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莊子) - 그림으로 쉽게 풀어쓴 지혜의 샘
장자 지음, 완샤 풀어쓴이, 심규호 옮김 / 일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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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조상(曹商)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왕을 위해 사신으로 진나라에 갔다. 송나라 왕은 그가 떠날 때 수레 몇 대를 주었는데, 진나라 왕은 그를 반기며 수레 백 대를 주었다. 송나라로 돌아와서 장자를 만난 조상이 말했다. “가난하고 누추한 뒷골목에 살면서 가난하게 짚신이나 삼으며, 비쩍 마른 목에 누렇게 뜬 얼굴로 사는 것은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닐세. 그러나 만승(萬乘 : 일만 대의 수레. 혹은 천자의 자리)의 군주를 한 번 깨우쳐주고, 백승의 수레를 얻는 일은 내가 잘 하는 일이지.” 이에 장자가 대답했다.

 

진나라 왕이 병이 나서 의사를 불렀는데, 종기를 터뜨려 고름을 빼준 자에게는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을 입으로 빨아서 고쳐준 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다고 하더군. 더러운 곳이면 곳일수록 수레를 많이 준다고 하니, 그대도 진나라 왕의 치질을 빨아준 것 아닌가 싶네그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수레를 얻으셨는가? 에이, 더러우니 당장 꺼지게!”<열어구(列御寇)>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운명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한 부류는 권귀(權貴)에 붙어 온갖 아부를 다 떨며, 총애를 얻기 위해 영혼을 팔아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춘풍에 돛을 단 듯, 절개를 지키는 청고(淸高)한 이들을 무능한 무리라고 배척하며, 조롱과 풍자를 능사로 삼는다. 이런 부류가 패도(覇道 : 인의를 무시하고 무력이나 권모로써 다스리거나 공리를 탐하는 일. 왕도의 상대어)를 휘두르게 되면, 통치 계급의 환영을 받아 높은 자리를 보장받는다. 이들을 일러 방흉(幇凶), 즉 흉악한 짓거리를 방조하는 무리라고 일컫는다.

   

다른 한 부류는 권귀를 멸시하고 명성이나 이익을 분뇨보다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차라리 평생 빈궁하게 살망정, 권세 앞에 허리를 굽신거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과 자유를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평생 실의하여 뜻을 얻지 못하니, 이들을 일러 반역(叛逆), 즉 권귀에 거스르는 이들이라고 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부귀와 현달, 그리고 빈천과 곤궁으로써 사회의 불공평을 폭로하고 있다. 장자는 조상의 예를 들어 권세에 아부하는 자들이 도리어 청렴하고 결백한 자들을 비웃는 세태와 그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노신(魯迅)이 말한 바와 같이, 세상에는 노예가 되려고 하나 되지 못하는 사람과 그냥 앉아서 노예가 되는 사람이 존재한다.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사람은 노예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비교적 겸손하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르다.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이유로, 즉 가장 노예다운 노예가 되었다는 이유로 우쭐거리며 동료들을 깔보고 무시한다.

   

물론 조상은 후자에 속하는 노예다.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진 찬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득의양양하여 우쭐대며 장자를 비웃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볼 때, 조상이 얻은 것(재물)은 일고의 가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은 인격에 대한 모독이었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노예가 되고자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모욕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영광이다. 다른 이들은 아무리 얻고자 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이들이 적지 않다. 누군가의 기만과 억압으로 노예 자리에 안좌(安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다. 말단 관직이라도 일단 관직에 오르면,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나 된 양 기고만장하여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한다.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동료에게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예 모른 척하거나 엄숙한 얼굴로 공무 중임을 주지시킨다. 그는 의도적으로 아는 이들을 피하면서 혹시라도 부탁이라도 하면 어쩌나 꺼려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남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난하는 한편, 자기가 그 자리에 오르면 더 악독하게 하면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P.22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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