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명강 동양고전 -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 명강 시리즈 1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장자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

 

우리가 2300년 전 고전인 <장자>를 아직도 읽는 이유는 장자는 삶의 조건이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결코 그 안에 속해서 자잘한 자유를 누리는 데 만족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진정한 자유가 뭔지 직감합니다. “우리는 커다란 날개를 가졌다, 억압에서 벗어나 하늘 높이 올라가 자유를 누려라.”고 말합니다. 대붕이 맞서는 태풍은 권력일 수 있고 관습일 수도 있습니다.

  

장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태풍에 맞서 넘어가라고, 그 험난함이 너를 성숙시킬 거라고, 네가 넘어가서 성숙되는 건지 성숙해서 넘어가는 건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넘어가려고 애쓸수록 커질 수 있다고. 그러면 분명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라는 나무의 그림자는 고통입니다. 고통의 길이만큼 나무는 높은 겁니다. 거저 얻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을 제거하면 나무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뱃전에 사로잡힌 알바트로스는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요? 이 고통을, 이 부자유를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은데 태풍이 안 오면 어떻게 될까요? 30미터도 안 되는 배지만 도약해서 바다에 처박혀도 뛰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바람이 불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장자가 말하는 대붕의 정신은 정면에 바람이 와도 후퇴하지 않는다. 태풍은 나를 비약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든다.’입니다. ‘()’이라는 바닥에 처박혀 있었던 한 물고기가 거대한 새로 변해 바람을 얻고 스스로 올라가서 아주 먼 시야를 얻어서 날아가는 그것이 바로 대붕의 자유입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힘들고 열악한 현실의 조건들에 갇혀서 메추라기처럼 지내지 말라고, 비약하고 올라가고 날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넘어 우리 시대로 넘어왔듯이, 우리 시대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 되고 그렇게 넘어가야 우리의 후손들이 잘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붕의 높은 뜻을 메추라기처럼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알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시민적 생각을 가지면 우리는 메추라기가 되고 맙니다. ‘지금은 살 만해라고 생각하면 자신의 진정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그 틀 속에 갇혀 살아야 합니다. 대붕이 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사실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어떤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자유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 개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유다.”

  

인문학자, 철학자, 시인, 소설가는 자유를 향해 갑니다. 이들은 자유가 가능하다는 걸 온 몸으로 보여 주는 사람들입니다. 인문학이 법학, 경제학 같은 실용학문과 다른 놀라운 특징 중의 하나는 고유명사의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각기 다릅니다. 김수영의 시와 김춘수의 시가 다르고, 니체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이 다릅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슈베르트의 소나타와 베토벤의 소나타는 다릅니다. 결국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완성하는 것, 자기 자신의 느낌, 모든 인문, 그것을 우리는 자유라고 부릅니다.

  

김수영 시인은 시인이 무용(無用)해지는 것, 그것이 시인의 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에서 강요하는 꿈이 아니라 자기가 느끼는 꿈, 자기만의 꿈, 자기만의 감정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시라고 할 때 그것을 못하게 하는 건 억압적인 사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때 그 사회는 민주적인 사회가 됩니다. 시인의 진정한 꿈은 장자의 꿈이기도 합니다. 장자 같은 철학자의 꿈도 시인의 진정한 꿈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가끔 불교에 나오는 화엄(華嚴)이야기를 합니다. 화엄은 잡꽃들의 세계입니다. 장미로 도배된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다른 꽃이라는 걸 전제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지향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장미를 요구하는데 나는 개나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을 피우기를 포기해야 할까요? 장미를 요구하는 그 바람을 이기고 개나리로 피어야 합니다. 지금은 미운 오리새끼지만 오리가 아니라 백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리를 흉내내서는 안 됩니다. 원래는 신천옹인데

나 뚱뚱한 오리다. 좀 큰 오리야.”이러면서 배 위에 살면 안 됩니다. 사람마다 다 날개가 있습니다. 저마다 피우는 꽃이 다른 것처럼 날개도 다 다릅니다.

  

얼핏 보면 바람이 나를 못 날게 할 것 같고 내 시간만 버리게 할 것 같지만 그 바람이 우리를 날게 합니다. 바람이 안 불면 우리는 떨어집니다. 바람이 멈추면 행글라이더는 떠 있을 수 없습니다. 물이 있어서 못 건너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헤엄칠 수 있으니 저 강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악조건이 있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조건에 굴복해도 자유가 없지만 조건을 무시해도 자유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있습니다.

  

장자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메추라기()로 살래, 대붕(大鵬)으로 살래?” 대붕으로 산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바람을 잘 타고 갔는데 중간에 바람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떨어지면서 이렇게 후회할지도 모릅니다.‘처박혀 있을걸, 괜히 날았다!’ 하지만 우리는 날아야 합니다. 그게 장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p.214~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