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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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방영한다는 『KBS 1TV 영상포엠 - 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을 책으로 만나보았다. 이 책은 물 먹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게스츠레 뜬 눈으로는 몇 번인가 보았지만서도 초롱초롱한 맑은 눈으로는 그 프로그램을 볼 수가 없는 나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영상에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던 프로그램처럼 서정적인 영상 위로 어울리는 여러 이야기를 담아내고 마지막에는 그 영상에 흘러나왔던 음악까지 친절하게도 소개해 주니, 정말 영상으로 보지 않아도 여러 풍경 속에서 느낄 법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어낼 생각을 했는지. 분명 영상과 책은 그 감동이 다를 터이지만, 책으로 만나는 유려한 풍경과 에세이에서도 그만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방송으로 나가는 영상에서는 꼭 우리나라만 찍는 것은 아니라고는 하는데, 내가 본 『KBS 1TV 영상포엠 - 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에서는 모두 우리나라만 비추어주었다. 내 욕심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책으로 엮어져 나오는 것에는 우리나라의 풍경으로만 꾸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으로 아름답고 유명한 곳은 온갖 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미 알려지지 않았나. 물론 외국의 외딴 곳에 있는 풍경 중에는 우리가 모르는 장소가 많이 있겠지만, 우리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처럼 그렇게 우리네 땅을 주인공으로 삼아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든다. 아직은 노래도 외국 노래가 더 많지만, 그것도 차차 우리가 발견하면 되니깐 괜찮다.

 

사진을 보면 아스라이 황혼이 드리운 어느 강가나 이른 새벽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 사이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산등성이가 보이는데, 하나같이 너무 아름답다. 보랏빛 황혼이나 기암절벽의 아찔한 아름다움과 나룻배가 덩그라니 떠다니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찾아냈을지 참 그것이 궁금하다. 게다가 영상을 잡으러 뛰어다니다가 이렇게 멋진 장면이 걸리면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기쁨은 또 어떻게 나누었을까. 나 같으면 멍하니 영상 속에 빠져 살았을지 모른다. 책으로 접해도, 영상으로 접해도 이렇게 감동스러운데 이 풍경을 눈 앞에서 바로 본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지 상상이 안가니까!!

 

그러고 보니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다. 눈 앞에서 감동스런 풍경을 접해본 적이... 가만 생각하니 없는 것 같다. 그 유명하다던 남이섬도, 보길도도, 통영도, 이름만 들어봤을 뿐 실제로 내 발을 움직여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해돋이를 굳이 힘들여 강원도나 땅끝마을에 가서 보는 것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나이기에 이런 책이 더욱 감동스러울지 모르겠다.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을 피하고 책에서만 간접적으로 경험하려고만 했던『커버 투 커버 : 책 읽는 여자』의 타냐처럼 아마도 나도 그런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의심도 들지만, 뭐 어떠랴~ 일단 경험의 자질구레함이 귀찮은 요즘엔 이렇게나마 눈이나 호강시켜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가끔씩, 현실이 외로울 때, 뭔가 피난처가 필요할 때쯤 이 책을 꺼내들고 내 마음의 여행이나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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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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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링의 명작 『정글북』에 모티브를 따왔다는 닐 게이먼의 유명한 신작 『그레이브야드 북』을 보았다. 어린 시절 정글에서의 삶에 적응해버린 한 소년의 인생이야기를 '묘지적응기'로 바꾸어버린 작가의 상상력에는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같은 책을 읽어도 그런 상상력의 한 꼬투리라도 발휘해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무한히 부러울 따름이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서양에서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묘지'라는 장소는 참 묘한 곳이다. 분명 죽은 사람들이 묻힌 장소이지만, 환한 대낮에 꼬마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주는 '묘지'란 공간은 우리 삶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렵지만 한편으론 열렬히 바라마지 않을 대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이런 상상은 동양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다. 조상님을 신성시한 나머지 민가와는 멀리 떨어진 산 속에 묘지를 만들었던 우리네 풍습 속에서는 '묘지'라는 말은 곧 납량특집과 동일어이기 때문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이 책에 나오는 유령들은 하나같이 따스하다. 기어다닐 때부터 묘지에 받아들여져서 묘지의 특권을 가지고 살아왔던 '노바디'에게는 아늑한 집이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 모글리가 흑표범 바기라와 곰 발루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처럼 - 그것이 상상되지 않는 우리에게는 기이하게만 보일 뿐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인간에겐 위험한 마녀 리자까지도 '노바디'에겐 조력자이거나 친구일 뿐이라니~ 그러니 인간 쪽을 보면 얼마나 놀라울지... 열살 즈음에 책을 보고싶어서, 인간 세상에서 배울 것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들어간 보드(노바디의 애칭)에겐 인간이란 위험한 존재였다.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존재도 인간이기에 친구 하나 만들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형체없이 그렇게 학교에 다녔으나... 정의감 넘치는 보드의 성질이 그를 노출시켜버렸다.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찾도록 아이들에게 몇 마디 한 것뿐인데, 단순히 그것뿐이었는데, 그 일로 보드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까 도와주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는커녕 자신의 신분만 위험해진 것이다. 그러니 보드가 인간세상에 나갈 이유가 있을까.

 

나이가 어느 정도 차기 전까지, 혹은 보드를 노리는 나쁜 놈들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바깥 세상, 즉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드에겐 위험하다. 그저 호감이 생겨서 말을 나누거나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도 그것이 오히려 보드를 위험으로 이끄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드는 이름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렇게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산 자라 할 수도 없고, 죽은 자라 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로~ 만약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그렇게 숨죽이고 평생을 '묘지'에서만 살아야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재미있는지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보드에게도 그럴까? 아마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는 눈 하나 꿈쩍 안하고 평생을 '묘지'에서 잘 버틸 수 있을 듯 하다. 그에겐 아무것도 아닐 테니. 그러나 책의 마지막처럼 보드가 험난한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야말로 독특한 성장소설인 이 책이 가야할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전한 곳에서 웅크려 숨만 붙은 채로 살아가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것은 비단 보드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일 테니까 이 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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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따리 유랑단
고정욱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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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래 씨는 「클론」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했을 때부터 참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항상 성실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진 연예인이라고, 연예인 같지 않은 연예인으로 특이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물론이다. 아~ 한 번쯤 신을 원망해보지 않았을까.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왜 다른 사람들도 아닌 나이냐고 말이다. 당연히 신에게선 아무런 이유를 듣지 못했겠지만 그런 절규로 인해 그가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약간의 추측을 해보았다. 그도 말했듯이, 그런 사고없이 승승장구했더라면 지금쯤 교만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서 정말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그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을 것이니까. 그러니 신이 뜻하는 바가 있어서 '강원래'라는 건강한 에너지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다 놓으신 것을 아닐까.

 

이 소설을 쓰신 고정욱 작가님도 말씀하셨지만, 강원래 씨가 사고 후에 한 인터뷰를 보고 정말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저에겐 이겨내야 할 상황이 있잖아요.

그런데 준엽이는 갑자기 닥친 일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거예요.

저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준엽이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되게 미안해요."

 

사고를 당하고 세상에다 대고 저주를 퍼부어도 사람들은 이해할 만할 텐데도, 입가가 웃음이 가시지 않은 채로 다른 사람의 걱정을 먼저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가 뭐 대단한 성인이거나 봉사 정신이 투철한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것말고는 이렇다 할 특별함이 없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것인데 말이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을 주신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그런 끔찍한 시련을 인간 강원래에게 주셨나보다. 외적인 상황이 어찌되었건 성실하고 힘차게 나갈 수 있는 인간이기에, 오히려 그런 역경을 딪고 이겨내 다른 사람들에게 -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 모두에게 - 웃음과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를 선택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 그가 소년원에 들어가있는 철부지, 집안 사정과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잠깐 방황했던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장애인들로 구성된 유랑단을 꾸렸다. 뭐, 처음부터 이런 숭고한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법무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말도 안되게 짠 가격에도 도와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랬던 거라 단원 구하는 것부터 연습실 빌리기, 감독 구하기, 음향과 조명 담당 구하는 것까지 눈코뜰새없이 바쁜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단원들을 구해야 했는데. 알음알음 나와달라고 설득하기도 하고 공개오디션을 통해 끼 있는 장애인들을 뽑기도 했는데, 원래의 마음 속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사건건 방해하는 사람들이, "장애인들이 그 정도 하면 되었다~" 고 한 말에 욱 했던 거라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공연이기에 연기를 해야 하는데 모든 단원들이 연기에 문외한이라 법무부 사람 앞에서 인터뷰 하는 형식으로 모든 단원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구성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노래로, 춤으로, 마술로 보여주었던 것!!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사건이 안 일어날 수는 없는 법. 여기 모인 단원들 모두 연기를, 공연을, 기획을 처음 해보는 것이라 그 중에 싸움도 일어나고, 실망하기도 하고, 상처도 받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그들은 이겨냈다.

 

청소년 재소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법무부 사람들까지도 모두 울고 웃으며 감동을 받았던 공연이었기에 아픔을 이겨내라는 메세지가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만약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력을 게을리 했었더라면,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던 무대가 되었더라면, 이 공연은 동정심만 유발한 하나의 헤프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말대로 장애인인 것과 실력는 별개로 인식해서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한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영예를 누릴 수가 있다. 경쟁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공연을 본 다음에는 어떤 재소자도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소리를 하지는 못할테니 소년원을 나가서라도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러니까 결국, 강원래 씨는 어린 마음에 이미 자리 잡은 삐뚤어진 생각을 빼내어서 희망과 격려를 줄 수 있는 최적의 적임자로 선택된 것이 아닐까. 오호~ 이건 천사의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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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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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같은 대하소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장편소설 한 권에도 엄청난 우여곡절이 가득한데, 그런 안타까운 일들을 같이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대하소설이라면 얼마나 많은 민중의 이야기가 숨어있겠나. 그러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에 가슴이 아파야 하겠나 말이다. 그건 안될 말씀이다. 그래서 서른 해를 넘기도록 그 유명한 『토지』나 고전 중의 고전인 『삼국지』를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평생 읽어볼 생각조차 안 하고 말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랬던 내가 이 책,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펼쳐들었다. 이것은 소설도 아니고, 당연히 울고 웃는 이야기가 없기에 편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특히나 책을 설명해준다는데, 그것도 내가 읽어보지도 못한 『임꺽정』을 설명해준다는데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책을 다 본 후에는 알아먹을 수 있는 표지의 삽화도 처음 봤을 때는 그리 호감을 주지 못했는데도 굳이 선택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 게다. 이 책을 읽은 후에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임꺽정』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목적의식이다. 몰라서 안 봤을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더라도 그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도 안 보는 일은 내 사전엔 없는 일이니까. 그만큼 재미있었다. 엄청~ 나처럼 이런 종류의 대하소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 책을 들여다봐라. 그럼, 진짜 『임꺽정』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회자되었고 지금도 회자되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임꺽정'이란 인물이 의적이니, 도적이니 하는 표피적인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천하기도 엄청 천하고 또 귀하기도 엄청 귀한, 모순적인 그의 모습 속에서 바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요즘에는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일단 구했어도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요원한 시대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겨우 돈을 모아보지만, 대학 등록금 대출받은 것을 상환할 날까지는 정말 멀다. 이렇게 정규직에 목매는 시대에, '임꺽정'과 '칠두령'의 삶을 보면 세상 천지 부러울 것이 없겠다 싶다. 하는 일도 없이 집에서 놀면서 부모님이나 아내에게 얹혀사는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서 끝까지 목이 뻣뻣한 꺽정이와 칠두령을 보면 '정말, 저래도 될까' 싶을 정도 화통하다. 백수로 집에서 있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집에 있으면 눈치가 슬며시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꺽정이는 자신이 놀고 싶어서 노는 것에 대해 죄책감도, 주눅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놀면서 평생의 스승을 만나 한 분야의 달인이 되는 행운을 얻는다. 지금도 한 분야의 달인만 된다면 직장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인데, 사람들의 좁은 식견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은 내 주위에선 못 본 것 같다. 꺽정이의 스승은 갖바치이다. 자신도 백정이지만 도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신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친구나 스승이 되어 주었고, 나중에 병해대사가 되어 죽기 전까지 사람을 도왔던 그 분은 꺽정이가 어릴 적부터 훈육을 책임져주시는 분이셨다. 유불도의 사상을 모두 섭렵한 그에게서 온갖 사상을 전수받을 수있었던 천혜의 환경이었지만, 꺽정이가 공부를 싫어하는 탓에 이야기로만 병법을 배웠던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어도 그런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놀면서도 재미있게 자신의 분야를 발전시키고 평생의 스승을 만나 몰랐던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더 이상 정규직이니, 아르바이트니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도 놀면서 배포있게 살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발전된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그렇게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걸어선 안되지 않을까. 

 

임꺽정이 의적이니 괴수이니 하는 문제보다 단순하고도 화끈했던 그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의리에 죽고 살는 공동체 안에서 똘똘 뭉쳤던 그들이었기에 삶이 후회스럽지 않았지 않았나 생각하니까. 우리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지만, 먼 훗날에 자기 옆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실을 안다면 그게 후회스럽지 않을 순 없을 테니까. 즐기면서 일할 수 있고, 거기에다 더붙여 공부까지 할 수 있다면, 의리에 뭉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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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2010-10-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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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 몸 산책
권오길 지음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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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을 지나보면 항상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 때 그것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 땐 이런 것을 알지 못했을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보다는 당연히 지금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겠지만, 찾아보면 그 당시에도 많은 좋은 책들이 있었을 텐데 왜 나는 학창시절에 책보기를 돌石 같이 했었는지 통탄할 따름이다. 직장에 다니는 지금처럼, 아니 지금의 반만큼이라도 책을 읽는다면 훨씬 공부가 재미있었지 않았을까. 권오길 박사가 쓴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목적에서 나왔다. 우리 몸에 대한 책들 중 성인들이 읽을 책과 아동들이 읽을 책은 나왔는데, 유독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읽을 우리 몸에 관한 책이 없다고 해서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쓴 것이란다. 다만 학창 시절 때 생물을 꽤 좋아했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수준이 정말 어려웠단 점만 빼고 말이다. 물론 용어를 설명해야 하는 순수 과학 분야의 내용을 더 이상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반론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순전히 생물에 막연한 호감만 가지고 있는 문외한인 일반인으로서는 어려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추측하건대, 저자가 현장에서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대학에서 전공자를 가르치는 입장이기에 현재 청소년의 생물학적 지식 수준이 어떠한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한다.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었다면 조금은 더 풀어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른 책과 비교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몰라도,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 1, 2가 훨씬 재미있고 쉬웠다. 그녀의 생물학 책인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은희 씨는 내게 호감을 주었다.

 

그래도 이 책에도 다른 책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서문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용어가 나올 때마다 한자어와 영어로 풀어쓴 것은 칭찬할 만한 일로 여겨진다. 저자의 말대로 현대 과학의 뿌리가 서양에 있기에 영어를 알아야 '뿌리'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보통 과학 용어들은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받아쓰기 때문에 한자를 알아야 원래의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읽는 입장에서 더 이해하기가 쉬울 수 있었던 허점이 있었다. 한자와 영어로 풀어준 것은 참으로 고마울 만한 일인데, 아쉽게도 풀어써준 한자의 음과 뜻을 모른다는 맹점이 있다. 각주를 달아서 위에 나온 용어의 한자에 음과 뜻을 조그맣게 달아주었다면 그 용어 하나를 알자고 옥편을 찾거나 인터넷 사전을 뒤져볼 일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찾아보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일 만큼 앎에 대한 욕구가 줄어든 아이들이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자를 알지 못해서 용어의 뜻이 명확이 와닿지 않아도 사전을 찾아보기는커녕 누군가에게라도 물어보지도 않는다. 요즘 청소년들을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할 일이 많은 아이들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해서 만든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조금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말을 조심스레 전해드리고 싶다.

 

그 외적인 면으로 보자면, 내용은 아주 세세하고 깔끔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림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해하기 쉽게 책 전체가 다 칼라판이다. 색색깔로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는 그림이나 표를 본다면 눈에 확 들어오기에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또, 요즘 비타민 D에 대해서 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중요한 정보도 잘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하루에 적어도 햇빛을 15분 정도는 쪼여야지 비타민 D가 생성이 되어 구루병에 걸리지 않고, 과하면 비타민 D가 축적되어 신장이 석화가 되거나 뼈가 으스러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입덧을 많이 하면 할수록 유산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사실,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소인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유전만을 한다는 사실, 침에는 살균 성분인 라이소자임이 들어있어 물린 데에 침을 바르는 것이 옳다는 것 등 우리 몸의 놀라운 이야기가 다 숨어있다. 그래서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내려가야 괴상망측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우리 몸의 신비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좀 어렵더라도 끝까지 참고 읽어내려가면, 뒤로 갈수록 점점 재미있어지니 그 재미를 다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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