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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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떠오르는 추상의 이미지와 눈[雪] 그리고 가족이라는 점에서 영화 《씬 시티(Sin City)》, 페터 회, 로스 맥도널드가 복합적으로 버무려졌다(이런 이유로 좋은 작품이라 말하는 건 아니고). 그런데 너무 많은 걸 집어넣어서일까.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점은 좋았지만, 반대로 조금 빡빡한 감이 없지 않아 독자의 원활한 개입이란 측면에선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과연 등장의 의미가 뭘까,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곰팡이 제거반은 체호프의 '발사되지 않은 총'처럼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동시에 범인의 살인 동기 또한 내 타입은 아니었다. 그럼 대체 『스노우맨』의 뛰어난 점은 뭔가. 내가 보기엔 '밸런스'다……. 일단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녹기 마련인 눈사람의 태생적 명제를 끌어온 것은 매력적으로 보이며, 북 트레일러에 너무 구애된 나머지 초반부터 일종의 '장면'들이 텍스트 읽기를 재촉한다. 과감한 생략과 더불어 과하지 않은 디테일한 연출은 긴박한 속도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독자의 상상을 부른다(앞서 독자의 개입이 힘들다고 한 건 내러티브에 있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 것이다). 말 그대로 텍스트가 그대로 하나의 미장센이 되는 거다. 처음 주인공 해리 홀레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그것도 곧 분산되고 만다. 대부분이 '쓸모 있는' 조연들이었고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역할이 적절하게 부여되어 있으므로.

 

 

또한 현실감. 이 소설에서의 현실감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리얼리티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면 독자가 받는 보상은 적거나 없다. 그래서 『스노우맨』을 읽게 되면, 허구적 실재를 일단 수용한 후엔 텍스트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만 힘을 소진한다 ㅡ 그래도 나는 이 여정을 끝낸 후에 「이런 소설은 200페이지쯤은 더 있어도 되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러니까 이 작품은 독자의 열의를 꺾지도 않고, 극심한 묘사로 혼란을 초래하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심미적 매력에 얽매이지 않았으면서도 영민한 요령으로 '밸런스'를 유지한다. 읽으면서 얼핏 불륜의 죄악 혹은 불륜의 처벌이란 논제를 피력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건 아니었다. 말인즉슨 『스노우맨』이 내포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혼전순결'이나 '혼후(後)순결' 따위의 단세포적 이야기가 아니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나아가 '가족신화(family myth)'라고 여겨질 수 있는 거다 ㅡ 이건 가족이란 공동체의 합의된 거짓말로 가장된 것이다. 물론 자칫 확대해설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알레고리에 메스를 들이댄다는 방증은 상당히 농후하다. 왜 작가는 해리 홀레와 독자에게 라디오의 음성을 통해 바다표범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왜 스퇴프의 유전적 결함을 소설의 키워드로 설정했는가? 왜 여기에는 인간의 짝짓기라는 통계가 등장하는가? 뭐, 짚어가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스노우맨』은 본질로 설정한 문제에 스스로 답하는 폐쇄적 구조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이것이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식의 예술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이 소설이 소위 명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은, 얄팍한 속임수가 없고 이질적이고 다채로운 속성을 꽤 차분히 조합했다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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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4-2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곰팡이맨에 삘받아서 눈팅만 하다 댓글 남겨요.
김전일로 추리를 배운 전 곰팡이맨이 당연하게도 범인인줄 알았지 뭡니까 ㅎㅎ

그레코로만 2012-04-28 09:47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그놈, 뭔가가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끝나버려서 약간 실망(?)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혹 다음 시리즈에 그 곰팡이 제거반을 다시 등장시킬 의도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