 사회의 균열. 결국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치열한 논란은 1925년 스콥스 재판으로 이어졌다.



<축구의 세계사>
축구 탐사보도 전문기자의 거대한 작업물. 축구의 탄생, 전파, 돈과 권력과의 연결, 인종과 계급, 폭력과 저항……. 공 하나를 가지고 하는 단순한 놀이가 각자의 인간을 하나의 공동체라는 존재의 고양감으로 이끌어 내는 역사를 파헤친다.



<고사성어 역사문화사전>
시공간을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500여 개의 고사성어 속 이야기. 고사성어가 담고 있는 고전의 품격을 오늘의 시각으로 되살리면서 고전과 현대인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책.



<메두사의 저주>
인류 문화에서 가장 오래된 매체인 문자, 그중에서도 가장 허구적으로 구축된 문자세계인 문학 안에서 이 '눈'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 시각 체제의 변화 양상과 시각성에 관한 시대별 주요 철학 담론과 관련 문학작품을 분석한 새로운 관점의 문학비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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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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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말 스스로도 단언한다. 「나는 영웅들을 믿어 본 적이 없다. 반란에 초점을 맞춘 소설들에서조차 내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소위 영웅이라는 자들은 민중이 휘두른 효과적 도구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역자가 소설을 두고 쿠르드족과 터키 정부를 연상케 한다고는 했지만(작가도 쿠르드족 출신이다) 동시에 케말의 그것은 아시모프가 줄기차게 말해 왔던 '미래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나 결국 소설일 뿐이라는 한숨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ㅡ 실은 이 양쪽 모두 맞는 말이지만. 어차피 민중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웅은 끝에 가서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 셈이 될 테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메메드처럼 직접 나서는 영웅의 모습 대신 꿋꿋한 투혼만으로도 영웅이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메메드와 같이 정부의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는 지주의 악행에 맞선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3선 개헌에 반대한 노 변호사 정구영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까? 그는 가족들이 정보부에 신문을 당하는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이러한 소설 속의 메메드는 반란을 도모하는 위법자이지만 독자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를 들이밀면 거기에 반대로 '악법의 속성은 결국 악'이라고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이것은 소설에서건 현실에서건 모두 적절한 생각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의적 메메드』와 같은 소설은 주인공과 닮은 영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그와 함께 변하지 않는 척박함도 함께 남겨둔다. 이것이 단순히 소설이기 때문일는지 아니면 (장소와 인물만 바뀌는) 현실이 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일는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소설이라는 예술을 공공의 미라 본다면 귄터 그라스의 표현대로 '정치적 책임 의식이 있는 모든 사람이 케말의 호소에 응답'할 수 있도록 추궁하는 것은 결국엔 민중의 몫(책임, 의무, 권리ㅡ 어느 쪽으로 부르든 상관없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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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 터키 ㅣ 세계를 읽다
아른 바이락타롤루 지음, 정해영 옮김 / 가지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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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로 기억한다. 터키와 한국을 두고 '형제의 나라'라 불렀던 것을 말이다. 내가 터키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ㅡ 물론 그들의 한국전쟁 참전에는 나토 가입과도 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터이지만. 월드컵 당시 3, 4위전을 벌였던 터키와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유니폼을 바꿔 입고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양국의 국기를 함께 펼쳐들기도 했다) 관중 앞에서 세리머니를 했다. 그러나 내가 터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보나 기억 혹은 감정은 그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세계를 읽다' 시리즈가 여행지 중심의 관광에 관한, 소위 여행 정보서와 다르다는 점이 좋다. 이를테면 터키의 정보를 알려준다기보다는 터키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ㅡ 그러므로 여행 정보서가 아니라 문화 안내서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겠다. 터키의 문화나 관습, 사교, 터키 사람들의 모습, 그들과 친해지는 방법, 터키에서 살아가기 위한 주택, 교육, 교통, 예술, 건축, 스포츠, 대중매체, 일자리……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 책이 정말 교양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재미있는데다가, 시쳇말로 '깨알 같은' 일화도 곳곳에 담겨 있어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슬람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의 생활에 대해 친화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을 지닌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지금도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종교적 복장(이를테면 히잡)을 금지하고 있다지만 또 다른 면에서 터키 사람들이 보이는 자유스러움과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모습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다채롭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나는 '터키 사람/사람들'에 관한 부분이 가장 좋았다. 그들은 만나면 보통 날씨 얘기는 하지 않는단다. 날씨가 늘 안정적이어서 흥미로운 대화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책에 적힌 지역별 평균 기온으로 보건대 터키의 기온은 평균 13℃ 정도인 것 같다ㅡ 그러면서 '겨울에는 항상 춥고 여름에는 항상 덥다'며 토를 달아놓았다. 남녀가 연애할 때는 어떨까. 터키에서는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동 패턴이 정반대라고 하는데, 요컨대 이런 식이다. 터키 문화는 성적인 면에서 남자들을 억압하지 않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정조가 중요해 신부에게는 처녀성이 요구된다. 또 많은 여성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자와 손잡는 것조차 꺼린다고 한다(이 말을 온전히 믿어야만 할까? 정말?). 그래서 여자는 항상 달아나고 남자는 휘파람을 불며 쫓아다니는데, 타국에 정착한 한 터키 여성은 자신을 쫓아다니던 터키 남자들과는 다른 외국의 남자들을 보며 자신에게 매력이 없다는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었단다. 그런가하면 젊은 연인들은 패스트푸드점 꼭대기 층을 즐겨 찾는단다. 이는 부모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거리에서 손을 맞잡는 것에 약간의 부담을 느낀다니 충분히 이해할만한 대목이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바로 목욕탕이다! 터키의 대중목욕탕에는 한국에서와 같이 때를 닦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행끼리 같이 오면 서로 때수건을 사용해 등을 밀어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 목욕탕의 종업원에게 약간의 돈을 주면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계속해서 책을 읽다 보니 두 남자가 상의를 벗은 채 부둥켜안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레슬링 대회의 한 장면이었다. 터키에서 레슬링은 국민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여름 내내 대회가 열린단다. 특히 7월에 열리는 크르크프나르(오일 레슬링) 대회가 가장 유명한데, 몸을 미끄럽게 만들어서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 선수들이 온몸에 오일을 바르고 시합을 치른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작년 레슬링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김현우 선수가 그레코로만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었는데 당시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터키 선수였던 거다ㅡ 뭐, 우연찮게 한국이 터키를 상대로 이긴 경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희한할 법도 하건만 지난 월드컵에서는 터키가 이겼으니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비긴 셈이라 치겠다……. 하여간에 책을 읽으며 과연 터키에 관해 얼마나 알 수 있을지 내심 수상쩍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만, 다른 여행 정보서와는 확연히 다른 내실을 갖추고 있어서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하게' 만족하는 바다. 이제 나도 터키어 한마디쯤은 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Türkiye, seni sevdim(튀르키예, 세니 세브딤; 터키, 당신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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