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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평점 :

빛바래지 않는 전설
구름무늬 곱게 수놓은 흉배에 한 쌍의 학이 날갯짓한다. 이를 보면 당상관에 오른 문신의 초상이다. 허리에 두른 띠도 품계를 귀뜸해 준다. 다섯줄의 금색을 치고 그 위에 무소뿔로 만든 장식을 곁들였다. 곧 1품이 두르던 서대(犀帶)다. 깃이 둥근 관복 속으로 흰옷이 목을 감쌌는데, 머리에 쓴 관모는 불쑥 턱이 솟아 그러잖아도 높은 벼슬이 더 우뚝해 보인다.
한눈에도 지체가 훌륭해 뵈는 이 사람은 영조 때 병조, 호조, 예조에서 두루 판서를 지낸 박문수(朴文秀. 1691~1756)다. 누구냐고 되묻지 마라. 그 이름은 지나가던 어린애도 알았다.
박문수는 이인좌의 난(1728) 당시 세운 전공(戰功)으로 조선 왕조의 마지막 공신에 오른 인물이다. 젊어서 일찌감치 영조의 눈에 든 그는 나랏일에 늘 마음을 다잡았고 군사 정책과 세무 행정에 밝아 개혁을 이루어냈다고 실록은 전한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박문수의 붙박이 이미지는 어사(御使)다. 조선사를 통틀어 수백 번의 어사출또가 있었다 해도 박문수 하나를 당할 재간이 없을 정도다. 겨우 몇 차례 임무를 수행하는 데 그쳤음에도 그는 어사또의 전설이자 롤 모델이 돼 버렸다. 혹 그의 얼굴에 그 이미지가 씌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박문수의 초상 중에서 이 얼굴은 만년의 모습이다. 이마에 주름살이 분수같이 갈라지고 눈 썹 끝은 먼 산처럼 물러나 있다. 눈머리는 새의 부리를 닮아 날카롭고 입술은 단단한 대춧빛으로 물들었다. 굳은 표정으로 마치 남들 하는 짓거리를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 아니나 다를까 단호하다. 화가의 솜씨는 섬세하다. 골상은 찬찬히 선묘로 지어냈고, 안색은 자국이 남지 않는 붓질로 완성했다.
어사는 여차하면 지역 관리의 목줄을 쥐고 흔든다. 박문수의 감찰은 공사(公私)와 시비를 잘도 분간했다. 무엇보다 백성의 이익을 앞세웠다. 그의 행적은 뒷날 야사와 민담으로 한껏 부풀려졌다. 그래도 전설은 빛바래지 않는다. 백성이 그 까닭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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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기 <채제공 초상> 1792년. 비단에 채색.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초상화에 비뚠 붓은 없다.
실례지만, 이분 눈길이 어색하다. 왼쪽 눈동자가 바깥으로 쏠렸다. 아뿔싸, 사시다. 뺨은 살짝 얽었다. 마마가 다녀간 자국이다. 표정이라도 개운하면 나을 텐데, 어쩐 셈인지 딱딱하고 어둡다. 복색으로 보아하니 지체가 높겠다. 뉘신가, 이분. 일흔세 살의 좌의정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다. 영 ․ 정조의 두터운 신임으로 관운이 일찍 트인 그였다. 삼정승 중 두 자리가 빈 채 독상(獨相)으로 수년간 정사를 오로지했을 정도다. 오죽하면 사관이 ‘100년 이래 처음 있는 인사(人事)’라고 의아해했을까.
누구도 치부는 들키고 싶지 않다. 채제공의 마마와 사시도 공식적인 기록에는 없다. 오직 초상화에 나온다. 만인지상에 오른 그도 모델이 되면 민낯을 못 숨긴다. 조선 초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겉만 아니라 속까지 뒤지는 붓질로 겉볼안(겉을 보면 속은 안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을 따진다. 채제공의 속내를 미리 털어놓는다.
그림 왼쪽에 자필로 썼다. ‘너의 몸 너의 정신은 부모 은혜. 너의 이마에서 너의 발꿈치까지 임금 은혜. 부채도 임금 은혜. 향도 임금 은혜. 꾸며 놓은 한 몸, 무언들 은혜가 아니랴. 죽어서도 부끄러운 바는 은혜에 보답할 길 없어서라네.’벼슬살이 하는 자의 지나친 공손이 다 드러났다.
이 초상화는 정조의 특명으로 그려졌다. 채제공은 감읍했다. 하사품인 부채와 향주머니를 보란 듯이 들었고, 태깔 고운 화문석 위에서 연분홍 둥근 깃 시복(時服.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뵐 때나 공무를 볼 때 관원들이 입던 옷)차림으로 멋을 부렸다. 충정이라 해도 그의 고백은 요새 귀에 간지럽다. 낳아주신 부모를 제하면 온통 성은에 대한 치레 아닌가.
그린 이는 화원 이명기다. 도화서의 한 식구 김홍도도 얼굴 그림에서는 한 수 접은 실력파다. 그릴 때 결점을 감춰달라 부탁하는 일은 혹 없을까? 천만에, 조선 초상화에 곡필은 없다. 채제공도 마찬가지. 시선은 엇나갈망정 불편부당한 탕평을 꾸준히 옹호했다. 그 화가에 그 모델이다.
손철주 <사람보는 눈> p.7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