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권오섭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2월
평점 :
오히려 나는 스티비 원더하면「Superstition」과「Pastime Paradise」가 가장 좋다.「Part-time Lover」도 좋고. 스티비 원더는 뭐라 해도 뿅뿅거리는 사운드가 일품이니까. 반대로 마이클 잭슨의 경우, 희한하게도「Man in the Mirror」가 끌린다. 아무 상관없는 ‘a broken bottle top’이란 노랫말도 무인도에서라면 그 황망함을 배가시켜 줄 거고. 또 핑크 플로이드는 책에 소개된 앨범《The Wall》이 아닌 일명 ‘프리즘 앨범’으로 불리는《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수록곡「The Great Gig in the Sky」가 최고다, 적어도 내 취향엔(클레어 토리의 소름끼치는 보컬이 무인도에 떨어진 당신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나운 짐승과 악귀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이런 귀여운 애칭으로 말하자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분신 앨범’도 한 몫 할 수 있다. 바로 그들의 데뷔앨범 말이다. 난 이 앨범의 전곡을 좋아하지만 그들이 아직까지 생경하게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다소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나 저 노래나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 첫 번째 앨범이 곧 마지막 앨범이 될 것처럼 모든 걸 쏟아 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이후 다른 앨범들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된다) 그래도 기계를 증오하는 네 청년을 뛰어넘는 포스트 RATM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 ― 저자는 이 앨범을 ‘친구가 생각날 때’란 파트에 집어넣었는데, 무인도에 표류해서 이 앨범을 듣게 된다면 분명 싫어했던 친구를 떠올리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간혹 비틀즈의「Yesterday」나 이글스의「Hotel California」처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전주만으로도 지겹게 느껴지는 너바나의「Smells Like Teen Spirit」도 이 책 목록에 있으니 역시 조심하길.
사실 무인도에 떨어지면 음악이건 뭐건 ‘사치스런 문화’라고 느낄 법도 하다. 당장 살아남기 급급한데 웬 음악. 그래도 만약 40장의 앨범이 모진 파도 속에서도 고스란히 살아남아 모래가 덕지덕지 붙은 발치에 가만히 쌓여있다면. 당연히 들어야지. 야자열매나 따먹으면서 구조선이 올 때까지 플레이버튼을 누를밖에.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개인적인 웃음거리가 있다. 바로 본문에 떡하니 실려 있는 자미로콰이의 앨범. 나 역시 물론 자미로콰이를 좋아하지만 내 친구 중엔 이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녀석이 있다. 그 여자애가 말하길, 영화《화성침공》에서 클래식을 듣고 머리가 터져 죽는 외계인처럼 될 것 같다나.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제이미 컬럼도 언급해보자. 솔직히 이 책에 제이미 컬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Twentysomething》앨범이. 이 앨범엔 영화《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흐르던「Everlasting Love」도 있고,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These Are The Days」도 수록되어 있다. 첫 노랫말은 이렇다. ‘These are the days that I've been missing, give me the taste, give me the joy of summer wine.’ 전체 가사는 모르지만 ‘summer wine’이 들어있으니 왠지 무인도와 어울린다. 그런데 이 흥겹고 따뜻한(?) 감성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이들이 있다. 라디오헤드. 듣고 있으면 더 우울해진다. 나 역시 라디오헤드를 좋아하지만 그보다 톰 요크의 솔로 작업물을 더 좋아한다. 기계음이 작렬하는《The Eraser》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 리믹스 앨범을 구입했을 정도니까……. 어쨌든 뭐, 책에는 이것들 외에도 알찬 음반들이 꽤 많다. 무인도란 명제를 들이대니 정말 무인도에서 들으면 좋음 직한 것들도 수두룩하고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개인적인 취향으로 만들어진 목록이니 이에 불만이 있다면 정일서의『365일 팝 음악사』를 읽거나「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어야지.
덧) ‘무인도에 챙겨 가고 싶은 음악 7곡 수록 음반’이란 CD가 부록으로 들어 있다. 7곡? 너무 적지만, 몇 곡 들어있지 않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다채롭지 못해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