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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시선 ㅣ 지만지 고전선집 469
이하 지음, 이규일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莫種樹(나무를 심지 말자)
이하(李賀.791~817)
園中莫種樹 (원중막종수) 뜰에 나무를 심지 말자.
種樹四時愁 (종수사시수) 나무를 심으면 사시사철 근심하게 되느니
獨睡南床月 (독수남상월) 홀로 잠들면 남쪽 침상으로 스며드는 달
今秋似去秋 (금수사거추) 올 가을이나 지난 가을이나 한결같다.
이 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한 스피노자(1632~1677)의 명언과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던 가수 이용의 노래 <서울>과는 너무도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굳이 지구 온난화 현상, 환경 파괴 같은 거창한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나무 심는 데 이견을 내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이 시에서처럼 “나무를 심지 말자.”라고 강변하는 사람은 더욱 없다.
그럼 이 시인은 무슨 이유로 뜰에 나무를 심지 말라고 했을까? 왜 나무를 심으면 사시사철 근심하게 된다고 했을까? 나무를 심지 않은 텅 빈 뜰이, 그런 뜰을 바라보는 사람이 사시사철 근심하게 되지는 않을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심는 사람에게는 무엇인가에 뜻을 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묘목을 심은 다음부터 하루하루 물을 주면서 그 나무가 커가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뜻도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를 되새겨보게 된다. 나무가 잘 자라면 잘 자라는 대로, 자신의 뜻은 언제나 이루어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거나 잎새가 시들게 되면 행여 자신의 뜻이 펴지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나무를 심으면 사시사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무를 심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 와중에 달마저 떠서 외로움, 낙담을 더욱 부추기지 않는가.
시인이 오래 살아서 쉰, 예순이 넘어서 이 시를 다시 보았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이 되면 뜰에 나무를 심어도 그저 관조하게 된다.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짐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인생의 관조나 여유는 확실히 나이가 들어야 알게 되는 듯하다.
이하에 관한 일화가 있다. 이하는 아침에 해가 뜨면 쇠약한 말을 타고 까까머리 어린 종을 앞세운 채 자신은 오래된 금낭(錦囊 : 비단주머니)을 등에 메고 문을 나섰다. 그러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이를 적어 그 비단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무릇 그의 시는 먼저 제목을 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그의 어머니가 여종으로 하여금 그 비단 주머니를 뒤지게 해서 많은 글이 쏟아져 나오면 곧 화를 내었다.
“ 이 아이는 마음을 다 토해내고 나야만 그만둘 성질이로다!”
저녁을 차려놓아도 이하는 거들떠보지 않고 여종에게 그 글을 모두 꺼내 놓게 하고는, 먹을 갈아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글을 보족(補足)하여 완성했다. 그는 술에 아주 취하거나 남의 상사(喪事)에 참가하는 경우가 아니면 항상 이렇게 살았다. 그의 시는 기이한 풍격을 매우 숭상했으며, 결구(結句)는 마치 화초와 같아 편편이 문채(文采)가 뛰어났다. 그리고 모두가 놀랄만큼 문장이 고매하여 보통 시인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으로서는 누구도 그를 흉내 낼 수가 없었다. 넘치는 재능과 열정을 주체하기 어려워 건강을 해쳤는지 안타깝게도 겨우 스물일곱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그를 금낭시인(錦囊詩人)이라 불렀다.
요절한 이하(李賀)를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빠른 자는, 뒤로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其進銳者, 其退速).”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맹자>의 <진심(盡心)>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하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 성취가 남달랐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일찍 세상을 떠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오래 사는 듯한데, 비범한 사람들은 꽃처럼 너무 빨리 지고 마니 야속하기만 하다. 채 마흔이 안돼서 세상을 뜬 인물이 많은데, 당나라 왕령이 스물여덟, 이하가 스물일곱, 유희이 서른, 항우가 서른하나, 허난설헌이 스물일곱에 졸(卒)했다. 그래도 그들이 남긴 좋은 작품이 또한 세상 사람들을 위로하니 이를 다행으로 여겨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