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노블마인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키플링의 명작 『정글북』에 모티브를 따왔다는 닐 게이먼의 유명한 신작 『그레이브야드 북』을 보았다. 어린 시절 정글에서의 삶에 적응해버린 한 소년의 인생이야기를 '묘지적응기'로 바꾸어버린 작가의 상상력에는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같은 책을 읽어도 그런 상상력의 한 꼬투리라도 발휘해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무한히 부러울 따름이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서양에서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묘지'라는 장소는 참 묘한 곳이다. 분명 죽은 사람들이 묻힌 장소이지만, 환한 대낮에 꼬마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주는 '묘지'란 공간은 우리 삶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렵지만 한편으론 열렬히 바라마지 않을 대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이런 상상은 동양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다. 조상님을 신성시한 나머지 민가와는 멀리 떨어진 산 속에 묘지를 만들었던 우리네 풍습 속에서는 '묘지'라는 말은 곧 납량특집과 동일어이기 때문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이 책에 나오는 유령들은 하나같이 따스하다. 기어다닐 때부터 묘지에 받아들여져서 묘지의 특권을 가지고 살아왔던 '노바디'에게는 아늑한 집이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 모글리가 흑표범 바기라와 곰 발루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처럼 - 그것이 상상되지 않는 우리에게는 기이하게만 보일 뿐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인간에겐 위험한 마녀 리자까지도 '노바디'에겐 조력자이거나 친구일 뿐이라니~ 그러니 인간 쪽을 보면 얼마나 놀라울지... 열살 즈음에 책을 보고싶어서, 인간 세상에서 배울 것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들어간 보드(노바디의 애칭)에겐 인간이란 위험한 존재였다.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존재도 인간이기에 친구 하나 만들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형체없이 그렇게 학교에 다녔으나... 정의감 넘치는 보드의 성질이 그를 노출시켜버렸다.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찾도록 아이들에게 몇 마디 한 것뿐인데, 단순히 그것뿐이었는데, 그 일로 보드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까 도와주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는커녕 자신의 신분만 위험해진 것이다. 그러니 보드가 인간세상에 나갈 이유가 있을까.

 

나이가 어느 정도 차기 전까지, 혹은 보드를 노리는 나쁜 놈들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바깥 세상, 즉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드에겐 위험하다. 그저 호감이 생겨서 말을 나누거나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도 그것이 오히려 보드를 위험으로 이끄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드는 이름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렇게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산 자라 할 수도 없고, 죽은 자라 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로~ 만약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그렇게 숨죽이고 평생을 '묘지'에서만 살아야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재미있는지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보드에게도 그럴까? 아마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는 눈 하나 꿈쩍 안하고 평생을 '묘지'에서 잘 버틸 수 있을 듯 하다. 그에겐 아무것도 아닐 테니. 그러나 책의 마지막처럼 보드가 험난한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야말로 독특한 성장소설인 이 책이 가야할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전한 곳에서 웅크려 숨만 붙은 채로 살아가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것은 비단 보드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일 테니까 이 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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