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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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고통과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섬, 군함도,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하여 군함도라 부른다는데, 19세기부터 탄광사업이 번영했던 섬으로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수많은 조선 징용인들이 군함도에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했다.

 

이렇듯 조선사람에겐 수모의 땅인 군함도를 우리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20157월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조선 청년들의 한맺힌 사연이나 고된 노동의 아픔을 묻어두고 그들은 군함도를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기록은 사실적 역사로서의 기록으로 영구히 남아야 한다.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가 나치의 학살을 증빙하는 자료로 길이 남겨졌듯,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젊은 나이에 쓰러져간 조선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군함도의 진상은 세계만방에 알려져야 하고 강제징용의 자료로써 인류문화재로 길이 보존되어야 한다.

 

일본은 군함도를 등재를 추진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철강, 조선, 탄광이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하였다. 조선인 57,900여 명이 강제 동원된 바 있는 군함도(하시마 탄광)의 노동착취 사실을 숨기고, 일본의 근대 문화유산을 선전하는데 군함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 군함도라는 작은 섬에 조선인 수 만 명이 강제로 끌려와 하루 12시간 이상씩 탄광 속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역사적 아픔을 돌아보면 결코 일본이 군함도를 자신들의 산업화의 일등공신으로 선전하는 일을 좌시할 수 없다. 청운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청년의 꿈을 짓밟고 임금착취 및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많은 조선인이 죽어간 통한의 섬, 군함도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늦었지만 근래군함도를 영화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그 실상을 알린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 죄 없이 끌려가 이국의 바다 낯선 섬에서 죽어간 원혼을 달래고,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잔악한 실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일본이라는 민족이 수 천 년 동안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듯이, 앞으로도 충분히 역사를 조작하고 침범할 우려가 높다. 한국 고유의 땅 독도를 올해부터 일본의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예부터 일본의 땅이라 기술하고 한국이 불법점령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아마 수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여 세계적 여론을 등에 업고 한국과 영토 전쟁을 벌일지 모를 일이다.

 

군함도가 일제강점기 한국민이 당한 피해상황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망정 이제 당시의 산증인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군함도의 역사적 현실을 길이 후손들에게 남길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수 십 년에 걸쳐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들을 모아 후대에 길이 남을 군함도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했다. 우리 후손들은 다시 있어서 안 될 치욕의 역사를 올바로 배우고,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부정과 영토야욕을 철저히 분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위안부 소녀상 설치 반대 및 2016.12.28.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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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날 - 불교 명절에 담긴 수행 이야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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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사찰은 물론, 거리 곳곳에 연등을 달고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렇게 연등을 켜게 된 유래가 되는 이야기가 경전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코살라국의 사위성에 계실 때 일입니다. 프라세나짓왕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안거에 드는 석 달 동안 옷과 음식과 침구와 약을 공양했고, 안거가 끝나는 날에는 수천 개의 등불을 켜서 연등회를 베풀었습니다.

  

사위성에는 성실하지만 몹시 가난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연등회가 있던 날, 여인은 문득 왕은 이렇게 큰 복을 지으니 내생에도 큰 복을 받겠구나. 나는 이생에도 박복해 복을 지을 수 없으니 내생에도 박복하겠지.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공양을 올리고 싶다.”

  

여인은 그날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받은 동전 두 닢으로 기름을 샀습니다. 기름집 주인이 기름을 무엇에 쓰느냐고 묻자 여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가난해서 부처님께 공양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작은 등불이라도 공양할까 합니다.”

 

여인은 작은 등불을 가지고 부처님 처소로 갔습니다. 부처님 처소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구석진 곳에 등불을 걸어놓고 기도했습니다.

보잘것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나도 부처가 되겠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휘황찬란한 등불들이 하나 둘씩 꺼져갔습니다. 그런데 워낙 보잘것없어 잘 보이지도 않던 여인의 작은 등불만은 꺼지지 않고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등불이 모두 꺼지기 전에 부처님이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여인의 등불을 끄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등불은 아무리 해도 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것은 비록 작은 등불이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것이기에 꺼지지 않을 것이니라. 그 여인은 그 등불의 공덕으로 오는 생에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등불 하나를 공양한 가난한 여인이 다음 생애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왕은 급히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그 여인은 등불 하나를 켠 공덕으로 부처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석 달 동안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보시하고 수천 개의 등불을 켰습니다. 저에게도 미래에 부처가 되라는 수기를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여, 불도란 쉽고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도 백천을 얻을 수 있지만, 백천의 보시로도 하나를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불도를 얻기 위해서는 백성을 위해 부디 선정을 베푸십시오. 많은 사람에게 보시하고 선행을 쌓으며 스스로 겸손해 남을 존경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을 닦으면 훗날 언젠가는 부처가 될 것입니다.”

  

왕은 부처님을 위해 연등회를 연 것을 자신의 공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왕의 공덕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쌓은 공덕은 그 가난한 여인이 쌓은 공덕보다 작습니다. 왕이 올린 음식과 등불은 모두 백성들의 노력이며 백성들의 공덕인 것입니다. 가난한 여인은 비록 동전 두 닢 어치의 등불을 올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여인에게 동전 두 닢이란 밥을 굶으면서 올린 전 재산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여인은 등불을 밝히며 다음 생에 복을 달라고 빈 것이 아니라,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난한 여인의 서원을 본받아 부처님 오신 날에 나도 부처가 되리라는 큰 서원을 다짐하며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등불은 어두울수록 빛이 납니다. 밝을 때에는 밝혀봐야 표도 안 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수록 보살은 빛이 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 혼탁하고 어지러운데 나 혼자 잘하면 뭐하나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할수록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더 빛이 나게 됩니다.

   

연등을 밝히는 보살은 진흙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과 같습니다. 그러니 자꾸 세상 탓하지 말고, 세상이 혼탁할수록 더욱 귀한 존재가 되십시오,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지 마세요. 내가 등불이 되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이 어두울수록 나의 등불은 더욱 빛이 납니다. P.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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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莊子) - 그림으로 쉽게 풀어쓴 지혜의 샘
장자 지음, 완샤 풀어쓴이, 심규호 옮김 / 일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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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조상(曹商)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왕을 위해 사신으로 진나라에 갔다. 송나라 왕은 그가 떠날 때 수레 몇 대를 주었는데, 진나라 왕은 그를 반기며 수레 백 대를 주었다. 송나라로 돌아와서 장자를 만난 조상이 말했다. “가난하고 누추한 뒷골목에 살면서 가난하게 짚신이나 삼으며, 비쩍 마른 목에 누렇게 뜬 얼굴로 사는 것은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닐세. 그러나 만승(萬乘 : 일만 대의 수레. 혹은 천자의 자리)의 군주를 한 번 깨우쳐주고, 백승의 수레를 얻는 일은 내가 잘 하는 일이지.” 이에 장자가 대답했다.

 

진나라 왕이 병이 나서 의사를 불렀는데, 종기를 터뜨려 고름을 빼준 자에게는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을 입으로 빨아서 고쳐준 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다고 하더군. 더러운 곳이면 곳일수록 수레를 많이 준다고 하니, 그대도 진나라 왕의 치질을 빨아준 것 아닌가 싶네그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수레를 얻으셨는가? 에이, 더러우니 당장 꺼지게!”<열어구(列御寇)>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운명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한 부류는 권귀(權貴)에 붙어 온갖 아부를 다 떨며, 총애를 얻기 위해 영혼을 팔아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춘풍에 돛을 단 듯, 절개를 지키는 청고(淸高)한 이들을 무능한 무리라고 배척하며, 조롱과 풍자를 능사로 삼는다. 이런 부류가 패도(覇道 : 인의를 무시하고 무력이나 권모로써 다스리거나 공리를 탐하는 일. 왕도의 상대어)를 휘두르게 되면, 통치 계급의 환영을 받아 높은 자리를 보장받는다. 이들을 일러 방흉(幇凶), 즉 흉악한 짓거리를 방조하는 무리라고 일컫는다.

   

다른 한 부류는 권귀를 멸시하고 명성이나 이익을 분뇨보다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차라리 평생 빈궁하게 살망정, 권세 앞에 허리를 굽신거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과 자유를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평생 실의하여 뜻을 얻지 못하니, 이들을 일러 반역(叛逆), 즉 권귀에 거스르는 이들이라고 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부귀와 현달, 그리고 빈천과 곤궁으로써 사회의 불공평을 폭로하고 있다. 장자는 조상의 예를 들어 권세에 아부하는 자들이 도리어 청렴하고 결백한 자들을 비웃는 세태와 그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노신(魯迅)이 말한 바와 같이, 세상에는 노예가 되려고 하나 되지 못하는 사람과 그냥 앉아서 노예가 되는 사람이 존재한다.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사람은 노예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비교적 겸손하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르다.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이유로, 즉 가장 노예다운 노예가 되었다는 이유로 우쭐거리며 동료들을 깔보고 무시한다.

   

물론 조상은 후자에 속하는 노예다.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진 찬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득의양양하여 우쭐대며 장자를 비웃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볼 때, 조상이 얻은 것(재물)은 일고의 가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은 인격에 대한 모독이었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노예가 되고자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모욕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영광이다. 다른 이들은 아무리 얻고자 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이들이 적지 않다. 누군가의 기만과 억압으로 노예 자리에 안좌(安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다. 말단 관직이라도 일단 관직에 오르면,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나 된 양 기고만장하여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한다.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동료에게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예 모른 척하거나 엄숙한 얼굴로 공무 중임을 주지시킨다. 그는 의도적으로 아는 이들을 피하면서 혹시라도 부탁이라도 하면 어쩌나 꺼려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남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난하는 한편, 자기가 그 자리에 오르면 더 악독하게 하면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P.22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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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사고방식
노먼 빈센트 필 지음, 이갑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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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역사, 동양고전에 관심이 있어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공부해왔는데, 인문학이 인격수양에 많은 도움이 되고, 삶의 지혜도 가르쳐 주지만 선뜻 마음을 정하고 공부하기가 쉬운 학문은 아닌 것 같다. 좀 부드럽게 글을 써야지 하며 생각은 하는데, 늘 딱딱한 글이 되고 만다. 법률조문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고 역사나 고전도  마니아가 아니고선 딱딱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부드럽게 풀기 위해 가끔 자기계발서나 문학작품을 읽게 되는데, 부정적인 소식이 난무하는 시대에 마음의 지침서로 삼을 수 있는 자기계발서 몇 권은 꼭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많은 계발서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애용한다. 대학 다닐 때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용이 좋아서 종종 펼쳐본다. 
 
기독교적 성향이 강한 책이라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꺼려할 수 있겠지만 인류 보편적인 명언을 다루는 차원에서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근심, 걱정, 좌절, 불행, 질병이 닥쳤을 때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기서 벗어나는 방법들을 알려주니 정신적으로 참 유익했다. 시중에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마음의 위로를 주는 심리학 서적이 난무하지만 역시 독자들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은 그 분야의 고전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카네기 행복론이나 인간관계론도 좋고, 지그지글라가 쓴 자기계발서도 그런 분야의 책이다.
 
'적극적 사고방식' 제목부터  눈에 쏙 들어왔는데 내용도 정신적인 힘을 북돋우는 그런 구절이 많다. 예를 들면, "오늘 하루 멋진 날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오늘 일어나는 모든 일을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몸도, 마음도, 감정도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멋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 현재의 모든 일들, 그리고 미래에 생겨날 모든 일들에 감사한다." 이런 구절을 반복하여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마음의 처방전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행복을 불러들이는 구절들이 가득하다. 책 속 어떤 부분을 펼쳐서 읽더라도 좋은 내용이 많아서 밑줄을 그어 놓고  그 부분들을 찾아 읽고 되뇌인다. 한참을 따라읽고 반복하여 쓰고 소리내어 다짐을 하다보면 마음에 잔잔한 긍적적 반향이 일면서 번뇌가 사라지고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난다.
 
근심, 걱정은 잠시 없앴다고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떤 때에는 가만히 있으면 사라질 걱정들이 애써 붙들고 있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모든 생각은 잠시 머무르다 사라지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하루에 사람들은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는데 이렇듯 정신은 끊임없이 여러 생각들로 반복된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일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의식적으로도 가질 필요가 있다. 온통 세상이 부정적인 뉴스와 사건들로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요즘,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 버리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모든 일에 너무 집착을 하지 말고 다 지나가는 일이라고 놓아주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내 머리에서 떠오를 때 그것을 떨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외면서 항상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사람에 따라 인생을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천양지차이고, 일의 성과도 크나큰 차이를 보인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반드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먼저 생을 살다간 선조들이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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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오경 - 인간의 도를 논하다
공자 지음, 김동휘 옮김 / 신원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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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유학(儒學)의 창시자로서 그의 사상은 평등하게 다스리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을 핵심으로 하였다. 그는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를 말할 때 고상한 품성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마치 북두성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아도 뭇별들이 그를 에워싸고 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비유하였다.

 

제경공(齊景公)이 공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는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이처럼 제각기 도리를 다하고 제 자리를 지키면 된다.”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제경공이 그 말씀이 옳습니다. 군주가 군주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고, 아들이 아들답지 않다면 나라에 양식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어디에 제가 먹을 것이 있겠습니까?”하고 수긍하였다.

    

노나라의 대부인 계강자(季康子)가 정사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는 소위 다스릴 ()‘이란 바를 ()‘과 같은지라 정도(正道:바른 길)를 가야 한다. 당신이 먼저 정도를 가면서 남들의 본보기가 된다면 그 누가 감히 정도를 가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하고 대꾸하였다. 계강자가 또 정도를 가지 않는 자들을 죽이면서 모두 정도를 가게 하면 어떻겠는가?”하고 물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바로 당신인데 왜 다른 사람을 죽이겠는가? 당신이 선을 행하면 백성이 저절로 당신을 따라 선해질 것이다. 윗사람들의 품성은 바람과 같고 아래 사람들의 품성은 풀과 같아 바람이 풀 위를 스쳐 지나가면 풀은 그 바람에 따라 넘어가기 마련이다.”라고 답하였다.

   

계강자는 나라에 도적이 많아 근심하면서 공자에게 청문하자 공자는 만약 당신이 청렴하여 탐욕을 버리면 도적들도 고무되어 부끄러운 줄 알게 되고 더는 도적질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고 대꾸하였다. 그때 계씨 가문은 노나라의 권세가였는데 계강자는 더구나 직계를 뛰어넘어 계승권을 탈취하였기에 공자의 답변에는 계강자에 대한 풍자의 의미가 다분히 담겨 있다.

   

섭공(葉公: ‘잎 엽자가 지명이나 인명으로 쓰일 때는 으로 읽음)이 정사를 다스릴 문제를 묻자 공자는 가까이에서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기뻐서 순종하고, 먼 곳에 있는 자들이 귀의하여 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정사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가 양식을 저장하고, 무기를 간수하며, 백성들에게 신심을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이어 부득이한 경우에 그중의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할까요?”하니 공자가 서슴없이 무기를 버려야 한다.”고 하자 자공이 또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서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하니 공자는 양식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인생은 한번 죽기 마련인데 백성들이 신심(信心)을 잃게 되면 국가가 일어설 방도가 없다.”고 대꾸하였다.

   

자장이 정사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자 공자는 마음속에 선함을 간직하고, 피로를 무릅쓰고, 진리를 실천함에서 힘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자로가 정사에 대해 묻자, “백성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고 이신작칙(以身作則 :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일반 공중이 지켜야 할 법칙이나 준례를 만듦)하는 것이다.”고 대꾸하였다. 자로가 더 상세히 알려달라고 하니 태만하지 말지어다.”고 덧붙였다.

   

중궁이 계씨의 가신으로 있으면서 정사에 대해 묻자, “관리들의 모범이 되고, 아래 사람들의 과실을 관대히 처리하고, 덕성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궁이 덕성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를 어떻게 알고 등용하겠습니까?”하고 재차 물으니 네가 알고 있는 인재를 먼저 등용하라. 네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 남들이 그를 내버려 두겠느냐?”하고 대꾸하였다.

   

자하가 노나라 거부읍(莒父邑)의 장관이 되어 정사를 다스릴 도리를 물으니 공자는 급히 성사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급히 성사하려고 하면 급할수록 이를 수 없고,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우면 대사를 망치게 된다.”고 일깨워 주었다. p.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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