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한다 - 최병성의 생명 편지
최병성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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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로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맞다. 정말 우리네 야생 꽃이나 야생 동물들이 이쁠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버리니까~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건물 앞뒤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한껏 뽐내는 야외운동장이 있었는데, 그 밑에서 조그맣게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진분홍빛을 머금은 작고 귀여웠던 꽃망울들이~~ 이 책을 보니까 내 마음 속에 각인은 되었지만 인식은 하지 못했던 야생화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목회자로 살던 최병성 저자는 은거하기 위해 낯선 서강가에 자리를 잡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놔두지 않았다. 1999년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 건설이 불거지자 이를 막기 위해 환경 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나서 서강의 아름다움을 알린 그는 요즘에는 산업 폐기물 시멘트에 고통 받는 현대인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가꾸는 그이기에 그의 환경 운동이 성과를 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그인 만큼 그가 쓴 글과 그가 찍은 그림은 따스한 정취가 풍긴다.
 
그런 그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콘크리트와 시멘트 범벅의 도시인들에게 전해주려고 이렇게 나섰다. <영혼이 꽃피는 봄> <새로이 사랑을 선택하는 여름>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가을> <보이지 않아 더 뜨거운 겨울>편으로 나뉘는 사계절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저자의 글과 그림에 취하다가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다른 계절로 넘어가게 된다. 정말 최병성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숲 속에서 만난 산수유 새싹이며 은방울꽃, 큰개불알풀, 딱새 부부, 노루귀, 쇠딱따구리 등등의 이야기를 한가로이 풀어내는 솜씨가 어찌나 유려한지, 그만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만 갈라치면 정신없이 쑥 빠져버리니 버스에서 읽기 시작하기만 하면 내릴 정류장을 놓치는 일은 예삿일이었다. 확실히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글은 따듯함이 묻어나온다.
 
여기서 잠깐 그가 만난 큰개불알풀의 이야기를 해보자. 어느 날 저자가 전라도 광주에 내려갔다가 이 보랏빛의 앙증맞은 꽃과 조우한 이후에야 우리 근처의 어디에나 피어있는 작은 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큰개불알풀’이라 하는데, 이는 꽃이 진 후에 씨앗 맺힌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비슷한 모양이되 훨씬 크기가 작은 개불알풀이 이미 있어, 그 앞에 ’큰’ 자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는데, 이름이 이 앙증맞은 꽃과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아서 저자는 새로 "바닷게눈꽃"이라고 이름을 지어봤다고~ 꽃잎과 꽃술이 바닷게의 눈을 닮아서 지은 이름인데, ’큰개불알풀’보다는 훨씬 어감이 아름답지 않은지~~
  

 아메리카 인디언 출신의 오이예사는 <삶이란 바람소리일 뿐이다>라는 책에서 "단순하고 소박하다 해서 결코 진부하거나 따분한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것도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무한히 풍요롭고 언제나 새롭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하여 보잘것없는 작디작은 꽃도 새??고 있지 않을까.
 
이번엔 채송화 이야기이다. 저자가 채송화를 심다가 씨앗 하나를 시멘트 틈바구니에 떨어뜨렸던지 어느 여름날 채송화꽃이 시멘트 틈새에서 빠알간 꽃망울을 키워낸 것을 보았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찌 그런 곳에서 꽃망울을 터트렸을까 감탄과 안타까움이 공존하지만 정작 채송화는 기름진 옥토가 아니고 왜 하필 이런 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모습을 보곤 느끼는 바가 크다.
  


 씨앗에게는 자신이 뿌리 내릴 곳을 선택할 능력이 없습니다. 옥토이든 거친 자갈밭이든 한번 뿌리 내리면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다른 곳을 넘보거나 신세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에겐 그곳이 최고의 자리인 것입니다.


 
사계절마다 재미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전해주는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콘크리트 건물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내가 자연을 보고 듣고 맡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역시, 자연의 풍광은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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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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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의 <시경>에서부터 양한과 위진 남북조를 거쳐 당, 송, 원, 명 그리고 청대까지의 근 3천여 년에 걸친 중국 시사를 한 눈에 꿰뚫은 이 해설서는 아직 이십대인 명랑한 아가씨의 손에서 쓰여졌다. 정말 천재는 나이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려워만 보였던 고전 시가에게서 청초하고 그윽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다. 읽고 또 읽고 여러 번을 읽어도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이 까마득하게 부족한 나이지만 그녀의 맑고 청명한 글을 보노라면 그저 고전시가의 흥취 속에 잠잠히 머물 수가 있었다. 읽고만 있어도 맑고 깨끗해지는 느낌이여~~! 정말 이 책은 귀중한 보물 같은 책이다.

 

1984년에 태어났다는 그녀는 아마추어 문인이었던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면서 <당시>, <송사> 등을 동화책처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고~ 2003년부터 인터넷에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다가 곧이어 현대적 감각으로 고전 시가를 풀이한 글이 책으로 묶여나왔다는데, 3개월 만에 10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100위권에서 밀려난 적이 없을 정도라 하니 그녀의 인기가 얼마큼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어떤 독자들은 그녀의 파격적인 시 풀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섬세한 문제와 시공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재치에는 매료당할 수밖에 없었단다. 실제로 내가 읽어보니 어떤 점이 그렇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알 것도 같다. 고전 시가이지만 고루하거나 지루한 느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 시가가 쓰여진 당시로 돌아가 시인의 마음에 감정이입을 해버리니, 이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보다도 어린 여인이 이런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부러움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 또 봐도 내가 따라가지 못할 재능에 대해서는 그저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받잡을 일일 것이다. 읽다가 정말 내 머릿속으로는 나올 법하지 않은 문장들을 표시해둔다고 포스트 잇을 붙여놓았는데 세기에도 정말 벅차게 많아져 버렸다.

 



 꽃불이 다 타고 남은 재가 얼마나 따뜻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꽃불은 차라리 차가운 환상으로 남아 산산이 부서지기를 원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슬픈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꽃불을 위해 애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꽃불의 견고한 의지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을 형에게 빼앗겨 이루지못한 조식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조식이 견복을 위해 남긴 시가 <낙신부>를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평한 글이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마음을 갈고 또 갈아 황폐해지기를 원했던 조식에 대해서 꽃불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정말 뛰어나지 않은지...

 



 단지 한 걸음의 차이가 바로 상사, 즉 서로 그리워함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감정은 티끌과도 같으니, 사랑은 이처럼 섬세하고 연약한 것인 모양입니다.



 

홍두를 보고 시를 지은 왕유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소명태자와 혜랑을 떠올렸는지, 아니면 자신과 태평공주를 떠올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랑과 아쉬움에 대해서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감정은 티끌과도 같다'...라~ 내 머리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일 뿐.

 



 고시 십구 수가 유행한 이유는 옷깃에 떨어지는 술방울처럼 시구 속에 처량함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환관과 외척이 결탁하여 관료 집단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때인 동환 환제, 영제 시절은 반악과 같은 재주를 지닌 이들도 '귀인이 탄 수레의 먼지만 보도도 절을 할' 정도로 불굴의 기개를 바닥까지 떨어뜨리고서야 겨우 벼슬자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랬기에 청빈한 문사들이나 낮은 계층의 선비들이 남녀 간의 애정을 주제로 쓴 고시 십구 수가 유행했다. 그것을 가지고 고시 십구 수가 유행하는 이유를 저렇게나 감상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저자이다. 고전 시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톡톡 튀는 감각적인 문체를 골고루 담고 있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운치가 있고, 발랄하며, 현대인들이 읽어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일 수밖에 없나보다. 앞으로 그녀의 책을 계속 기다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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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
쑨자오룬 지음, 심지언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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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도로 보는 시리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저자가 중국인이여서 그런지 동서양의 모든 이야기를 다 아우르는 책이 나올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책을 봤는데 소설가이자 교수인 수잔 와이즈 바우어가 동양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지 동양 역사 부분은 화가 날 정도로 말도 안 되게 적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더 화가 났던 것은 그 저자가 홈스쿨링을 한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쓴 책을 가지고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 동양에 대해서 얼마나 잘못 알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울분이 터진다. 에궁~ 모르면 쓰지를 말지, 괜히 나서가지고.... 이 책은 그래서 대단하다. 보통 세계 과학사하면 동양보다는 서양의 과학사에만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데, 이 책은 오히려 동양에 대한(아니 중국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비중이 더 높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동양이 중국에 한정되어 있던 것은 아닌지 심하게 의심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목차를 살펴보면, 총 다섯 시대로 나누어진다. <01 과학의 기원> <02 중세시대의 과학기술> <03 근대과학의 서광> <04 과학혁명> <05 과학기술의 고속 발전>으로 나누어지는데,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하다. 나조차도 예전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배웠던 말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새롭게 외우게 되는 인명이나 기술명이나 지명의 이름만 나올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온갖 설레발을 치면서 책을 읽어내렸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고대쪽이라 <01 과학의 기원>에 해당하는데, 그 당시는 철학분야나 과학분야나 매한가지여서 철학책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껏 향유하면서 읽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다른 곳에서는 간단하게 봤던 내용을 여기서는 알록달록한 지도와 사진 자료들로 무장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눈이 무척이나 호강했다. 다른 이유보다도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이런 호사스런 사진과 그림 자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 자체는 너무 잘 나왔다고 생각되지만 읽다보니 의문점이 드는 곳이 생겼다. 이 책의 제목이 [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가 아니라 [지도를 곁들인 중국사 관점에서 보는 세계 과학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중국의 관점을 곳곳에 배치해놓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흥미있어 하는 <01 과학의 기원> 속에는 네 시대로 구분이 되는데, ((01 고대문명의 과학)) ((02 상고시대 중국의 과학기술)) ((03 계몽시대 : 고대 그리스시대 과학)) ((04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과학기술))으로 나뉘어 있다. 각 시대별로 나뉘는 제일 첫 장에는 어김없이 세계전도가 나타나있는데 그 지도 밑에는 꼭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 정리가 되어 있기에 그런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다. ((02 상고시대 중국의 과학기술))은 당연히 중국이 나와야 하겠지만서도, ((03 계몽시대 : 고대 그리스시대 과학))이나 ((04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과학기술))에는 왜 중국의 역사가 첫장에 떡하니 나와야 하는 것일까. 3장과 4장에는 중국의 역사와 그리스의 역사가 같이 나오니까 그것이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비교하기 위해서 그렇게 편집을 했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맨 뒤에 있는 영국이나 독일, 미국의 역사는 나와있더니만) 1장에선 인도나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표기되어 있지 않기에 자꾸만 표지의 저자 이름을 힐긋거리게 된다. 너무 자문화 중심주의 아니냐고~ 내가 중국에 대해서 특별히 악감정이 없는데 이상하게 신경쓰이는 요소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건 개인적인 소견이다. 일단 과학에 대한 모든 사진과 그림 자료를 일일히 잘 정리해준 책이여서 그 소장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다만 앞으로는 이렇게 지식으로 무장할 수 있는 이런 시리즈의 책이 외국 사람의 손에서 나오지 않고 우리 손으로 만들어지는 그런 날이 기다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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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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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렇게 검색한 사진만 보면 상당히 두꺼운 책으로 뵈는데 실은 아주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책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두꺼울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읽고 싶은 호기심을 눌러버렸다가 다시 고개 내미는 호기심에 져서 이렇게 읽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천년동안 습작할 것을 각오하는 마음에서 붙였을 법한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작가로서 걸어야 할 길의 고단함과 그런 삶 속에 숨겨져있을 매혹을 함께 품고 있다. 나 또한 그런 고단함과 매혹 속에 어쩔 줄 몰라 포로가 되어 버린 범인들 중의 하나이다. 읽기는 꽤 오래 전에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려면 그의 말이 내 안에서 숙성되어야 하겠기에 그러길 기다렸다가 천년 만년이 지나도 도저히 숙성에 다다를 수 없음을 예감하고 이제야 글을 쓴다. 그의 글은 많이 읽지 않았다만 이 책은 참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쉬 읽을 수 있다는 얘긴 아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미처 다 익지 않은 총각김치를 먹은 것처럼 입안에서 서걱서걱거리는 느낌이 남아있다. 읽기 전에도, 또한 다 읽은 뒤에도... 이는 그가 아는 작품과 작가들을 내가 채 반도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아니면 작가들만의 감수성이 내겐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만의 글쓰기 특강을 들으며 어렵다고 허우적거리거나 재밌다고 호응했던 일은 정말 해볼 만한 일이었음을 확실히 말해둘 수 있다. 그가 말한 "단어 하나의 강렬함일 수도 있고 문단 하나의 아득함일 수도 있습니다."(p. 32) 속에서 말한다면 내가 느낀 것은 "글의 아득함", 바로 그것이었을 거다.

 

그의 글쓰기 특강에서는 글을 쓰는 방법을 전달해주기보단 사물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유추해내는 과정과,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매혹'과 '불안'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수많은 문학청년(이하 문청)들이 자신의 욕망에 필적할 만큼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글쓰기에 매혹당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선고>를 하룻밤만에 완성한 카프카의 이야기에 빗대 들려주었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글을 쓸 수 있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카프카이지만, <변신>으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서, 다른 일로 방해받아서 더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카프카를 예로 들면서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p. 31)속으로 돌입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시간의 부재 속에서 무엇인가를 읽는 매혹에서부터 출발하였다가 시간의 부재 속에서 언어로 무엇인가를 쓰는 매혹으로 나아가는 문청들의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것이다. 카프카는 글쓰기의 매혹에 푹 빠져서 하룻밤만에 완성했던 <선고>를 수작이라고 생각했고, 문단에서 대단한 평가를 받은 <변신>을 형편없게 여겼는데 이것은 저자의 말대로 이것은 글쓰기의 매혹과 글읽기의 매혹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단의 평가가 어찌됐든 글쟁이는 자신이 스스로 잘 쓸 수 있음을 확신해야 비로소 글쓰기가 진행되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리도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저자의 눈으로 몰래 훔쳐본 작가의 방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아서 글을 쓰든 조그만 수첩에 의지하며 글을 쓰든 일단 작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책상일 텐데 발자크의 예를 들면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는 잠을 자고, 밤 12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아침 8시까지 집필하고,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목욕으로 휴식을 취한 다음 식사를 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그날 썼던 것을 퇴고하고 나면 작업이 끝나는데 그 때부터 8시까지는 가끔 나들이를 즐긴다는 발자크는 정말 성실한 글 노동자였다. 그런 수많은 습작들이 모이고 모여서 대작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정말 부지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규칙한 나로서는 정말 따라가기가 힘든 스케줄인데, 발자크는 정말 대단하다. 이제껏 그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슬슬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성실하게 고치고 또 고치는 발자크의 작품은 얼마나 깊은 내공이 쌓여있을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굳이 글을 쓰고자 하지 않더라도(성실하지 않은 나로서는 어렵겠는데~) 이 책으로 작가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을 법하다.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당연히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김탁환의 따스한 글쓰기 특강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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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입문 만화로 읽는 중국전통문화총서 6
주춘차이 지음, 장우창.백유상.정창현 옮김 / 청홍(지상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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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중국전통문화총서 중에서는 이 책이 마지막으로 본 책이다. 이 책에서 내가 이전에 봤던 <경락경혈 십사경>, <황제내경 영추편>, <한의약식 약식동원>에 대해 총정리를 해주었다. 어쨌거나 그 모든 이야기가 다 한의학에 대한 내용이니까 그 마무리는 모두 이 책으로 끝나는 게 당연할 거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책을 볼 때마다 인용되었던 책이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 보지 못하였던 <의역동원 역경>이었는데, 이 책은 홍콩의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인정받는 책이라고 한다. 장금이가 달달 외웠던 그 책이라나 뭐라나~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의역동원 역경>이 한의학의 근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사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오면서 수많은 임상들을 접해왔을 동안에 정리된 책이 어떻게 한 권일 수가 있겠나 말이다. 여러 책으로 정리되어 체계를 잡혀가야 할 것이다.

 

한의학의 기원은 인류가 어떻게 생명의 비밀을 탐구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생명이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해, 서양의 학문은 주로 물질의 구조라는 관점에서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면, 한의학은 대상의 기능에 착안해 '의미'를 깨닫고 '형체'는 잊어버린다. 그래서 해부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어도 그 기능만으로도 병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변증의학으로서 한의학과, 실증의학으로서 서양의학이 나뉜 지점이다. 서양의 실증의학은 환원론적 사유에 입각하여 물질의 미시적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하지만, 한의학은 정체론적 영감에 의지하고 고대에 완성된 이론적인 토대를 기초로 하여 대상의 유기적인 기능을 파악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한의학은 이미 2,000여 년 전에 '천인상응'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음양오행 이론을 도구로 하고 장부경락 이론을 핵심으로 하는 고도의 추상성과 광범위한 함축성을 보유하며 해석력과 추리력이 매우 강력한 이론체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모든 주기가 곧 자연의 주기에 따라 흘러가기에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고, 설명하고, 논리를 좀 더 설득적으로 하기 위해 이론을 체계화시킨 것일 게다.

 

이 책은 한의학의 음양오행설, 장상학설, 경락할설, 기혈진액, 한의학의 병인학설의 다섯 가지 학설과 변증시지와 한의학의 치료원칙인 팔법의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뉘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음양오행설에서는 한의학에서 '음'과 '양'으로 구별되기 시작한 것이 처음에는 대상과 햇빛의 관계(햇빛을 향하면 양, 등지면 음)에서부터 시작했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기후의 한서(寒暑), 방위의 상하좌우내외(上下左右內外), 운동의 조동(躁動), 안정(安定) 등으로 확대되었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음양은 이미 구별된 음과 양에서도 또 구별할 수가 있는 것처럼 서물이 대립하는 동시에 연관을 맺는다. 장상학설은 인체에 나타나는 생리적, 병리적 현상을 관찰하여 각 장부의 생리적 기능과 병리적 변화 및 장부 간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분야이고, 기혈진액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서 장부 경락 등 조직과 기관들이 생리 활동을 지속하는 기본 바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병인학설에서는 사람이 병에 걸려 나타나는 여러 증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른 책처럼 한 분야에 깊숙한 내용이 나오는 게 아니라 한의학의 구성을 설명하는 기본 이론이다 보니 내용이 쉬이 알아들을만 했다. <경락 경혈 십사경>이나 <한의약식 약식동원> 같이 너무 전문적이지 않아서 더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이런 책으로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주지하고 있으면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병에 걸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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