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책은 거의 사서 읽어보는 편인데, 스님의 책은 불교가 난해한 법문이라는 선입관을 깨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고래로 불교의 목적이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인데, 중생들이 그 어려운 법문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마음이 많이 답답했지요. 그런데 스님은 우리 삶 속에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고뇌와 번민을 명쾌하고 쉽게 풀어주셨으니 마음의 엉어리가 눈 녹듯이 풀립니다. 읽고 읽어도 목마른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스님의 책이 출간되면 또 어떤 내용일까 싶어 기대가 됩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문명이 정도를 넘어 옥토를 사막으로 변모시키는 중이라면 스님의 글은 그 사막에서 시원한 오아시스를 제공하는 휴식처라 생각됩니다. <야단법석>이 오랜 세월 속에 그 의미가 사뭇 달라졌지만, 처음 부처님께서 들판에 단을 세우고 법문을 연설하신 것처럼, 삭막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훌륭한 책들을 많이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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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의 탄생 - 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김옥림 지음 / 팬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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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황희. 그는 이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대사헌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세종대왕 때의 영의정이라는 막강한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의 삶은 늘 청빈했다. 공무를 볼 때는 관복을 입었지만 집으로 귀가해서는 기운 옷을 입고 소박한 음식을 먹었으며, 종의 아이들을 친손자 같이 대했다. 집에서 부리는 종들에게도 신분의 차이가 없는 듯 행동했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종을 대한 그의 태도는 당시 양반주의 사회에서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만큼 그는 깨어 있었고 인간적이었으며 시대를 앞서 생각했던 현인이었다. “매가 죄인을 만드는 법이다.” 황희 정승이 한 말로 이 말이 유래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모처럼 그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피곤한 몸을 뉘인 채 깜빡 낮잠에 빠져들었는데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선반 위 접시에 있던 배를 두 마리의 쥐가 옮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 지그시 바라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그는 밖에서 여종이 야단맞는 소리에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부인이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있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네 짓이 분명하구나.”

“마님, 정말이지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뭐라! 네 짓이 아니라고? 그러면 선반에 있던 배가 어디로 갔단 말이냐?”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마님, 믿어주세요.”

여종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며 울면서 말했다.

“안되겠구나. 따끔한 맛을 봐야 네가 실토를 하겠구나.”

 

황희 정승 부인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매를 들었다. 여종은 매질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황희 정승은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때 여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종은 매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한 짓이라며 거짓으로 잘못을 고백하고 있었다.

 

황희 정승은 자신이 잠결에 본 것을 부인에게 말해 여종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매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입궐해 자신이 겪은 일을 세종대왕에게 아뢰고 옥에 갇힌 죄인들 중에 죄가 확실하지 않은 자들의 방면을 주청했다. 세종대왕은 그의 주청을 받아들여 죄목을 재조사하여 죄목이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방면해 주었다.

 

황희 정승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했다. 그는 신분을 막론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웠다. 그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졌지만, 남용하지 않았다. 덕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다. 그는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실천한 참된 사람이었다. p.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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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김병수 지음 / 프롬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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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중년이 되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 외모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드러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역사는 길어야 100년이 되지 않는다. 한 민족, 한 국가의 역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100년이 되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사연이 길고, 깊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세상 하나가 이 세계에 더해진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숫자만큼의 세계가 눈을 뜬다.

 

우리는 하나의 역사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사. 어떻게 그 역사를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현재가 그려내는 한 사람의 인생사는 파편과 같아서 전부를 읽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한 사람의 인생 역사를 모두 읽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질없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첫눈에 모든 것을 드러내는 역사란 없는 법이다. 나와 상담을 한 어떤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묻곤 한다.  “ 짧은 시간에 그걸 어떻게 다 아셨어요?”

 

하지만 이런 물음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인생의 역사는 어떤 누구도, 절대로 모두 알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 그랬다. 용맹한 전사는 전쟁터에서 죽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서 죽고, 카레이서는 트랙에서 죽는 법이라고. 일에만 미쳐 달려온 사람들은 일터에서 죽거나 아니면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다가 술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인생은 목적지가 정해진 곳으로 달려가는 경주이다. 반복되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벼랑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복되는 삶이 나를 서서히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인간으로서 바른 길을 걸어왔는지,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애초에 내가 원하던 그것이었는지, 이런 질문들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때로는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지 않아서 후회가 된다. 더 이상 앞으로 내디딜 곳조차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게 뭔가’하는 생각으로 털썩 주저앉게 된다.

 

중년의 마음에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 중 하나는 인간이 언젠가 종착역에 닿는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어느 정도의 절망감과 위기감을 피할 수 없다. 벼랑 끝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앞이 아니다. 물론 바다가 보일 수도 있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풍광에 숭고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어쩌면 벼랑 끝 바다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발자국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되어 왔는지, 벼랑 끝에서 봐야 하는 것은 지금껏 걸어온 길이다.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만 친다면 더 이상 꼼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두려움에 내 몸을 맡겨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시 쉬거나 중간 중간 뒤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달려가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밀리고 싶지 않다 해도 매일의 일상들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굳이 뛰어가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곳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굳이 뛰어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p.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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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5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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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陰)이 되었다가 양(陽)이 되었다가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도(道)를 이어받아 그 작용을 계속하는 것이 선(善)이고, 도(道)를 이어받아 이룬 상태가 성(性)이다. 어진 사람은 그것을 보고 어질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지혜롭다고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매일 매일 도(道)를 쓰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행해지는 일이 드물다.

 

一陰一陽之謂道니 繼之者善也오 成之者性也라. 仁者見之謂之仁하며 知者見之謂之知오 百姓은 日用而不知라. 故로 君子之道鮮矣니라.

 

 

하늘의 작용은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는 작용이다. 그 작용은 음과 양의 순환으로 나타난다. 즉 밤이었다 낮이 되고, 여름이었다가 겨울이 되는 등의 과정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는 하늘의 작용을 이어받아, 생명이 만들어지고 성숙하는 과정을 선(善)이라 한다. 그리고 성장이 결실을 이루어 그 생명체에 내재하게 된 천도(天道)를 성(性)이라 한다. 예컨대, 씨앗에서 싹이 터서 성장하는 과정을 선(善)이라 한다면, 다 자란 뒤 결실을 하고 그 씨앗에 다시 천도가 내재하게 된 상태를 성(性)이라 할 수 있다.

 

천도가 순환하여 만물이 나고 자라고 결실하는 과정은, 생명에 대한 하늘의 사랑이 충만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태양을 비추고, 밤낮을 교대시키며, 바람과 비를 주고, 사계절을 순환시키는 것은 모두 만물을 살리기 위한 하늘의 사랑의 힘이다. 그래서 어진 자는 이러한 형상을 보고, 하늘의 어짊을 안다. 또 하늘의 작용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지혜롭다.

 

모든 식물들은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해 꽃을 피우고 꿀을 만든다. 모든 생명체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암수가 짝을 이룬다. 식물이 뿜어내는 산소를 동물이 호흡하고, 동물이 뿜어내는 탄소를 식물은 자양분으로 삼는다. 생태계의 먹이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조화로운 삶의 구조를 이룬다. 이 모든 것에 신비스러운 지혜가 가득하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보고, 하늘의 지혜로움을 안다.

 

인간은 이 하늘의 작용을 벗어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인간의 호흡이나, 심장의 박동은 음양의 작용이고 하늘의 작용이지만,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

 

피곤하여 졸음이 오는 것은 하늘의 작용, 즉 본성의 작용이지만 욕심이 많은 인간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배고플 때 먹도록 유도하거나 적게 먹기도 한다. ‘남’을 ‘나’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것 또한 하늘의 작용인데, 욕심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고 심지어 해치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하늘의 작용을 어기는 것들이다. 욕심에 본성이 가려져 있는 사람은 하늘의 작용 안에서 존재하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행해지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p.87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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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 지쳐 있는 당신에게 들려주는 하버드 감정수업
가오위엔 지음, 강은혜 옮김 / 예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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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에 의지해 어려움을 극복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한 마음가짐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해 우리가 계속해서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꿈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 자기만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 고난을 이겨내는 것, 다양한 상황 앞에 자신감을 갖는 것 등은 모두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원동력이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소송 사건이 있었다. 써니라는 한 중년 남자가 자신의 어릴 적 꿈을 되찾겠다는 소송을 건 것이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40년 전 그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자신의 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냈다. 같은 반 친구 제이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제이미에게 써니에게서 꿈 하나를 사라고 제안했고, 제이미는 써니에게 3센트를 주고 꿈을 샀다. 그 꿈은 바로 이집트 여행이었다.

  

써니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40년 동안, 그는 세계 곳곳을 누볐지만 이집트는 가보지 못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를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과 함께 피라미드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 자신이 친구에게 팔았던 꿈을 돈을 지불하고 되찾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당시 3센트였던 꿈은 지금도 3센트의 가치일까? 미국 연방법원은 그 꿈의 현재가치를 3만 달러로 판결했다. 3센트짜리 꿈이 40년 사이에 3만 달러나 되다니!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판결이 나온 걸까?

  

제이미는 이렇게 변론했다. 어렸을 때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감히 꿈을 꿀 수 없었는데, 써니에게서 3센트에 꿈을 산 후로 인생이 완전히 변했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도,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워싱턴 대학교에 합격했으며, 이집트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그 결과, 지금 그는 시카고에 슈퍼마켓 여섯 곳을 운영하는 부자가 되었고 재산가치는 2500만 달러가 넘는다. 또한, 그의 부인은 이집트와 문명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그들은 도서관의 이집트 관련 서가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또한 꿈 덕택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이 명문 스탠포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꿈과 관련이 있었다. 그는 아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이집트 여행에 대한 꿈을 얘기하며 아들이 좋은 성적을 얻으면 함께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3센트짜리 꿈이 한 사람의 인생과 가정의 운명을 바꾸었다. 마음가짐의 에너지는 엄청난 가치를 창조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더 나아가 한 집단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한 집단의 리더라면 구성원에게 꿈을 심어주자. 꿈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함께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다고 구성원 모두가 믿는다면, 분명 성공할 것이다.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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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5-10-20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 부서 인사이동이 있어서 요즘 좀 바쁩니다.^^
그래서 글 올리기가 좀 더뎌질 것 같네요.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리면서 시간나는 대로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골향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