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홍도 <행상> 18세기. 국립중앙박불관 소장.
행상. 물건을 이고 지고 냇물을 건너고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걷고 걸으며, 오늘은 이곳의 장을, 내일은 저곳의 장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인생이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 보니 장돌뱅이라고 배척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자본이 넉넉했다면 한 지역에서 좌상을 펼쳐 정착했겠지만 그럴 만한 기반도 없고, 농사지을 땅도 없다.
주로 농민을 고객으로 물건을 파는 행상에게는 농업이 선망하는 꿈의 직업이 된다. 쌀을 먹고 사는 민족이니 농사가 귀한 일인 것은 틀림없다. 땅 한 뼘이라도 있다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곡식을 거두며 고향에서 든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겠지만, 그럴 만한 처지가 못 되니 고향집을 떠나 낯설고 물선 타지를 돌아야 했다. 그렇게 바람 속에서 찬밥을 먹고 어느 집 처마 밑이나 주막집의 헛간에서 밤이슬을 피해 잠을 청해야 하는 길 위의 인생은 고단하기만 했다.
물론 행상들 중에는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유랑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쫓겨난 머슴, 도망친 노비, 주거가 없는 부랑인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가난한 양반도 다수 있었는데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행상에 나선 경우였다.
그러나 이들의 걸음은 물건 매매 이상의 일을 했다. 컴퓨터, 신문, 전화, 텔레비전이 없던 조선 사회에서 세상의 정보 매체는 보부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폐쇄적인 지역 사회에 다른 지역의 소식을 전달하는 살아 있는 정보통이었다. 이는 일정한 장소에 점포를 마련하는 대신 각지를 돌아다니며 상거래를 하는 상인이기에 가능했다. 물론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활동한 서적 중개상 ‘책쾌’도 있었지만, 그들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을 갖춘 양반 집을 주로 출입했고 고객도 주로 남자들이었으며 선비들의 바깥사랑채에서만 영업을 했기 때문에 보부상들의 활약에 미치지 못했다.
보부상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명문가의 안방부터 최하층 신분을 가진 집의 부엌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다. 소금을 한 됫박 팔면서 마음씨 좋은 안주인의 부엌에서 찬밥이나 물을 얻어 마시면서 덤으로 세상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어느 댁의 아들이 어느 집안의 처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그 아내의 심성이 매우 참하고 살림 솜씨도 세간에서 윤이 난다느니, 지난해 아파 누워 있던 어느 댁 노마님이 객지에 나간 아들의 얼굴을 끝내 못 보고 올봄에 세상을 떠났는데 평생 고생만 하다가 마지막에도 쓸쓸하게 떠났으니 그것이 인생인가 싶다느니, 늘어놓은 물품의 종류와 양보다 살아 있는 정보가 더 푸짐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구입하는 안주인의 귀가 커진다. 오랜만에 들른 보부상이 전해 주는 소식과 말솜씨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살 때도 있다. 집 안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에게 물건을 팔러 들르는 보부상은 세상으로 난 창이었다. 생선 두어 마리를 사며 소식을 전해 듣고, 바늘 한 쌈과 실 한 타래를 사며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보부상은 물건을 팔아 얻은 수입 외에도 또 다른 부수입을 챙기기도 했는데, 중간에서 소개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댁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산모의 젖이 안 나와서 그러니 품행과 몸가짐이 얌전한 유모를 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세상 정보통의 장점을 살려서 유모를 구해주고 소개비를 넉넉하게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쏠쏠했던 수입은 처녀와 총각을 중매해 주는 일이었다. 보부상이 중매를 서면 재산도 없고 행동거지도 변변치 못한 남자가 어느새 인물 하나는 똑 부러진 적임자로 변신해 있었다. 운이 좋아 혼사가 진행되면 양쪽 집안을 들를 때마다 물건을 하나씩 더 팔고 소개비는 소개비대로 챙겼다. 혼사의 주인공들이 새 가정을 꾸려 분가를 하면 그들은 새로운 고객이 되었다.
시집간 딸에게 친정집 소식을 간간이 전해 주기도 하고, 시집간 딸 소식을 친정집에 전해 주기도 했다. 친정어머니의 얼굴빛이 예전만 못하더라, 딸이 입덧을 하더라 등의 소식을 전하니, 보부상이 걷는 길은 예사 길이 아니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울퉁불퉁한 인생길을 보고 때로는 누군가의 순탄한 인생길을 보니,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그들이 공유한 것은 인생이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우리도 인생길을 걷고 있는 행상 같다. 인생의 길은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한다. 그 길은 뾰족뾰족한 자갈들이 사방에 깔린 길인지, 쑥쑥 빠지는 진흙탕 길인지, 가파른 급경사의 길인지 유감스럽게도 알 수 없다. 그 길 위에서 앞을 분간할 수 없도록 퍼붓는 소나기를 만나기도 하고, 휘청휘청 큰 태풍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옷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이글이글 타오르는 햇볕을 만나기도 한다. 비도, 태풍도, 햇볕도 혼자 온몸으로 다 맞아 내야 한다. 또한 길에서 도적 떼를 만날 수도 있다. 얼마나 더 가야 험난한 길이 끝나고 평탄한 길이 시작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거리와 시간의 문제일 뿐, 비와 태풍은 언젠가는 지나가고 해를 피할 나무 그늘과 시원한 옹달샘이 나타난다. 거친 길을 겪었기에 옹달샘에 감사하고 나무 그늘에 감사한다. 험난한 길을 걸어 본 사람만이 평지의 고마움을 안다. 길 위에서 세찬 비를 맞아 본 사람만이 나무에 열린 열매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알고, 나무에서 노래하는 새소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안다.
수많은 길 중에 정말 이윤이 남는 길은 일상적으로 만나는 소소한 것의 의미를 알게 하고 감사한 마음을 깨닫게 해 준 고단한 인생길이 아닐까. 그림 한 점이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이 길의 풍경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일수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p. 7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