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 - 인간다운 행복을 외면하는 경제적 사고에 제동을 건다
요하네스 발라허 지음, 박정미 옮김, 홍성헌 감수 / 대림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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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에서는 경제학적 측면에서 많은 것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간과해버린다. 특히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 인간이 어떤 과정에 의해 경제 활동을 하는지를 파악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방식은 경제학을 수치로 이해하고 그 다음의 예상 반응을 산출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곳에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은 그리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고, 경제 활동에 한해서만 봐도 충동구매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파악해내고 있는 연구 분야가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행복이라고 하는, 이제껏 수치로 환산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비경제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경제학을 살펴봐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이제껏 호모 에코노미쿠스적인 모델에서 파악해왔던 현대의 경제학을 행복 연구라는 입장으로 다시 평가해 봐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모든 선택에 있어서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볼 수도 없고, 만약 다 생각해본다고 하더라도 기회비용 때문에 오히려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고 선택했을 때의 만족감이 더욱 떨어진다면, 대략적인 경우의 수만 생각해서 그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충동적으로 선택해서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 훨씬 이익이다. 그래서 인간은 되도록 합리적으로 선택하긴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할 수 없으니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있기에 호모 에코노미쿠스적인 경제학 모델에서도 그런 비합리적이지만 결과적으로 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성향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추구해왔던 경제학 모델로는 돈으로 환산되는 것만을 이익으로 산출되었다. 여가 생활을 보내거나 부모님을 간병하기 위해 직업을 그만 두었다면 사회학적으로는 이익이나 경제학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를 본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래서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모든 노동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이제껏 받아들여졌던 경제학 모델이다. 그러나 흔히 잘못 생각하는 오류 중 하나로,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물론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제도를 세워갈 수 있지만 많은 선진국에서 본 것과 같이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기만 한 것을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010년 4월에 미국에 치명적인 환경 오염을 일으켰던 석유 시추 플랫폼 딥워터 호라이즌의 폭발 사고를 들어보면 사고에 책임이 있는 석유 회사 BP는 경제적으로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시추공을 메우고 유출된 기름을 방제하는 작업, 그리고 기타 직접적인 피해를 복구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인해 GDP을 올려주는 효과를 보여준다. 그러니 환경오염에 대한 피해액을 수치로 산출하지 않고 그것을 복구하는 비용만 산출되니, 실제로 봤을 때는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수치로는 이득인 것으로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니 행복지수를 연구할 때는 경제적인 수치로 산출되지 않는 것도 무시하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행복지수를 산출할 때 단지 GDP가 아니라 어떤 부가가치가 생길 때마다 벌어지는 이득과 손해를,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 축구공이 하나 만들어져 팔릴 때 가격과 이윤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작업장의 환경과 노동 임금, 농동 시간까지 고려해야 전체적인 행복지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으로 보이는 나라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 만들어냈던 것을 그저 사기만 해서 내 만족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전세계적으로 분업이 활발해진 요즘 시대에서는 이런 행복지수를 산출하는 것이 강제 규정으로 확립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몇몇 의식 있는 기업에서나 시행하는 작은 이벤트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는 입장에서(당연히 행복은 기본적인 권리가 보호받아야만 얻을 수 있는 요소이므로)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경제 문제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큰 기준이 될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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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행복해 - 같이 있어서 더 행복한 벗들의 이야기 행복해, 고마워
제니퍼 홀랜드 지음, 노지양 옮김 / 북라이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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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동물들의 우정이라고 볼 수도, 그저 한 순간의 헤프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이 책을 볼 때는 신기한 동물들의 헤프닝이라고 여기면서 봐야지, 정말 뭔가, 혹은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여기면서 기대하며 본다면 안 된다. 그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우정과는 다른 모양새를 지니고 있기에 이야기의 끝부문에선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연한 게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아무리 다른 때와는 다른 모양으로 우정을 만들어내더라도 끝까지 같이 붙어있기에는 위험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에 그것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아무래도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우정을 나눈 동물끼리 잡아먹고 먹히는 불상사가 나기 전에 성장하거나 발정기가 되면 서로 떨어뜨려놓는 사려깊은 인간의 중재가 있었다. 어쩌면 이런 우정을 나누는 상황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한 경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런 인간의 중재가 없어서는 안될지도 모른다. 동물원에서 새끼 호랑이와 새끼 오랑우탄를 함께 넣어두었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평생에 가도 같이 있기 기회가 있었을까. 절대 없다. 농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랑 같이 어울리다 보니, 동물을 물고 잡는 것을 즐기는 핏불테리어란 개가 샴고양이와 매년 태어나는 병아리를 사랑스럽게 다루고 보살피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다친 동물을 잠시 맡아두는 보호소에서, 농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가축이 집 안에서 만나는 동물이란 평소에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에는 개나 고양이가 다른 동물과 우정을 나누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무래도 이런 희귀한 경우가 발견되는 대상이 사람이고, 그 사람 곁에는 개나 고양이가 가장 많이 포진해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많을수 밖에 느껴지긴 한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신기한 경우는 항상 있다. 인간에게 포악한 동물이 먼저 와서 인사를 하거나 아양을 떨고, 심지어는 먹이를 구해서 갖다주기까지하는 모습을 보면 새삼 신기하다. 많은 사례 중에는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런 경우가 희한하게 느껴지는데 한 사진기사가 만난 레오퍼드 바다표범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몸길이가 3미터, 몸무게가 45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레오퍼드 바다표범은 가만히 있다가도 사람을 공격하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위협적인 동물이다. 그런 동물이 폴이란 사진기사에게 다가와 여유롭게 헤엄도 치고 펭귄을 잡아다가 먹이로 주기까지 했던 사건은 정말 신기함을 뛰어넘어 경이롭기까지 한 일이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생소한 환경과 동물에 대해서 더욱 외경함을 갖게 되는데 아마도 레오퍼드 바다표범의 경우도 그런 게 아닌가 한다. 또 바닷속이니 얼마나 생소한 환경인가. 다시는 볼 수 없는 동물이고 포악한 동물이니 그 감격이 평생 가지 않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공격적이진 않지만 수줍음이 많아 절대로 인간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바다 생물이 있다. 이는 쥐가오리로, 장성하면 몸길이 6미터에 몸무게 1,300킬로그램이 넘는 어마어마한 동물이다. 그런데 이 조심성이 많은 바다 생물이 인간이 신기한지 잠수부에게 다가와 어리광을 부리며 헤엄을 쳤던 것이다. 아직 새끼인지라 인간이 어떤지 전혀 정보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잠수부를 봐도 지나치거나 조용히 바닥에 엎드려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종이었던 것이, 그의 경험을 특별하게 했다. 하지만 레오퍼드 바다표범이나 쥐가오리나 다시는 만날 수 없고 그 우정을 계속 쌓아갈 수 없는 것이 좀 허무하다. 그렇게 찰나에 끝나버릴 우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동물들에게도 언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 동물이 죽었을 때 그것을 모른 채 기다리기만 하는 다른 동물이 있었는데 그것도 너무 안타까웠다. 우정이 있다손치더라도 상대방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에 동물들의 우정은 정말 찰나적인 순간들이 아닌가. 하지만 고양이를 예뻐하는 고릴라나, 고양이가 다치지 않게 발톱을 오무리는 앵무새나, 화려한 색감이 아름다운 코이 잉어랑 뽀뽀하는 골든 리트리버는 정말 신비한 존재임은 무시할 수 없겠다. 특히 먹이가 될 수 있는 존재와 우정을 나누는 포식자들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진짜 동물들에게도 우정이 있다고. 병아리를 먹는 물총새를 엄마처럼 여기고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를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책 전체가 컬러로 동물 사진이 아름답게 찍혀서 삽입되어 있으니 사진 보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동물들 간의 우정은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읽고 있으면 그런 특별하게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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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자유롭니? 탐 청소년 문학 3
이오인 콜퍼 지음, 김민석 옮김 / 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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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인간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이긴 하지만 이것이 인간에게 당연시되었던 것은 몇 년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지금도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인권을 유린당하는 사람이 있기에 완전히 인권을 보장받았던 시대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인권의 발견이라고도 여길 수 있는 문서인 세계인권선언은 부당하게 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와 정부나 그에 준하는 권력기관이 있기에 작성된 것이다. 아무도 쓰리슬쩍 넘어가지 못하도록. 그리고 이 동화는 세계인권선언서에서 말하고 있는 여러 항목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고 가슴 깊이 울려주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지 쉽사리 이해할 수 있고 내용의 기승전결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깔끔하게 끝나는 몇몇 동화도 있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고 주제도 파악하기가 어려운 은유로 된 동화와, 시처럼 여운을 많이 둔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가상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동화도 있다. 등장인물도 인도인, 팔레스타인인, 평범한 미국 아이가 주인공이거나 새가 주인공일 때도 있어서 참 다양하다.

 

이 동화의 기본적인 생각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쉽게 생각하는, 저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있으면 나도 그 인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진짜 순진한 생각이다. 사실 귀하고 귀중한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불공평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모님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이런 안타깝고 슬픈 것들은 나중에 알게 되길 원한다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좀 더 상처를 덜 받을 때 이런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너무 늦다. 이미 감정이 딱딱하게 굳어져버려서 어떤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때는 이 세상을 위해 움직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동화를, 이런 내용의 기사를, 이런 이야기를, 이런 영화를 자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보고 분노하고 가슴을 치고 '뭔가'할 마음이 들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인권의 문제는 비단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슈퍼마켓에서도 벌어지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얼굴색이 조금 다르다고,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고, 몰래 들어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세라고 그들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이 때에도 내심 혼혈이라고, 우리랑 다르게 생겼다고 비판하고 놀리고 따돌리는 철 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럴 수 있다고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된다. 자신의 노력이 아닌, 선택이 아닌 것으로 차별을 받아선 안 되는 것이라고 똑바로 일러 주어야 한다. 남도 차별해선 안 되고, 나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 이 인권의 문제에서는 절대로 수동적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사례를 들어 다양한 상황에서 인권의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무심코 내뱉는 "여자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나 "남자는 울면 안 되지!" 라고 하는 것도 크게 보면 인권을 침해받는 것임을 똑똑히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른인 나부터가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그들의 선택이 아닌 것으로 혼내거나 제한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살도록 일러주는 부모님이여야만 아이들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사회에서 받았던 불평등과 인권의 유린을 그냥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을 알려준 후,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21세기에 경제부분에서 10위권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성차별이 존재하고 있고, 더 나아가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간 이하의 처우는 한국 사회가 후진국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해왔던 관행이나 사고 방식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동화부터 시작해서 다큐멘터리까지 확장하여, 우리 스스로부터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학급 친구를 모른 척하도록 암암리에 조장하는 엄마가 아니라 두들겨맞고 같이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불의에 대항하여 옳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만약 35명의 학급 중에서 20명의 엄마가 그렇게 가르친다면, 아니 15명의 엄마가 그렇게 가르친다면, 아니 그것도 아니라 5명의 엄마만이라도 그렇게 불의를 참지 말라고 가르친다면 집단따돌림은 발 붙일 곳이 없게 된다. 학급 친구들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오히려 자신이 다음 차례가 아닐까 숨 죽이며 생활한다면 따돌림을 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어쩌면 따돌리는 아이들은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강하게 옳은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좌절감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낼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옳지 않다고 따끔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집단따돌림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인권은 누구나에게 있는 것이고,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와 권리는 모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는 것임을 잊지 말자. 한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길이 되고, 빛이 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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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2 1 - 인생의 거칠기가 사포의 그것과 같다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 그림 / 씨네21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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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 때가 어느 덧 십년이 넘어간다. 강풀의 만화가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는 이미 웹툰이 자리를 잡아갔던 때이니 꽤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런데 웹툰을 볼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밤 새워 만화를 읽었던 세대를 사는 사람들에겐 그 때의 추억을 잊지 못해 웹상에서라도 만화를 즐겨 보고 싶어서 만든 것이 웹툰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나와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거나 조금 일찍 겪었던 이들이 웹툰 만화가의 주역이 된 지금에서는 그들이 만화를 보고 자란 시절의 세대들이었기에 자기가 겪었던 이야기들이나 해주고픈 말들,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만화의 형식을 빌려 전달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만약 그 당시에 만화에 열 올리며 빠지지 않았던들 만화의 형식을 사용할 수나 있었겠나. 물론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인터넷 환경이 발달되었다는 기술의 뒷받침이 빠져선 안 되겠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저 만화이기만 했을 테니까.

 

지금은 까마득하게 잊혀진지 오래지만 과거 어느 순간 웹에서 제공되는 동영상이나 만화가 있었다. 다들 기억을 할 것이다. 마시마로란 귀여운 캐릭터와 졸라맨이란 엉뚱한 캐릭터를. 이것은 만화 형식은 아니지만, 한 개인의 작품을 웹에서도 올려도 충분히 시장성이 있는 상품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 당시 너무 귀여웠던 마시마로는 온갖 상품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인형은 물론이거니와 빵이나 과자에 들어가는 스티커나 카드부터 문구류의 캐릭터, 카시트에까지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주방용품이나 욕실용품에서도 마시마로 캐릭터를 볼 수 있었으니까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좀 더 스토리를 보강하고 분량을 꾸준히 생산해낼 수 있었더라면 [헬로 키티]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 [뽀로로]만큼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에까지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캐릭터라 아쉽다. 또한 지금처럼 포털사이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연재하게 된 방식을 사용하기 전에 자신의 만화를 홈페이지에 올려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올려서 여러 사람들과 공유했던 적도 있다. [마린 블루스]라는 캐릭터를 아는 사람은 알 텐데 그 캐릭터도 인기를 끌어서 다양한 팬시용품에 응용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 홈페이지를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영양가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신선함으로 상당히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처럼 요일별로 연재되고 각양각색의 즐거움을 줄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그 당시에는 당시만의 운치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것은 김밥을 싸는 상황에서 김과 밥이 어떤 재료가 올지 기대하면서 기다리는데 단무지 하나밖에 들어오지 않고 싸는 상황이 되어 황당해하는 상황이 아주 멋졌다. 김밥 싸는 도마의 색감부터가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 이전까지는 흑백의 아름다운 그림체로만 만화를 골라봤다면 이제는 개성 넘치는 그림체에 형형색색의 만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행복해할 상황이 이제는 펼쳐진 것이다.

 

지금 보게 된 웹툰은 다양한 곳에서 먼저 만난 캐릭터라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웹상에서 봤던 것은 시즌 1이라 이번 것이랑 에피소드가 다르지만 같은 캐릭터에 비슷한 소재를 사용해서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시즌 1일 때보다는 풋풋함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처음에 들었던 ‘낢’이란 이름이나 그 캐릭터에 느꼈던 참신하면서도 익숙한 느낌보다는 솔직히 시즌 2에서는 익숙해서, 너무나 익숙해서 뻔한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이라 낢을 보고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공감해왔던 사람들이 있다면 무척 거슬릴 만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다른 웹툰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절대 굽히고 싶지 않다. 조금은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의 평가를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솔직히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낢이란 아주 새로운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아마도 연재할 소재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낢’이란 캐릭터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분야에 진출한 것도 상당히 멋지게 봤는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은 다 직장인으로 생활하지 않는가. 그런데 한 곳에 매어 일을 하는 직장인이 아니였던 작가가 작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직장인처럼 한 곳에 매이게 되니,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직장인의 애환과 감사를 버무려놓은 내용은 사실 이젠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어쩌면 이 내용이 식상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식상한 내용으로 살지 싶지 않아서 이런 내용을 못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좋은 이야기도 한, 두 번인데 안 좋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으니 이젠 싫다는 생각이 들 수도. 아마도 그래서 내가 힘들었을 때는 내 마음을 꼭 짚어주는 이 웹툰이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고. 이젠 웹툰은 졸업할 때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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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사회학 에세이 - 구정화 교수가 들려주는 교실 밖 세상 이야기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구정화 지음 / 해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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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사회 전반에 대한 것을 알차게 꾸며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사회학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청소년기에 배운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더니 사회 과목에서 내가 제일 치를 떨며 싫어했던 사회문화 과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념만 무수히 등장해서 그 개념을 이해하는데 한나절 이상을 투자해야 했던 그 과목!! 그에 맞는 문제를 풀려고 하면 절대로 책을 먼저 보기보단 문제를 통해 유형을 확인하면서 그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방식을 뒤늦게 알게 되어 나중에는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아노미, 사회구조 등 여러 머리 아픈 용어들 때문에 한동안 심란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 당시에 이런 책을 접할 수 있었더라면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나오는 고등학교 교과서도 이 책만큼이나 잘 나온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엔 모든 것이 흑백으로 재미난 구석은 조금도 없었으니 더 아쉬울 뿐이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는 이미 아는 내용을 깔끔하게 편집된 텍스트로 만나니 어려울 것이 전혀 없긴 했지만 아직 배우지 않은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또 모르겠다.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전혀 알지 못한 상황에서 읽으라고 하면 꽤 어려울 수도 있겠다. 어차피 사회학에 관련된 용어를 알지 못하면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 책도 대부분이 용어 정리를 해준다고 생각하면 옳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이해를 돕긴 하지만 그것도 용어 정리를 위한 것이니까 그리 새로운 구조로 설명해줄 수가 없을 수밖에. 저자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면 기본적인 용어도 모르는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책이라서 더 이상 재밌거나 쉽게 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 정도가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꾸린 것이라는 데에는 더 이상 이견은 없다. 다만 중간에 들어가는 삽화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림체는 익숙하니 청소년용 책에서 많이 등장한 그림이긴 한데 그 내용과 연결되는 삽화가 아니라 그저 흥미만 유발하는 정도의 것이라 그다지 이해를 돕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회학의 기본 개념은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그 인간의 개성적인 면모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고 하는 큰 틀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2011년 한국 사회에서의 고등학생이 학원을 가는 것의 동기는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를 잘 하고 싶어서 보충 수업을 받기 위해 가는 학생도 물론 있겠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 경쟁을 유발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공부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억지로라도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요소들을 하나씩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나 하는 것이 단지 개인의 기호이기 이전에 사회의 영향 때문임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 시기에 아이돌에게 빠지는 것은 단지 개인의 기호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이 여가 시간에 즐길 거리가 그런 TV프로그램이나 게임과 같은 매체밖에 없음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건전한 청소년 문화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사회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큰 단초를 제공해준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한 번 읽고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읽을 수 있다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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