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하버쿡 젭슨의 진술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7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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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찮은 넘버링 000부터 시작해서 007번이자 8권 째인 『J. 하버쿡 젭슨의 진술』까지 왔다. 솔직히 말해 코난 도일은 그간 (어쩔 수 없이) 셜록 홈스를 제외하면 물음표만 둥둥 떠다니는 작가였다. 정말이지 감가상각 없이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의 수상쩍은 작품집이 출간되었고, 내용마저 머리를 싸맨 채 범인을 밝혀야 하는 '추리물'이 아니었다. 해양구조 컨설턴트(salvage specialist)를 표방한 트래비스 맥기도 아닌 바에야 '해양 미스터리'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다소 느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출판사 사장님의 인용을 일부 재인용하자면ㅡ 망망대해를 느릿하게 떠도는 배 한 척, 선장도 선원도 없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그러나 평온한 상태로 발견된 마리설레스트 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코난 도일이 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ㅡ 뭔가 악몽 이면의 실상/실상 이면의 악몽이라든지, 책을 펼쳤을 때는 보무당당했지만 정작 다 읽고 난 뒤엔 희열에 찬 죽상을 하게 되더라도ㅡ 이 책을 끝장 보지 않으면 일종의 부작위범이 되어 영원한 불귀의 객이 될 것만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정념에 휩싸이고 말았다. 어딘지 모르게 말레이시아 실종 항공기처럼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한 터라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공포를 탐구하는 데는 포의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다. 목침으로 제격인 『우울과 몽상』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맛보았던 흉흉한 정신 상태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는 기가 막히다. 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수록된 단편 「가죽 깔때기」를 최고로 꼽고 싶다. 가죽으로 만든 깔때기라는 것도 괴상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ㅡ 라이어넬 데이커라는 사위스런 취미를 가진 남자를 등장시켜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것처럼 음험한 묘사를 잔뜩 늘어놓고는 끝에 가서 '꿈'으로 매조져버리더니, 이번에는 다시 현실의 가죽 깔때기로 돌아오는 모양새가 짐짓 존 딕슨 카의 『화형 법정』 읽기로도 이어질 수 있겠다는(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본 이야기 역시 당연히 재미있고. 바다 한가운데서 발견된 주인 없는 선박, 마녀 재판, 미라와 동방의 언어, 차가운 고립의 공포 이 네 가지를 주제로 한 단편집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이 코난 도일의 소설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재차 말하지만 셜록 홈스의 망령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도일의 시리즈 외 작품이라는 것은 상당히 놀랄 만한 일일 테니까.



책 말미에서 발견한 사장님의 변
: 많이 팔릴 만한 종류의 시리즈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고 싶어서 냈어요. 팔리면 팔리는 대로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이 시리즈는 계속 낼 생각입니다. 좋아하거든요, 이런 내용의 글을. 다만 시리즈 가운데 몇몇 권은 재쇄를 찍을 여력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말인데, 절판되기 전에 사두시면 좋겠습니다.



덧) 난 몽땅 가지고 있지요.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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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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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붕 가마가 언제까지고 철옹성이 되어 주려나. 왕의 길이란 생사의 경계, 그 칼날 위라고 했으니 말이다. 「종기란 놈은 주변에다 범 아홉 마리와 뱀 일곱 마리를 쳐 둘러놓으면 맥도 못 추고 물러가게 돼 있다.」 떠돌이 약쟁이의 부적이 썩어 빠진 정치 모사꾼들에게도 효험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같이 돌멩이를 던지자고 요구할 때 이선(李愃, 사도세자)은 돌멩이를 던지지 않았고, 그 이유로 돌멩이를 든 자들의 돌팔매는 세자에게로 향했다.(p.98) 『역린』은 소모적인 굿판이 되고 만 정조 암살 계획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곧 개봉할 영화 《역린》은 정조 암살 모의 당일의 하루 동안만을 다루고 있는 모양이어서 그에 앞서 읽어두면 (필시) 좋을 듯싶다.



내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궁녀들이 사는 내명부에서는 어떤 궁녀가 후궁으로 물망에 오르는지, 새로 착공하는 궁궐 공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지방관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누가 있는지, 누가 어떤 벼슬에 오르고 누가 누구를 탄핵하는지…….


ㅡ 본문 p.114



사람 하나를 죽이는 일에는 품이 많이 들고 쉽지도 않다. 하물며 밖에서 왕을 암살하려 하니 이렇듯 내부의 일을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조력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설은 정조 암살 계획 전, 그의 아버지 이선이 살아있을 적부터 큼직하게 훑어 내려오고 있으므로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 이전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조의 아들 이선, 그의 동갑내기 아내 홍씨, 그녀의 아버지(호조판서), 며느리보다 어린 계비, 당파와 궁의 내부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표적은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李祘, 정조)에게 향한다. 일견 『역린』 1권은 임오화변, 내달 출간될 2권은 정유역변을 다룰 것인데, 아비와 아들이 모두 죽었거나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역사적 사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소설은 딱딱하면서도 자못 스릴러의 냄새가 풍긴다. 특히 여기에는 훗날 정조를 해하려 하는 살수 집단의 구성 과정 묘사를 비롯해 노론인 아버지와 척을 지게 된 남편 이선과 정치판 사이에서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헤매는 세자빈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어느 때이건 정치 놀음의 혀 위에 선 자들과 그들만의 사회는 불변의 무대라는 것이 재차 확인된다. 아름다운 고담준론은 마타도어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입과 손이 빠른 이들은 난장판 속에서 획책의 꾼이 되어간다ㅡ '난장(亂場)판'이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뒤섞여 떠들어 대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을 의미하는데, 우스꽝스럽게도 '난장'의 본뜻이 선비들의 작태를 묘사하는 말이었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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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페의 어린 시절
장 자크 상뻬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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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전 국내 출간된 『뉴욕의 상뻬』에서도 상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은 『텔레라마』의 편집장 겸 대표였던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였다. 그는 거기에서, 아주 미세한 것과 아주 거대한 것을 동시에 볼 줄 안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상뻬의 생각을 물었었다. 그리고 상뻬는 말했다.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거라고, 바로 하늘에 수많은 사람들이 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궁금한 것들이 마구 생겨난다고 말이다. 「빌뇌브 생조르주에 사는 모자 쓴 저 남자는 왜 뉴기니 섬에 가는 걸까? 뉴기니 섬에 도착해도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겠지!」 그는 언젠가 집에서 냄비 안에 담긴 커피를 데우고 있었다. 그것은 펄펄 끓을 정도로 뜨거워졌는데, 문득 어디선가 벌 한 마리가 날아와 어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바로 그 냄비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곧 바작바작 소리가 들리더니 벌은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상뻬는 수영장에서 아주 예쁜 나비가 익사하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학습 효과 덕분인지 이번에는 녀석을 집어 수영장 가장자리로 옮기는 데 성공하지만, 나비를 구하는 상뻬의 발에 밟혀 개미 여남은 마리와 또 다른 나비 한 마리가 압사당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스스로에게 정말로 멍청한 놈이라고 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소용없었다. 절망감이 사라지지 않는 걸 어떡하나. 내가 느끼는 슬픔은 아주 엄청났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상뻬가 살아 온 어릴 적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는 맞춤법 틀리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새 친구들을 사귀기를 꿈꾸었으며, 학교에서 클라리넷 부는 학생(그 아이는 칠판에다가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다)을 흉내 내며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이런 상뻬의 인기는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올라 전시회까지 할 정도였는데 이렇게 그의 옛이야기를 엿보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가 처음이며, 그의 유년 시절이 그림만큼 아름답지는 않다는 것 또한 알 수가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적 종이나 낱장으로 되어 있는 모든 것을 돌돌 말아 손에 늘 한 줌씩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그는 그림을 말 수 있는 고무줄 또한 사랑했다). 아마도 상뻬는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느끼지 않는 유쾌한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날의 자신을 교육시킨 것은 라디오와 신문이라고, 그에게 도시란 불빛, 혼잡, 자동차, 하이힐 소리였다고ㅡ 지금의 상뻬는 엄청나게 커 버렸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여전히 그의 모든 그림 속에 파스텔처럼 녹아 있다. 아름답건, 아름답지 않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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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네이밍 백과사전 - 최고경영자와 전문가를 위한
류동수 지음 / 보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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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게 잘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와 단어는 브랜드의 마케팅 구축에 큰 도움을 준다. 특히 브랜드의 이름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엠블럼과는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즉 브랜드 네이밍이 기업의 이미지 전체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랜드 네이밍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기업들이 공들여 만든 상품과 서비스가 가진 우월성이나 개성, 차별화된 전략을 가장 유리하게 표현하면서도 소비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브랜드 이름을 짓는 것.> 마케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진 잭 트라우트 역시 가장 중요한 마케팅 결정으로 브랜드 네이밍을 꼽을 정도다. 또 기업의 오너가 직접 이름을 짓거나 사내에서 의견을 모아 브랜드 네이밍을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브랜드 네이밍 전문 회사에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브랜드 네임이란 세계 어느 국가이건 간에 모국어와 영어, 이 두 가지의 언어가 주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익숙한 만큼 좀처럼 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제는 영어를 떠나 프랑스어나 에스파냐어, 라틴어 등을 이용한 브랜드 네이밍도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 『브랜드 네이밍 백과사전』에는 한국어를 포함한 11개 언어의 약 4만 개에 달하는 어휘가 실려 있다. 자연, 생명, 개인, 사회라는 네 개의 틀로 나누어 분류된 이 어휘들은 때로는 익숙할 때도 있고 굉장히 어색한 경우도 있다. 아마도 특정 단어를 다시 한 번 특정 언어로 변환했을 때 생기는 위화감이리라. 이 단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노라면 상당한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태양계’ 꼭지에 포함된 금성(venus)이란 단어만 해도 이미 속옷 브랜드로서 우리에게 친숙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가만가만 살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써왔던 소위 콩글리시 브랜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패션 잡화를 취급했던 ‘블랑누아’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흰색을 뜻하는 블랑(blanc)과 검은색을 의미하는 누아(noir)의 ‘한국식 합성어’이다. 그러나 비단 이 책에 등장하는 단어에만 한정되지 않고 조금 더 뻗어나갈 수도 있다. 문구로 유명한 모나미나 파파존스 피자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모나미(monami)는 프랑스어 mon과 ami를 합친 말로 ‘내 친구’란 뜻이며, 아버지의 식당을 고쳐 피자를 팔기 시작한 존 슈나터는 파파존스(papa john's)를 만들었다. 물론, 아무래도 이 책은 전문적으로 브랜드 네이밍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유용할 듯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다양한 언어와 어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는 소리와 의미, 문자, 표기 수단 등이 주는 새로운 방식의 소통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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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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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과 매한가지로 일상의 언어, 입말이 아니므로 젠체하려 한다는 곡해가 생겨서는 안 된다. 예리한 날붙이는 여기서도 무뎌지지 않았다(다소 과잉된 해석일지라도). 그는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훤히 비추고 노출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디지털 통제사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은 '자유를 집중적으로 활용'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통제사회는 자유를 빨아먹고 산다고 말이다. 그러고는 투명(성)과 불투명(성)을 언급하며 훔볼트를 불러온다. 「그 누구도 어떤 말 속에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 모든 이해는 언제나 몰이해이기도 하며 생각과 감정의 모든 일치는 동시에 분열이기도 한 것이다.」 오직 정보로만 이루어진 세계, 정보의 원활한 유통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세계는 기계와 유사하다.(p.16) 그러므로 당연히 정보의 많고 적음은 그것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척도가 될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극장지배(theatrokratie)는 액체 민주주의(liquid democracy)와도 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사회에 참여하려는 개개인은 투명성/투명함을 요구한다. 그의 말대로 과잉 긍정의 세계에서는 '좋아요'만 있을 뿐, 눈을 씻고 보아도 '싫어요' 따위 존재하지 않겠지만(존재할 수 없다)ㅡ 물론 이러한 긍정사회는 '투명사회'라는 전체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그에 의하면 시각의 빈틈이 없는 사랑은 포르노이며 지식의 빈틈이 없는 사유는 사유가 아니라 계산적인 것에 불과하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투명사회 = 포르노적 사회>를 성립케 한다. 순수한 투명성/투명함이든 거짓된 투명성/투명함이든 ㅡ 표(表)와 리(裏)가 구분지어지든 말든 ㅡ 사람들은 투명이라는 단어 앞에 이면을 생각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미지의 증가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가 되라는 강압에 있다. 모든 것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투명성의 명령은 가시화의 압력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그 점에서 투명성은 폭력적이다.


ㅡ 본문 p.35




그가 인용하는 헤겔의 논의는 이렇다. 사유에는 일정한 부정성이 내재하는데 이러한 부정성으로 인해 사유는 자신을 변모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스스로 달라진다는 부정적 특성은 사유를 구성하는 본질적 측면으로서, 단 하나의 인식이 기존의 인식 전체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ㅡ 히친스처럼 회의를 품으라 ㅡ 「정보에는 이러한 부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투명사회는 시인이 없는 사회이며 유혹도 변신도 없는 사회다.(p.81) 그는 시인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연극적 환상, 가상의 형태, 제의적, 의식적 기호를 생산하는 자, 적나라한 사실에 예술작품, 반(反)사실을 맞세우는 자. 그렇다면 나는 아이웨이웨이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현실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아이웨이웨이』, 미메시스, 2011) 그러면서 한병철은 가상 세계의 무중력적 긍정성에 맞서 이번에는 하이데거를 인용한다. <'숨지 않은 것'은 어떤 '숨음'에서 뜯어낸 것>이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바로 신뢰가 사라진 상황에서 높아지는 것이므로ㅡ 이로써 신뢰의 줄어듦은 또 다른 형태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를 양산해낼 수 있음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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