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김병수 지음 / 프롬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링컨은 중년이 되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 외모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드러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역사는 길어야 100년이 되지 않는다. 한 민족, 한 국가의 역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100년이 되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사연이 길고, 깊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세상 하나가 이 세계에 더해진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숫자만큼의 세계가 눈을 뜬다.

 

우리는 하나의 역사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사. 어떻게 그 역사를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현재가 그려내는 한 사람의 인생사는 파편과 같아서 전부를 읽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한 사람의 인생 역사를 모두 읽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질없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첫눈에 모든 것을 드러내는 역사란 없는 법이다. 나와 상담을 한 어떤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묻곤 한다.  “ 짧은 시간에 그걸 어떻게 다 아셨어요?”

 

하지만 이런 물음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인생의 역사는 어떤 누구도, 절대로 모두 알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 그랬다. 용맹한 전사는 전쟁터에서 죽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서 죽고, 카레이서는 트랙에서 죽는 법이라고. 일에만 미쳐 달려온 사람들은 일터에서 죽거나 아니면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다가 술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인생은 목적지가 정해진 곳으로 달려가는 경주이다. 반복되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벼랑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복되는 삶이 나를 서서히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인간으로서 바른 길을 걸어왔는지,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애초에 내가 원하던 그것이었는지, 이런 질문들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때로는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지 않아서 후회가 된다. 더 이상 앞으로 내디딜 곳조차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게 뭔가’하는 생각으로 털썩 주저앉게 된다.

 

중년의 마음에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 중 하나는 인간이 언젠가 종착역에 닿는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어느 정도의 절망감과 위기감을 피할 수 없다. 벼랑 끝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앞이 아니다. 물론 바다가 보일 수도 있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풍광에 숭고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어쩌면 벼랑 끝 바다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발자국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되어 왔는지, 벼랑 끝에서 봐야 하는 것은 지금껏 걸어온 길이다.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만 친다면 더 이상 꼼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두려움에 내 몸을 맡겨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시 쉬거나 중간 중간 뒤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달려가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밀리고 싶지 않다 해도 매일의 일상들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굳이 뛰어가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곳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굳이 뛰어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p.27~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