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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군서 - 부국강병의 공격경영 전략서
상앙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평점 :
상앙의 법치는 ‘농전(農戰)’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 것이다. 한비자가 법치를 주로 신하들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간주한 것과 대비된다. 진(秦)나라가 문득 최강국으로 등장한 것은 그의 변법이 차질 없이 성사된 데 있고, 이는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강력한 법치가 시행됐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자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사마천은 <사기> ‘상군열전’에서 상앙을 이같이 평해놓았다.
“상앙(商鞅,: ?~BC338)은 성품이 원래 각박했다. 위나라 공자 앙을 기만하고, 태자의 스승에게 형을 가한 것 등이 그렇다. 그가 마침내 진나라에서 악명을 떨쳐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름 일리가 있는 지적이기는 하나 정곡을 찌른 분석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상앙은 물론 그와 유사한 행보를 보였던 오기가 유사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변법이 지닌 이중적인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날카로운 칼이 칼자루를 놓치자마자 이내 자신을 벤 것으로 풀이하는 게 옳다. 진효공과 초도왕의 뒤를 이은 진혜문왕과 초숙왕이 뛰어난 인물이었다면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상앙과 오기를 더욱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비참한 최후는 악명을 떨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후사왕이 태자 시절에 받은 작은 수모를 잊지 못하고 앙갚음을 한 결과로 보는 게 옳다. 그만큼 어리석었다는 얘기다.
주목할 것은 상앙의 비참한 최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엄정한 법치 덕분에 진나라가 최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점이다. 이게 진시황의 천하통일의 기반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세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앙은 혁명적인 변법을 과감히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다. 이는 상앙이 시행한 일련의 법치가 궁극적으로는 천하통일을 겨냥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획책’의 해당 대목이다.
“명성이 존귀하고 영토가 광활한 덕분에 마침내 천하를 호령하는 왕자로 군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명성이 비천하고 영토가 줄어들어 마침내 패망하는 망자의 신세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에 패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이기지 않고도 천하의 왕자 노릇을 하거나, 전쟁에서 패하고도 망자의 신세가 되지 않은 경우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다. 백성이 용감한 나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패한다. 백성을 전쟁에 전념하게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백성들이 용감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백성들이 용감하지 않다. 성왕은 천하의 왕자 노릇을 하는 것이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거국적으로 백성들에게 전사(戰士)가 될 것을 고취한 이유다. 강대한 나라의 백성은 아비가 자식을 전쟁터로 전송하고, 형이 동생을 배웅하고, 아내가 남편을 떠나보낼 때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법을 어기고 명을 위반해 죽으면 나도 죽는다. 마을에서 우리를 처벌할 것이다. 군대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다. 도망을 쳐 다른 곳으로 옮겨갈지라도 발을 들여놓을 곳이 없다.‘고 한다. 도주하면 몸 둘 곳이 없고, 패하면 살 길이 없다. 삼군의 군사들이 흐르는 물처럼 명에 복종하고, 전투에 임해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이유다.”
엄정한 법치가 ‘농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상앙의 법치는 엄한 형벌과 신중한 포상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중벌소상(重罰少賞) 위에 있다. ‘중벌’에 대해서는 별다른 오해가 없으나 ‘소상’에 대해서는 적잖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이는 포상을 남발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결코 포상의 내용을 빈약하게 하라는 게 아니다. <상군서>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소상(少賞)’은 모든 병가가 역설했듯이 ‘박상(薄賞 : 빈약한 포상)‘이 아닌 후상(厚賞)을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 <상군서> ’수권‘에 나온다.
“포상은 후하면서 신뢰성이 있어야 하고, 형벌은 엄중하면서도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 포상할 때 관계가 소원한 사람을 빠뜨리지 않는 부실소원(不失疏遠)을 행하고, 형벌을 내릴 때 친근한 사람을 피하지 않는 불위친근(不違親近)을 행해야 한다. 신하가 군주를 덮어 가리지 않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속이지 않는 이유다.”
포상의 내용을 두텁게 하는 ‘후상’은 포상을 신중히 하는 ‘소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포상을 남발하면 사람들이 아무리 ‘후상’을 실행할지라도 이를 천시하게 된다. 중벌과 함께 ‘소상’을 역설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농전(農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p.384~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