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주나라의 <시경>에서부터 양한과 위진 남북조를 거쳐 당, 송, 원, 명 그리고 청대까지의 근 3천여 년에 걸친 중국 시사를 한 눈에 꿰뚫은 이 해설서는 아직 이십대인 명랑한 아가씨의 손에서 쓰여졌다. 정말 천재는 나이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려워만 보였던 고전 시가에게서 청초하고 그윽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다. 읽고 또 읽고 여러 번을 읽어도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이 까마득하게 부족한 나이지만 그녀의 맑고 청명한 글을 보노라면 그저 고전시가의 흥취 속에 잠잠히 머물 수가 있었다. 읽고만 있어도 맑고 깨끗해지는 느낌이여~~! 정말 이 책은 귀중한 보물 같은 책이다.

 

1984년에 태어났다는 그녀는 아마추어 문인이었던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면서 <당시>, <송사> 등을 동화책처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고~ 2003년부터 인터넷에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다가 곧이어 현대적 감각으로 고전 시가를 풀이한 글이 책으로 묶여나왔다는데, 3개월 만에 10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100위권에서 밀려난 적이 없을 정도라 하니 그녀의 인기가 얼마큼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어떤 독자들은 그녀의 파격적인 시 풀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섬세한 문제와 시공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재치에는 매료당할 수밖에 없었단다. 실제로 내가 읽어보니 어떤 점이 그렇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알 것도 같다. 고전 시가이지만 고루하거나 지루한 느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 시가가 쓰여진 당시로 돌아가 시인의 마음에 감정이입을 해버리니, 이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보다도 어린 여인이 이런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부러움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 또 봐도 내가 따라가지 못할 재능에 대해서는 그저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받잡을 일일 것이다. 읽다가 정말 내 머릿속으로는 나올 법하지 않은 문장들을 표시해둔다고 포스트 잇을 붙여놓았는데 세기에도 정말 벅차게 많아져 버렸다.

 



 꽃불이 다 타고 남은 재가 얼마나 따뜻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꽃불은 차라리 차가운 환상으로 남아 산산이 부서지기를 원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슬픈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꽃불을 위해 애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꽃불의 견고한 의지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을 형에게 빼앗겨 이루지못한 조식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조식이 견복을 위해 남긴 시가 <낙신부>를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평한 글이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마음을 갈고 또 갈아 황폐해지기를 원했던 조식에 대해서 꽃불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정말 뛰어나지 않은지...

 



 단지 한 걸음의 차이가 바로 상사, 즉 서로 그리워함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감정은 티끌과도 같으니, 사랑은 이처럼 섬세하고 연약한 것인 모양입니다.



 

홍두를 보고 시를 지은 왕유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소명태자와 혜랑을 떠올렸는지, 아니면 자신과 태평공주를 떠올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랑과 아쉬움에 대해서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감정은 티끌과도 같다'...라~ 내 머리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일 뿐.

 



 고시 십구 수가 유행한 이유는 옷깃에 떨어지는 술방울처럼 시구 속에 처량함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환관과 외척이 결탁하여 관료 집단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때인 동환 환제, 영제 시절은 반악과 같은 재주를 지닌 이들도 '귀인이 탄 수레의 먼지만 보도도 절을 할' 정도로 불굴의 기개를 바닥까지 떨어뜨리고서야 겨우 벼슬자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랬기에 청빈한 문사들이나 낮은 계층의 선비들이 남녀 간의 애정을 주제로 쓴 고시 십구 수가 유행했다. 그것을 가지고 고시 십구 수가 유행하는 이유를 저렇게나 감상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저자이다. 고전 시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톡톡 튀는 감각적인 문체를 골고루 담고 있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운치가 있고, 발랄하며, 현대인들이 읽어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일 수밖에 없나보다. 앞으로 그녀의 책을 계속 기다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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