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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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뜩 발기된 고층건물인 아파트의 현재성은 어디에서나 똑같다.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일본의 '맨션'이라는 개념인데, 건물을 높이 올린 좁은 땅덩어리에 수십 수백 명이 다닥다닥 모여 사는 건 명칭만 다를 뿐 형태나 성격을 보아도 매한가지라 할 수 있겠다. 최대한 가까이 붙어있으면서도 누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몰인식의 집합체. 『그랜드맨션』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초점이 다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앞서 말한 맨션의 부조화에서 기인한다.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분명 옆방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ㅡ 그 방을 나와 마주보기 전까지는, 서로의 생김새를 묘사해낼 수 없는 감옥의 죄수들같이ㅡ 그네들은 주차장의 덮개 씐 자동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며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사람이 같은 층수를 눌러도 본체만체한다. 소설은 여러 개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큰 얼개를 이루는데, 일견 부조리극의 하위범주(란 게 있다면)에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호의 실직자는 소음에 시달리고 105호에 거주하는 노인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넘어간다. 303호 여자는 스토커가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고민하며 203호 남자는 형편이 궁하던 차에 옆집 할머니의 '장롱예금' 이야기를 엿듣는다. 그런가하면 치매를 앓는 노인과 연금을 부정으로 수급하려는 사람도 있다.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모인 이 성냥갑 같은 네모반듯한 건물을, 조정래는 아파트를 처음 본 상경한 이의 시선으로 표현한 바 있다. 「……1, 2층도 아닌 5층이나 6층의 높은 건물에 층층이 사람이 산다는 것이었다 (...)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식을 키우고 또 자식을 낳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그 위에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그러나 이러한 경이로운 모습이 낳은 것은 건물의 구획 정리와 그에 따른 단절이다. 이제 맨션(아파트)은 성냥갑이 아닌 '토끼장'이다. 서술 시점의 재빠르고 복잡한 변화로, 그랜드맨션의 토끼장에서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이웃을 알아가고 그들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려 하기도 한다. 『그랜드맨션』은 다분히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성격을 띠지만, 몰랐던(관심도 없던) 옆집의 정체(라기보다는 사정이라고 하자)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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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평민열전 - 평민의 눈으로 바라본 또다른 조선
허경진 지음 / 알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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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질서의 편재로 피지배계급에 속했던 평민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집권층의 무능력으로 시작된 당파 싸움과 몰락하는 양반의 바람 속에서, 그들은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서로 글자를 가르치거나 한시를 짓는가하면 그림 하나만으로 임금의 눈에 띄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계급이 더욱 뚜렷한 것을 제외하고는 외려 능력 있는 인물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방영되었던 드라마에서 말[馬]을 고치는 인물로 등장한 백광현, 영화로도 만들어진 장승업의 이야기, 또 제주 태생 김만덕 등이 바로 그들이다. 『조선평민열전』은 이러한 19세기 평민들의 삶을 직업에 따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절반씩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일화뿐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표현력 또한 들 수 있는데, 이옥(李鈺)은 문집 『문무자문초(文無子文鈔)』에서 바둑을 잘 두었던 정운창(鄭運昌)이란 자의 바둑돌 내려놓는 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포위하는 것은 성채 같고 끊는 것은 창끝 같았으며 세우는 것은 지팡이를 짚은 것 같고 합치는 것은 바느질한 것 같았다 (...)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도끼 구멍에 끼우는 것 같고 변화하는 것은 용 같았으며 모이는 것은 벌 같았다.」 바둑 한 수 두는 것을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것 있나 싶기도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더불어 그것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쪽의 시선 또한 이채롭다. 또 책을 파는 중개상(요즘으로 치면 헌책방이랄까?)인 조신선(曺神仙)이란 자 ㅡ 이름이 '신선(神仙)'이라는 것은 후에 스스로가 지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으면 그의 괴짜 같은 면모를 볼 수 있으므로 ㅡ 는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세상에 책이 없어진다면 나도 달리지 않을 테고, 세상 사람이 책을 사지 않는다면 나도 날마다 마시고 취할 수 없을 거요. 이는 하늘이 세상의 책으로 내게 명한 것이니, 내 생애를 책으로 마치려오.」 이 얼마나 기세등등한 모습인가. 조신선은 일종의 유통망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업 정신 내지는 자부심이 지금의 사람들보다 몇 배는 강했던 것만 같다.



아, 물론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있다. 평민은 양반과의 물리적, 생리적 부딪힘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지배계급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위에서 누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대략적인 기록은커녕 목숨마저 잃을 지경이었을 테니 말이다. 또 피지배계급과 패자의 역사가 언제고 숨어버리고 마는 현상이 비단 저 옛날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질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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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강덕상 지음, 김동수.박수철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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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극우세력의 혐한 시위가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때에, 엊그제 뉴스를 통해 또 하나의 뜨악한 보도를 접했다. 얼마 전 산사태가 발생한 일본 히로시마에서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빈집 털이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돈다는 것이다.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을 집어 들고 한창 읽어나가는 와중에 90년 전 일어난 일이 지금 다시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지진 이래로 일본이 갖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지한다. 지금 일본은 관동대지진이 있었던 1923년 당시를 기해 매년 9월 1일을 방재(防災)의 날로 지정해서 피난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스꽝스럽게도 그때의 학살은 제쳐두고 있는 실정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불령선인(不逞鮮人,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발심을 갖고 소요 등을 일으킬 염려가 있는 조선인)이란 말로 조선인들을 차별했다. 그리고 곧 <조선인이 방화를 했다 / 우물에 독을 풀어 넣었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떠돌기 시작했다. 일본 군부는 특히 재해가 일어난 1일부터 즉각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조선인'이란 표현을 쓰면서 군인들에게 실탄을 지급하고 총기에 착검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위의 유언비어와 같은 사실을 목격했다거나 방화범의 검거가 확인된 적은 없었으며 증거 또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들었다'는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錬太郎)의 말은 믿음이 가질 않는다. 스스로가 '유언비어'라 발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무대신이라는 자가 그 유언비어에 편승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것은 3.1운동을 기점으로 조선 독립운동에서 고조되었던 사회주의 노선을 잠재우기 위한 술책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실제로 당시 발생한 한두 건의 방화를 두고서 급속히 확산된 유언비어가 결국엔 계엄령으로 이어졌고, 훗날 조선인의 학살과 사회주의자 색출이라는 두 갈래의 노선이 드러난 것을 보면 그렇다.




대지진으로 도쿄 시내는 피난민 등의 혼잡이 극심한 형세였는데 내지인과 조선인을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말씨가 분명치 않은 자를 조선인이라 하고, 무리를 이룬 피난민을 보고서는 '불령선인' 단체라고 속단했으며, 조선인 노동자가 고용주의 인솔 하에 작업장으로 가는 것을 '조선인 무리의 습격'이라고 잘못 믿어버리는 등의 사례가 많았다. 9월 2일 오후 3시경 자경단원이 고마고메(駒込) 경찰서로 끌고 가 폭탄과 독약을 소지한 조선인을 조사해본 결과, 폭탄이라고 한 것은 파인애플 깡통이었고 독약이라고 한 것은 사탕이었다.


― 일본 군부의 「계엄령에 관한 연구」에 나오는 대목 (본문 p.108)




허구의 범죄로 의심되는 보고도 무척 많았는데, 이런 것은 한두 건이 아니므로 전부 열거할 수는 없다. 다만 눈에 띄게 앞뒤가 맞지 않는 사실 중의 하나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지진이 발생한 당일(9월 1일), 요코하마께 사는 야마구치 세이켄이라는 자가 피난민들을 모아놓고서 조선인들이 밤에 일본인을 습격하려 한다는 설이 있으니 서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선전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니시자카 가쓰토라는 경찰고등과장의 진술은 이와 약간 다르다. 그는 9월 2일 오전 5시경 야마구치 세이켄에 대한 보고를 접해 현장에 나갔는데, 부근 이재민들을 모아 식량자급 방법에 관해 연설하고 있었다고 판단되어 불온한 언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경고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내용을 의심한다. 바로 일시의 차이이다. 야마구치라는 자는 당국에 '유언비어는 9월 1일 밤 8, 9시경 이후에 들었다'고 진술했단다. 그렇다면 그가 열었다는 피난민대회는 언제 있었던 것이며, (무리해서 본다면) 나아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하는 점도 의심된다. 나중에 야마구치 세이켄은 폭동을 일으켰다는 조선인 두목으로 바뀌어 졸지에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에 저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든다. 유언비어가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과 조선인 멸시관 등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있었던 사소한 조선인 범죄를 침소봉대하여 소란을 야기했을지 모른다는 점 등이다.



이 유언비어에 앞서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일본 관헌이 조선인을 다루었던 방식도 희한하다. 한국병합 후 일본에 상륙한 조선인은 일정 양식의 명부에 등록해야 했는데, 이것과 관련해 고안된 「조선인 식별자료에 관한 건」이란 것이 있다. 잠깐 언급해보자면 이런 식이다. ①골격과 외모: 신장은 내지인과 차이가 없으나, 자세가 바르고 허리나 등이 굽은 자가 별로 없음. / 뒷머리는 목침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체로 납작함. ②예식과 음식: 인사를 나눌 때 웃어른은 짐짓 의젓한 태도를 보이려는 습관이 있고, 아랫사람이 어른을 대할 때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몸을 구부리는 습관이 있음. / 책상다리를 할 때 왼발을 오른발 위에 올리고 무릎과 무릎을 교차시키는 것이 일반적임. / 부인을 정면에서 보지 않고 측면에서 보는 습관이 있음. ③풍속: 얼굴을 씻을 때는 먼저 양손을 충분히 씻은 후에 얼굴을 씻음. ④코를 풀 때 종이를 쓰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손으로 푼 다음 기둥이나 기타 식물의 잎사귀 등에 거리낌 없이 이를 닦는다. / 서류(증명서나 편지 등)를 보관할 때는 아주 작게 접어 돈 주머니나 봉지 속에 넣어두는 풍속이 있음. ㅡ 정말이지 면밀한 관찰이라고 해야 할지 황당무계하다고 해야 할지 알쏭달쏭한 대목이며, '멸치가 물고기인가 조선인이 인간인가'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조롱과 차별 속에서 살았던 조선인들의 처우가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피난민 무리를 오인하고, 불령선인이라는 낙인을 찍어 '죽여도 좋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관헌이 자경단을 부추겨 조선인을 학살케 하고, 매스컴이 그런 당국의 확성기 역할을 하고……. 관헌이 교사/하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재향군인회, 소방대, 청년단 등의 자경단은 거주 지역의 화재나 도둑 수색 등의 본래의 임무를 벗어나 엽총, 일본도, 몽둥이, 도끼, 죽창 등을 가지고서 조선인들을 마음대로 죽였다(살인 방식 또한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후에 자경단은 관헌에 의해 돌연 팽(烹) 당하고 만다. '유언비어는 거짓말이었고 학살은 큰 실책이었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을 예견한 관헌이 수많은 자경단원 중에서 '불량스런' 자경단을 표적으로 삼아 검거하여 국가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대리범죄자로 만들어간 것이다.(p.234)





일본 관헌은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각종 서류(의 수치)를 주먹구구식으로 작성했으며 나중에는(유언비어가 그저 유언비어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난 뒤) 조선인들을 불령(不逞)과 양(良)으로 구분하는가하면 도로 정비와 동포의 사체 처리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사역했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반 이재민들과 학살된 조선인들을 한데 모아 혼조(本所)에 있는 피복제조장 터를 사체처리장 삼아 불태우는 데 동원되었다. 또한 일본정부는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도쿄 부근 조선인을 나라시노 포로수용소에 수용해 전시 포로 취급을 하기에 이른다. 강제수용소에 있던 조선인들에게는 면회의 자유, 통신의 자유, 심지어 귀국의 자유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조선인 학살로 시작된 것은 사회주의자 색출과 말살로 이어졌고, 이 나라시노 수용소는 조선인 '주의자'를 색출해내는 데 적당한 밀실로 작용했다. 재해 아래에서의 민족박해가 이데올로기 말살책으로 확대된 셈이다.(p.302-307)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백색테러는 지금도 똑같은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을는지 모른다. 관헌이 자경단에게 조선인을 떠넘겨 학살케 하도록 선동한 것처럼, 현재 아베 정권의 망언에 영향을 받는 (극우) 일본인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이것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일부분이 아니다.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며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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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2014년 개정판.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이 궁극의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땅뺏기>

빼앗는 자들에겐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빼앗기는 자들에게는 기아를 주는 ‘땅뺏기’의 실상.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대규모 토지를 무상이나 헐값에 매입하거나 장기 임대하는 것. 과연 상생인가 기생인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거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과학자이고, 그가 전해주는 역사의 갖가지 사료들을 언제나 우리를 매료시킨다. 본성과 천사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이채롭다.



<프리덤 서머 1964>

1964년 여름 목숨을 건 백인 청년학생들이 미시시피로 가는 버스 앞에 섰다. 같은 시각 또 한 무리의 미국 젊은이들은 수렁에 빠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있었다. 이 공포와 좌절, 희망과 용기의 온상지에서 부르짖는 프리덤 서머. (김승옥의 단편과 비슷한 제목이지 않은가?)



<원자력 프로파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에 관한 광고들이 사라졌다. 대다수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원자력이 안전하다고 믿도록 만든 그 문제의 프로파간다. 책은 실제로 게재됐거나 방송된 광고들 250편을 그대로 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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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4-09-0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원자력 프로파간다 당장에 검색들어가네요
감사합니다
 
냉혹한 이야기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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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저리 옮겨 다닌 시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된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스리 파인스의 어느 곳에서. 심하게 굶주린 이들이 잔뜩 무리 지어 살고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그들은 서로를 주저하면서도 이따금씩 생채기를 내는가하면, 바깥으로부터 숨어는 있지만 자신들 역시 과거에 외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리고 그들 어제의 과거가 곪기 시작해 기어이 오늘 살갗 위에서 터지고야 만다(악마가 언제나 구석진 곳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도서추리의 냄새가 나는 『냉혹한 이야기』는 짧았던 프라하의 봄의 상처가 더쳐 모든 것이 거의 변하지 않는 마을 스리 파인스에서 곪아터진다ㅡ 마을 주민 클라라의 말처럼 스리 파인스에는 시체를 만들어내(야 하)는 소명이 있는가 보다. 여느 때처럼 가마슈는 누구든지 의심하면서도 누구나의 집에 들어가(초대되어) 차를 마시고 저녁을 대접받으며(흔쾌히!), 종국에는 하나의 인간이 죽기 전과 후의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피해자와 범인을 안타까워한다. 그의 신념대로 모든 것은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전혀 괜찮지 않은 ㅡ I'm Fine('F'uck up, 'I'nsecure, 'N'eurotic, 'E'gotistical) ㅡ 상황이다.(p.136) 범인(이라고 여겨지는 자 또는 용의자)의 (거짓)말[言]은 입속에서 썩는가하면 공기 중으로 뿜어져 졸렬하고 참혹한 경우에 불거지는 악감정과 거친 언사처럼 다른 사람의 가슴에 박혀 그대로 응고된다. 불쾌한 일이다. 가마슈는 그/그녀를 시큼한 피클처럼 절이고 절여 질겁하게 만들고, 스리 파인스의 주민들은 아귀가 잘 맞는 하나의 작은 편대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들이 친구로 여겼던 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거짓으로 밝혀짐에 따라 이내 등을 돌리고 만다. 루이즈 페니의 소설이 대개 그렇지만 이 『냉혹한 이야기』는 오리를 데리고 다니는 미친 시인 루스(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아닌가)가 써내는 단편적인 시의 구절이 혼란스레 떠다니는 가운데 심농의 냄새가 물씬 흘러넘친다. 물론 심농은 『명탐정 코난』마냥 속전속결이지만(코난의 경우 주간만화 연재 중 3회 안에 사건 해결을 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 매그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가마슈란 감성적 인물의 존재로 인해 결코 쾌적하지 않은 실제의 삶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암호가 약간 아쉽긴 하나(물론 '키워드'가 중요했지만 결국엔 '시간문제'였으므로), 소설은 매력적인 캐릭터의 환원과 함께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제반에 눈을 돌림으로써 이야기가 갖춰야 할 튼튼한 골격을 쌓았다는 느낌이다. 여러 개의 선택지 중 고를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결국엔 범죄의 길에 들어선다ㅡ 이 당연하게 보이는 맥락은 필연적으로 그들 사회와 역사(과거)에 귀결될 수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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