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혼돈
산드로 베로네시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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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소설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위험도 많고. 그런데 생각해보자. 누구도 너무나 이상하고 너무나 그럴듯하지 않은 생각을 할 수는 없으며 그런 생각은 이런저런 철학자들이 이미 다 했다고 한 데카르트의 말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그건 차치하고라도『조용한 혼돈』은 너무나도 평온하다. 첫 페이지부터 종반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이 책에서 뭐랄까 가슴 먹먹함이랄지 덤덤한 고통 내지는 폭풍 같은 좌절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거라 여겼다. 애초 그런 죄책감을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500쪽에 가까운 텍스트는 마지막 단 한 문장을 위해 꿈적이고 있던 거였다……. 하나의 생명이 죽으면 하나의 세계가 사라질까? 내가 죽는다는 건 단지 뱀이 허물을 벗듯 아주 짤막한 잔상만을 남기고서, 혹은 그것조차도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던 땅꾼이 발로 차버리기라도 한다면, 이 세계에서 나만 조용히 빠져나온 뒤 나머지는 무척이나 차분히, 그대로 있을지도 모르겠다.「폭풍우라고? 안개라고? 무슨 말들을 하는 거야? 우리는 단지 우리의 계기들을 다루었을 뿐이라고!」칠레출신 철학자 마투라나가 비유로 삼은 이야기다. 비행기 외부에서 일어난 것은 비행기 안의 것들과는 관계가 없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라고. 우리(적어도 나)는 우리(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다른 세계까지 마음대로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일생을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종사들처럼 자신의 계기판과 모니터로만 세계와 관계할 수 있을 뿐이지. 그럼 반대로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면 또 하나의 세계가 탄생할까? 나는 이 새롭게 탄생한 세계는 타자의,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본다. 물론『조용한 혼돈』에서는 마흔셋의 홀아비인 피에트로 팔라디니가 이 새롭게 탄생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주된 역할을 한다. 클라우디아와 ‘미안하지만’ 놀이를 하고 학교 앞 정원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것. 베네데타의 엄마(바르바라 혹은 베아트리체)와 어색하게 인사하는 것. 처제 마르타에게 ‘형부는 정말 나쁜 놈이야’ 소리를 듣는 것. 동생 카를로와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 자신이 파도 속에서 구한 부자 여인과 섹스를 하는 것. 에녹의 글을 읽으며 맞춤법을 지적하는 것. 피퀘트의 넌덜머리나는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는 것. 자신을 선생이라 부르는 노인과 페페론치노를 뿌린 스파게티를 먹으며 토마토소스를 붉은 피라 생각하는 것. 개를 데리고 다니는 욜란다의 매력 없는 얼굴을 보는 것 등등. 당연히 이런 모든 것에 전제되는 건, 제일 처음에 제시되는, 해변에서 여자를 구하며 발기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럼 그 빌어먹을 물건이 문제였군. 새로운 세계의 ‘혼돈’ 속에서 ‘조용히’ 발기되고 그런 자신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 고통스럽지 않게.

 

 

덧) 버트런드 러셀 曰,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덧) 대체 라라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피에트로의 아버지는 그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알고 있긴 한데).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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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1926~1984』 : 20세기 문제적 철학자 푸코에 대한 가장 내밀하고 충실한 평전이라고 본다. 저널리스트인 디디에 에리봉은 푸코의 철학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 삶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푸코와 직접 교류하며 지냈던 인물이다. 그는 푸코의 가족에서부터, 친구나 동료들, 그의 지적 스승들뿐 아니라, 학계에서의 그의 적수라 불릴 만한 모든 인물을 인터뷰하고, 그가 썼던 모든 글들을 파헤침으로써 인간 ‘푸코’를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검열에 관한 검은책』 : 검열이 행해지는 분야를 나누어 10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 책. 검열의 역사와 다양한 형태에 대한 글에서부터 미풍양속을 해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책, 영화, 예술 작품들에 대한 검열과 그 사례, 국가권력이 개입된 검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검열을 다룬다.

 

『세계 도서관 기행』 : 2010년 출간되어 꾸준히 사랑받아온 <세계 도서관 기행>의 개정증보판이 새롭게 출간됐다. 세계 최초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서 세계 최대의 미국 의회도서관까지, 전 세계 13개국을 넘나들며 지성의 성지인 도서관을 순례했다.

 

『카프카 평전』 : 자유롭고 주체적이며 창조적인 작가로서 살아가려고 했던 프란츠 카프카의 처절한 문학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평전. 카프카의 자전적 작품인 일기와 편지, 완성된 작품과 미완성된 유고와 단편, 그리고 '노동자재해보험공사'의 공무 증명 기록 등 실제적인 그의 글들을 바탕으로 그의 진솔한 삶과 문학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조망한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27년간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한 300여 편의 엄선된 과학 에세이들 묶음. 읽지 않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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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권오섭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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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나는 스티비 원더하면「Superstition」과「Pastime Paradise」가 가장 좋다.「Part-time Lover」도 좋고. 스티비 원더는 뭐라 해도 뿅뿅거리는 사운드가 일품이니까. 반대로 마이클 잭슨의 경우, 희한하게도「Man in the Mirror」가 끌린다. 아무 상관없는 ‘a broken bottle top’이란 노랫말도 무인도에서라면 그 황망함을 배가시켜 줄 거고. 또 핑크 플로이드는 책에 소개된 앨범《The Wall》이 아닌 일명 ‘프리즘 앨범’으로 불리는《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수록곡「The Great Gig in the Sky」가 최고다, 적어도 내 취향엔(클레어 토리의 소름끼치는 보컬이 무인도에 떨어진 당신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나운 짐승과 악귀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이런 귀여운 애칭으로 말하자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분신 앨범’도 한 몫 할 수 있다. 바로 그들의 데뷔앨범 말이다. 난 이 앨범의 전곡을 좋아하지만 그들이 아직까지 생경하게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다소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나 저 노래나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 첫 번째 앨범이 곧 마지막 앨범이 될 것처럼 모든 걸 쏟아 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이후 다른 앨범들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된다) 그래도 기계를 증오하는 네 청년을 뛰어넘는 포스트 RATM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 ― 저자는 이 앨범을 ‘친구가 생각날 때’란 파트에 집어넣었는데, 무인도에 표류해서 이 앨범을 듣게 된다면 분명 싫어했던 친구를 떠올리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간혹 비틀즈의「Yesterday」나 이글스의「Hotel California」처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전주만으로도 지겹게 느껴지는 너바나의「Smells Like Teen Spirit」도 이 책 목록에 있으니 역시 조심하길.

 

 

사실 무인도에 떨어지면 음악이건 뭐건 ‘사치스런 문화’라고 느낄 법도 하다. 당장 살아남기 급급한데 웬 음악. 그래도 만약 40장의 앨범이 모진 파도 속에서도 고스란히 살아남아 모래가 덕지덕지 붙은 발치에 가만히 쌓여있다면. 당연히 들어야지. 야자열매나 따먹으면서 구조선이 올 때까지 플레이버튼을 누를밖에.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개인적인 웃음거리가 있다. 바로 본문에 떡하니 실려 있는 자미로콰이의 앨범. 나 역시 물론 자미로콰이를 좋아하지만 내 친구 중엔 이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녀석이 있다. 그 여자애가 말하길, 영화《화성침공》에서 클래식을 듣고 머리가 터져 죽는 외계인처럼 될 것 같다나.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제이미 컬럼도 언급해보자. 솔직히 이 책에 제이미 컬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Twentysomething》앨범이. 이 앨범엔 영화《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흐르던「Everlasting Love」도 있고,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These Are The Days」도 수록되어 있다. 첫 노랫말은 이렇다. ‘These are the days that I've been missing, give me the taste, give me the joy of summer wine.’ 전체 가사는 모르지만 ‘summer wine’이 들어있으니 왠지 무인도와 어울린다. 그런데 이 흥겹고 따뜻한(?) 감성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이들이 있다. 라디오헤드. 듣고 있으면 더 우울해진다. 나 역시 라디오헤드를 좋아하지만 그보다 톰 요크의 솔로 작업물을 더 좋아한다. 기계음이 작렬하는《The Eraser》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 리믹스 앨범을 구입했을 정도니까……. 어쨌든 뭐, 책에는 이것들 외에도 알찬 음반들이 꽤 많다. 무인도란 명제를 들이대니 정말 무인도에서 들으면 좋음 직한 것들도 수두룩하고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개인적인 취향으로 만들어진 목록이니 이에 불만이 있다면 정일서의『365일 팝 음악사』를 읽거나「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어야지.

 

 

덧) ‘무인도에 챙겨 가고 싶은 음악 7곡 수록 음반’이란 CD가 부록으로 들어 있다. 7곡? 너무 적지만, 몇 곡 들어있지 않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다채롭지 못해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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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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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 내가 보기에 마초는 아냐. 마지막에 로셸을 때려치웠잖아. 단지 ‘마지막 한 번’이란 게 좀 걸리긴 하지. 하지만 심지어 강간하거나 강간당하거나 핥거나 치마를 추어올리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문제는 솔직함을 덮고 점잖은 체할 수 있냐는 건데, 그렇게 못해서 이건 마스터피스, 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신춘문예에『여자들』을 냈다간 바로 아웃이다. 사실 어딘들 그럴 테지. 나는 섹스를 통해 신과 합일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고, 섹스를 하고 나면 편두통이 사라지며, 다른 애들의 부러움을 사려고 인기 있는 남자와 섹스를 하고,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이 반대할 것 같으면 섹스를 해준다는 여자를 수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대체 왜 여자들이 섹스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늘어놓은 어떤 책에 나와 있기도 하다. 냄새, 얼굴, 태도, 유머 면에서 치나스키는 합격이다. 특히 침대 위에서. 섹스는 교환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단순한 희열 때문에 이루어지기도 하며 의무감으로 인해 인간을 구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건강상의 이로움도 있다고 여기고 싶은데, 여기서 자꾸 섹스 얘기만 한다고 색정광으로 몰리는 것 또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이 책에 대해서는 이것밖에 얘기할 게 없다! ‘옮긴이의 말’의 ‘이 소설에서 치나스키가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들에게 사정(事情)하고 사정(射精)하는 것뿐이다’라는 대목은 그래서 재미있다……. 나는, 극에 달하면 다시 반대로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여기에 낭만이 있는 거라고 본다. 더치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씹할’ 소리가 튀어나가고, 배척당하기 위해 배척하며, 무엇보다 여자들의 속내를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그리고 치나스키는 적어도 여자를 속이진 않는다. 뭐, 그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리디아에겐 뻔히 보이는 거짓말도 하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놓고 들킬 것을 상정하고 있다. 그럼 이제 뭐가 남았을까. 튼실한 보라색 물건밖에 없나? 과거 에드워드 애비가 그의 작품으로, 거세해서 영원히 감금시켜야 한다는 평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는『몽키 스패너를 든 강도들』에서 아주 ‘점잖은’ 환경운동가들을 그렸지만 거세당해야 한다는 혹평을 들었다. 부코스키야 어련하시겠어. 그건 그렇고, 치나스키가 그러길, 친절한 사람이 섹스를 더 잘한다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꽤 친절하다고…… 라는 건 반쯤은 농담이고,『여자들』을 읽기 전에『우체국』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 편이 충격이 덜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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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악!

 

 

 

 

덧)

송구하다. 이게 내 감상이다. 영원한 임시 비정규직 보결 사무원 치나스키.

그러니 (치나스키식으로 말하자면) 이 좆같은 책을 당장 읽지 않으면 좆될 줄 알아.

읽기 싫으면…… 그냥 그러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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