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따리 유랑단
고정욱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강원래 씨는 「클론」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했을 때부터 참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항상 성실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진 연예인이라고, 연예인 같지 않은 연예인으로 특이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물론이다. 아~ 한 번쯤 신을 원망해보지 않았을까.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왜 다른 사람들도 아닌 나이냐고 말이다. 당연히 신에게선 아무런 이유를 듣지 못했겠지만 그런 절규로 인해 그가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약간의 추측을 해보았다. 그도 말했듯이, 그런 사고없이 승승장구했더라면 지금쯤 교만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서 정말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그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을 것이니까. 그러니 신이 뜻하는 바가 있어서 '강원래'라는 건강한 에너지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다 놓으신 것을 아닐까.

 

이 소설을 쓰신 고정욱 작가님도 말씀하셨지만, 강원래 씨가 사고 후에 한 인터뷰를 보고 정말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저에겐 이겨내야 할 상황이 있잖아요.

그런데 준엽이는 갑자기 닥친 일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거예요.

저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준엽이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되게 미안해요."

 

사고를 당하고 세상에다 대고 저주를 퍼부어도 사람들은 이해할 만할 텐데도, 입가가 웃음이 가시지 않은 채로 다른 사람의 걱정을 먼저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가 뭐 대단한 성인이거나 봉사 정신이 투철한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것말고는 이렇다 할 특별함이 없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것인데 말이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을 주신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그런 끔찍한 시련을 인간 강원래에게 주셨나보다. 외적인 상황이 어찌되었건 성실하고 힘차게 나갈 수 있는 인간이기에, 오히려 그런 역경을 딪고 이겨내 다른 사람들에게 -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 모두에게 - 웃음과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를 선택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 그가 소년원에 들어가있는 철부지, 집안 사정과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잠깐 방황했던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장애인들로 구성된 유랑단을 꾸렸다. 뭐, 처음부터 이런 숭고한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법무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말도 안되게 짠 가격에도 도와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랬던 거라 단원 구하는 것부터 연습실 빌리기, 감독 구하기, 음향과 조명 담당 구하는 것까지 눈코뜰새없이 바쁜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단원들을 구해야 했는데. 알음알음 나와달라고 설득하기도 하고 공개오디션을 통해 끼 있는 장애인들을 뽑기도 했는데, 원래의 마음 속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사건건 방해하는 사람들이, "장애인들이 그 정도 하면 되었다~" 고 한 말에 욱 했던 거라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공연이기에 연기를 해야 하는데 모든 단원들이 연기에 문외한이라 법무부 사람 앞에서 인터뷰 하는 형식으로 모든 단원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구성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노래로, 춤으로, 마술로 보여주었던 것!!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사건이 안 일어날 수는 없는 법. 여기 모인 단원들 모두 연기를, 공연을, 기획을 처음 해보는 것이라 그 중에 싸움도 일어나고, 실망하기도 하고, 상처도 받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그들은 이겨냈다.

 

청소년 재소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법무부 사람들까지도 모두 울고 웃으며 감동을 받았던 공연이었기에 아픔을 이겨내라는 메세지가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만약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력을 게을리 했었더라면,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던 무대가 되었더라면, 이 공연은 동정심만 유발한 하나의 헤프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말대로 장애인인 것과 실력는 별개로 인식해서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한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영예를 누릴 수가 있다. 경쟁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공연을 본 다음에는 어떤 재소자도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소리를 하지는 못할테니 소년원을 나가서라도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러니까 결국, 강원래 씨는 어린 마음에 이미 자리 잡은 삐뚤어진 생각을 빼내어서 희망과 격려를 줄 수 있는 최적의 적임자로 선택된 것이 아닐까. 오호~ 이건 천사의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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