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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저렇게 검색한 사진만 보면 상당히 두꺼운 책으로 뵈는데 실은 아주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책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두꺼울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읽고 싶은 호기심을 눌러버렸다가 다시 고개 내미는 호기심에 져서 이렇게 읽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천년동안 습작할 것을 각오하는 마음에서 붙였을 법한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작가로서 걸어야 할 길의 고단함과 그런 삶 속에 숨겨져있을 매혹을 함께 품고 있다. 나 또한 그런 고단함과 매혹 속에 어쩔 줄 몰라 포로가 되어 버린 범인들 중의 하나이다. 읽기는 꽤 오래 전에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려면 그의 말이 내 안에서 숙성되어야 하겠기에 그러길 기다렸다가 천년 만년이 지나도 도저히 숙성에 다다를 수 없음을 예감하고 이제야 글을 쓴다. 그의 글은 많이 읽지 않았다만 이 책은 참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쉬 읽을 수 있다는 얘긴 아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미처 다 익지 않은 총각김치를 먹은 것처럼 입안에서 서걱서걱거리는 느낌이 남아있다. 읽기 전에도, 또한 다 읽은 뒤에도... 이는 그가 아는 작품과 작가들을 내가 채 반도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아니면 작가들만의 감수성이 내겐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만의 글쓰기 특강을 들으며 어렵다고 허우적거리거나 재밌다고 호응했던 일은 정말 해볼 만한 일이었음을 확실히 말해둘 수 있다. 그가 말한 "단어 하나의 강렬함일 수도 있고 문단 하나의 아득함일 수도 있습니다."(p. 32) 속에서 말한다면 내가 느낀 것은 "글의 아득함", 바로 그것이었을 거다.
그의 글쓰기 특강에서는 글을 쓰는 방법을 전달해주기보단 사물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유추해내는 과정과,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매혹'과 '불안'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수많은 문학청년(이하 문청)들이 자신의 욕망에 필적할 만큼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글쓰기에 매혹당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선고>를 하룻밤만에 완성한 카프카의 이야기에 빗대 들려주었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글을 쓸 수 있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카프카이지만, <변신>으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서, 다른 일로 방해받아서 더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카프카를 예로 들면서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p. 31)속으로 돌입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시간의 부재 속에서 무엇인가를 읽는 매혹에서부터 출발하였다가 시간의 부재 속에서 언어로 무엇인가를 쓰는 매혹으로 나아가는 문청들의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것이다. 카프카는 글쓰기의 매혹에 푹 빠져서 하룻밤만에 완성했던 <선고>를 수작이라고 생각했고, 문단에서 대단한 평가를 받은 <변신>을 형편없게 여겼는데 이것은 저자의 말대로 이것은 글쓰기의 매혹과 글읽기의 매혹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단의 평가가 어찌됐든 글쟁이는 자신이 스스로 잘 쓸 수 있음을 확신해야 비로소 글쓰기가 진행되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리도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저자의 눈으로 몰래 훔쳐본 작가의 방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아서 글을 쓰든 조그만 수첩에 의지하며 글을 쓰든 일단 작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책상일 텐데 발자크의 예를 들면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는 잠을 자고, 밤 12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아침 8시까지 집필하고,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목욕으로 휴식을 취한 다음 식사를 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그날 썼던 것을 퇴고하고 나면 작업이 끝나는데 그 때부터 8시까지는 가끔 나들이를 즐긴다는 발자크는 정말 성실한 글 노동자였다. 그런 수많은 습작들이 모이고 모여서 대작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정말 부지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규칙한 나로서는 정말 따라가기가 힘든 스케줄인데, 발자크는 정말 대단하다. 이제껏 그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슬슬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성실하게 고치고 또 고치는 발자크의 작품은 얼마나 깊은 내공이 쌓여있을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굳이 글을 쓰고자 하지 않더라도(성실하지 않은 나로서는 어렵겠는데~) 이 책으로 작가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을 법하다.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당연히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김탁환의 따스한 글쓰기 특강을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