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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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 쇼고 曰, 「いろいろな意味で今までにやったことのないこともやっているので、何とも言えません。読んだ人がどういう風に感じるのかが、楽しみというか怖いというか。今回はシンプルに物語を書くことを心がけてつくったので、そのあたりを読んでいただければと思います。」 이대로라면 '참 속 편한데' 라기보다는 '쿨해도 너무 쿨한 거 아냐?'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얄밉다. 내용도 현실성이랄지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긴 해도 짐짓 모르쇠로 방어하는 무관심한 필치는 발군이다. 소설은 작가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든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또는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과 궤를 함께하지 않을까 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버렸다. 그것도 뒷맛이 좋지 않고, 씁쓸하게. 그런데 말인즉(표현이 이상할까?), 슬픈 것도 재미의 일종이고, 무서운 것도 재미의 한 축이며, 심지어 짜증이 난다 하더라도 넓은 의미로 보자면 그것 역시 재미의 하위 카테고리에 들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한 번 더 꼬아서, 그러니까 '히라타의 간파(혹은 오해)'가 의도된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아니면 마스미 역시 결과를 예측했으면서도 의도한 것이라면). 그 이후는 작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마지막 5페이지로 세계가 반전'이라는 식의 가열한(!) 일본 측 카피가 절반의 성공으로 느껴질 만큼, '몸서리가 쳐지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어이쿠 하고 놀라기는 했다. 앞서 말한 '부족한 개연성' 보다는 이쪽이 낫달까, 아니면 미스터리 같지 않은 미스터리랄까. 우타노 쇼고답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세계에서 대체 누가 헌신했고 누가 구원받았나? 누가 거짓말을 했고 누가 보상받았나?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가?



저자 인터뷰 ①


저자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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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사를 믿지 마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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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무리 '전형적'이란 관형사인지 명사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표현을 질릴 대로 우려먹어서 이제는 신물이 난다고 해도 이번 한 번만은 더 써야겠다. 『네 집사를 믿지 마라』는 전형적인 칙릿에다가 전형적인 미국식 사르카즘(이것도 많이 썼지, 참)으로 똘똘 뭉친 소설이라는 것. 지금 나는 책을 완독하자마자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협박, 사건, 사고(라 부를 수 있다면) 도청, 사기, 감시 따위에 놀아나고 싶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이지처럼 서류 보관실에 11시간이나 감금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싫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족속은 뻥 뚫린 곳이건 폐쇄된 곳이건 상관없이 어느 한군데에 붙박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군대에 있을 적에 지뢰를 밟은 채로 17시간이나 있어봤지만 그런 건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물론 거짓말이다). 그나저나 이 품행제로 스펠만들에게는 도저히 희망이 안 보인다. 개과천선? 인과응보라면 몰라도 그들에게 참사람이 되라는 식의 간곡한 부탁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 ㅡ 어렸을 때(적어도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의 나이가 지나서), 친구를 골탕 먹이기 시작하면 그 친구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 때까지 끝장을 보는 녀석이 한둘쯤은 있지 않았나.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지만 이들이 한데 뭉쳐 사는 이유는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것밖에는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말장난? 장전 준비. 휴대전화 몰래 보기? 이미 완료. 남의 집 쓰레기봉투 훔치기? 돈만 준다면야. 싫어하는 티셔츠 억지로 입히기? 선동 시작. 애인이 다른 남자와 선보는 것? 참을 만큼 참았다. 여긴 웬일이냐고 묻는 말에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다고 말하기? 다들 그러지 않나. ……『네 집사를 믿지 마라』를 읽는 데는 번역의 묘미도 한몫 했다고 본다. 시리즈를(본작은 네 번째) 통째로 읽지는 않았지만 전작들이 어땠을지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작가가 페이지의 하단에 넣은 각주만 해도 그렇다. 최소한 이자벨이란 인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은 곳곳에 널린 각주만으로도 충분하다(상당한 센스다). 소설은, 조금은 악랄한 시트콤처럼 보이는데 ㅡ <프렌즈>의 정색한 조이보다 더! ㅡ 그래서 더 흥미로운 것이리라(적어도 여든 넘은 남자가 위트를 가지고 사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시리즈가 20편이나 30편이 훌쩍 넘게 출간되어 그들의 세월을 훑을 작정이라면 나는 더 이상 읽을 용의가 없다(이유는 이미 앞서 밝혔다). 물론 다섯 번째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아마 여섯 번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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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작별 트래비스 맥기 Travis McGee 시리즈
존 D. 맥도널드 지음, 송기철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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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vage Specialist. 트래비스 맥기의 직업이란다. 그러면서 보수는 의뢰인이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금액에서 경비를 제하고 남은 것에서 절반. 도둑에다가 사기꾼이다. 더군다나 여자까지 후리고 다니는 꼴이라니(자의건 타의건). 섹스와 폭력이 점철된(?) '전설'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는 이 『푸른 작별(The Deep Blue Good-by)』로부터 시작한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전체적인 흐름 역시 말랑말랑한 필립 말로와 까끌까끌한 샘 스페이드와도 약간 다르다. 으레 그렇듯 주인공을 도와주는 협잡꾼 장물아비도 하나 등장해 주시고 말이지 ㅡ 이 점에서는 매그레와도 다르군(그럴 수밖에). 그리고 당연히, 우리가 구분 짓는 '본격'도 아니니까 그저 능수능란한 문장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배빗』에서 속물 덩어리를 맛보았다면 여기서는 천박(이라면 천박)의 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서. 주인공 맥기를 포함해 단 한 명의 제대로 된 마초도 등장하지 않는 본작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영화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고 있는데, 이 얘기는 꽤 오래전부터 나와서인지 지금은 좀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기야 그의 인상은 미국인의 전형이긴 한데 썩 신뢰 가는 얼굴은 아니라서……. 어쨌거나 맥기가 셜록 홈스를 흉내 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렇게까지 쥐어터질 줄은 몰랐다. 상대방을 끝장내는 것도 참 우악스럽기 짝이 없고. 게다가 맙소사, '찰리네 숯불구이'라니(아마도 Charlie Char-Broil?). 명륜동 막걸리집이나 원할머니 보쌈도 아닌 마당에 찰리네 숯불구이라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서 급작스런 이스트 터닝이라니! (말년에 유격이라니!) 뭐 우리말로 옮겨놓으니까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좀 구수한 감은 있다. 하여간에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커트 보네거트가 「앞으로 천 년 뒤의 발굴자에게 존 D. 맥도널드의 작품은 투탕카멘의 무덤 같은 보물이 될 것이다.」라는 찬사를 던졌으니 나로서는 차근차근 작품을 읽어나가기만 하면 되지 않으려나. 마지막으로, 페미니스트가 맥도널드를 읽으려 하면 절대적으로 말릴 것을 당부하면서.



덧) 아래는 UMC의 「자영이」란 곡인데, 『푸른 작별』에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보니 문득 떠올랐다. (모 사건과는 관련이 없음. 그 사건이 있기 전 만들어진 노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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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꽃, 눈물밥 -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 김동유의 지독한 그리기
김동유 지음, 김선희 엮음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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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간해서는 에세이를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꽃, 눈물밥』은 그림 이야기를 품고 있어 읽기가 가능했다. 좋아하는 것에의 천착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문득 그것만의 형형한 빛을 내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제 흥에 겨워 혼자서 일구어내는 외로운 투쟁이라는 것 또한 안다. ……밖에 눈이 날리든 비가 내리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반드시 내가 이 세계의 톱니바퀴 중 하나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굳이 외면하면서까지 침잠한다는 것은, 양껏 차려놓은 진수성찬을 물리는 것과 매한가지다. 그래서 어렵다. 화가 김동유는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중 이미지'는 음악으로 따지면 모노가 아니라 스테레오다. 보통 팝아트 작업은 빨리빨리 대량으로 생산하지만 나는 거꾸로 더 아날로그적으로 작업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이중그림(the face homage)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나는 모른다. 단지 재미있고 멋지고 흥미로울 뿐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재미'와 '흥미'가 최고의 찬사이니, 그는 그림에 문외한인 그저 그런 소시민의 마음까지 동하게 만든 셈이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구별하려는 강렬한 욕구가 있을 텐데, 산업자본주의는 잉여가치를 남기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나. 그런데 이제는 죽고 없는 리오타르의 말을 들으면 더 알쏭달쏭해진다. 「어떤 작품도 우선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하게 될 수 있다.」 김동유의 이중그림도 자꾸 보다 보면 언젠가는 처음 그것을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감정을 더 이상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하얀 도화지에 채울 그림은 성공한 화가의 자기 복제가 아닌 새로운 시도'여야만 한다. 나는 『그림꽃, 눈물밥』에서 일말의 교훈보다는 그저 그림을 보았다. 밖으로 움직였다가 분쇄해 다시금 집적되는 '그림꽃'을.



「John F. Kennedy & Marilyn Monroe」

2010, Oil on Canvas, 194x1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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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문
이윤기 지음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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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종교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마는, 온갖 문장이 종교(적인 것들)로 점철되어 있어도 좋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어쭙잖게 구절을 읊어가며 막무가내로 전도하려는 예수쟁이들이지 선량한 세속은 아니므로. 더군다나 이것은 허구이긴 하나 그의 이야기이고 그의 삶이긴 하나 거짓의 산물인 소설이며 또 소설 속의 소설도 있고 소설을 위한 소설도 있으니 매한가지다 ㅡ 아무리 자전적 소설이라 하더라도 볼라뇨의 음경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또 해버리고 만다). 의도야 어찌되었건 인간은 '5마일 길'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뭐든 피부에 와 닿아야 (거의)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제야 뭔가를 바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용납할 수가 있겠나. 『삼국지』에서 조조가 읊은 시를 뜻만으로 따져 불길한 소리로 해석해 버리고 죽음을 당한 선비와 『하늘의 문』의 '나'라는 인물이 같게 발음되는 이름을 가졌다면 이것은 우연일까. 그러니 작가는 쓰느라 애달팠겠으나 그것은 읽는 쪽도 피차마차 포장마차인 셈이다.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아무리 써봐야 제대로 당도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밀림의 부상자를 태우러 와야 할 헬리콥터가 자기는 죽은 자들만 모집한다며 애꿎은 사람을 주워 훌떡 날아가 버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신은 위대하지 않소. 있긴 할까마는.」 이렇게 뜻풀이를 했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을까?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고 한번 삐끗한 자는 영원히 삐끗하는데도? 회귀는 회귀일 때가 아름다운(적어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잡으려는 것과 쫓기는 것이 영원한 술래잡기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단지 사악함, 불안함, 제도, 도덕과는 다른 것이다. 일인이역을 하지 않을 바에야 고통을 호소할 데가 없는 까닭이다. 그가 술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면서. 작가의 단편 「하얀 헬리콥터」가 삽입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것이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처럼 멀끔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도 그렇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되 결국은 '(전과)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회귀하는), 헬리콥터의 날개와도 같다. ……죽으려고 환장한 사람은, 좋게 말해서 미친놈이다. 한번 미친개는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미친개이듯, 한번 미친놈은 영원히 미친놈이다. 살 이유가 없어서 죽는다면 다소간의 이해는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살 깎아먹는 것을 넘어서 남의 뼈까지 거덜을 낸다면 봐줄 수 없다. 주인공 '나'는 그런 작자다. 마스터베이션을 하면 장님이 되고 불순한 생각을 하면 영원히 고통 받으며 가족 중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지옥불에 타게 된다…… 그는 이런 것들이 싫었을까? 천국 아니면 지옥을 달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싫었을까? 자꾸만 남을 부대끼게 하는 뭉텅이 같은 무리들이 싫었을까? 그렇다면 그럴 법도 하다. 그는 신을 모시려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모시려 하는 자였으니. 라즈니쉬 같은 사기(詐欺) 비즈니스맨은 아니었을지언정 「신발과 마음은 문 앞에 벗어놓으시오.」 하고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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