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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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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들이 노년층에 비해 월등히 많았고 지속적인 성장세가 보이던 때.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지금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한 믿음이 청년들의 가난과 무직을 미덕으로까지 보이게 했던 시절은 이미 흘러갔다. 특정된 직업 없이 파트타임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 쪽의 수입이 대기업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의 연봉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일본에서의 일 년간의 생활에서 (순수하게 경제적인 개념으로만 보자면) 느낀 것은, 이렇게 파트타임만 평생 할 수 있다면 먹고사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는 것이었다(당시 나는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한 달 총수입은 최소 20만 엔이 넘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면 정규직으로 확실히 취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은 거의 없을 거라 한다(한국도 매한가지). 니트, 프리터 등의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는 오늘날 청년의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는가? 얼마 전 일본 방송의 일부를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우리 아버지 세대와 청년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하다,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지금의 청년들은 도전하지 않는가, 이것이 어느 중장년의 말이었고, 이에 답하는 청년의 말은 대략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지금의 사회는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기성세대인 당신들이다, 당신들이 만든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전을 하라느니 말라느니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 되었지만 하여튼 그런 뉘앙스를 풍겼던 청년의 답변이 기억난다. 『무업 사회』는 일전에 읽었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후자의 행복은 포기된 행복이며 전자의 무업은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무업이라 해도 좋을 것만 같다('어느 기업에서건 경력자만 채용하고 있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으라는 건가'처럼 꾸짖음과 같은 농담이 떠오른다). 부모에의 의존에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오랜 무직 기간에 의지가 꺾이고, 수도 없이 받은 불합격 통지에 스스로를 구석으로 내몰고, 이력서의 공백이 마치 범죄자의 그것처럼 여겨진다. 고된 노동보다 일할 수 없는 괴로움이 더 크다는 청년들(「취직 안 하니?」 「전 문과(전공)인데요.」 이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나 또한 그들 중의 하나다). 이러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사회생활 속에서 노동하지 않으면 해당 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박탈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고, 더불어 인간관계 또한 협소해져 사회 안쪽으로 진입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무업 사회는 사회의 인식과 안전망의 미비 속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추상적 시스템과 메커니즘이 여간해서는 쉬 전환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고통이라니. 그들이 느껴야 할 노동의 기쁨과 보람은 어디쯤에 있는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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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 - 철학자 김용석의 '김광석과 함께 철학하기'
김용석 지음 / 천년의상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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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노래하는 노동자. 사람. 사람들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 김광석을 위한 이야기를 김용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일 수 있겠다. 김광석은 우리였다고. 얼마 전 그가 남긴 멜로디에 노랫말을 붙여 발표하는 기획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만큼 시간이 흘러도 그가 우리 곁에 놓아둔 흔적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개인적으로는 가사를 덧붙이지 않고 그저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긴 했으나). 김광석이 노래하는 음악뿐 아니라 특히 노랫말에 있어서는 아무리 시간의 틈이 있다 한들 우리 삶 곳곳을 파고든다. 본문을 인용하자면 이런 식이다. 「'몇 시야?'라는 평범한 질문을 살짝 비틀어 '시간이란 뭘까?'라고 묻는 순간 모든 게 확 달라진다.」 김용석의 말대로 일순 세상이 물구나무서며, 몇 시냐는 물음에는 바로 답할 수 있지만 시간이 무엇이냐고 묻는 데에는 말문 자체가 막히고 말기 때문이다. 노랫말이라 하든 철학이라 하든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에는 그런 무한한 생명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과연 얼마나 온전히 이해하겠느냐만, 얼마나 온몸으로 부대끼며 느끼겠느냐만,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노랫말처럼 역설과 유희를 통한 극복과 타개의 몸부림은 언제고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래서 이따금 그가 '민중'과 '낭만'만으로만 부각되는 것이 다소 저어될 때가 있다. 한쪽에선 삶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부의 발췌만으로 의미를 협소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부르기'가 흡사 '마지막으로 부르기'처럼 엄중해지고 언어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고 성기게 만나는 것은 우리가 곧잘 세상만사 즐거움이 없는 상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텐데, 그 속에서 입맛대로 이것저것을 골라 달큼하게만 맛보려 해서는 안 된다. 김광석이 이 세계의 모든 낱말을 노랫말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가 내어준 시간의 생명이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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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라고 하기엔 좀 뭐하지만

그나마 방구석에 꽂힌 책들 중

열린책들의 책들이 가장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그런지 열린책들이 아예 책장 하나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2 x 5 짜리 책장 중 여덟 칸을 '알박기'하고 있는 오픈북스.

그 와중에 고리끼의 『어머니』 89년 판본의 노란 책등이 왠지 멋들어짐(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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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2-0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 하나는 열책 전용이군요. 오래된 판본도 정겹네요

그레코로만 2016-02-09 10:50   좋아요 0 | URL
나머지 칸들도 열책으로 꽉꽉 채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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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말 그대로(서지정보대로라면) 의학의 초기 혁신부터 바이오 제약의 최전선까지 망라한 현대의학사. 현대의학의 번영과 발전뿐 아니라 쇠퇴양상과 실패 역시 다루고 있다.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
지젝의 짧은 글 여섯 편. 하이데거와 나치, 시리아 난민, 자본주의 등의 여러 가지 주제를 이야기한다. 짧고도 긴 독서가 될 듯.


<성화>
성화(sexuation). 라캉 등을 인용하면서 성적 역할과 성차, 각각의 지위가 갖는 특수성을 다룬다. 정녕 '성 관계는 없는 것'인가?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반 고스' 대신 '판 호흐'라는 명칭을 선보이는 그의 평전. 기존 고흐(호흐)에 관한 신화적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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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 조선 최고의 과학자
조선사역사연구소 지음, 김광일.송윤선 사진 / 아토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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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전에서 장영실의 이름을 딴 과학 정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박테리아부터 첨단 IT 기술까지 과연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국내에 장영실 과학관, 또 해외 루마니아에 한인 기업가들이 성금을 조성해 장영실 교실이란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았다(갑작스러운 이야기일지라도, 과거 5만 원 권 지폐가 만들어지면서 장영실 정도의 얼굴이 새겨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릴 적 그 많던 위인전 속에서나 읽었던 장영실. 이제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다. 당연히 분량도 많아지고 내용도 늘어나니 그때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처음으로 접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아산 장씨로 태어났고 동래의 관노 출신이라는 점보다 더 확실한 것은 그가 남긴 업적인데, 책에는 그 업적이 발휘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엇보다 장영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세종일 것이다. 신분의 귀천으로 인해 관직과는 거리가 먼 장영실이었으나 세종이 늘 강조했던 것은 바로 득인위최(得人爲最), 바로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당시의 신분을 초월한 인재등용 방식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인 처사라 여겨질 수밖에 없다. 다소 극적인 비유이긴 하나 인턴이나 신입사원이 능력을 인정받아 어느 날 벼락처럼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가 남긴 발명품은 백성을 위하고 실용적인 것들이었으며 세종이 남긴 한글 또한 식자층을 대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치권자가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다룬 책이나 매체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현실에 빗대어보면 그런 차이점을 더 크게 느낄 수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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