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베꼈을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 명작을 모방한 명작들의 이야기
카롤린 라로슈 지음, 김성희 옮김, 김진희 감수 / 윌컴퍼니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롤린 라로슈가 첫머리에서 인용하듯 ㅡ 앙드레 말로 왈, 「예술은 형식으로 다른 형식을 정복하는 것」 ㅡ 예술은 끊임없는 재해석이자 영원한 동어반복인 듯싶다. 저 옛날 사람들에 의해 소재와 기법이 나올 만큼 다 나왔다면 더욱 그러하다.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해체하고, 어떻게 조합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라면 기존의 것들과 조금이라도 더 다르고 조금이라도 더 기발한 아이디어로 접근하려는 방식이 필요한 법. 그중에서도 미술은 곧바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인데, 때때로 그 본보기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확연히 알아챌 수 있는가하면, 어떨 땐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음에도 동일한 소재로 인해 모방이나 패러디 아니면 오마주 작품이라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재는 보편적이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눈을 사로잡는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서양화에서 성모 혹은 (아기) 예수는 꽤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자 이야깃거리여서 성화의 발전과 다양성에도 일단의 영향을 끼쳤을 것인데, 특히 다 빈치를 비롯해 보티첼리와 라파엘로 등에 의해 그려진 작품들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들의 그림은 모두 15, 16세기를 관통하며 후대의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20세기 현대에 들어 막스 에른스트가 그린 성모와 아기 예수(아래 그림 왼쪽)를 보면 그야말로 '그 담대함을 대놓고 피력하는' 멋진 그림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바로 <세 명의 목격자 앞에서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성모>다. 더군다나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는 시뻘건 원피스(일까?) 차림인데다가 아기 예수의 볼기짝은 이미 여러 차례 맞았던 듯 붉게 달아올라 있다(그녀는 어지간히 말려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눈빛을 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고야와 마네의 발코니 그림을 초현실적으로 재해석한 마그리트의 관(棺)도 있다(위 그림 오른쪽). 고야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 두 명(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과 그녀들을 감시하듯 지켜보는 남자들, 그리고 마네의 발코니엔 역시 다른 시선의 사람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아주 어둡게 그려진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 사람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멋진 방식으로 ㅡ 고야와 마네의 그림 속에서 상대방에게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만 같은 사람들의 소통 부재 ㅡ 표현해냈다. 그는 사람을 관으로 대체했는데, 심지어 본래 마네의 그림에서 그의 동생의 약혼녀가 앉아있는 포즈를 그대로 재현해 관을 비틀고 꺾어 사람처럼 앉히기까지 했다. 주인을 찾는 듯 어슬렁거리는 개와 몇몇의 행인이 등장하는 생라자르 역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 그림(귀스타브 카유보트 <유럽의 다리>,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되기도 했다)을 표지판과 파이프, 원색의 커다란 조합물들로 대체한 페르낭 레제(p.146), 근엄하며 점잖게 앉아있는 교황과 추기경의 초상을 유령처럼 울부짖는 괴기스런 작품으로 변형시킨 베이컨(p.55), 모나리자(아래 그림)에게 콧수염을 선물하고 재미있는 문구(L.H.O.O.Q.)까지 덧붙인 뒤샹(p.251)까지……. 이들을 그저 '베끼다'라는 동사 하나로만 표현해야 할까? 지극히 공개적으로 원형을 밝히고 거기에 자신만의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는 행위를?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엔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생각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내가 밀레의 작품들을 모사하려고 애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야. 이것은 단순히 베껴 그리는 작업이 아니야. 그보다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가까워. 흑백의 명암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색채의 언어로 풀어내는 거지.」 옛 가수들의 노래를 새로이 편곡해 리메이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보아도 좋지 않을까? 언제든 시대를 바꿔가며 그 모습 역시 다르게 접근한 또 다른 창작물을 그저 모사품이나 모방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거다. 거기엔 분명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때그때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