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도 <행상> 18세기. 국립중앙박불관 소장.

 

행상. 물건을 이고 지고 냇물을 건너고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걷고 걸으며, 오늘은 이곳의 장을, 내일은 저곳의 장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인생이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 보니 장돌뱅이라고 배척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자본이 넉넉했다면 한 지역에서 좌상을 펼쳐 정착했겠지만 그럴 만한 기반도 없고, 농사지을 땅도 없다.

 

주로 농민을 고객으로 물건을 파는 행상에게는 농업이 선망하는 꿈의 직업이 된다. 쌀을 먹고 사는 민족이니 농사가 귀한 일인 것은 틀림없다. 땅 한 뼘이라도 있다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곡식을 거두며 고향에서 든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겠지만, 그럴 만한 처지가 못 되니 고향집을 떠나 낯설고 물선 타지를 돌아야 했다. 그렇게 바람 속에서 찬밥을 먹고 어느 집 처마 밑이나 주막집의 헛간에서 밤이슬을 피해 잠을 청해야 하는 길 위의 인생은 고단하기만 했다.

 

물론 행상들 중에는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유랑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쫓겨난 머슴, 도망친 노비, 주거가 없는 부랑인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가난한 양반도 다수 있었는데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행상에 나선 경우였다.

 

그러나 이들의 걸음은 물건 매매 이상의 일을 했다. 컴퓨터, 신문, 전화, 텔레비전이 없던 조선 사회에서 세상의 정보 매체는 보부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폐쇄적인 지역 사회에 다른 지역의 소식을 전달하는 살아 있는 정보통이었다. 이는 일정한 장소에 점포를 마련하는 대신 각지를 돌아다니며 상거래를 하는 상인이기에 가능했다. 물론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활동한 서적 중개상 ‘책쾌’도 있었지만, 그들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을 갖춘 양반 집을 주로 출입했고 고객도 주로 남자들이었으며 선비들의 바깥사랑채에서만 영업을 했기 때문에 보부상들의 활약에 미치지 못했다.

 

보부상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명문가의 안방부터 최하층 신분을 가진 집의 부엌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다. 소금을 한 됫박 팔면서 마음씨 좋은 안주인의 부엌에서 찬밥이나 물을 얻어 마시면서 덤으로 세상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어느 댁의 아들이 어느 집안의 처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그 아내의 심성이 매우 참하고 살림 솜씨도 세간에서 윤이 난다느니, 지난해 아파 누워 있던 어느 댁 노마님이 객지에 나간 아들의 얼굴을 끝내 못 보고 올봄에 세상을 떠났는데 평생 고생만 하다가 마지막에도 쓸쓸하게 떠났으니 그것이 인생인가 싶다느니, 늘어놓은 물품의 종류와 양보다 살아 있는 정보가 더 푸짐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구입하는 안주인의 귀가 커진다. 오랜만에 들른 보부상이 전해 주는 소식과 말솜씨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살 때도 있다. 집 안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에게 물건을 팔러 들르는 보부상은 세상으로 난 창이었다. 생선 두어 마리를 사며 소식을 전해 듣고, 바늘 한 쌈과 실 한 타래를 사며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보부상은 물건을 팔아 얻은 수입 외에도 또 다른 부수입을 챙기기도 했는데, 중간에서 소개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댁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산모의 젖이 안 나와서 그러니 품행과 몸가짐이 얌전한 유모를 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세상 정보통의 장점을 살려서 유모를 구해주고 소개비를 넉넉하게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쏠쏠했던 수입은 처녀와 총각을 중매해 주는 일이었다. 보부상이 중매를 서면 재산도 없고 행동거지도 변변치 못한 남자가 어느새 인물 하나는 똑 부러진 적임자로 변신해 있었다. 운이 좋아 혼사가 진행되면 양쪽 집안을 들를 때마다 물건을 하나씩 더 팔고 소개비는 소개비대로 챙겼다. 혼사의 주인공들이 새 가정을 꾸려 분가를 하면 그들은 새로운 고객이 되었다.

 

시집간 딸에게 친정집 소식을 간간이 전해 주기도 하고, 시집간 딸 소식을 친정집에 전해 주기도 했다. 친정어머니의 얼굴빛이 예전만 못하더라, 딸이 입덧을 하더라 등의 소식을 전하니, 보부상이 걷는 길은 예사 길이 아니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울퉁불퉁한 인생길을 보고 때로는 누군가의 순탄한 인생길을 보니,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그들이 공유한 것은 인생이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우리도 인생길을 걷고 있는 행상 같다. 인생의 길은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한다. 그 길은 뾰족뾰족한 자갈들이 사방에 깔린 길인지, 쑥쑥 빠지는 진흙탕 길인지, 가파른 급경사의 길인지 유감스럽게도 알 수 없다. 그 길 위에서 앞을 분간할 수 없도록 퍼붓는 소나기를 만나기도 하고, 휘청휘청 큰 태풍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옷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이글이글 타오르는 햇볕을 만나기도 한다. 비도, 태풍도, 햇볕도 혼자 온몸으로 다 맞아 내야 한다. 또한 길에서 도적 떼를 만날 수도 있다. 얼마나 더 가야 험난한 길이 끝나고 평탄한 길이 시작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거리와 시간의 문제일 뿐, 비와 태풍은 언젠가는 지나가고 해를 피할 나무 그늘과 시원한 옹달샘이 나타난다. 거친 길을 겪었기에 옹달샘에 감사하고 나무 그늘에 감사한다. 험난한 길을 걸어 본 사람만이 평지의 고마움을 안다. 길 위에서 세찬 비를 맞아 본 사람만이 나무에 열린 열매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알고, 나무에서 노래하는 새소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안다.

 

수많은 길 중에 정말 이윤이 남는 길은 일상적으로 만나는 소소한 것의 의미를 알게 하고 감사한 마음을 깨닫게 해 준 고단한 인생길이 아닐까. 그림 한 점이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이 길의 풍경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일수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p. 7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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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 시선 한국의 한시 4
김시습 지음, 허경진 옮김 / 평민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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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乍晴乍雨 (사청사우 : 잠깐 갰다 비 오다 함)

  

                                                    김시습(金時習,1435~1493)

  

  

乍晴還雨雨還晴 (사청환우우환청)   언뜻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 (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 인정이랴.

譽我便是還毁我 (예아변시환훼아)   나를 기리다가 문득 돌이켜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 (도명각자위구명)   공명을 피하더니 도리어 스스로 공명을 구함이라.

花門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릴고.

雲去雲來山不爭 (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오되, 산은 다투지 않음이라.

寄語世人須記認 (기어세인수기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기억해 알아두라.

取歡無處得平生 (취환무처득평생기쁨을 취하려 한들, 어디에서 평생 즐거움을 얻을 것인가를.

  

<해 설>

세상인심의 변덕스러움을 날씨에 읊은 것으로 세속적인 명리를 떠나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작자의 인생관의 피력이다. 1.2구는 변덕스러운 세태인정이요, 3,4구는 그를 부연한 한 예시이다.

이  시는 손종섭 편저 '옛 시정을 찾아서'에 의하면 " 남을 기리는 일은, 언제 그 태도가 표변하여 그를 헐뜯을지도 모를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이 오늘날의 인정이요, '명예'를 뜬구름인 양 여기는 사람도, 기실 오히려 은근히 '명예'를 구하는 이중성을 지니는 현실의 세태이다.

  

보라. 봄은 꽃으로 하여 봄다워지건마는, 그러나 봄은, 꽃이야 피건 지건 관심 밖으로, 자연에 맡겨 놓고 있을 뿐이요, 산 위로 넘나드는 구름에 따라 산의 얼굴도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산은, 구름이야 가든 오든,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는 일이 없이, 그저 저 흐르는 대로 맡겨 놓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공연히 제 스스로 바빠, 입신출세다 부귀공명이다 동분서주 안달하지만, 설사 뜻대로 얻었다 한들, 필경 그것이 무엇이랴? 기쁨도 잠깐의 일, 그에는 새로운 고뇌도 따라붙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한 곳에 뿌리 내려, 한 생애를 자득할 만큼의 기쁨을 얻을 곳이란, 이 지상에는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다만 저 대자연처럼, 욕심 없이 얽매임 없이, 담담히 유유히 순리대로 살아가는 거기에, 오히려 은근한 생의 즐거움은 있는 것이라고, 세인에게 충언하고 있다. 동시에 이 끝구는,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작자 자신의 유랑의 변이기도 하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의 시는 자신의 삶을 담고 있다. 그의 삶 또한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기에 이런 생각이 나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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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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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해갑니다. 그런데 예전 생각만 하고 지난 것을 고집하면 거기에서 괴로움이 생깁니다. 어릴 때 우정으로 뭉쳤던 친구들도 세월이 가면 자기 살기 바빠서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예전처럼 모여도 반갑게 만나지 못하고 시들합니다. 물론 우정은 있겠지만, 어릴 때와 같은 관계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최근에 보니까 제가 필요할 때 마음 놓고 소주 한 잔 마실 친구가 없더라고요. 누구는 왠지 불편하고 또 누구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머리가 아프고, 또 누구는 남하고 타협을 몰라서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주위에 사람이 자꾸 줄고 진심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줄어드는 듯합니다. 제가 고향에 내려가면 예전에는 다섯 명이 모였다면, 지금은 한두 명이 모일 정도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나오는 거 같아요.” 30대 청년의 하소연입니다. 나이 들어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청년처럼 친구에 대한 서운함을 호소합니다. “우정이 옛날 같지 않다.” 친구들이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섭섭해합니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가 제일입니다. 무엇이든 친구와 함께하고, 부모님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친구에게는 터놓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보다 친구를 더 믿고 의지하기도 해요. 어릴 때는 부모에게 의지하다가 학창시절에는 친구에게 의지하고 이성에 눈을 뜨면서 연애에 빠지고 사회에 나가면 또 직장 동료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를 가지고 서운해한다면 아직 청소년때 생각을 갖고, 그 시절의 낭만에 젖어 있는 거예요.

  

이제 결혼하면 친구와의 만남도 점점 드물어집니다. 부인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친구에게 술 한 잔 사기도 힘들어집니다. 여자의 경우라면 남편과 자식 챙기느라 옛 친구와 저녁 약속을 하기가 더 어려워 집니다. 가정이 있으니까 혼자 살 때처럼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거예요.

  

어릴 때는 떨어져 살 거라고 상상을 못했던 형제도 나이가 들면 뿔뿔이 흩어집니다. 같은 밥상에서 밥 먹고 옷을 나눠 입던 형제도 자기 가정을 가지면 다 제 갈 길을 갑니다. 그래서 부모 형제를 내 마음대로 도와주기도 어려워집니다. 가정을 따로 꾸렸으니까 부인이 우리 쓸 것도 없는데 왜 당신 마음대로 형제에게 줬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이런 변화는 자신이 몸담은 울타리가 달라지면서 생기는 것이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 기억 속에서 그때가 좋았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변화를 못 받아들이고 혼자 괴로워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나쁘고 의리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본인도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잖아요. ‘누구는 불편하고, 누구는 피곤해서만나도 편하지 않다는 건, 본인도 친구들에 대한 우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겁니다. 나도 변하면서 원인을 친구에게 돌리며 행동을 문제 삼으니까 친구들이 점점 더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해가 거듭할수록 제가 너무 예민해지고 까칠해져서 위장장애를 달고 삽니다. 약을 먹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을 내 뜻대로 하려 하고, 내 취향에 맞는지를 너무 따지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서 병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친구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 놓아야 자유로워집니다. 같이 있으면 대화할 수 있어서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아야 합니다. 그러면 곁에 사람이 있든 없든 아무런 상관이 없고, 언제 만나든 편할 수 있어요.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관계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라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인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관계가 변하는 것을 억지로 잡으려고도 하지 말고, 떠난다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않아야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도 만날 수 있어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답답해지고 상대를 이해하면 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 마음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마음을 쓰다 보니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내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는 데 익숙합니다. 그럴 때 ,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미움이 일어났구나.’ ‘같이 있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구나.; 라고 마음을 살피면 도움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우정에 대한 집착도, 친구에 대한 미움도 점점 사라집니다. p.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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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명강 동양고전 -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 명강 시리즈 1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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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

 

우리가 2300년 전 고전인 <장자>를 아직도 읽는 이유는 장자는 삶의 조건이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결코 그 안에 속해서 자잘한 자유를 누리는 데 만족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진정한 자유가 뭔지 직감합니다. “우리는 커다란 날개를 가졌다, 억압에서 벗어나 하늘 높이 올라가 자유를 누려라.”고 말합니다. 대붕이 맞서는 태풍은 권력일 수 있고 관습일 수도 있습니다.

  

장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태풍에 맞서 넘어가라고, 그 험난함이 너를 성숙시킬 거라고, 네가 넘어가서 성숙되는 건지 성숙해서 넘어가는 건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넘어가려고 애쓸수록 커질 수 있다고. 그러면 분명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라는 나무의 그림자는 고통입니다. 고통의 길이만큼 나무는 높은 겁니다. 거저 얻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을 제거하면 나무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뱃전에 사로잡힌 알바트로스는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요? 이 고통을, 이 부자유를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은데 태풍이 안 오면 어떻게 될까요? 30미터도 안 되는 배지만 도약해서 바다에 처박혀도 뛰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바람이 불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장자가 말하는 대붕의 정신은 정면에 바람이 와도 후퇴하지 않는다. 태풍은 나를 비약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든다.’입니다. ‘()’이라는 바닥에 처박혀 있었던 한 물고기가 거대한 새로 변해 바람을 얻고 스스로 올라가서 아주 먼 시야를 얻어서 날아가는 그것이 바로 대붕의 자유입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힘들고 열악한 현실의 조건들에 갇혀서 메추라기처럼 지내지 말라고, 비약하고 올라가고 날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넘어 우리 시대로 넘어왔듯이, 우리 시대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 되고 그렇게 넘어가야 우리의 후손들이 잘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붕의 높은 뜻을 메추라기처럼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알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시민적 생각을 가지면 우리는 메추라기가 되고 맙니다. ‘지금은 살 만해라고 생각하면 자신의 진정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그 틀 속에 갇혀 살아야 합니다. 대붕이 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사실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어떤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자유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 개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유다.”

  

인문학자, 철학자, 시인, 소설가는 자유를 향해 갑니다. 이들은 자유가 가능하다는 걸 온 몸으로 보여 주는 사람들입니다. 인문학이 법학, 경제학 같은 실용학문과 다른 놀라운 특징 중의 하나는 고유명사의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각기 다릅니다. 김수영의 시와 김춘수의 시가 다르고, 니체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이 다릅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슈베르트의 소나타와 베토벤의 소나타는 다릅니다. 결국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완성하는 것, 자기 자신의 느낌, 모든 인문, 그것을 우리는 자유라고 부릅니다.

  

김수영 시인은 시인이 무용(無用)해지는 것, 그것이 시인의 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에서 강요하는 꿈이 아니라 자기가 느끼는 꿈, 자기만의 꿈, 자기만의 감정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시라고 할 때 그것을 못하게 하는 건 억압적인 사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때 그 사회는 민주적인 사회가 됩니다. 시인의 진정한 꿈은 장자의 꿈이기도 합니다. 장자 같은 철학자의 꿈도 시인의 진정한 꿈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가끔 불교에 나오는 화엄(華嚴)이야기를 합니다. 화엄은 잡꽃들의 세계입니다. 장미로 도배된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다른 꽃이라는 걸 전제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지향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장미를 요구하는데 나는 개나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을 피우기를 포기해야 할까요? 장미를 요구하는 그 바람을 이기고 개나리로 피어야 합니다. 지금은 미운 오리새끼지만 오리가 아니라 백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리를 흉내내서는 안 됩니다. 원래는 신천옹인데

나 뚱뚱한 오리다. 좀 큰 오리야.”이러면서 배 위에 살면 안 됩니다. 사람마다 다 날개가 있습니다. 저마다 피우는 꽃이 다른 것처럼 날개도 다 다릅니다.

  

얼핏 보면 바람이 나를 못 날게 할 것 같고 내 시간만 버리게 할 것 같지만 그 바람이 우리를 날게 합니다. 바람이 안 불면 우리는 떨어집니다. 바람이 멈추면 행글라이더는 떠 있을 수 없습니다. 물이 있어서 못 건너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헤엄칠 수 있으니 저 강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악조건이 있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조건에 굴복해도 자유가 없지만 조건을 무시해도 자유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있습니다.

  

장자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메추라기()로 살래, 대붕(大鵬)으로 살래?” 대붕으로 산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바람을 잘 타고 갔는데 중간에 바람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떨어지면서 이렇게 후회할지도 모릅니다.‘처박혀 있을걸, 괜히 날았다!’ 하지만 우리는 날아야 합니다. 그게 장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p.21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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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명강 동양고전 -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 명강 시리즈 1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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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논리

여러분은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역사는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순환을 합니다. 그런데 사계절을 순환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음양입니다. 양은 더워지는 것이고, 음은 추워지는 것입니다. 사계절은 더웠다. 추웠다 하면서 순환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순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은 몸입니다. 역사는 마음을 챙겼다 몸을 챙겼다 하면서 순환합니다. 오늘날은 어떤 시대일까요? 몸을 더 중시합니까, 마음을 더 중시합니까? 다들 몸을 더 중시합니다. 몸은 물질이니까 물질주의입니다. 몸에 필요한 것이 돈이니까 자본주의입니다.

  

오늘날은 몸을 더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몸을 중시하는 것은 땅의 논리입니다. 오늘날은 땅의 논리로 사는 시대이므로 사람들은 천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땅의 논리에서는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므로 천국이 아닌 돈을 목표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런 시대는 몸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남남의 관계가 됩니다. 떡은 하나밖에 없는데 남이 먹으면 난 굶어야 하므로 경쟁이 필연입니다. 경쟁을 하면 발전합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것은 치열한 경쟁의 덕분입니다.

  

그러나 경쟁 말기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친구도 다 경쟁자이기 때문에 친구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얼굴은 일그러집니다. 반면 친구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안됐다.’고 말하는데 입은 벌어집니다. 그래서 친구하고 어울리지 않고 그냥 어영부영하다가 집에 일찍 가서 개하고 놉니다. 개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새는 인간보다 개가 좋은 시대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울지 않다가 개가 죽었을 때는 우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대는 연애를 할 때도 경쟁적으로 합니다. 어떤 사람이 10억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열심히 사귑니다. 그런데 30억 원짜리 통장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면 재빨리 상대를 바꿉니다. 이때 이전 사람하고 헤어지는 데 양심의 가책이 들고 찜찜하면 덜 된 사람입니다. 그냥 클하게 헤어집니다. 그러나 연애를 하고 있어도 외롭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듯이, 그 사람도 날 언제 바꿀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결혼을 해도 안심이 안 됩니다. 한집에 사는 부부인데도 재산을 공동명의로 합니다. 지금은 부부가 한평생 한집에 살아도 외롭고 불안한 시대입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투쟁이 생겨 세상이 혼란해 집니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안정입니다. 물질주의 사회를 안정시키는 비결은 법으로 다스리는 법치주의(法治主義)입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물질적 가치를 터득하는 비결을 연구하는 경영학, 사회를 안정시키는 법학이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대지가 얼어붙으면 따뜻한 봄이 오듯이, 마음이 얼어붙으면 마음을 중시하는 시대가 옵니다. 이제 머지않아 마음을 중시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저는 거의 변곡점(變曲點)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가치관, 삶의 판단 기준이 바뀔 것이고, 진짜 인간의 마음이 뭔지를 추구하게 됩니다. 땅의 논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돈보다 천국'이 주된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고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요? 저<중용>천국으로 가는 길잡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중용>을 읽어 보지 않고 마친 사람이다.” 그러므로 <중용>을 읽기 시작한다면 행복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P.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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