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1세기와 소통하다
안희진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 살아가는 이유를 단적으로 말하면, 바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보통 행하는 '일'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행복에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식을 해야 한다. 많이 먹지 않고 몸을 많이 움직인다면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것보다 더 몸에 좋을 것이다. 사랑을 베풀어주어야 하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측은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을 믿고, 정직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가치가 모두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혹 오히려 인간의 굴레가 되어 부자연스러워지지는 않을까. 장자는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추구하는 것 자체가 모두 그 이상에서 멀어지게 하는 허울이라고. 정직해야 한다는 말은 정직하지 못하다는 말에 상대적이고, 청렴하다는 말은 청렴하지 못하다는 말에 상대적이기 때문에 반대급부를 항상 의식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반대편을 의식하는 관념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 이런 가치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한 진정한 것이 아니다. 이런 가치는 그 내면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명분처럼 밖에서부터 생겨난 것이기에 진정한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이런 명분에만 매달리다 보면 이것을 자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강요하게 되기 때문에 그 폐해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배타적 종교집단이나 그와 유사한 민족단위의 정치조직들이 추구한 '순수함' 때문에 많은 피를 흘렸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생각이 진정한 것이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정직하기 위해서는 정직하다는 생각을 머릿속으로는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환공이 관중에서 그의 후임으로 청렴한 포숙아를 재상으로 하면 어떠겠냐고 물었을 때, 관중이 포숙아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을 때는 바로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자신도 포숙아는 청렴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는 신념이 너무 강한 나머지 다른 신하와 어울리지 못할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왕께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 진정 청렴하기위해서는 머릿속에 실날만큼도 청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재상자리에 어울린다고 말이다. 또한 머릿속으로 생각한 관념이 진짜가 아닌 이유를 우리가 익히 아는 고사성어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커다란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대기만성大器晩成'은 원래 연유되었던 노자 41장을 보면 원래는 대기면성大器免成 이었다. "진정 커다란 그릇에 완성됨이란 없다"란 뜻을 가진 이 고사성어를 보면 완성됐다고 하면 더 이상 큰 그릇이 아니라고 풀이된다. 그러니까 진정한 실체는 인간이 생각하는 한계와 표현하는 범주를 벗어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커다랗다'고 하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작은 것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릿속으로 한계를 정해놓는 순간 그 범위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장자가 말하는 진정함이란 훨씬 근본적인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묵묵히 행하는 청소부나 만두 빚는 아저씨나 기계공은 자신이 세계에서 제일로 청소를 잘해, 만두를 잘 빚어, 기계를 잘 고친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하는 것, 추구하는 것,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 가져야 할 행복의 근원인 것이다. 뭔가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 고집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거나 혹은 본인의 자유 의사를 무시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얄팍한 행복은 될 수 있어도 진정한 행복은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통령이 죽었다 담쟁이 문고
박영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이 이상한 제목 때문에 정말 그 대통령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고 놀라면서 읽게 된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이 나온 때 이 책을 보았다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대통령이란 얼마 전에 서거하신 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 박두환 전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때가 1970년 말 즈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시대의 이야기!! 요즘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외환위기 때가 다섯 살이라거나 미취학 아동이었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세월이 그렇게나 빠르고 세대가 그렇게나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을 때가 많다. 그런데 내가 나이로만 보면 이 소설 속의 수형이를 이해 못하지 않는 나이여야 하는 것이 맞는데, 어떨 땐 그의 상황이 완벽하게 이해되어질 땐  그와 나의 거리가 20년이나 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나 시대가 많이 변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은 어떤 시대가 배경이라도 그 이야기 속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풍부하다 싶다. 부마사태라든지 김영삼 총재 제명 사건이라든지 하는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여러 사태가 일어나는 것에 상관없이 내 마음은 주인공 수형의 마음과 같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까막득한 박정희 정권 때 인심 흉흉한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데도 우민한 백성들은 그저 자기 눈 앞에 있는 것들에 취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을 보니까 지금이랑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21세기에도(이렇게 부르니까 정말 대단한 발전이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전혀 아닌데... ^^;;)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무자비하게 청소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정부가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강경 진압하고, 사람들을 데려다가 고문을 하지는 않는다지만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는 등이 독재가 지금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같이 여겼던 용산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고, 순수하게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가시는 길에 배웅하는 장소를 무뢰배들이 점거하는 장소로 다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예전엔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났던 여러 비화들을 들으면서 개화되지 못했던 우매한 시민들만이 당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가만 보아하니 지금의 우리도 그 때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도 그런 정부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운하를 만든다거나 영어몰입교육을 시킨다거나 하는 등의 중요한 정책을 시민들의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고 마구 밀어부치는 정부를 지척에 두고도 사실 나부터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도 아니고, 그런 아이들을 양육하는 학부모도 아니여서 그럴까, 내가 생각하는 자연은 내 가까이에 있지 않아서 그럴까, 정말 정치에 관한 내 무관심은 세계 최고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이 소설을 보니까 그 시대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개 신문배달원일 뿐인 수형이와 한국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죽음은 큰 틀에서 보면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 사건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되는 것을 보노라니까 한 인간의 삶은 정치와 별개가 아니구나 하는 것... 그 중요한 사실을 느꼈다.

 

개인의 삶은 그 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 소설은 여기에 나온 역사적인 정치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정말 재미있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솔깃하게 할 만큼 말이다. 내가 생각할 때 아마도 그 이유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소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주인공 수형은 작가의 분신이 녹아든 인물이었기에 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역시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것이 바른 것일까 정답을 알지 못하고 우물쭈물 움직이더라도 감정이입이 충분히 잘 된다. 혼자서 돈을 벌며 공부를 하는 고학생이라는 그의 처지가 나와는 전혀 다르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무지몽매했던 그가 스승인 영환이 형의 도움을 받아 점차 이 사회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땐 내 의식이 바뀌고 내 생각이 성장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박영희 작가의 실제 경험이 녹아있는 소설이어서 그럴까, 앞으로 미래가 미완성으로 남은 수형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가 크게 성장할 것이 기대돼 가슴이 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 죽어있는 일상을 구원해줄 단 하나의 손길, 심미안
피에로 페르치 지음, 윤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이 제목만 들어도 왠지 기분이 좋다.

마치 이제껏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았던 수학 문제가 한 번 흘낏 본 것만으로도 말끔히 해결되는 기분이 들었달까.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었지! 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 말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그저 자연히 어떤 큰 생각까지 도달하게 되는 그런 느낌 말이다.

도저히 내 머리론 생각할 수 없을 거라 여겼을 만큼 크고 성숙한 생각을 어느새 내가 하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생각이 깊어졌다거나 많은 경험을 했다거나 등등의 여러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떠한 외부 자극이 없어도 그런 생각의 도약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인간에겐 심미안이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겠다만.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구별할 줄 아는 심미안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 아닐까 싶다.

그냥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 그것이 우리 인간이다.

하다못해 동물들조차 짝짓기를 할 때 만큼은 수컷이 힘이나 아름다움을 뽐낸다. 힘이야 자식을 지켜야 하니까 당연하겠는데, 공작새의 날개처럼 수컷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천적에게 금방 눈에 띄게만 할 뿐 짝짓기를 할 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족 번식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동물들에게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면 그보다 수백만 배나 더 발달한 인간에겐 유전자에 아름다움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새겨져 있다고 해도 맞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왠지 내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물은 무한히 많다. 그 중 가장 쉽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물은 바로 자연이 아닐까 한다.

햇살에 반짝이는 이파리나, 개굴개굴 우는 소리나, 흐트러지게 날리는 벚꽃만 보더라도 우리는 한 순간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멍하니 있을 수 있으니까. 언젠가 출근이 좀 늦어서 바삐 길을 걷다가 한 순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분명 평소에 봐왔던 자연이었는데도 꼭 그 순간 내게 보여주기 위해, 나를 만나기 위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확 튀어보였다.

그것은 빨간 장미 덩쿨이기도 했고, 바람에 흩날리는 코스모스이기도 했고, 하늘로 곧게 쭉쭉 뻗은 녹음이 짙은 자작나무이기도 했다.

때가 무더운 여름인지라 그늘만 골라다니는데 그럴 땐 하얀 껍질을 가진 자작나무가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그 푸른 잎사귀들이 살랑살랑 대는 모습이 또 어찌나 시원해 보이는지 내 손에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수도 없이 많다.

마음은 바쁘지만, 또 시간도 없지만, 이런 식으로 한 순간 별천지로 나를 데려가는 자연이야말로 인간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비단 자연만이 우리를 아름다움에 취하게 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만든 물건일지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그보다 더 간다면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도 아름다울 수 있다. 어린 아이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라든가,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황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인간의 모든 미덕과 가식을 집어 던져버리고 생각해보더라도 인간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낀다.

한 아이에게 그보다 더 어린 아이를 소개해주면 꼬마가 꼬마를 귀여워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본능적인 마음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마음 속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지쳐있지 않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러니 이렇듯 우리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대상들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에게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 그래서 ...... 아름다움은.... 힘이 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
세키 간테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나무생각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 이왕이면 행복하고 점잖게 나이 들면 좋지, 불량하게가 다 무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색기' 운운 하며 '불량노친네' 소리를 듣는 저자가 그다지 곱게만 보이지 않았다. 그 나이에도 여자 친구가 관광 버스 한 대를 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나 아내가 버젓이 살아있다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는 그의 태도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떳떳하게 행동하는 그가 솔직히 거짓말을 한다거나 대놓고 불륜을 저지른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80이 넘은 노친네가 매일 밤마다 술집에서 여자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가 말하는 '색기'란 생명력으로 풀이하면 어울릴 듯 하다. 인간에게서 생명력이 없다면 그 사람이 어떤 나이이든지 삶의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할 터.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색기를 가지라고 그렇게 목청껏 외치는 것이 아닐까. 진지하게 말하기 보다는 객쩍은 소리하기를 좋아하고, 체면을 차리기 보다는 실속을 추구하길 즐겨하는 간테이 씨는 그림도 잘 그리고, 이름 난 절에 불상을 봉납한 조각가이다. 게다가 서른 즈음까지는 불법을 찾기 위해 걸인 행세를 하며 수행을 하거나 유명한 스님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얻기도 했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것이 아예 엉뚱한 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깨달았던 것은 불심은 모두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디에 가서 어렵게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자신에게 있기에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 그렇기에 간테이 씨는 그렇게 불량스럽게 사는 것이다.

 

술집에서 여자랑 같이 있을 때면 다 늙은 노인이 주책이라는 둥, 체통을 지키라는 둥의 여러 야유가 나올 때도 있단다. 하지만 하루 종일 조각을 하다보면 세상과의 끈을 희미해지기에 술집에라도 와서 회사원이나 학생, 술집 여자 등의 다양한 군상을 만나면서 자신의 때를 벗긴다고 생각하니 그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오히려 그렇게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여자랑은 연애를 못해~'라면서 아예 관심 없는 척을 할뿐, 실상은 간테이 씨가 부러워 죽을 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에든 '고수'가 있고, '하수'가 있는 법. 여자를 만나고 실없는 소리나 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간테이 씨의 연애는 그냥 단순한 남녀 간의 에로틱한 사랑이 아니다. 사람이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날 때처럼 가슴이 뛰고 행복해질 때가 또 어디 있겠나. 간테이 씨는 그런 흥분과 설레임을 간직하고 싶어서 다양한 연령층의 여자를 만나는 것 뿐이다.

 

불도에 대해서 나왔을 때는 별로였지만, 다른 이야기는 내 생각과 꽤 비슷한 면이 많아서 잘 읽혔다. 특히,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사람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꿈을 가지고 있기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하는 부분은 진짜 놀라웠다. 아마도 일본 남자들의 고루함과 단조로움을 비판하고 싶어서 했던 말이겠지만, 그런 단어를 사용하다니 대단한 표현력이다. 그리고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나무생각 출판사에서 세트로 나온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이랑 조금 다른 생각이 있어 소개해본다. 물론 다른 저자가 쓴 것이고, 책의 제목도 다르지만, 둘 다 행복하게 나이를 먹어가자는 목적 아래에 썼으니까 이렇게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의 로저는 16번에서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파고들지 말라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가 못하는 분야보다 그가 잘하는 분야로 그를 기억하기 때문? 야구장에서 보냈던 시간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나 조차도 끄덕이면서 읽었을 정도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요즘 세대에서는 당연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간테이 씨는 좀 다르게 접근한다. 자신이 그림을 계속 그리는 이유가 그림을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그림에 대해 모르는 경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마이클 조던으로 비유를 든다면, 조던은 농구를 너무 잘해도 아직 농구에 대해 모르는 경지가 있다고 하면서 농구를 그만두지 말거나, 아니면 이제 농구에 대해 모든 것을 통달했어 하면서 그만두고 다른 분야에서도 보란듯이 성공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관점 차이가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조금은 체면을 벗어버리고 삶을 온전히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하릴없이 TV를 돌려보다가 우연히 EBS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때는 토요일이었고, TV를 워낙 좋아하는 나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바로 그 시간에 그 채널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고마운 다큐였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다큐가 5부작으로 이루어진 《아이의 사생활》시리즈였다는 것을 몰랐다. 그 중 「도덕성」편만 봤던 나로선 그냥 그 내용 하나만 있는 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몰랐을 때는 《아이의 사생활》에 대한 어머니들의 찬사 영상을 봐도 그려러니 했었는데, 다 보고 나니까 어머니들이 왜 그렇게 침을 튀도록 칭찬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본 것은 재방송이었던 것 같은데,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 싶다. 책으로 봐도 같은 내용이니까 별 문제는 없지만 그 다큐를 본 나로서는 방송 중에 나오는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너무나 울림이 있어 더 감동적이었기에 꼭 다시 영상으로 보고픈 마음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자랑을 좀 더 하자면 취재기간이 장장 1년 정도 걸렸고, 설문조사 참여 인원만 해도 4,200명 정도가 되며, 실험에 직접 참여한 어린이는 500명이나 되고, 게다가 국내외 자문교수로도 70명이나 동원된 대대적인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여럿 상을 휩쓸어도 당연한 일인듯 싶은데, 그런 작품을 다시 볼 수 없다면 DVD를 사서라도 봐야겠다는 일념이 생긴다. 무지 비싸겠지~?

 

하지만 아이들에 대해 전방위에서, 즉 심리학, 아동학, 교육학, 의학, 철학,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한 것은 이제까지 없었으니 DVD를 산다고 해도 결단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교육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아이를 낳았다고 다 같은 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성숙하다고 하나의 인간을 키우는데 공부를 안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 요즘 대다수의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공부는 하지 않고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부족해서 아이의 교육이 잘못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부족해 잘못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확고한 나로서는 이 다큐멘터리의 촬영과 책의 출간이 너무나 반갑다. 참고로, 앞에서 말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은 부모의 입장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서 설명 좀 하련다.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로도 풀이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의미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 그러니까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눈높이로, 아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나. 그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할 줄 안다고, 부모도 어린 시절에 그렇게 사랑의 표현이 빈약한 집안에서 자라왔다면 컸다고 바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기에 자기의 성향까지도 바꾸는 - 그래도 부모는 어른이니까 -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직접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도덕성이든 자아존중감이든 어떤 측면에서 강한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아이는 자아존중감이 높고, 어떤 아이는 자아존중감이 낮은 걸까? 이 땅에 살아가시는 많은 부모님들 중에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는 태어나는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이다. 원래 타고나는 여러 방면의 지능은 있겠지만, 그 외에 심리적인 부분인 도덕성이나 자아존중감 부분에는 양육자의 태도가 큰 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입으로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놓고서는 받기 싫은 전화가 왔을 때, "엄마, 없다고 해라~"라고 시킨다면 그 아이는 도덕성이 낮게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의 기를 살려준다고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서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 것은 내버려두면서,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혹은 호기심을 느끼는 일에 대해서는, 단지 그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면 좀 귀찮아진다는 이유 때문에 "하지마!!!"하며 막아버린다면 그 아이 역시 자아존중감이 높게 형성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실험에서도 나타났지만 도덕성이 높거나 자아존중감이 높은 아이들은 분명 있었다. 그 이야기는 그렇게 키운 양육자가 그들 뒤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양육 방법을 가진 부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게도 아이를 망치는 양육 방법을 가지고 있는 부모도 많다. 내가 보기에 이렇게 좋은 양육 방법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전파해주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사명이 아닐까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총 5부작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 「남과 여, 그들의 차이」, 「다중지능, 나만의 프로파일을 찾아서」, 「도덕성, 작지만 위대한 출발」, 「또 하나의 경쟁력, 자아존중감」인데, 우리가 편견으로 치부해버렸던 것도 나오고, 새로운 지능이론인 다중지능이론도 나와서 정말 유익했다. 보통 남자는 로보트를, 여자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은 편견이라는 오해가 있었지만 그것이 아님을 「남과 여, 그들의 차이」에서 알게 되었다. 실제로 남자와 여자로 딱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에게 더 많은 남성형의 뇌와 여자에게 더 많은 여성형의 뇌가 있어서 남자 아이들은 색깔에 민감하지 않아 어두운 색 계통을 좋아하고 여자 아이들은 색에 더 민감해 밝은 색 계통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편견이 아니라는 말씀. 그보다 더 중요했던 정보는 남아와 여아의 발달 과정은 정말 판이하게 달라서 언어, 주의집중 분야는 초등학생 시절엔 여아가 더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성형의 뇌를 가진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기에 남자아이가 패배감에 젖지 않도록 공부나 생활 태도에 대해 타박을 하지 않아야 한단다. 까불고 실수가 잦은 남아들에게 엄마들이 속상해하고 한 마디만 해도 될 것을 두세 마디로 공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정말 위험해질 수 있는 양육방법이란다. 요즘 초등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남아들은 양육자가 남성이어야 더 이해를 많이 받을 수가 있다고 하니까, 여성 양육자들은 남아를 가르칠 때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겠다.

 

내가 TV로 볼 때도 그랬고, 또 이렇게 책으로 봤을 때도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또 한번 감동을 받았던 분야는 「도덕성, 작지만 위대한 출발」인데, 아직까지도 나레이터의 부드럽지만 강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린다.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도덕성의 위협을 받는지 보여주고 그것은 양육자에게 달려있다고 부드럽게 설득하는 나레이터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실험에서 보여준 소수의 도덕성이 높은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실험에 참가했던 아이들 중 규칙을 무시하고 실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들이 느꼈던 부끄러움에서 바로 도덕성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아이를 이해하는 데뿐만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고 다큐멘터리이다. 집에 아이가 있건 없건간에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꼭 봤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