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 같은 대하소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장편소설 한 권에도 엄청난 우여곡절이 가득한데, 그런 안타까운 일들을 같이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대하소설이라면 얼마나 많은 민중의 이야기가 숨어있겠나. 그러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에 가슴이 아파야 하겠나 말이다. 그건 안될 말씀이다. 그래서 서른 해를 넘기도록 그 유명한 『토지』나 고전 중의 고전인 『삼국지』를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평생 읽어볼 생각조차 안 하고 말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랬던 내가 이 책,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펼쳐들었다. 이것은 소설도 아니고, 당연히 울고 웃는 이야기가 없기에 편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특히나 책을 설명해준다는데, 그것도 내가 읽어보지도 못한 『임꺽정』을 설명해준다는데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책을 다 본 후에는 알아먹을 수 있는 표지의 삽화도 처음 봤을 때는 그리 호감을 주지 못했는데도 굳이 선택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 게다. 이 책을 읽은 후에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임꺽정』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목적의식이다. 몰라서 안 봤을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더라도 그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도 안 보는 일은 내 사전엔 없는 일이니까. 그만큼 재미있었다. 엄청~ 나처럼 이런 종류의 대하소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 책을 들여다봐라. 그럼, 진짜 『임꺽정』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회자되었고 지금도 회자되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임꺽정'이란 인물이 의적이니, 도적이니 하는 표피적인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천하기도 엄청 천하고 또 귀하기도 엄청 귀한, 모순적인 그의 모습 속에서 바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요즘에는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일단 구했어도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요원한 시대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겨우 돈을 모아보지만, 대학 등록금 대출받은 것을 상환할 날까지는 정말 멀다. 이렇게 정규직에 목매는 시대에, '임꺽정'과 '칠두령'의 삶을 보면 세상 천지 부러울 것이 없겠다 싶다. 하는 일도 없이 집에서 놀면서 부모님이나 아내에게 얹혀사는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서 끝까지 목이 뻣뻣한 꺽정이와 칠두령을 보면 '정말, 저래도 될까' 싶을 정도 화통하다. 백수로 집에서 있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집에 있으면 눈치가 슬며시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꺽정이는 자신이 놀고 싶어서 노는 것에 대해 죄책감도, 주눅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놀면서 평생의 스승을 만나 한 분야의 달인이 되는 행운을 얻는다. 지금도 한 분야의 달인만 된다면 직장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인데, 사람들의 좁은 식견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은 내 주위에선 못 본 것 같다. 꺽정이의 스승은 갖바치이다. 자신도 백정이지만 도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신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친구나 스승이 되어 주었고, 나중에 병해대사가 되어 죽기 전까지 사람을 도왔던 그 분은 꺽정이가 어릴 적부터 훈육을 책임져주시는 분이셨다. 유불도의 사상을 모두 섭렵한 그에게서 온갖 사상을 전수받을 수있었던 천혜의 환경이었지만, 꺽정이가 공부를 싫어하는 탓에 이야기로만 병법을 배웠던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어도 그런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놀면서도 재미있게 자신의 분야를 발전시키고 평생의 스승을 만나 몰랐던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더 이상 정규직이니, 아르바이트니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도 놀면서 배포있게 살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발전된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그렇게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걸어선 안되지 않을까. 

 

임꺽정이 의적이니 괴수이니 하는 문제보다 단순하고도 화끈했던 그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의리에 죽고 살는 공동체 안에서 똘똘 뭉쳤던 그들이었기에 삶이 후회스럽지 않았지 않았나 생각하니까. 우리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지만, 먼 훗날에 자기 옆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실을 안다면 그게 후회스럽지 않을 순 없을 테니까. 즐기면서 일할 수 있고, 거기에다 더붙여 공부까지 할 수 있다면, 의리에 뭉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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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2010-10-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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