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언의 탄생 - 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김옥림 지음 / 팬덤북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황희. 그는 이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대사헌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세종대왕 때의 영의정이라는 막강한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의 삶은 늘 청빈했다. 공무를 볼 때는 관복을 입었지만 집으로 귀가해서는 기운 옷을 입고 소박한 음식을 먹었으며, 종의 아이들을 친손자 같이 대했다. 집에서 부리는 종들에게도 신분의 차이가 없는 듯 행동했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종을 대한 그의 태도는 당시 양반주의 사회에서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만큼 그는 깨어 있었고 인간적이었으며 시대를 앞서 생각했던 현인이었다. “매가 죄인을 만드는 법이다.” 황희 정승이 한 말로 이 말이 유래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모처럼 그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피곤한 몸을 뉘인 채 깜빡 낮잠에 빠져들었는데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선반 위 접시에 있던 배를 두 마리의 쥐가 옮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 지그시 바라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그는 밖에서 여종이 야단맞는 소리에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부인이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있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네 짓이 분명하구나.”
“마님, 정말이지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뭐라! 네 짓이 아니라고? 그러면 선반에 있던 배가 어디로 갔단 말이냐?”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마님, 믿어주세요.”
여종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며 울면서 말했다.
“안되겠구나. 따끔한 맛을 봐야 네가 실토를 하겠구나.”
황희 정승 부인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매를 들었다. 여종은 매질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황희 정승은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때 여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종은 매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한 짓이라며 거짓으로 잘못을 고백하고 있었다.
황희 정승은 자신이 잠결에 본 것을 부인에게 말해 여종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매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입궐해 자신이 겪은 일을 세종대왕에게 아뢰고 옥에 갇힌 죄인들 중에 죄가 확실하지 않은 자들의 방면을 주청했다. 세종대왕은 그의 주청을 받아들여 죄목을 재조사하여 죄목이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방면해 주었다.
황희 정승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했다. 그는 신분을 막론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웠다. 그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졌지만, 남용하지 않았다. 덕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다. 그는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실천한 참된 사람이었다. p.6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