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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반란자들’이라니.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를 옮겨놓고서 반란자라는 표지(標識)를 달아놓은 건 왜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 최소한 세상을 향해 문제제기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응당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라면 ‘반란자’라는 타이틀은 꼭 맞다. 사비 아옌은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것들과 그 사회의 지배논리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들과 뜻을 함께했으며, 권력의 저변을 이루는 근본적인 속성에 맞서는가 하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이데아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든다.
노벨상과는 전혀 다른 얘기지만, 이런 의미에서라면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이자 큐레이터이기까지 한 중국의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왠지 생각난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사실 우리가 현실의 일부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인터뷰,『Ai Weiwei 육성으로 듣는 그의 삶, 예술, 세계』)
처음엔 글보다 사진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들에 뭔가 관통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인터뷰와 함께 실린 사진들에는, 크든 작든 어김없이 ‘손’이 있었다(흡사 존 네이피어의『손의 신비』라고도 할 수 있을까). 글이 아닌 방법론으로 사회에 자신의 ‘손의 신비’를 뿌리는 이들. 낚싯바늘에 걸린 소리치지 못하는 물고기, 역사책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 차라리 교도소장이 되는 게 바람직한 문화부장관, 인간의 모든 위대함과 비천함을 취하고 있는 권력, 치료제로도 쓰일 수 있는 거장의 문학작품…….
작가들의 열여섯 가지 이야기에는 자신들의 ‘문학’과 ‘반란’과 ‘인간’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문학, 반란, 인간들 속에는 거꾸로 작가 그 자신들이 있었다. 그 주름 많고 질곡이 담겨있는 손으로 또 다른 자기(自己), 타자(他者)를 그려내고 있었다. 임레 케르테스의 아우슈비츠는 프리모 레비를, 월레 소잉카는 알렉스 헤일리를, 오에 겐자부로는 왠지 펄 벅과 영화《샤인》을 연상케 했다. 그들은 모두가 상처 아닌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투쟁 아닌 투쟁을 한다. 왜냐고 묻지 마라. 저들은 ‘새로운,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니까.
덧) 아, 역시 제목에 ‘반란’을 넣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이 책의 원제는 ‘Rebeldia de Nobel’이다. 영어로는 ‘Nobels Rebell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